주체111(2022)년 3월 14일 로동신문
근로대중의 존엄과 권리를 짓밟는 반인민적사회
극소수의 독점이 합법화된 세상
자본주의사회는 자주적으로 살려는 인민대중의 지향과 요구를 무참히 짓밟는 가장 악독한 착취사회, 가장 횡포한 독재사회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인민대중은 인간의 존엄과 정치적권리를 전혀 못가지며 지어는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빼앗기고있습니다.》 언제인가 유럽의 한 력사학자는 속성상 자본주의는 심각한 생태계파괴를 동반하고 빈부의 량극분화를 극한점에 이르게 하며 제손으로 모순과 문제점들을 빚어내여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릴수 없게 한다고 말하였다. 자본주의가 인간의 모든 권리를 짓밟고 삶을 유린하는 사회라는것이다.당연한 주장이다. 부르죠아변호론자들이 자본주의사회에서의 그 무슨 《자유》와 《권리》에 대해 곧잘 떠들고있지만 자본주의의 전 력사적과정에 근로대중은 언제 한번 진정한 자유와 권리를 향유해보지 못하였다. 돌이켜보면 착취계급은 인민대중의 권리보장같은것은 안중에도 없었다.오직 자기의 특권적지위와 리익을 고수하고 보다 확대하는데만 리해관계를 가졌을뿐이다. 오늘의 자본가계급도 마찬가지이다.그들에게는 근로대중의 피땀을 짜내여 부귀영화를 누릴 특전, 근로대중을 마음대로 억압할수 있는 특권, 대중을 기만하고 우롱할수 있는 자유만이 요구된다. 자본주의사회는 극소수의 자본가계급이 국가권력과 생산수단을 독점하고 절대다수 근로대중을 지배하는 반인민적사회이다. 인간의 자주적권리는 정치생활, 국가관리에서 집중적으로 표현된다.인간이 참다운 정치적자유를 향유하려면 무엇보다도 정권의 주인으로 되여야 한다. 하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대중은 정권의 주인이 아니라 착취와 억압의 대상으로 되고있다. 자본주의정치는 독점재벌들을 비롯한 착취계급의 리익을 대변하는 반인민적인 정치이며 금권과 결합된 억압정치, 독재정치이다. 대통령선거, 국회선거때마다 부르죠아정객들이 저마끔 나서서 《평등》과 《민주주의》, 《처지개선》 등의 달콤한 공약들을 람발하고있지만 자본주의사회에서 모든 법과 결정, 시책들은 하나같이 재벌들의 리해관계에 부합되고 그들의 리윤획득을 보장해주는 방향에서 채택실시된다. 서방언론들자체가 개탄하듯이 자본주의정치는 《실제상 부자들을 위한 정치 즉 부자들이 자기의 자본우세를 리용하여 정부에 부유층의 리익을 도모할것을 강요하는 정치》이며 국회는 《부자들의 국회로서 부자들이 통치하고 부자들의 복리를 위한 국회》일뿐이다. 자본주의사회에서는 오직 부자들만이 국가의 정책작성에 영향력을 행사할수 있다.자본가계급은 저들의 독점적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폭력기구와 폭압력량을 대대적으로 늘이고 각종 파쑈악법들을 끊임없이 조작하면서 근로대중의 혁명적진출을 가혹하게 탄압하고있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대중은 정신문화생활에서도 자유와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있다. 자본가계급은 근로대중에게 건전한 사상생활의 자유를 주려 하지 않는다.그것이 허용되면 근로대중의 자주의식과 정치적각성이 높아지고 반자본주의투쟁이 강화될수 있기때문이다. 신문, 통신, 방송 등 모든 선전수단들을 틀어쥐고있는 자본가계급과 반동지배층은 저들의 사상적지배, 통치체제유지에 조금이라도 위험시되는 사상생활에 대해서는 철저히 제압하고있다.오직 부르죠아사상, 썩어빠진 부르죠아문화와 생활풍조를 조장시키는데 대해서만 무제한한 자유를 부여하고있다.결과 황금만능의 사상과 개인주의, 염세주의 등 각종 반동사상들, 온갖 미신과 저속하고 퇴페적인 생활양식이 만연되고있다.많은 사람들이 비애와 절망에 빠져 앞날에 대한 아무런 목표와 희망도 없이 살아가고있다. 로동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보장하는가 하는것은 사회제도의 진보성을 규정하는 중요한 기준의 하나로 된다. 자본주의사회에서 근로대중은 인간생활에서 가장 초보적인 로동의 권리마저 누리지 못하고있다. 한줌도 안되는 착취계급이 돈주머니를 불구면서 풍청거릴 때 물질적부의 창조자인 광범한 근로자들은 실업자로 전락되여 생의 막바지에서 허우적거리고있는것이 자본주의사회의 현실이다. 직업이 있는 사람들도 언제 해고될지 모르는 불안속에서 생활하고있다.서방세계에서 사람들사이에 《당신은 해고되지 않았습니까?》라는 서글픈 인사말이 통용되고있는것은 자본주의나라들의 심각한 실업위기를 보여주는 축도이다.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빼앗는 인간생지옥
자본가계급의 치부욕에는 한계가 없다.억대의 자본을 깔고앉아있으면서도 근로대중의 땀에 절은 푼전마저도 깡그리 빼앗아내기 위해 머리를 쥐여짜는것이 바로 자본가계급이다.극단한 리윤추구에 환장이 된 자본가들은 대중적실업을 로동강도를 높이고 로동력을 헐값으로 착취하기 위한 공간으로 리용하고있다.그들은 적은 자금으로 많은 리윤을 얻기 위하여 경영난이라는 구실로 로동자들을 대량적으로 해고하고있다. 자본주의나라 정부들은 자본가들의 리익보장을 위하여 그것을 묵인하고있다.심지어 자본의 투기행위로 경제, 금융위기가 들이닥칠 때마다 인민들에게 저임금과 실업을 강요하고 그들로부터 수탈한 천문학적액수의 세금을 오히려 위기를 산생시킨 거대은행들과 기업들을 구제하는데 퍼붓고있다. 이것은 오직 자본의 리익만을 대변하고 강자가 약자를 략탈하는 자본주의사회의 진면모가 어떤것인가를 보여주는 생동한 실례로 된다. 반인민적인 자본주의경제제도의 구조적병페때문에 근로자들의 생존권은 이토록 시시각각 위협당하고있다. 돈많은자들은 억만금을 뿌려가며 호화로운 생활을 즐기고 사치와 향락에 물젖어있지만 절대다수 근로대중은 삶의 희망을 잃고 몸부림치고있다.한쪽에서는 돈이 없어 병이 나도 병원에 가지 못하고 배우고싶어도 학교에 가지 못할 때 자본가들은 저들의 저속하고 변태적인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한데 돈을 물쓰듯 하고있다.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갈 곳이 과연 어디이겠는가. 범죄 아니면 자살의 길이다.최근 자본주의나라들에서 마약범죄, 알콜중독, 살인, 강도행위와 자살현상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있는것은 그 대표적실례로 된다. 이처럼 자본주의사회에서는 1%의 특권층때문에 99%의 근로대중이 도탄속에서 허덕이고있다. 사적소유에 기초하고 불평등을 전제로 하는 자본주의사회, 근로대중의 존엄과 자주적권리를 란폭하게 유린하는 이 사회에서 참다운 자유와 민주주의란 결코 있을수 없다. 서방이 목갈리게 떠드는 《자유민주주의》는 본질에 있어서 강한자가 약한자를 착취할수 있는 《자유》이며 강한자가 약한자를 억압할수 있는 《민주주의》이다.즉 소수만이 부귀영화를 누리고 다수는 빈궁에 시달려야 하는 《자유》이며 소수만이 특권을 행사하고 다수는 아무런 권리도 행사하지 못하는 《민주주의》이다. 돈있는자는 권세와 특권을 누리지만 돈없는 사람은 물건처럼 취급당하는것이 바로 자본주의사회의 진모습이다.불평등과 특권이 허용되는 사회에서는 매 사람의 존엄과 가치가 존중될수 없고 사람들사이에 불신과 반목, 증오와 적대의 관계가 산생된다. 자본주의사회야말로 초보적인 생존권마저 빼앗고 건전한 정신을 흐리게 하여 사람들을 정신육체적불구자로 전락시키는 반인민적이며 반동적인 사회, 인간생지옥이다. 제국주의반동들이 《민주주의》와 《인권》을 부르짖으며 사회주의에 대한 비방중상에 열을 올리고있지만 그것은 자본주의사회의 반인민적성격을 가리우고 근로대중의 분노의 화살을 딴데로 돌리기 위한 하나의 기만극에 불과하다. 력대로 반인민적인 사회제도는 근로대중의 배척을 면치 못하였다.자주성을 실현하기 위한 근로대중의 끊임없는 투쟁에 의해 노예제도가 멸망했고 봉건제도가 붕괴되였다. 자본주의의 운명도 달리 될수 없다.재부와 권력을 독차지한 극소수의 착취자, 억압자들이 근로대중의 존엄과 권리를 무참히 짓밟고 실업과 빈궁만을 강요하는 비인간적이고 반인민적인 사회는 인민의 버림을 받기마련이며 그런 사회가 사멸되는것은 피할수 없는 법칙이다. 허영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