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3월 30일 《우리 민족끼리》

 

전화의 불길속에서 꽃펴난 숭고한 민족애

 

조국통일을 위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령도사는 민족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력사, 위대한 민족애의 력사이다.

인민에 대한 사랑, 겨레와 민족에 대한 사랑은 조국통일을 위한 어버이수령님의 사상과 령도의 근본바탕이였다.

위대한 수령님은 진정 민족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시고 그 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다 바쳐오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경애하는 김일성동지는 가장 숭고한 인간애, 인민에 대한 뜨거운 사랑과 믿음을 천품으로 지니신 위대한 인간이시였으며 인민의 위대한 어버이이시였습니다.》

조국과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을 전쟁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시는 그 바쁘신 속에서도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생각하시며 해방된 땅에서 그들이 참다운 생활을 누리도록 크나큰 로고를 바치시였다.

주체39(1950)년 7월 중순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불비쏟아지는 전선길을 헤치시고 해방의 환희로 들끓는 서울을 찾으시였다.

이해 6월 미제와 리승만반역도당은 전조선에 대한 지배를 꿈꾸면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전쟁의 도화선에 불을 질렀다.

탁월한 전략전술과 무비의 담력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즉시적인 반공격으로 무력침범자들을 몰아내고 전쟁발발 3일만에 도발자들의 아성이였던 서울을 해방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제2차회의를 여시고 《서울시림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결론을 하시였다.

여기에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에 지체없이 림시인민위원회를 수립하고 시민들의 생활을 안정시킬데 대한 구체적인 과업과 방도들을 제시해주시였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군사위원회 제5차회의를 비롯한 여러 계기들에 해방된 남반부지역에서 지체없이 민주주의적개혁들을 실시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을 세워주시였다. 이에 따라 주체39(1950)년 7월 4일 해방된 남조선지역에서 토지개혁을 실시함에 관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이 발표되였으며 이어 로동법령과 남녀평등권법령 등이 실시되게 되였다.

수난겪던 남조선인민들에게 하루빨리 존엄높고 행복한 삶을 안겨주시려 마음쓰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그 사랑, 그 은정이 있어 외세와 매국노들의 압제에서 해방된 그들을 봉건적토지소유제도와 착취관계에서까지 완전히 해방하는 사회적변혁이 일어나게 되였다.

민주개혁의 실시를 위한 조치를 취해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과정을 현지에서 료해하시기 위해 쏟아지는 불비도 마다하지 않으시고 서울에 나오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서울시의 일군들을 몸가까이 부르시여 그곳 형편을 구체적으로 료해하시고 민주개혁의 실시과정에 대하여 하나하나 알아보시였다.

당시 서울시림시인민위원회일군들은 전쟁의 준엄한 환경만을 생각하며 인민들의 생활을 안착시키고 사회경제적개혁을 실시하기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내밀지 못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사실을 헤아리시고 서운함을 금치 못해하시였다. 해방된 남반부지역 인민들의 생활을 안착시키고 민주개혁을 실시하는 사업은 외세와 매국노들에게서 해방된 그들에게 자주적인간의 참다운 삶을 안겨주느냐, 그렇지 못하느냐 하는 심각한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남반부지역의 농민들자신의 힘으로 토지개혁을 실행해나가도록 할데 대한 문제를 비롯하여 오랜 시간에 걸쳐 민주개혁실시와 관련하여 제기되는 많은 문제들을 일일이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수백리 포연길을 헤쳐오신 피로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잠시의 휴식도 없이 관계부문 일군을 만나시여 서울시민들의 식량공급문제를 해결하고 파괴된 도로들을 복구하기 위한 대책도 세워주시였다.

서울의 밤은 소리없이 깊어갔지만 우리 수령님의 사랑과 은정은 끝없이 베풀어졌다.

그날 밤 수령님께서는 서울의 판자촌마을과 시민들이 모여사는 여러곳들을 몸소 돌아보시면서 그들의 생활을 일일이 료해하시고 제기되는 크고작은 문제들을 풀어주시였다. 이렇게 바쳐가신 우리 수령님의 끊임없는 로고로 하여 서울시를 비롯한 해방된 남반부지역 인민들의 생활은 빨리 안정되여갔고 전쟁의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민주개혁들이 성과적으로 실현될수 있었다.

그후에도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포연길을 헤치시고 수안보를 찾으시여 평범한 농가의 장독도 허물없이 열어보시고 고추장맛까지 보아주시며 그곳 인민들의 생활형편을 따뜻이 돌보아주시였다.

그리고 의정부의 농촌마을을 찾으시여서는 자신께서는 언제 한번 남녘동포들을 잊은적이 없다고 하시며 한 마을녀인에게 분여받은 토지에서의 농사진행정형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물어주시였다.

그 녀인은 세세년년 구박과 멸시속에 살아온 자기들에게 인간의 참다운 권리와 행복을 안겨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그 크나큰 사랑에 목메여 뜨거운 감사의 인사를 올리고 또 올렸다. 그것이 어찌 의정부녀인 한사람의 심정만이랴.

남조선인민들모두가 언제나 남녘동포들을 잊지 못하시며 천만가지 사랑을 안겨주시려고 마음쓰시는 우리 수령님을 해방의 은인, 민족의 어버이로 높이 칭송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남녘겨레에 대한 뜨거운 사랑은 력사에 수많은 전설들을 아로새겼거니 인민들의 안전을 위해 전투개시시간을 미룬 가슴뜨거운 사연도, 서울시민들의 땔감을 위해 설악산에서 나무베기전투를 조직해주시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가 시작되였을 때에는 그 나무들을 모두 토막내여 한강에 띄워보내주신 《설악산의 전설》도 위대한 수령님의 숭고한 동포애, 한없는 민족애를 길이길이 전하고있다.

정녕 돌이켜볼수록 분렬의 비극을 가시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 수령님의 령도사는 남녘동포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력사, 절세의 애국자의 위대한 민족애의 력사이다.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