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4월 5일 로동신문

 

탄원의 그날에 다진 맹세를 변함없이 지켜가는 평양의 장한 딸

25년세월 충성과 애국의 운행길을 달려온
양덕갱목생산사업소 운전사 리성옥동무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나라가 시련을 겪을 때, 우리 조국이 또 한단계의 도약을 요구할 때 당과 혁명이 부르는 제일선에 용약 달려나가 불멸의 위훈으로 강산을 뒤흔들던 기적의 청년신화는 결코 추억속에 있는 과거가 아니며 오늘도 우리 혁명이 줄기차게 전진할수 있게 하는 원동력으로 되고있습니다.》

온 나라에 혁명열풍, 애국열풍을 더해주며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전선들에 탄원진출하는 청년들의 소행이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계속 전해지고있다.

당과 국가의 고민과 걱정을 자기의 두어깨에 기꺼이 걸머지는것을 새세대의 도덕과 량심으로 간직하고 새 고장, 새 일터에서 보람찬 인생의 자욱을 새겨가는 우리의 미더운 열혈청년들, 그 깨끗한 마음이 생의 머나먼 길에 단 한점도 흐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우리 당과 인민의 절절한 기대를 담아 여기에 한 탄원자에 대한 이야기를 펼친다.

그가 바로 양덕갱목생산사업소 녀성운전사 리성옥동무이다.

우리 조국이 엄혹한 시련을 겪던 고난의 시기 수도 평양의 정든 일터를 떠나 림산부문으로 자원진출한 리성옥동무는 25년세월 변함없이 탄광동발용통나무를 나르는 운재차운전사로 일해오고있다.

탄원의 그날에는 꽃나이처녀였던 그의 머리에 어느덧 흰서리가 내리기 시작하였지만 림산사람들의 마음속에 또렷이 새겨진 녀성운전사의 모습은 예나지금이나 변함이 없다.

어제날 평양처녀의 고결한 25년삶에 대한 림산사람들의 정넘친 추억과 한결같은 평가에는 생소한 고장과 일터에 금방 인생의 닻을 내린 우리의 새세대 탄원자들이 한생토록 안고 살아야 할 고귀한 진리가 깃들어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선택

 

우리 인민들은 오늘도 수십년전 위대한 수령님의 령전에서 다진 맹세를 심장마다에 새겨안고 어렵고 힘든 부문으로 용약 탄원해가는 청년들을 뜨거운 격정속에 바래우던 일을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얼마나 많은 청년들이 위대한 수령님께 못다 바친 충성을 어버이장군님께 바칠 열망을 안고 당이 부르는 곳으로 주저없이 달려갔던가.

그렇게 날과 달이 흐르던 1997년의 어느 여름날 밤, 절절한 그리움을 안고 어버이수령님의 동상을 모신 만수대언덕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물결속에 어렵고 힘든 곳으로 탄원할 장한 결심을 품은 수도의 한 피복공장에서 일하는 제대군인처녀 리성옥동무도 있었다.

탄광동발나무생산지인 림산으로 갈 결심은 어제오늘에 내린것이 아니였다.민족의 대국상을 당한데다가 자연재해와 제국주의자들의 악랄한 경제봉쇄책동까지 겹쳐들어 우리 조국은 력사에 류례없는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었다.

이 어려운 때 제대군인당원이 설 자리는 과연 어디인가.

이른아침 출근길을 재촉할 때에도, 생산현장에서 부지런히 일손을 다그칠 때에도 그의 머리속에서는 이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그가 제일 가슴아프게 여긴것은 수도의 거리에 자주 불빛이 꺼지고 궤도전차며 무궤도전차들이 긴장한 전기사정으로 때없이 멎어서군 하는것이였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탄광에 동발나무가 미처 보장되지 못해 탄부들이 애로를 느끼고있다는것을 알게 되였다.문득 나라의 석탄생산문제를 놓고 그처럼 마음쓰시며 로고를 바치시던 어버이수령님의 영상이 눈물속에 어려왔다.

그는 마침내 결심을 내렸다.

(림산으로 가자.석탄생산을 늘이는 가장 중요한 문제의 하나인 동발나무생산에 이 한몸 다 바치자.)

그의 결심을 알게 된 공장일군들은 저으기 놀라는 기색이였다.그들에게 리성옥동무는 보배처럼 여기는 손목시계를 내보였다.흰눈처럼 하얀 문자판가운데 붉은 오각별이 빛나는 그 시계는 위대한 장군님께서 인민군장병들에게 안겨주신 사랑의 시계였다.

제대되던 날 전우들과 함께 시간을 맞추며 언제나 병사시절처럼 최고사령관동지의 뜻을 앞장에서 받들어갈 맹세를 다졌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일군들은 조용히 눈굽을 적시였다.

만수대언덕을 내린 그가 집에 들어선것은 자정이 지나서였다.온 가족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그래 림산으로 기어이 가겠단 말이지?》

아버지의 엄숙한 물음이였다.

리성옥동무는 부모형제의 시선을 온몸으로 느끼며 다소곳이 숙인 고개를 끄덕이였다.집안의 애지중지하는 막내딸을 수도에서 멀리 떨어지고 일가친척도 한명 없는 외진 림산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부모의 심정이 오죽하랴.

그때였다.아버지의 석쉼한 목소리가 다시 방안에 울리였다.

《역시 제대군인당원인 내 딸이 다르구나.성옥이 혼자만이 아니라 우리 온 가족이 함께 양덕으로 가자.서로 의지하고 힘을 합쳐 만수대언덕에서 다진 맹세를 다같이 지키자꾸나.》

리성옥동무는 그만 목이 꽉 메여올랐다.

당의 은덕을 받아안기만 하는 철부지자식이 아니라 나라가 준엄한 시련을 겪을 때 한몸 기꺼이 내대는 참된 공민이 되여야 하며 당의 걱정을 조금이라도 덜어드리는데 가정의 행복도, 영예와 자랑도 있다는것은 이들가정의 남다른 생활철학이고 신조였다.

이렇게 되여 리성옥동무와 그의 일가는 정든 수도 평양을 떠나 양덕으로 달려갔다.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시기까지 전기문제때문에 그토록 심려하신 어버이수령님의 유훈을 앞장에서 받들어갈 불같은 맹세를 간직한 리성옥동무가 양덕갱목생산사업소에서의 첫걸음을 내짚을 때 그의 가족들도 양덕군에 새 일터를 정하였다.

양덕갱목생산사업소 일군들은 금방 얼굴을 익힌 평양처녀 리성옥동무가 운재차를 몰겠다고 열렬하게 제기하던 일을 오늘도 잊지 못하고있다.

《저는 위대한 장군님께 삼가 올린 편지에서 꼭 갱목을 운반하는 자동차운전사가 되겠다고 결의다졌습니다.절 믿어주십시오.》

청춘시절의 선택, 바로 그것이 조국과 혁명, 인민을 위한 선택인가 아니면 자기자신만을 위한 선택인가 하는 서로 다른 기준에 따라 청춘의 삶이 정해지고 인생이 좌우되게 된다.

리성옥동무와 같이 받아안은 사랑을 알고 보답과 의리를 아는 청년들의 고결한 선택이야말로 그의 아름다운 청춘, 값높은 인생길을 환히 비쳐주는 하나의 맑은 거울이 아니랴.하지만 삶의 선택이 아름답다고 하여 인생이 끝까지 고결한것은 아니다.누구나 인생의 선택을 하던 초심을 걸음걸음 자각하며 먼길을 변함없이 걸을 때 그것이 진정으로 아름답고 숭고한것으로 되는것이다.

탄원자들 누구나 그러하듯이 리성옥동무에게도 때없이 결심을 흔들군 하던 시련의 시기가 있었다.

고난의 1997년도 다 저물어가던 눈보라치는 어느 겨울밤, 그의 표현대로 한다면 운재차운전사의 준엄한 첫겨울이였다.

양덕군 은하리의 산지토장에서 멀리 떨어진 철도역까지 통나무를 가득 싣고 달리던 리성옥동무의 운재차가 령길의 얼음판에서 안깐힘을 쓰더니 곧 멈춰서고말았다.노루꼬리만하게 남은 심산의 겨울해를 쳐다보니 겁이 더럭 났다.엄동설한의 사나운 눈보라를 안고 태질하는 시끄무레한 산림은 처녀를 불안에 휩싸이게 했다.

(과연 내가 선택한 이 길을 끝까지 갈수 있을가?)

문득 그가 림산으로 떠나는 날 달리는 차를 따라서며 손을 흔들어주던 공장일군들과 동무들 그리고 탄원한 소식을 듣고 고무가 담긴 편지를 앞을 다투어 보내여오던 군사복무시절 전우들의 당부도 연방 귀전에 울려왔다.

리성옥동무는 얼어붙은 차창에 비끼는 정다운 얼굴들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그들모두가 달려와 자동차를 훌쩍 밀어주었으면 얼마나 좋을가 하는 막연한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걷잡을수 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을념도 하지 않고 차창을 바라보았다.마치 자동차도 울고있는듯 차창밖에는 고드름이 매달렸고 이제는 앞도 보이지 않을만큼 성에가 불렸다.오직 자기의 나약한 모습만이 차창에 비껴있었다.

불현듯 림산에 탄원해온 그날 아버지가 온 가족을 데리고 양덕군의 혁명전적지로 갔던 일이 돌이켜졌다.

설한풍이 휩쓰는 험한 산중에서 생눈길을 헤쳐가던 항일의 녀전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준 아버지였다.혁명의 길에서 한번 다진 굳은 맹세 변치 않고 승리하는 그날까지 굴함없이 싸운 항일의 녀전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녀투사들이 나를 지켜본다면…)

리성옥동무는 그냥 자동차에 앉아만 있을수 없었다.그의 심장속에서 오직 혁명에 충실하리라 다진 맹세를 목숨바쳐 지켜가던 빨찌산녀투사들의 피, 그들이 간직하였던 불굴의 신념을 안고 혁명의 길을 끝까지 이어간 전세대들의 당부가 세차게 맥동쳤다.

《힘을 내자.항일의 녀투사들이, 나의 전우들이 지켜본다!》

그는 결연히 자리를 차고 일어나 솜옷을 벗었다.산속의 맵짠 바람이 온몸을 사정없이 때렸다.그것은 순간이나마 동요했던 리성옥동무의 정신을 호되게 후려갈기는것만 같았다.

그는 솜옷을 발동기에 덮어놓은채 차곁에 모닥불까지 피워놓고 차수리에 달라붙었다.이른새벽 먼동이 터오는 그 시각 리성옥동무는 차에 올라 발동을 걸었다.그리고는 밤새 쌓인 눈덮인 산길에 힘있게 새 자욱을 찍었다.

꽃다운 청춘시절에 수도시민증을 파견장으로 바꾸고 사랑하는 어머니조국을 위하여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선택을 한 리성옥동무는 이렇게 어렵고 힘든 고비에 부닥칠 때마다 탄원의 그날에 다진 맹세를 되새기며 변함없이 한길만을 꿋꿋이 걸어왔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지난해 8월 사회주의건설의 어렵고 힘든 전선들에 탄원진출한 청년들에게 보내주신 력사적인 축하문에서 남다른 고생을 각오해야 하는 초소들에 자원진출한 청년들의 고결한 정신이야말로 혈육들을 뒤에 두고 설한풍 휘몰아치는 광야에서 풍찬로숙하며 피흘려 싸운 항일혁명투사들의 숭고한 정신의 빛나는 계승이라고 하시였다.

탄원자들의 고결한 정신, 아름다운 인생의 선택, 그것은 진정 어제도 오늘도 변함이 없는 조선청년들의 숭고한 인생관의 발현인것이다.

 

탄원자, 그 부름을 위훈으로 빛내이라

 

누가 말했던가, 낯선 곳에도 정든 고향이 있다고.청춘의 꿈을 심고 참된 삶이 꽃펴나는 곳이야말로 진실로 정다운 고향이 아니랴.어느덧 수십년세월이 흘러 림산의 어엿한 주인이 되였지만 그렇게 되기까지에는 정말 많은 노력과 헌신이 필요했다는것이 리성옥동무의 솔직한 고백이였다.

제일 어려운것이 운전기술을 높이는것이였다.군사복무시절 포차를 끈 경력이 있는 그였지만 구배심한 령길에서 그것도 길이가 10m나 되는 운재차를 온종일 몰아야 하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하지만 그는 공훈자동차운전사아바이에게서 이악스레 운전기술을 배웠다.

각종 부속품들의 사명과 동작원리를 파악하느라 자동차곁을 떠날줄 몰랐고 수첩에 오가야 할 로선들을 하나하나 그려가며 운행길을 직심스레 파악하기도 했다.그런 나날속에 그의 운전기술은 하루가 다르게 높아갔다.

그의 조수생활이 끝나갈무렵인 어느날 공훈자동차운전사아바이는 이렇게 말하였다.

《래일부터는 후진련습을 해야겠소.운재차운전사의 진짜기술은 후진하는데 있거던.》

그때 리성옥동무의 뇌리에는 토장에 들어설 때마다 운재차를 토장에 바투 대지 못하여 종종 상차공들에게 수고를 끼치군 하던 일이 떠올랐다.

그날부터 사람들은 밤마다 후진련습을 하는 리성옥동무를 볼수 있었다.

나무등걸에, 바위우에 전지불을 올려놓고 처음에는 평지에서, 다음에는 비탈진 곳에서 또 그 다음에는 좁고 구배가 심하여 어려운 구간이라고 하는 령길에서…

이런 피타는 노력이 있어 그는 얼마후에 후진기술까지도 완전히 터득하게 되였다.

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그의 운재차를 먼발치에서 보고도 척 알수 있다고 한다.관리를 알뜰히 하여 그의 차가 늘 새것처럼 보이기때문만이 아니다.그는 매번 이깔나무로 기둥을 높이 세운 화물자동차적재함에 동발나무를 가득 싣고 달리군 하였다.림산사람들이 통나무를 쌓아놓은 토장이 통채로 굴러가는것같다고 감탄하여마지 않는 그의 불같은 열정은 과연 어디에 뿌리를 두고있는것인가.

10여년전 어느날 밤 사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산길에 나섰다.갱목을 싣고 운재길에 나섰던 리성옥동무가 여태 돌아오지 않아 떨쳐나선것이였다.

가파로운 산길을 톺으며 《성옥동무- 성옥이-》 하고 목청껏 불렀으나 대답은 좀처럼 들리지 않았다.얼마후 령기슭에 다달은 그들의 눈가에 한대의 운재차가 비껴들었다.리성옥동무의 차였다.그런데 운전사가 보이지 않았다.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다시 령길을 샅샅이 훑기 시작하였다.

그 시각 리성옥동무는 차에서 굴러내린 한대의 동발나무를 끌어내기 위해 《전투》를 하고있었다.

자기의 가냘픈 허리와 통나무를 굵은 바줄로 련결하고 안깐힘을 쓰며 끌고가는 리성옥동무, 입속으로 혁명가요를 부르며 용을 쓰는 그의 뇌리에는 많은 생각이 가득 차오르고있었다.

내가 오늘 떨군 이 동발나무 한대를 그냥 두고 갈수도 있다.이 한대가 없이도 오늘계획은 넘쳐 수행하게 될것이며 혁신자로 집단의 존경과 사랑을 받게 될것이다.하지만 이 동발목은 나무이기 전에 부강할 내 조국을 떠이고서있을 주추이며 기둥이다.…

얼마후 동발나무를 붙안고 쓰러진 그를 보았을 때 사람들은 뜨거운 눈물을 흘리였다.

탄원자, 그 부름은 지니기도 어렵지만 그 영예를 계속 빛내이기는 더욱 쉽지 않다.항상 조국과 인민이 지켜본다는 자각을 안고 순간순간 자신을 채찍질하며 위훈의 길을 수놓아갈 때 한번 선택한 장한 결심을 끝까지 실천해갈수 있다는것을 리성옥동무의 삶이 가르치고있다.

리성옥동무자체도 언제부터라고 딱히 알수 없지만 그의 운재차에는 애어린 나무모가 길다란 통나무와 함께 실어지군 했다.

사실 나무모를 운반하는것은 통나무를 실어나르는 운재차운전사의 일과는 거리가 멀다고 할수 있지만 그것은 한 탄원자의 가슴속에 간직된 애국의 소중한 지향을 전해주고있다.

품들여 구해온 나무모를 벌목공들에게 안겨주며 《많은 나무를 베였으니 이만큼은 심어야겠지요.》라고 말하던 리성옥동무, 그가 벌목공들에게 안겨주기도 하고 자체로 구뎅이를 파고 이 산, 저 산에 심은 나무가 수천그루나 된다고 하니 거기에 깃든 애국심을 어찌 보석에 비기지 않을수 있겠는가.

그 마음으로 리성옥동무는 사업소적으로 제일먼저 자기의 운재차를 대용연료를 리용한 운재차로 개조하였으며 그 나날 수백t에 달하는 연유를 절약하였다.

리성옥동무는 탄원하여 몇해후부터는 보금자리가 있는 양덕군을 멀리 떠나 자진하여 녕원군 온양리에서 이동작업을 하고있다.그런 그의 정치생활과 사생활에 언제나 깊은 관심을 돌린것은 녕원갱목생산사업소 일군들이였다.

살펴주고 위해주는 고마운 손길, 웅심깊은 사랑과 혈육의 정에 대한 이야기속에는 34문짜리 신발에 대한 이야기도 있다.

언제인가 리성옥동무에게 사업소의 한 일군이 도림업관리국 초급당비서가 보낸것이라고 하면서 크지 않은 소포 한개를 안겨주었다.호기심을 안고 그것을 풀어보던 리성옥동무의 눈가에 핑그르르 눈물이 돌았다.

거기에는 34문짜리 털신이 들어있는것이였다.

며칠전 작업소에 내려왔던 그날 산지합숙토방에 앉아 자기의 신발을 유심히 들여다보던 도림업관리국 초급당비서의 모습이 눈물속에 어려왔다.

그때 그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신발을 좀 보오.크기가 한뽐도 안되누만.이런 연약한 동무가 남자들과 꼭같이 산판에서 운재차를 몰고있소!》

그러면서 그는 땅을 별로 밟지 않는다는 운전사의 신발이 이렇게까지 닳을 정도이니 녀성운전사가 얼마나 수고가 많겠는가고 하며 당만 믿고 한생을 운재차와 살아오는 그를 잘 도와주자고 덧붙였다.합숙안에서 그 말을 듣는 리성옥동무의 두눈에서는 뜨거운것이 확 솟구쳐올랐다.

그 고마운 손길에 떠받들려 리성옥동무는 조선로동당 제3차대표자회와 조선로동당창건 75돐 경축행사에 대표로 참가하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게 되였다.

어렵고 힘들어할 때에는 지팽이가 되여주고 발걸음이 더디여질 때에는 기꺼이 떠밀어주며 손잡아 이끌어준 고마운 손길, 그 사랑과 믿음속에 리성옥동무가 오늘날 림산의 주인이 되여 삶을 빛내이는것이다.

림산의 주인, 그 부름은 진정 청춘시절 만사람의 축하속에 탄원자로서의 첫발을 떼였던 땅에서, 한생 양덕의 운재차운전사의 영예를 빛내이며 나라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할 굳은 신념을 새겨준 잊지 못할 림산사람들의 기대속에서 또다시 받아안은 값높은 부름이였다.탄원자라는 그 부름을 위훈으로, 혁신으로 아름답게 수놓아온 리성옥동무에게 림산사람들이 안겨준 제일 귀중한 호칭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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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성옥동무의 25년삶은 새세대 탄원자들에게 참다운 인생관을 새겨주고있다.

자기가 선택한 인생길이 수령의 뜻을 받들고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하는 길이라면 탄원의 그날에 다진 맹세 변치 말고 한생 끝까지 가라.그것을 삶의 좌우명으로 삼을 때 인생은 빛난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오은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