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4월 17일 로동신문
지난 15일 혁명의 수도 평양에서는
《당과 인민대중,
우리 나라에서 군중시위는 국가의 주인인 공민들이 자기
민족의 태양이신
년대마다 군중시위의 주제는 서로 다르고 시위참가자들은 계속 바뀌였어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렬해지는것은 주체의 태양을 높이 모신
우리는 이것을 올해 뜻깊은 4월의 경축광장을 격정과 환희의 열기로 들끓게 한 군중시위를 통해서도 더욱 깊이 새겨안게 된다.
천만년세월이 흘러도 우리는
그들속에는 1990년대초부터 평양시군중시위에 빠짐없이 참가해온 형제산구역의 지봉숙녀성도 있었다.년로한 몸이지만
얼마전까지만 해도 최전연마을에서 살다가 남편을 따라 평양에 올라온 한 군인가족도 TV화면에서만 보아오던 영광의 대오속에 오늘은 자기가 선다고 생각하니 꿈만 같다고 하면서 시위대렬의 맨 앞장에 세워줄것을 열렬히 청원하였다. 비록 나이와 사는 곳은 서로 달라도 그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우리는
이런 뜨거운 마음을 안고 시위훈련에 충성의 땀방울을 아낌없이 쏟은 사람들속에는 공화국기를 대형기폭으로 펼치고 시위대렬의 맨 앞장에서 나아가게 된
무거운 대형기폭을 한점의 구김살도 없이 펼쳐들고나간다는것은 말처럼 헐한 일이 아니였다.훈련장소로 선정된 5월1일경기장에서 짧은 기간에 1 000여명이 발걸음과 손높이를 하나로 일치시켜야 하였다. 반복 또 반복… 봄이라고는 하지만 대동강에서 불어오는 차디찬 강바람으로 하여 때로 온몸이 얼어들기도 하였다.온종일 두팔을 쳐들고 훈련하느라면 지쳐 쓰러질 때도 있었다.
그때마다 그들은 대학이 창립된 이듬해 5.1절에 진행된 군중시위에서
이런 뜨거운 마음을 안고 완성한 대렬동작으로
하루라도 훈련을 하지 못하면 삶의 명줄이 끊기는것만 같아 스스로 훈련길을 재촉하던 형제산구역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의 사상정신세계는 또 얼마나 고결한것인가. 이른새벽부터 보슬보슬 봄비가 내리던 어느날이였다.장마비는 아니였지만 오랜 시간 내린 비로 하여 훈련장소는 물탕으로 변해버렸다.대렬책임자는 시위참가자들의 건강이 념려되여 그날만은 훈련을 그만두기로 하였다.하지만 쏟아지는 비발을 피하여 집으로 달려갈줄 알았던 시위참가자들이 오히려 훈련을 계속할것을 절절히 요구하는것이 아닌가.
우리가 제 한몸 젖는것이 두려워 마른 땅을 찾는다면 그것은 우리
이런 이야기는 비단 형제산구역에서만 꽃펴난것이 아니였다. 아무리 건장한 사람이라고 해도 목청껏 만세를 부르며 왕복 수십리길을 걷느라면 지치기마련이다.하지만 군중시위훈련에 참가한 군인가족들은 잠시 휴식구령이 내리면 진달래꽃을 형상한 소도구부터 살폈다. 꽃송이는 제대로 붙어있는지, 색은 바래지 않았는지.… 단순히 깨끗함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녀성특유의 심리때문만이 아니였다.
군중시위에 군인가족들도 참가하도록 크나큰 사랑과 믿음을 안겨주신
한몸이 그대로 성새, 방패가 되여
자연의 진달래꽃은 봄날의 한때만 피고진다.하지만 군인가족들의 충성의 한마음이 어린 진달래꽃은 강산이 변한다는 그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붉게만 타올랐으니 이런 고결한 도덕의리심을 이 세상 그 어디에서 찾아볼수 있으랴.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글발이 새겨진 가장물을 중심으로 춤동작을 펼치며 나아가는 소년단원들이였다. 10여개의 학교에서 모여온 학생소년들이 그처럼 어려운 동작들을 하나로 일치시킨 비결은 무엇이였던가.
중구역 동흥초급중학교에서 공부하는 소년단원들의 가슴속에는 전후 나라일에 그처럼 바쁘신 속에서도 몸소 학교를 찾아오시여 후대교육사업에서 지침으로 삼아야 할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던
이른아침 훈련장으로 떠날 때면 그들은 학교에 정히 모신
이 땅우에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소리가 더욱 높이 울려퍼지게 하기 위하여 모든것을 다 바치신
바로 이런 불같은 마음이 나어린 학생소년들로 하여금 그처럼 짧은 기간에 훌륭한 춤동작을 완성할수 있게 하였다.
세상을 둘러보면 나라마다 자기 특색의 군중시위가 있다.하지만 자기
우리는
당중앙따라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노래 《빛나는 조국》의 숭엄한 선률이 울리는 속에 평양시군중시위가 시작되자
《지금으로부터 69년전 전승을 경축하던 그날 나는 바로 이 광장에서 진행된 열병식에 참가하였습니다.
지나온 력사를 돌이켜볼수록 가슴이 뜨겁게 달아오른다.
준엄한 조국해방전쟁시기
그때로부터
언제인가
그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세대도 여러번 바뀌였고 광장의 모습도 이제는 몰라보게 달라졌지만 단 하나 변하지 않는것이 있으니 그것은 바로
하기에 노래 《승리의 5월》에 발맞추어 행진해나간 김종태전기기관차련합기업소의 수백명 로동계급은
사실 그 가장물을 만들데 대한 과업을 받았을 때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지금껏 그런 가장물을 만들어본적이 없는데다가 더우기는 시간이 매우 긴박했기때문이였다. 하지만 그들은 경험과 능력 그 모든것을 초월하여 비상한 속도로 가장물을 만들어나갔다. 한쪽에서 만경대고향집으로 달려가 초가이영과 사립문으로부터 쭈그러진 독을 비롯한 사적물에 이르기까지 찬찬히 살피며 가장물에 옮겨놓을 때 다른쪽에서는 수천개에 달하는 꽃송이들을 금시 향기가 풍길것같은 생화처럼 만들려고 온갖 정성을 다하였고 또 한켠에서는 《태양절》, 《영원한 인민의 태양》이라는 글발을 사소한 허점도 없이 부각하느라 손끝이 닳다 못해 피가 다 졌다. 잠이라는 말자체를 잊고 산 7일낮, 7일밤, 이전같으면 두석달은 실히 걸렸을 창작과제를 그처럼 빠른 기간에 훌륭히 완성한데 대하여 긍지높이 추억하며 그들은 말하였다.
《비록 군중시위에는 참가하지 못하지만 우리의 땀이 스민 가장물을
첫 관통을 하루 앞둔 날 저녁 평양기관사기술대학의 조수별학생은 군중시위때 손에 들 기발을 살피고있었다.도색감을 찾아 기발대를 칠하려는데 어머니가 대학에서 몇명이나 군중시위에 참가하는가 묻고나서 말했다. 《왜 네것만 하겠냐.이왕이면 동무들의것도 다같이 하는것이 어떻겠냐.》 그들이 친척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백수십개나 되는 기발대에 칠할 많은 량의 도색감을 마련할 때 박효국학생은 밤이 지새도록 정성들여 학급동무들의 기발주머니를 만들어가지고 훈련장에 나왔다. 이런 일들은 훈련이 진행되는 전 기간 수도의 어느 가정, 어느 일터에서나 있었다. 비록 환호의 꽃물결이 되여 흘러가는 시위대렬속에서 그 모습은 보이지 않았어도, 광장에 울려퍼지던 만세의 함성에 목소리는 합치지 못했어도 수많은 수도시민들이 군중시위참가자들과 어깨겯고 나란히 한전호에 서있는 심정으로 날과 날을 보내였으니 그 나날 감동없이 들을수 없는 미담들은 또 얼마나 무수히 꽃펴났던가.
정녕 뜻깊은 태양절날
그렇게 이 땅에 밝아온 4월의 봄명절이였다.
하기에 훈련의 나날 그처럼 끝없이 불타오르던 충성의 마음은
군중시위참가자들이 광장을 걸어간 길은 길지 않았다.흘러간 시간은 불과 몇분이였다.하지만 나라와 인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한 헌신으로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무비의 절대적힘을 지닌 강대국으로 빛내이시여 이 땅우에
《일편단심》, 《영원히 한길을 가리라!》
군중시위참가자들이 높이 들고나간 충성의 이 글발, 정녕 그것은
4월의
본사기자 정영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