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5월 3일 로동신문
참된 어머니, 야전형의 지휘관이 되라 2.8직동청년탄광 초급당비서 리동철동무의 사업에서
《모든 일군들이 자기 부문, 자기 단위 사업을 전적으로 책임진다는 립장과 자세에서 빈틈없는 작전과 능숙한 지휘로 대중을 이끌어나가야 하며 맡겨진 과업을 당에서 정해준 기간에, 당에서 요구하는 높이에서 철저히 집행하여야 합니다.》
영광의 일터에서 당사업을 하는 긍지를 안고 초급당비서 리동철동무는 탄광이 당정책관철을 위한 투쟁의 선봉에 서도록 지혜와 열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리동철동무는 조선로동당 제2차 초급당비서대회에 참가하여
애국의 거목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여
뿌리가 든든해야 나무가 푸르싱싱한 거목으로 자랄수 있듯이 당일군들이 애국의 거목을 키우는 밑거름이 되여야 일군들과 종업원들을 당과
지난 세기 90년대 시대의 전형인 김유봉영웅을 낳은 탄광에서는 리동철동무가 초급당비서로 사업해온 기간에만도 여러명의 영웅과 수십명의 공로자들이 배출되였다. 한승찬동무가 탄부의 전형으로 영광의 절정에 오르게 된데도 리동철동무의 숨은 노력이 깃들어있다. 당의 부름을 받들고 직동탄전에 달려온 한승찬동무는 굴진공으로부터 시작하여 초소장, 12갱 기사장을 거쳐 9갱 갱장으로 사업하게 되였다. 첫 사업으로 막장의 로반공사를 갱자체의 힘으로 진행할것을 결심하고 전투를 벌리는 그를 초급당조직은 적극적으로 떠밀어주었다.스스로 어려운 일감을 떠맡은 그의 갱에 필요한 설비를 우선적으로 보장하고 로력도 보충해주도록 하였다.그리하여 한승찬동무를 비롯한 9갱 탄부들은 어렵다고 하던 로반공사를 짧은 기간에 끝냄으로써 석탄증산의 돌파구를 열어제끼고 탄광의 계획수행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그런데 그처럼 강인하던 한승찬동무가 맥을 놓고 주저앉은적이 있었다.어느날 리동철동무는 그가 초급당위원회에 보내여온 편지를 받게 되였다.탄광의 아무 일을 시켜도 일없으니 갱장사업만은 못하겠다고, 젊은 사람을 시켜달라고 하는 편지의 내용을 읽을수록 리동철동무는 생각이 깊어졌다.리동철동무는 그를 만나 탄전에 뿌리를 내리던 때의 결심을 다시금 자각하며 이 고비를 이겨내자고 하면서 신심을 안겨주었다.그러나 그의 사업에서는 차도가 없었다.그래서 리동철동무는 그의 가정에도 찾아가 생활형편을 자세히 알아보았는데 안해가 중병으로 앓아누웠던것이다.리동철동무는 안해의 병치료에 필요한 약재도 마련해주면서 그가 집걱정을 하지 않고 석탄생산에 전심전력할수 있도록 늘 왼심을 썼다.9갱을 맡고 막장에 내려가 일도 같이하면서 그가 주저앉을세라 신심과 용기를 북돋아주면서 떠밀었다.아마도 그때 한승찬동무가 맥을 놓고 주저앉았더라면 영광의 단상에 오르지 못했을것이다.
탄광에는
소대원들 한사람한사람을 소중히 품어안고 속도 많이 썩이고 때로는 아픈 매도 들며 부단히 교양해온 리동철동무의 믿음과 정이 있어 그들은 오늘날 조선로동당원으로, 사회주의애국공로자로, 탄광에 없어서는 안될 보배로 성장하게 되였다. 이렇게 리동철동무의 손끝에서는 나라앞에 죄를 지었던 사람들도 공로자로, 평범하던 사람들도 영웅으로 자라났다. 당일군에게는 공로자라는 영예가 차례지지 않는다.그러나 대중이 받는 그 영예속에는 당일군의 남모르는 수고와 노력이 진하게 깃들어있다.이런 의미에서 볼 때 당일군의 헌신은 애국의 거목을 키우는 밑거름으로 되는것이다.
들끓는 화선에 위치를 정하고
일군들은 사무실이 아니라 화선에 나가 앞장에서 자기 부문, 자기 단위를 이끌어나가는 기관차역할을 하여야 한다. 리동철동무의 일본새를 한마디로 특징짓는다면 화선식이라고 할수 있다.탄광일군들은 물론 종업원들도 그를 두고 늘 막장에 붙어사는 당일군이라고 말하고있는데는 일리가 있다. 탄광초급당비서로 사업하게 된 그는 단위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는 과정에 한가지 중요한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였다.대중속에 몸을 푹 잠그고 그들을 석탄증산에로 견인해야 할 일군들이 대부분 여러가지 조건을 내대며 사무실에서 맴돌고있는것이였다.그러다보니 어떤 일군들은 자기 갱의 실태를 세부에 이르기까지 구체적으로 모르고있었으며 해당 부문을 맡은 일군들도 자기 사업에 정통하지 못하고있었다. 리동철동무는 석탄증산의 근본방도를 일군들의 사상관점과 일본새를 결정적으로 혁신하는데서 찾고 자신부터가 막장으로 들어갔다.특히 그는 일군들이 현장으로 들어가는 경우에도 형식을 차릴것이 아니라 실지 현실에서 제기되는 문제를 푸는 실속있는 지도를 하도록 요구성을 높였다. 한가지 실례가 있다. 몇해전까지만 하여도 탄광에서는 버럭처리가 따라서지 못하여 석탄생산에서 적지 않은 지장을 받군 하였다.그래서 탄광일군들은 벨트콘베아를 리용하여 버럭을 처리할것을 결심하고 공사에 진입하였다.그런데 산경사면에 벨트콘베아를 설치하자니 처리해야 할 토량이 방대한것이 제일 난문제였다.이때 리동철동무는 대중속에 깊이 들어가 그들과 일도 같이하면서 토량을 손쉽게 처리할수 있는 합리적인 방도를 내놓아 공사를 성과적으로 결속할수 있게 하였다. 자재창고가 막장안으로 들어오게 된것도 그의 발기에 의한것이다. 종전에는 자재창고가 막장과 멀리 떨어진 지상에 있다나니 설비가 고장나면 그것을 퇴치하는데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었다.리동철동무는 대중속에 들어가 그들의 의견을 귀담아듣는 과정에 자재창고를 막장에 접근시키면 시간을 현저히 단축할수 있다는것을 포착하게 되였다.이렇게 되여 막장안에는 각종 부속품들이 갖추어진 자재창고가 생겨 석탄증산에 이바지할수 있게 되였다. 이밖에도 수평로라를 리용하여 벨트콘베아의 안전성을 담보하고 석탄운반능력을 높인것을 비롯하여 리동철동무가 대중속에 들어가 제기되는 문제들을 푼 사실들은 많다. 리동철동무는 몹시 불편한 몸이지만 오늘도 늘 막장에, 화선에 서있다. 이렇게 일군이라면 아래사람들에게 책임을 따지고 추궁할것이 아니라 자신부터가 솔선 화선에 서서 걸린 문제해결의 방도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분투해야 성과를 이룩할수 있다는것을 리동철동무의 사업은 보여주고있다.
초급당비서들이 일군들과 종업원들을 조국과 인민을 위해 몸바칠줄 아는 훌륭한 애국자로 키우는 진정한 어머니, 당정책관철을 위한 투쟁에서 야전형의 지휘관이 되여 헌신할 때 단위사업에서는 반드시 혁신이 일어나게 된다.바로 이것이 리동철동무의 사업에서 찾게 되는 귀중한 경험이다. 글 본사기자 김성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