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5월 7일 로동신문

 

룡남산이 자랑하는 애국과학자집단

록색주조기술을 우리 식으로 연구도입하는데서 특출한 역할을 한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과학기술교류사
사장 박사 임완빈동무를 비롯한 연구사들에 대한 이야기

 

김일성종합대학이 걸어온 력사에는 높은 과학연구성과로 당과 조국을 받들어온 교직원들과 학생들, 졸업생들의 충성과 애국의 자욱이 아로새겨져있다.

그들가운데는 록색주조기술인 연소모형주조기술을 우리 식으로 연구도입함으로써 나라의 기계공업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주물생산부문의 기술적변혁을 선도한 애국과학자집단도 있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김일성종합대학은 과학연구사업을 힘있게 벌리며 교육과 과학연구, 생산의 일체화를 실현하는데서 선도자가 되여야 하겠습니다.》

지난 2월말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과학기술교류사의 연구집단이 수행한 대상과제 《연소모형주조공정수립에 필요한 설비들의 국산화와 주조방법연구도입》에 나라의 최고과학기술상인 2.16과학기술상이 수여되였다.이 과제를 수행하는데서 주도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한 사장 박사 임완빈동무는 2021년 국가최우수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되였다.

스스로 선택한 탐구의 생눈길을 줄기차게 걸으며 김일성종합대학의 존엄과 명예를 지키고 값높이 빛내인 우리의 주인공들의 고결한 정신세계는 참으로 귀중한 인생의 진리, 애국의 참뜻을 이 나라의 지식인들에게 가르쳐주고있다.

 

량심의 선택

 

임완빈동무가 국가최우수과학자, 기술자로 선정되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날부터 김일성종합대학은 물론 평양과 지방의 곳곳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축하의 인사를 보내여오고있다.그를 대학시절부터 알고있는 사람들은 축하에 앞서 놀라움을 표시하고있다.

그때마다 그는 조용히 자기자신도 믿기 어려운 부름앞에 서보군 한다.

공학박사, 나라의 최우수과학자!

사실 임완빈동무는 김일성종합대학 철학부 졸업생이다.

이 이야기는 그가 대학의 어느한 단위에서 부원으로 사업하던 10여년전으로 거슬러오른다.

사업상용무로 평안북도에 자리잡고있는 어느한 광산에 갔던 그는 그곳 일군으로부터 뜻밖의 물음을 받았다.

《마광기에 들어가는 내마모성부분품을 우리 나라에서는 만들수 없습니까?》

미처 대답을 찾지 못하고있는 그에게 일군은 다우쳐 말하였다.

《우리 광산에서만도 한해에 수백t씩 요구되는데 몽땅 수입하고있지요.아마 전국적으로는 굉장할겁니다.》

일군이 가리키는것은 별로 특별한데가 없어보이는 주물품이였다.

군사복무시절 자동차운전사였던 그는 어지간한 기계물계에는 환한터이라 어렵지 않게 방조를 약속하였다.

《아무렴, 김일성종합대학에서야 얼마든지 할수 있겠지요.》

기대가 어린 광산일군의 그 말이 오래도록 귀전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임완빈동무는 이렇게 생소한 주조분야와 인연을 맺었다.

그후 그는 여러 단위를 부지런히 오가며 목형주조로 만든 여러t의 주물품을 마련하였다.하지만 수백리길을 달려 광산으로 갔을 때 그가 받은것은 고맙다는 인사가 아니였다.

광산일군은 대번에 이렇게 말하는것이 아닌가.

《이렇게 기포가 많고 겉면이 한심한것은 쓰지 못합니다.하긴 첫술에 배부르겠습니까.》

품들여 만들어가지고 간 첫 주물품을 파철더미에 버리고 그는 광산을 떠나왔다.

용기를 내여 몇달동안 다시 만든 두번째 주물품에 대한 평가도 시원치 않았다.세번째만에는 금형주조로 만들고 이번에는 틀림없을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오히려 그전보다도 못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억이 막혔다.해를 넘기며 들인 숱한 품이 몽땅 허사로 되고말았던것이다.

《이젠…그만두십시오.결국 우리 나라에서는 아직 안된다는거군요.》

헤여질 때 한 광산일군의 실망어린 말이 그의 마음을 더 아프게 하였다.

그때부터 그는 짬만 있으면 주물과 관련한 자료를 찾아보았고 광산에서 가지고 온 못쓰게 된 수입주물품쪼각을 놓고 전문가들의 의견도 들어보았다.하지만 얻은것은 전통적인 주조방법들로써는 내마모성부분품으로 쓰이는 주물품의 높은 질적지표를 보장할수 없다는 결론뿐이였다.

썩 후날에야 그는 자기가 별치않게 보았던 그 주물품이 다름아닌 연소모형주조기술, 일명 거품수지모형연소에 의한 진공주조기술이라는 새로운 기술로 만든것임을 비로소 알게 되였다.

목형이나 금형을 리용하는 전통적인 주조방법들과는 달리 거품수지와 같이 타없어지는 모형을 리용하는 연소모형주조기술은 임의의 복잡한 모양의 주물품도 원만히 만들수 있을뿐 아니라 생산원가를 대폭 낮추고 그 질을 높이면서도 작업환경을 개선하는 등 여러가지 우월성으로 하여 세계적으로 에네르기절약형록색주조기술로 불리우고있다.

(연소모형주조기술, 거품수지모형…)

이렇게 몇번이고 외워볼수록 임완빈동무는 생소한 이 기술이 마치 오래동안 찾고찾던 진귀한 보물처럼 느껴져 저으기 흥분되였다.

하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였다.알아보니 당시까지는 이 주조기술에 대해 깊이 아는 사람이 별로 없었던것이다.

(나라에 꼭 필요한 기술이고 누구든지 빨리 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 어느 단위에서도 지금껏 하지 못한 일을 주조공학을 배운적도 없고 연구사도 아닌 내가 하겠다는건 너무 허망한 일이 아닌가.더구나 하라고 시키는 사람도 없는데야…)

직무나 학력상으로 보면 분명 오르지 않아도 되는, 오르지도 못할 나무였다.하지만 그냥 외면하고 포기하자니 왜서인지 마음이 무거웠고 남들이 하는것을 우리가 왜 못하겠는가 하는 민족적자존심이 불끈거리였다.

광산에서 요구하는 내마모성부분품을 자체로 해결해보자고 나섰다가 뜻밖에도 록색주조기술을 우리의것으로 만드느냐 마느냐 하는 갈림길 그것도 다름아닌 자기자신이 주인이 되여 걷는가 마는가 하는 갈림길에 서게 된 그는 생각이 많았다.

불현듯 광산에서 처음 만났던 일군의 목소리가 귀전에 들려왔다.

《아무렴, 김일성종합대학에서야 얼마든지 할수 있겠지요.》

선뜻 용단을 내리지 못하고있던 어느 깊은 밤 그의 눈앞에는 오래전에 세상을 떠난 부모의 모습이 떠올랐다.

군사복무를 마친 그가 김일성종합대학 입학통지서를 들고 함흥에 있는 집으로 갔을 때 너무 기뻐 눈물만 흘리던 아버지, 어머니였다.

《우리같은 로동자집안에서 김일성종합대학 학생이 나오다니?!》

심한 병을 앓으면서도 아들의 공부에 지장을 줄가 저어되여 내색하지 않던 아버지, 나라의 은덕을 절대로 잊지 말고 공부를 잘하라고 늘 당부하던 사랑하는 어머니가 호되게 꾸짖는것만 같았다.

《맏이야, 무얼 주저하는거냐.넌 나라의 최고대학졸업생이 아니냐!》

(나라의 최고대학, 김일성종합대학 졸업생!)

절절한 부름이 귀전에 울려와 잠을 이룰수 없었고 기대어린 눈빛들이 지켜보는것만 같아 그냥 누워있을수 없었다.

진정 그것은 시대와 인민이 김일성종합대학을 부르는 소리였고 그 어떤 직무나 전공학문으로가 아니라 룡남산, 성스러운 그 이름으로 새기술탐구의 선구자, 새로운 혁신의 선도자들을 부르는 혁명의 요구였다.

(이제 와서 내가 아닌 다른 누가 먼저 나서기만을 기다린다면 선진주조기술의 도입이 늦어진다.그만큼 나라가 뒤떨어진다.

이것을 안 이상 외면할 권리가 없다.)

이렇게 되여 임완빈동무는 40대중엽의 나이에 스스로 연소모형주조기술연구사라는 량심의 직무를 또 하나 걸머지고 남모르는 탐구의 길에 나섰다.

당시 주조분야에서 미개척이나 다름없던 연소모형주조기술에 대한 연구는 이처럼 전임연구사도, 주조공학분야의 전문가도 아닌 김일성종합대학의 한 평범한 지식인에 의하여 소문없이 시작되였다.

그 길은 헐한 길이 아니였다.주조공학이라는 학문자체가 설계지식은 물론 야금공학과 재료공학을 비롯한 여러 분야의 폭넓은 지식을 겸비할것을 요구하는것으로 하여 습득하기 헐치 않은데다가 한가지를 주물해도 열사람이 붙으면 열가지 주조방안이 나온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현장조건과 실천에서의 난문제들로 하여 공학자들도 선뜻 뛰여들기 저어하는 분야가 바로 주조분야였던것이다.

뒤에서는 이 분야에 대한 깊은 지식도 경험도 별로 없는 사람이 너무 경솔하게 나서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에 찬 목소리들이 들려왔다.고생만 하다가 말지 않겠는가고 동정어린 눈길을 보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물러서지 않았다.물러설수가 없었다.

자그마한 시험장에서 로동자들과 밤을 지새우며 새 주조기술의 원리들을 하나하나 밝혀나갔다.마침내 간난신고하여 처음으로 얼마 크지 않은 광차바퀴를 만들어냈을 때의 기쁨은 얼마나 컸던가.

얼마후에는 당조직과 집단의 방조속에 평천지구에 꾸려놓은 연소모형주조기지에서 전통적인 주조방법들로써는 만들기 힘들던 질좋은 주물품들을 하나하나 만들어내기 시작하였다.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하였고 보는 사람마다 환성을 올렸다.

나라의 주물생산부문에서 일어나게 될 새로운 기술적변혁의 서막은 이렇게 오르고있었다.

그때를 돌이켜보며 김일성종합대학 부총장 리현광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 연소모형주조기술은 최근 한두해사이에 나온것이 아닙니다.아마 외국출장길에 이 기술을 임완빈동무보다 먼저 본 사람도 없지는 않을겁니다.

하다면 누구에게는 보물처럼 보이고 누구에게는 보이지 않는가.결코 직무나 전공학문이 문제가 아닙니다.

항상 나라일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은 자기스스로도 믿기 어려운 큰일을 해낼수 있다고 봅니다.》

애국적인 소행은 그것이 크든작든 가사우에 국사를 놓고 자기 하나의 리익보다 집단의 리익을 먼저 생각하는 량심의 선택으로부터 시작되는 법이다.

만일 임완빈동무의 10여년전 그날의 선택이 없었다면 아마도 우리 나라에서 연소모형주조기술의 확대도입이라는 주물생산부문의 기술적변혁은 그만큼 늦어졌을것이다.

지식인들에게 있어서 하나하나의 선택은 결코 자기자신의 전도나 운명문제로 끝나는것이 아니라 이처럼 나라의 발전수준 나아가서 조국의 존엄, 민족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당과 국가의 배려속에 대학을 나온 지식인이라면 생각해보시라.

고향의 부모들과 군사복무시절 전우들의 기대를 안고 대학에 입학할 때의 그 흥분과 격정, 맹세를 오늘도 안고 사는가, 키워준 스승들과 전세대들의 당부대로 모교의 명예를 빛내이기 위해 노력하고있는가.

당이 바라고 나라가 기다리는 일감앞에서 직무나 전공학문때문에 외면하거나 주저하게 될 때면 인생의 재보로 간직하고있는 대학졸업증을 다시한번 펼쳐보시라.그리고 자신에게 물어보시라.

품들여 공부시켜 내세워준 당과 국가의 은공에 어떻게 보답하고있는가를.

어디서 무슨 일을 하든 그 어떤 타산에 앞서 당의 크나큰 정치적신임과 기대, 시대와 혁명앞에 지닌 의무를 자각할줄 아는 사람만이 당에 기쁨을 드리고 조국의 부강발전을 위한 힘을 키워주는 충성과 애국의 창조물을 내놓을수 있다는것을 룡남산의 한 지식인이 스스로 선택한 량심의 길은 말해주고있다.

 

진정한 우리의것에 참된 애국이 있다

 

임완빈동무를 비롯한 김일성종합대학 첨단과학기술교류사의 연구집단은 연소모형주조기술을 우리 식으로 연구한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찬양을 받을만하다.

실지로 이들이 밝혀낸 선진주조기술의 원리와 주조방법들을 토대로 하여 수입에 의존하던 주물품들이 하나둘 국산화되기 시작하였으며 이 과정에 이들은 적지 않은 리익을 나라에 주었다.

하지만 우리는 취재과정에 연소모형주조기술연구집단의 또 하나의 공적에 대해 알게 되였다.연소모형주조공정을 수립하는데서 수입이라는 말자체를 없앨 높은 목표를 내세우고 완강하게 실천해왔을뿐 아니라 전국에 확대도입하는데서도 선구자가 되였다는 사실이다.

여기에 이런 자료가 있다.

연소모형주조공정수립에 필요한 15종의 설비와 내화칠감 국산화, 각이한 크기와 모양의 주철 및 주강제품들에 대한 주조방법 확립, 10여개의 단위에 연소모형주조공정 수립, 백여개 단위에 수천t의 주물품 생산보장…

우리의 두뇌와 기술, 우리의 설비, 우리의 자재에 의거하여 선진주조공정을 마음먹은대로 수립할수 있는 든든한 물질기술적토대를 불과 몇명밖에 안되는 연구집단이 구축하였다는 사실앞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탄하고있다.

연소모형주조기술에 대한 사회적관심이 점차 커가던 주체104(2015)년 7월 임완빈동무는 당의 크나큰 신임에 의하여 김일성종합대학에 새로 조직된 첨단과학기술교류사 사장으로 임명되였다.젊고 쟁쟁한 인재들로 연소모형주조기술연구집단도 새로 꾸려졌다.

모두가 새로운 결심을 안고 통이 크게 일판을 전개해나가던 어느날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진 북변의 어느한 기업소의 일군이 이들에 대한 소문을 듣고 교류사로 전화를 걸어왔다.

《정말 부러워했던 기술인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해냈구만요.역시 다릅니다.우리도 연소모형주조공정을 꾸릴수 있게 도와주십시오.》

임완빈동무는 무척 반가왔다.이제는 현실이 단순히 주물품제작만이 아니라 공정수립을 요구하고있었던것이다.

그날 저녁 기술합의에 내놓을 문건을 준비하던 그는 이윽토록 한곳을 응시하였다.연소모형주조공정수립에서 핵심으로 되는 물고리뽐프를 비롯한 주요설비들의 이름옆에 씌여진 《수입》이라는 두 글자가 그의 눈을 아프게 찔렀던것이다.

(생소한 주조분야에 뛰여들어 힘들게 여기까지 왔는데 이제 또 기계설계분야에 발을 들여놓으면 얼마나 먼길을 가야 하겠는가.

물론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아니다.하지만 실리가 큰 주조기술성과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나왔다고 기뻐하던 그들에게 주요설비들은 수입해야 한다고 말해준다면 얼마나 실망하겠는가.)

다음날 그는 강정철, 박정광동무들을 불렀다.능력이 큰 물고리뽐프개발과제를 맡기면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기탓이요.함께 배우면서 대담하게 해보자구.》

하지만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해보는 일이라 헐치는 않았다.

실패가 거듭되자 신심을 잃은 소리들이 나오기 시작하였다.

똑똑한 기계설계전문가도 없는데 손해를 보면서까지 설비개발을 할 필요가 있는가.안전하게 기성설비를 들여다가 차려주고 기술만 배워주어도 대단한것이 아닌가.…

그때 임완빈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남의 설비, 남의 자재로 만든것을 놓고 어떻게 우리의것이라고 하며 그런걸 어떻게 룡남산의 창조물이라고 감히 말할수 있겠소.우리가 늘 말하는것처럼 주체과학교육의 최고전당에서 주체사상을 배우고 연구사업을 하는 사람들인데 설비도 자재도 모두 국산화해야 제멋이지.》

한번한번의 실패때마다 교류사가 입는 손실때문에 누구보다 안타깝고 마음이 괴로운 그였지만 연구사들에게는 최대한의 조건을 보장해주기 위해 발이 닳도록 뛰여다니였다.그 모습은 그대로 나라에 필요한 일을 끝까지 해내자는 뜨거운 당부였고 선진주조기술을 100% 우리의것으로 만들자는 열렬한 호소였다.

그때로부터 얼마후 연구집단은 끝내 물고리뽐프의 설계제작에 성공하고야말았다.충천한 기세로 리명일, 배철호동무를 비롯한 연구사들은 련이어 연구사업을 내밀어 연소모형주조공정수립에 필요한 모든 설비들의 국산화를 실현할수 있는 물질기술적토대를 튼튼히 닦아놓았다.임완빈동무의 발기와 기발한 착상밑에 젊은 연구사들은 연소모형주조에 필요한 내화칠감까지 국산화하였다.

그 나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

전국각지에서 많은 사람들이 교류사를 찾아오기 시작하자 이들의 능력만으로는 급격히 늘어나는 수요를 다 충당하기 힘들게 되였다.

교류사의 일군들은 대담하게 자기들이 지금껏 터득한 연소모형주조기술을 공개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들이 얼마나 고심참담한 길을 걸어왔고 얼마나 많은 품을 들였는가를 너무나도 잘 알고있던 일부 사람들은 그때 이렇게 권고하였다.

새 기술은 일단 공유하면 가치가 떨어지는데 교류사가 들인 품을 어느 정도라도 보상한 다음 공개해도 되지 않겠는가고.

임완빈동무의 눈앞에는 지나온 나날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숱한 자재와 설비, 시간과 노력을 들인 주물품이 오작으로 나올 때면 너무도 안타까와 발을 구르며 눈물까지 훔치던 연구사들과 로동자들, 파철더미에 그것들을 쌓을 때면 모두의 심장은 찢어지는것만 같았다.채 익지도 않은 기술을 들고다니며 생산계획수행에 혼란을 조성한다는 혹독한 비난까지 뒤따랐다.일시적인 어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연구집단을 떠나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연구사들은 물론이고 윤순일, 박리혁, 강영민, 박영경동무를 비롯한 로동자들모두가 한마음이 되여 피타는 노력을 기울여온 이 기술을 선뜻 다른 단위에 넘겨준다는것은 임완빈동무에게도 결코 헐한 일이 아니였다.

깊은 밤 그는 당세포비서와 마주앉았다.

선뜻 말을 떼기 힘들어하는 그에게 리명일동무는 말하였다.

《사장동지, 무얼 주저합니까.

선진주조기술을 이제야 우리 손에 넣은것이 분하다고 언제인가 사장동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까.

우리가 이 기술을 한개 단위에 이전하면 한개 단위가 현대화되고 두개 단위에 넘겨주면 두개 단위가 일떠서고, 이렇게 곳곳의 주물생산기지들이 하나둘 기술적으로 혁신하면 그만큼 나라가 전진하게 되는데 이게 바로 당의 요구이고 또 사장동지가 처음부터 바란것이 아닙니까.

당세포에서는 적극 찬성합니다.우리 동무들도 다 따라설겁니다.》

마음속고충을 언제나 깊이 리해해주고 자기의 높은 요구성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연구사, 로동자들을 하나하나 일으켜세워주며 뒤에서 말없이 떠밀어준 고마운 당세포비서의 손을 뜨겁게 잡으며 임완빈동무는 진정으로 말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그날 그들은 밤깊도록 많은 말을 나누었다.

다음날 임완빈동무는 연구사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우리가 현재 가지고있는 기술과 경험은 빨리 넘겨주고 우린 또 남들이 못하는것, 더 고급한 기술을 연구하면서 나갑시다.》

얼마후에 진행된 제32차 전국과학기술축전에 이들이 내놓은 연소모형주조기술연구성과는 주조분야의 전문가, 기술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놀래웠다.그 다음해에 진행된 제33차 전국과학기술축전에서는 특등으로 평가되였다.

조선과학기술총련맹 중앙위원회에서는 연소모형주조기술과 관련한 전국적인 강습 및 보여주기사업을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진행할것을 제의해왔다.

그때 임완빈동무는 말하였다.

《좋습니다.대학책임일군들의 발기로 지금 우리 대학지구에 교육과 과학연구, 생산의 일체화가 실현된 록색주조실습기지가 일떠서고있는데 완공되면 인차 합시다.룡남산의 명의로 전국에 보급하는것인데 진짜 멋있는것을 보여주어야지요.》

몇달후 각지의 수많은 단위에서 온 수백명의 과학자, 기술자들과 일군들이 참가한 가운데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진행된 연소모형주조기술과 관련한 강습 및 보여주기사업을 계기로 이 기술에 대한 사회적관심은 부쩍 높아지게 되였다.

더 많은 단위들이 선진주조기술의 도입을 절박하게 요구하였다.그들을 찾아가는 임완빈동무를 비롯한 연구사들의 발걸음은 평양시는 물론 평안남북도와 남포시, 라선시 그리고 함흥, 금야, 신흥과 허천, 문천 등 각지의 곳곳으로 한겨울의 강추위속에서도, 한여름의 무더위속에서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아마도 자본주의사회에서라면 남먼저 독점한 선진기술로 막대한 리윤을 추구할것이다.

하지만 사회주의조선의 지식인들인 룡남산의 과학자들은 피땀으로 터득한 자기들의 귀중한 지식과 기술, 경험을 아낌없이 넘겨주며 천만금으로도 헤아릴수 없는 우리모두의것, 나라의 귀중한 재부가 창조되기를 바랐다.

김일성종합대학의 존엄과 명예를 순간순간 자각하며 주저없이, 동요없이, 사심없이 줄기차게 이어온 연소모형주조기술연구집단의 헌신의 자욱자욱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는 생각하였다.

이들모두의 가슴속에 크나큰 포부와 높은 리상의 표대로 굳게 간직되여있는 불멸의 시《조선아 너를 빛내리》의 구절구절을.

위대한 장군님께서 력사의 맹세를 다지신 룡남산의 해돋이를 심장에 안고 이들이 줄기차게 이어가는 길에서 각지의 여러 주물생산기지들이 일신되였으며 우리 식의 지하전동차 1호의 여러가지 기계부분품들, 대형X형수차날개, 수입에 의존하던 많은 주물품들이 국산화되였다.각지에서 온 기술자, 기능공들이 김일성종합대학의 록색주조실습기지에서 충분한 기술전습을 받고 확신에 넘쳐 자기 단위로 돌아갔다.

룡남산의 지식인들의 애국의 심혈이 깃든 연구성과는 이렇듯 소중한 불씨가 되여 주물생산부문에서 새로운 기술적변혁의 불길을 지펴올리였다.

연소모형주조기술분야의 손꼽히는 권위자, 실력가들로 성장해온 이 나날에 연구집단은 경제발전과 국방력강화에 이바지하는 훌륭한 성과들로써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여러 차례 기쁨을 드리였다.

나라에서 높은 국가수훈으로, 박사의 학위로, 최고과학기술상으로 빛내여준 이들의 성과를 어찌 과학기술적인 가치나 수자만으로 헤아릴수 있으랴.

정녕 그것은 언제 어디서나 룡남산을 가슴에 안고 사는 김일성종합대학 지식인들의 불타는 충성과 애국의 마음이 낳은 결정체라고 우리는 말하고싶다.

지금 우리 당은 모든 부문, 모든 단위에서 국가적리익, 당과 혁명의 리익을 우선시하고 앞선 단위의 성과와 경험을 널리 일반화하며 집단주의적경쟁열풍속에 더 높이, 더 빨리 비약할것을 요구하고있다.

지금이야말로 이 나라의 모든 지식인들이 불후의 고전적명작《조선아 너를 빛내리》의 구절구절을 되새기며 조국을 먼저 생각하고 조선을 빛내일 맹세로 심장을 끓이면서 사회주의강국건설을 힘있게 떠미는 애국의 창조물, 조선의것을 꽝꽝 내놓아야 할 때이다.

열렬한 충성과 애국의 마음이 깃든 이런 훌륭한 창조물들이 온 나라 방방곡곡에서 련이어 쏟아져나올 때 사회주의강국의 해돋이는 앞당겨지게 될것이다.


* *


2021년 국가최우수과학자, 기술자증서를 수여받는 자리에서 우리와 만난 임완빈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당조직과 일군들의 믿음과 방조가 없었다면 아마 저의 오늘도, 우리 연구집단의 성과도 없었을겁니다.당조직의 믿음이 고맙고 끝까지 밀어주고 도와준 일군들과 동지들이 고마울뿐입니다.》

진정에 넘친 그의 길지 않은 말을 들으며 우리는 그려보았다.

자애로운 어머니의 눈빛으로 가슴속 깊은 뜻도, 말 못하는 괴로움도 다 헤아리며 충성과 애국의 마음이 빛을 뿌리도록 보살펴주고 사색과 탐구의 낮과 밤을 지켜준 김일성종합대학 당위원회와 머나먼 생눈길을 함께 걷는 미더운 길동무가 되여 지칠세라, 쓰러질세라 고무를 주며 성공에로, 영광의 단상에로 떠밀어준 룡남산의 참된 일군들의 모습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과학중시, 인재중시의 숭고한 뜻을 앞장에서 받들어가는 훌륭한 당조직과 일군들이 언제나 곁에 있기에 우리의 주인공들은 오늘도 오직 조선로동당기발아래에서만 과학을 하겠다는 철석의 신념을 안고 조국의 부강번영에 이바지할수 있는 새로운 일감을 끊임없이 찾으며 애국의 초행길, 탐구의 생눈길을 줄기차게 이어가고있다.

글 본사기자 려명희
사진 본사기자 리경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