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5월 30일 로동신문

 

유구한 민족사를 빛내이는 길에 새겨가는 애국의 자욱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연구사들

 

력사유적유물들을 발굴고증하는것은 우리 민족의 유구성과 우수성을 빛내여나가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진다.

이 숭고한 애국사업에 자신들의 모든것을 다 바쳐가고있는 사람들속에는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학술연구집단도 있다.

얼마전 이들은 강동군 림경로동자구에서 구석기시대의 동굴유적을 새로 발굴한데 이어 그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유적의 면모를 과학적으로 해명하였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력사유적유물들은 우리 선조들이 투쟁과 창조적활동을 통하여 이룩한 귀중한 유산이며 후세에 길이 전해갈 민족의 재부입니다.》

지난 시기 연구집단은 가치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더 많이 발굴하여 민족문화유산의 보물고를 풍부히 해나갈데 대한 당의 뜻을 받들고 참으로 많은 일을 해놓았다.

구석기시대 전기의 동암동유적으로부터 신석기시대의 주현동유적에 이르기까지 가치있는 유적유물들을 발굴하여 화대사람을 비롯한 고인화석과 룡곡사람, 금평사람 등 신인화석들을 수많이 찾아내였다.

인류의 기원과 진화과정, 조선사람의 시원문제를 과학적으로 해명할수 있는 튼튼한 물질적토대를 마련하는 과정에 이들이 조사한 자연동굴만 해도 750여개.

특히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릉이 자리잡고있는 강동일대에서 구석기시대의 유적을 찾기 위하여 연구집단은 수십년전부터 조사사업을 심화시켜왔다.

1977년 4월 송가로동자구, 향목리, 1986년 4월과 11월 란산리, 구빈리, 봉화리, 향목리, 1993년 6월에는 경신리와 비류강류역, 1995년 6월에는 봉화리, 동리, 2009년 4월부터 2017년 5월까지 향목리, 봉화리, 동리에 대한 조사 진행…

이 자료만 놓고보아도 이곳 연구집단이 강동일대에 대한 조사사업에 얼마나 많은 품을 넣어왔는가를 잘 알수 있다.

문자가 없었던 원시시대의 력사유적에 대한 연구는 다른 유적들을 발굴하는것보다 보다 섬세하고 다방면적인 지식, 강의한 의지와 인내력을 요구하였다.

태잠리일대에서 거대한 자연동굴을 발견하였을 때였다.

2년 남짓한 기간 레루를 놓고 광차까지 동원하여 발굴사업을 벌렸지만 이들은 종시 유물을 하나도 찾지 못하였다.

몇해후 화강리에서 발견한 더미동굴에서도 아무러한 유물도 발굴하지 못하자 일부 사람들은 강동일대에는 구석기시대유적이 없다고 단정하기까지 하였다.

실패가 거듭되던 어느날 밤은 깊어갔지만 연구사들은 또다시 한자리에 모여앉았다.

과연 포기해야 한단 말인가?

연구사모두가 스스로 이 물음앞에 자신들을 세워보는데 한금식실장의 목소리가 조용히 울렸다.

《동무들, 난 저 별들을 바라볼 때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첫 유적이 나왔다는 보고를 받으시고 그처럼 기뻐하시며 조용히 〈애국가〉의 구절들을 읊으시던 그밤에 자신을 세워보군 합니다.》

그의 이야기는 연구사들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군님께 이런 내용의 뜻깊은 교시를 하시였다.

지금 저 웅기쪽에서 우리 고고학발굴대가 구석기시대유적을 찾고있는데 그들의 고생이 말이 아니다.1년째 귀밀떡 두세개로 때식을 하면서 유적층을 파헤치고있는데 올여름 장마비에 기껏 파놓은 흙이 다 무너져 큰 사람들이 왕왕 울기까지 했다고 한다.하지만 이건 누구도 대신해줄수 없는 일이다.앞으로 전 세계에 공산주의사회가 선다 해도 우리는 씨비리나 지중해일대가 아니라 바로 조선땅에서 살아야 한다.때문에 우리는 조선을 알아야 하며 알아도 똑바로 알아야 한다.땅에 맞구멍을 내더라도 끝까지 파보자.

그로부터 몇해후 우리 나라에서 구석기시대의 첫 유적인 《굴포문화》가 발굴되였다.

그날 장군님께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시고 별이 총총한 하늘을 바라보시며《은금에 자원, 반만년 오랜 력사…》하고 《애국가》의 구절들을 읊으시였다.…

이 가슴뜨거운 이야기를 다시금 새겨안으며 연구사들은 결연히 떨쳐일어났다.

단군릉이 자리잡은 이 력사의 땅에서 구석기시대유적을 기어이 찾아내야 한다.

이런 열렬한 조국애로 온넋을 불태우며 연구사들은 거듭되는 실패와 난관속에서도 주저앉지 않고 발굴사업을 꿋꿋이 이어나갔다.

그 나날 강동지역에 대한 유적재조사를 진행하여 란산리에서 신석기시대의 주현동유적을, 향목리동굴유적에서 구석기시대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을 발굴고증하였다.

이어 얼마전에는 고심어린 노력과 피타는 탐구로 끝끝내 림경동굴유적을 발굴하고 구석기시대 후기의 인류화석을 찾아내고야말았다.

구석기시대유적은 발굴도 중요하지만 유물들에 대한 종합적인 분석과 연구를 진행하는것이 더 중요한 문제였다.

연구사들은 림경동굴유적에서 발굴된 유물들에 대한 분석과 함께 인류학적연구와 고고학적연구, 고생물학적연구, 자연환경에 대한 연구에 힘을 집중하였다.

리빈, 강진건, 강일동무들은 인류화석에 대한 감정분류를 진행하여 발견된 이발과 머리통뼈화석들이 신인단계의 30대 중년의 녀성의것이라는것을 해명하였다.한금식, 최례순, 강준철동무들은 300여점의 동물화석들을 감정기재하였으며 김세찬, 강룡일동무들은 당시 이 일대의 자연환경을 복원하였다.리재남, 우철, 강분이동무들은 그때 벌써 우리 나라에 인류가 살아갈수 있는 자연기후조건이 마련되여있었다는것을 해석하였다.특히 남일룡, 지원혁, 김일남동무들은 련관단위들과의 밀접한 련계밑에 전자상자성공명년대측정을 진행하여 이 유물들이 지금으로부터 2만 3 000±3 000년전의것이라는것을 확증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고고학학회에서는 강동군 림경로동자구의 자연동굴에서 발굴된 유물들에 대한 심의를 진행하고 여기서 발견된 인류화석을 지명에 따라 《강동사람》으로 명명하였다.그리고 우리 민족의 원시조 단군이 묻혀있는 이 일대에서 신인단계의 《강동사람》이 처음으로 발견된것은 이 일대가 인류문화의 려명기부터 사람들이 련면히 살아오면서 유구한 력사와 문화를 창조하여온 지역의 하나이며 우리 민족의 력사적뿌리가 내린 지역이라는것을 인류학적으로 명백히 해명하는데서 커다란 의의를 가진다고 평가하였다.

이 자랑찬 연구결과를 당에 보고드리던 그날 연구사들은 지나온 나날을 다시금 가슴뜨겁게 돌이켜보았다.

언제 무너져내릴지 모르는 자연동굴안에서 하루에 수시간씩 흙을 퍼내느라 두다리가 퉁퉁 부어올랐지만 발굴현장을 떠나지 않은 연구사, 난치의 병으로 자기의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것을 알면서도 강동일대에서 인류화석을 찾기 전에는 죽을 권리가 없다고 하면서 발굴사업에 헌신하다가 동지들의 곁을 떠난 김정호동무, 이들이 순간이라도 주저앉을세라 물심량면으로 힘과 고무를 안겨준 강동군안의 일군들과 근로자들, 늘 연구사들의 사업과 생활에 깊은 관심을 돌리며 때로는 험한 산발도 함께 타고 때로는 침식도 같이하면서 적극 떠밀어준 대학의 책임일군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들이 거둔 연구성과를 높이 평가하시여 국가수훈의 영예도 안겨주도록 하시고 온 나라가 알게 내세워주시였다.

수십년세월 우리 민족의 력사를 지키고 빛내이는 길에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보석같은 애국의 마음을 바쳐온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학술연구집단의 연구사들,

오늘도 이들은 이룩한 성과에 만족함이 없이 우리 인민들에게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북돋아주고 반만년의 유구한 민족사를 더욱 빛내이는데 이바지하기 위한 애국사업에 보다 큰 박차를 가하고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성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