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7월 25일 《우리 민족끼리》

 

[사진과 글]

대학살의 현장은 고발한다

 

아래의 사진은 가렬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던 전장을 보여주는 사진이 아니다.

바로 천추에 용납 못할 미제침략군의 반인륜적범죄를 만천하에 고발하는 로근리대학살만행의 현장이다.

세멘트벽에 손가락이 들어갈 정도로 깊숙이 패인 총탄자국들을 비롯하여 수백개의 총탄자리들이 생생히 남아있는 차굴의 광경…

오늘도 이곳은 72년전 아츠러운 살륙의 총성이 울려퍼졌던 그날에로 사람들을 이끌어간다.

1950년 6월 조선전쟁을 도발한 미제는 우리 인민군대의 드센 반공격에 의해 참패만을 거듭하게 되자 그 앙갚음으로 충청북도 영동군 로근리에서 무고한 주민들을 상대로 귀축같은 전대미문의 살륙전을 벌려놓았다.

1950년 7월 25일 저녁 패주하던 미1기갑사단 7련대는 영동군 주곡리일대에 이르러 마을사람들에게 《안전한 곳으로 피난시켜줄테니 모두 모이라.》고 하고는 림계리를 비롯한 여러곳에서 이불짐을 이고 진채로 밀려온 피난민들까지 합쳐 그들모두를 로근리에까지 강제로 끌고갔다.

7월 26일 정오무렵 이들이 철길우에 집결하였을 때였다.

미제침략군 통신병의 무전련락을 받고 정찰비행에 이어 날아온 미군비행기 2대가 무작정 주민들의 머리우에 폭탄을 쏟아붓고 기총사격을 가하기 시작하였다. 당시의 상황에 대해 한 피해자는 《등에 무전기같은것을 진 미군이 어디에다 뭐라고 련락을 하더니 그들은 우리를 놔둔채 달아났다. 우리가 왜 저럴가 하고 어리둥절하고있을 때 갑자기 미군비행기가 날아오더니 우리를 향해 폭탄을 투하하는것이였다.》라고 증언하였다.

순식간에 철도레루가 엿가락처럼 휘고 사람들과 수레를 끌고가던 소의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하늘로 솟아올랐으며 어린이들은 폭풍으로 눈알이 튀여나오고 그들의 잘리워진 머리가 넘어진 사람의 등에 떨어졌다. 철길우와 그 주변에는 삽시에 100여구의 시체가 생겨났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야만적인 폭격과 기총사격을 피하여 갈팡질팡하다가 철길밑에 있는 2개의 굴속으로 정신없이 뛰여들었다. 그러자 살인귀들은 기관총으로 굴속에 대피한 사람들을 향해 총탄을 퍼부어댔으며 그것도 성차지 않아 굴입구에까지 접근하여 미친듯이 사격하였다. 어두운 기차굴안은 영문도 모르고 생죽음을 당하는 수백명의 로인들과 녀자들, 아이들의 비명소리로 아비규환을 이루었고 굴바닥 배수로로는 시뻘건 피가 도랑물처럼 흘렀다.

이렇게 시작된 살륙전은 7월 29일까지 계속되였다. 미제살인귀들은 《부상자를 치료해준다.》는 구실로 굴안에 들어와보고는 생존자들을 확인한 다음 또다시 사격을 가하였다.

이날의 대학살만행에 가담한 이전 미군병사들은 후날 이렇게 실토하였다.

《련락병이 달려와 <몽땅 쏴죽이라. 한사람도 남겨두지 말라.>는 명령을 전달하였다. 그야말로 대학살이였다.》, 《상관의 명령은 움직이는것은 모조리 쏴죽이라는것이였다. 피난민도 거기에 포함되는가고 묻자 그는 <그렇다. 움직이는 모든것이다.>라고 대답하였다.》…

400여명의 생명을 앗아간 미제침략군의 이 피비린 학살만행이 얼마나 몸서리치는것이였으면 남조선출판물들이 《귀신도 기가 막혀 통곡할 참극》이라고 개탄하였겠는가.

학살현장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피타는 절규로 살인마들을 고발하였다.

- 《미국놈들은 곤충을 가지고 장난하는 총각애들처럼 우리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하였다.》

- 《난 한 미군병사를 보고 살려달라고 애원했어요. 그런데도 계속 사격을 가하더군요.》

- 《…어머니는 하복부와 발목에 파편을 맞아 피투성이이고 녀동생은 한쪽눈이 피범벅이 돼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도 끔찍하지만 녀동생의 눈알이 빠져 데룽데룽 매달려있더군요. 할머니, 형님도 거기서 돌아가셨지요.》

- 《굴에서는 무사히 탈출했다. 그런데 애가 등뒤에서 막 울어대는것이였다. 돌아봤더니 미군이 쏜 총알이 아들의 두다리를 관통해 살이 덜렁덜렁 뼈에 매달려있었다. 이발로 내 치마자락을 찢어 동여매주고 산언덕을 두세개쯤 넘었을 때 내앞에 총을 겨눈 미군이 떡 나타났다. 나는 두손을 높이 쳐들고 부르르 떨면서 <쏘지 말아요.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애엄마예요.>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군은 총을 쏘아버렸다. 무엇인가에 옆구리를 강타당하는 느낌을 받고 쓰러졌다가 얼마후 정신이 들어 깨여나보니 총알은 내 옆구리를 관통해 등에 업힌 아들의 심장에 박혔다. 굴에서 딸을 잃었는데 아들까지 잃으니 모든것이 끝장이란 생각뿐이였다.》

- 《굴가까이에 온 미군에게 <왜 아무 죄없는 우리를 죽이는지 그 리유나 알고싶다.>고 들이대자 야수들은 <피난민일지라도 모두 죽이라는 상부의 명령을 받았다.>고 빈정거렸다. …사람들은 그때에야 미군들이 우리를 상부의 명령에 따라 작전상 죽이는것을 알고 필사의 탈출을 시작하였다.》

로근리에서의 대학살만행은 미제가 남조선인민들을 대상으로 감행한 살륙범죄의 일단에 불과하다.

공식적인 통계자료에 의하더라도 지난 조선전쟁기간 남조선에서 124만여명의 애국자들과 인민들이 미제에 의하여 무참히 목숨을 잃었다.

로근리에서 적수공권의 무고한 사람들을 상대로 비행기들을 띄우고 중무기들을 동원하여 며칠동안이나 사람잡이에 미쳐날뛴 천인공노할 민간인대학살만행은 미제침략자들이야말로 인간의 탈을 쓴 승냥이, 극악한 살인악마들이며 우리 민족의 불구대천의 원쑤이라는것을 똑똑히 보여주었다.

그러나 미국은 민간인대학살의 책임을 인정하고 피해자들과 유가족들에게 사죄와 배상을 할 대신 오히려 《로근리에서 미국에 의한 피난민살상사건은 인정할수밖에 없다. 그러나 미국의 공식 명령지휘체계의 개입이 없이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다. 불가피한 상황에서 발생한 우발적인 사건인 이상 참전미군용사들에게 책임을 지워서도 안된다.》고 하였으며 오늘까지도 사건의 진상을 외곡, 은페시키려고 파렴치하게 놀아대고있다.

하기에 로근리의 철다리와 굴간에서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령혼들은 지금도 이렇게 절규하고있다.

미제는 인간살륙을 쾌락으로 삼는 야수들이다! 피에 주린 살인마들을 천백배로 복수해달라!

본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