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8월 7일 로동신문
조선중앙통신사 상보 사회주의조국에 황금벌을 펼쳐가는 애국청년들의 헌신과 위훈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이 발단되여 지난 45년간 당의 농업정책관철과 3대혁명수행에서 거대한 생활력을 발휘한데 대하여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2021년 12월전원회의가 제시한
《모든 청년들은 혁명투쟁의 전구들마다에서 청년돌격대, 청년근위대, 청년작업반, 청년분조운동을 과감히 전개하여 그 어디나 청년판으로 흥성이도록 하여야 합니다.》 쌀은 곧 사회주의라는 우리 당의 숭고한 뜻을 높이 받들고 혁명의 년대마다 불같은 애국충정과 특출한 혁명적열정으로 가슴을 끓이며 농장들에 탄원진출하여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을 조직한 우리의 미더운 청년들은 헌신적인 로력투쟁과 진취력으로 알곡증산과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수행에서 앞장섬으로써 사회주의농촌건설에 적극 이바지하였다. 세상에 둘도 없는 청년강국의 주인공답게 슬기와 정열, 무한한 힘과 기상을 남김없이 분출시키며 사회주의건설의 주타격전방을 굳건히 지켜가는 청년대군을 가지고있는것은 우리 당과 국가의 크나큰 자랑이고 고무적힘이며 그 위훈과 전통은 온 나라 청년들과 인민들이 본받아야 할 귀감으로 된다.
당의 부름에 제일먼저 화답하는 충성의 운동
사회주의적대중운동이며 청년전위들의 위력한 집단적혁신운동인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은 발단부터 전 행정에서 당의 부름에 과감한 실천으로 화답하는 우리 청년들의 혁명적인 사상정신적풍모와 기개를 힘있게 과시하여온 충성의 운동, 애국의 운동이다.
1970년대중엽에 이르러 온 사회의
첫 청년분조원들의 뒤를 이어 양덕군 은하고등중학교(당시) 졸업반 학생들이
1978년 1월 당의 령도업적이 깃든 영광의 고장을 빛내여갈 일념을 안고 강서군 청산고등중학교(당시) 졸업반 학생 129명이 집단진출하여 청산협동농장(당시)의 청년분조원이 된것을 비롯하여 1978년 한해동안에만도 수많은 고등중학교졸업생들이 사회주의농촌으로 달려나가 수백개의 청년분조를 조직하고 집단적혁신운동을 힘차게 벌렸다. 그후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수는 1979년에 2, 009개, 1980년에 2, 899개, 1981년에는 3, 397개로 해마다 늘어났다. 우리 당이 항상 중시하는 농업전선으로 달려나가 청춘의 슬기와 용맹을 떨쳐가는 열혈청춘들의 투쟁기풍은 1980년대에 이어 1990년대에도 끊임없이 고조되였다.
한평생 포전길을 걷고걸으시며 인민들의 먹는 문제해결을 위해 그토록 로고와 심혈을 바치신
당의 청년전위, 예비전투부대, 별동대의 고귀한 영예를 간직한 수많은 청년들은 새 세기에도 사회주의경제건설의 1211고지인 농업전선으로 앞을 다투어 탄원하였다. 2006년 한해에만도 중학교졸업생들을 비롯한 4, 000여명의 청년들이 농촌으로 진출하였으며 2008년에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대렬은 3년전에 비해 근 4배로 장성하였다.
2012년 1월 《청년들의 힘찬 발걸음에 의해 강성할 래일은 더욱 앞당겨지게 될것이다.언제나 곧바로, 당을 따라 앞으로!》라는 강령적인 친필을 보내주시고 청년들의 위훈을 청년강국이라는 새로운 시대어로 빛내여주시는
애국청년들의 집단적인 탄원열풍은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가 진행된 이후 더욱 거세차게 일어번졌다. 2021년 3월 남포시안의 140여명 청년들이 시안의 20여개 농장으로 진출한것을 비롯하여 평양시와 평안북도, 황해북도, 황해남도, 함경북도, 자강도 등 각지의 수많은 청년들이 농업전선으로 달려나갔다.
최상최대의 믿음과 영광을 받아안고 지난 7월 29일 염주, 선천, 신도, 벽동군의 고급중학교졸업생들이 사회주의농촌에 진출한것을 비롯하여 탄원자들의 수는 날로 늘어나고있다. 지금 전국적으로 수천개의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이 집단적혁신운동을 과감히 전개하면서 당의 새로운 농촌혁명강령을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서 척후대, 돌격대의 역할을 수행해나가고있다.
알곡증산으로 조국을 받드는 애국의 운동
당의 뜻을 받들고 농업전선으로 달려나간 청년분조, 청년작업반원들은 주체농법관철에서 집단주의위력, 대중운동의 생활력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쌀은 곧 사회주의다.》라고 하신
우리 나라 청년분조운동의 첫 세대들인 1970년대 청년분조원들이 청사에 자랑찬 위훈을 아로새기였다. 1978년 각지의 청년분조원들은 안주시 상서농장 청년분조의 경험을 따라배우며 공화국창건 30돐을 로력적성과로 빛내이기 위한 사회주의경쟁에 떨쳐나섰다. 100일전투기간에만도 1인당 벌방지대에서는 20t이상, 산간지대에서는 30t이상의 풀을 베여 풍년거름을 마련하였으며 모든 농사일을 제철에 끝냄으로써 당이 제시한 알곡고지점령을 위한 투쟁에서 선봉적역할을 하였다. 특히 은하농장 청년분조원들은 600여t의 질좋은 부식토를 마련하고 500여㎥의 돌을 추어내면서 땀흘려 일한 결과 그전에는 정보당 1t도 수확하지 못하던 자갈밭과 모래밭에서 7t이상의 소출을 냈다. 최고수확년도를 기록한 1979년의 농사에서도 청년분조, 청년작업반원들이 앞장섰다. 이해 우리 나라에서는 이상기후현상으로 조건이 매우 불리하였지만 농업력사에 일찌기 없었던 대풍을 이룩하였다. 온 나라 농장벌 그 어데 가나 만풍년이였지만 그중에서도 수확고가 제일 높은 포전은 청년분조포전들이였다. 숙천군 열두삼천농장 청년분조원들은 소금꽃이 피여나는 간석지논을 개량하고 주체농법대로 농사를 알심있게 지어 정보당 평균 9.5t의 소출을 냈으며 온천군 석치농장 청년분조원들은 전해에 정보당 4t밖에 내지 못한 간석지논에서 11t 360kg의 수확을 거두었다. 강냉이농사에서는 정보당 14t 100kg의 높은 수확을 낸 청년분조포전들이 생겨났고 2t을 내면 최고수확이라던 담배농사에서 3배이상의 높은 실적을 올린 청년분조도 있었다. 사동구역 리현리의 청년작업반원들은 100정보의 돌박산포전에서 정보당 강냉이를 8t 200kg, 최고 13t까지 내고 뒤그루남새농사도 잘 지어 당에 커다란 기쁨을 드리였다. 당 제6차대회가 제시한 농업생산과 새땅개간목표를 점령하기 위한 투쟁에서도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원들은 혁혁한 위훈을 세웠다. 황주군 장천농장 청년작업반원들은 재령강류역에서 100정보의 새땅을 찾아 논으로 풀고 첫해 농사를 잘 지어 정보당수확고를 8t이상으로 끌어올리였다. 5개의 기름골청년작업반을 새로 조직한 고원군안의 중학교졸업생 500명은 기름골농사에서 주체농법의 요구를 철저히 관철함으로써 1982년에 250정보의 밭에서 5, 000t을 수확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황해남도의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원들은 1985년 2월까지 2만 1, 100여정보에 달하는 논밭의 흙깔이를 진행하고 790여만t의 거름과 부식퇴비를 논밭에 내 지력을 높인것을 비롯하여 1989년에는 전국적으로 2만 1, 590여개의 충성의 청년포전이 확보되여 농업증산에 한몫 단단히 하였다.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원들이여! 알곡증산으로 내 나라, 내 조국을 빛내이자!》는 전투적구호를 높이 들고 청년들은 1990년대에 이어 새 세기에도 혁신을 창조하였다.
안악군의 29개의 청년분조, 청년작업반원들은 제일 척박한 430정보의 논밭을 맡아 옥토로 전변시키였으며 곡산군 평암농장 청년작업반원들은 농장포전은 나의 포전, 땀방울의 무게는 낟알의 무게라는 투철한 관점밑에 무려 11번이나 김을 돌려매며 포전을 알뜰히 가꾸어 풍요한 작황을 마련함으로써 2005년 9월 이곳을 찾으신
순천시 리수복청년협동농장(당시) 청년담배작업반원들은 하나밖에 없는 조국을 위하여 귀중한 청춘을 바친 리수복영웅의 정신세계를 따라배워 해마다 1, 211공수를 더 벌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림으로써 담배생산에서 전국의 앞장에 섰다. 풀먹는집짐승을 대대적으로 기를데 대한 당정책을 높이 받들고 청년축산분조, 청년축산작업반들에서는 1998년에 그 전해보다 염소와 양을 비롯한 집짐승을 3만여마리나 더 확보하고 3만 1, 000여정보의 풀판을 새로 조성하였으며 이 나날 전국적으로 청년축산분조, 청년축산작업반수는 70여개나 더 늘어났다. 당의 과수정책관철에 떨쳐나선 고산군의 청년들은 400정보의 키낮은사과나무밭을 일군것을 비롯하여 과일밭을 무려 700여정보나 새로 조성하였다. 이 나날 2011년에는 그 전해에 비해 200여개나 더 많은 2, 490여개의 청년분조, 작업반들에서 농업생산계획을 훨씬 초과수행하였다.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이 드세차게 전개되는 전기간 청년들속에서는 헌신적로력투쟁으로 증산한 알곡을 나라에 바치는 미풍이 적극 발휘되였다. 옹진군 서해리 청년들은 해변가의 새땅을 일구고 진펄을 개간하는 등 어렵고 힘든 일들을 해제끼면서 마련한 3정보의 포전에서 100가마니의 알곡을 생산하여 애국미로 바치였다.
거름더미는 쌀더미라고 하신
농촌청년들의 애국미헌납열풍은 주체혁명의 새시대에 더욱 거세차게 일어났다.
우리식 사회주의의 밝은 미래는 청년들의것이고 청년들자신의 손으로 당겨와야 하는 성스러운 애국위업이라고 하신
애국미헌납의 전렬에는 2015년 알곡생산계획을 147%로 넘쳐 수행한 룡천군 신암농장 청년분조원들과 물절약형농법을 적극 받아들이는 등 농사의 과학화, 기계화수준을 높인 재령군 북지농장 청년분조원들이 있다. 앞선 영농기술을 받아들여 팔뚝같은 강냉이들을 생산해낸 의주군 홍남농장 청년분조원들과 돌모래땅을 옥토로 걸구고 강냉이생산에서 최고기록을 돌파한 회창군 덕련농장 청년분조원들, 토양에 적합한 벼종자를 받아들이고 정성껏 가꾸어 수확고를 높인 평원군 매전농장 청년작업반원들도 많은 알곡을 바치는것으로써 한해 농사를 결속하였다.
불같은 애국충정이 분출된 청년들의 소행을 몇백만t의 쌀이 증산된것에 비할바 없는 귀중한 성과로 그토록 값높이 내세워주시는
쌀로써 당중앙을 받들고 온몸이 그대로 한줌의 거름이 되여서라도 사회주의조국의 전야에 황금가을을 안아올 청년분조원들의 보답의 일념은 과감무쌍한 실천투쟁을 낳았고 청년포전마다에는 해마다 훌륭한 작황이 마련되고있다.
3대혁명수행을 촉진하는 혁신과 전진운동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은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과 더불어 청년들을 당의 농업정책관철의 역군들로 키우는 혁신과 전진의 운동으로 주체적청년운동사에 뚜렷한 자욱을 새기고있다.
농촌진지를 강화하고 3대혁명을 다그치는데서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의 역할을 중시하신
청년분조, 청년작업반들에서는 우리 당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옹호고수하고 빛내이며 청년들을 당에 무한히 충실한 농촌혁명가, 사상정신력의 강자들로 준비시키는것을 주선으로 틀어쥐고 모범청년작업반, 모범청년분조쟁취운동을 활기있게 전개하였다. 만포시 고산농장 청년작업반에서는 조직된 첫시기부터 작업반원모두가 당을 받드는 길에서 그 어떤 주저나 두려움도 몰랐던 전세대들의 투쟁기풍, 곤난극복의 정신을 따라배우고 적극 발양하도록 교양함으로써 몇해어간에 염소, 양의 마리수를 8배이상으로 늘여 축산물생산에서 본보기적인 성과를 이룩하고 3중모범청년작업반의 영예를 지니였다.
모범청년작업반쟁취운동과정에 사상과 신념의 강자, 불굴의 정신력의 체현자들로 자라난 청년들속에는 《설한령의 산매》들로 불리운 룡림군 남상협동농장(당시) 청년축산작업반원들도 있다.그들은 600마리의 소를 확보한 자랑을 담아 삼가 올린 편지를 보아주시고 사랑의 축복을 안겨주신
사리원시 미곡농장 청년작업반원들은 온 나라가 다 아는 본보기농장의 청년전위답게 실천투쟁속에서 자신들을 사상정신적으로, 혁명적으로 부단히 단련하여 지원로력이 없이도 매해 국가알곡생산계획을 넘쳐 수행하였으며 농장을 3대혁명화하는데 적극 이바지함으로써 3중모범청년작업반대렬에 들어섰다. 모범청년작업반, 모범청년분조쟁취운동이 강화되여 농촌의 기술문화혁명수행에서도 커다란 전진이 이룩되였다. 강계시 공인협동농장(당시) 남새청년분조원들은 사회주의농촌에 진출한 후 2년도 안되는 기간에 청년분조원모두가 남새준기사가 되였으며 자체의 기술로 남새생산을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리였다.
《일하며 배우고 배우며 일하자!》라는 구호를 들고 통신교육체계에 망라되여 열심히 배워 농산준기사로 자라난 신흥군 서곡리 청년분조원들은 1984년 3월
강서구역 청산농장 청년작업반원들은 청년과학기술행군을 힘있게 벌려 모두가 기사, 준기사가 되였으며 벼씨뿌리는 종합기계 등 7가지 농기계들을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 42가지의 영농공정을 기계화하는 등 농장의 기술혁신을 선도해나갔다. 일하면서 배우는 교육체계에 망라된 청년분조원수가 계속 늘어나는 속에 많은 청년들이 농산, 축산기사, 준기사 등의 자격을 소유하고 농촌기술혁명수행에 크게 기여하였다. 사회주의문화건설에서도 청년들이 앞장설데 대한 당의 의도를 받들고 문천시 덕대농장 청년작업반원들과 청단군 신생농장 청년분조원들을 비롯한 각지의 청년작업반, 청년분조원들은 합숙과 생산시설, 문화후생시설을 알뜰히 꾸리고 혁명적으로 일하며 락천적으로 생활함으로써 농촌생산문화, 생활문화에서 본보기를 창조하고 사회주의농촌에 혁명적기백과 청춘의 랑만이 차넘치게 하였다.
2011년 7월 일터를 찾으신
당중앙의 현명한 령도밑에 모범청년작업반, 모범청년분조쟁취운동이 청년들자신의 사업으로 확고히 전환되였으며 새 기준, 새 기록을 창조하기 위한 투쟁열풍속에 운동의 심도와 질적수준이 제고되여 그 본질적우월성이 더욱 뚜렷이 발양되고있다. 결과 현재까지 전국적으로 690여개 단위가 모범청년분조(작업반)칭호를, 670여개 단위가 2중모범청년분조(작업반)칭호를, 220여개 단위가 3중모범청년분조(작업반)칭호를 쟁취하였으며 많은 단위들이 3대혁명붉은기, 2중, 3중3대혁명붉은기를 수여받았다.
수많은 청년분조, 청년작업반원들이 참다운 농촌혁명가로 자라나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였으며 로력영웅으로,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을 통하여 이룩된 가장 중요한 성과는
나라의 농업발전을 위한 독창적인 청년운동을 조직해주시고 혁명의 년대마다 그 전진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며 따뜻이 손잡아 이끌어주신
사회주의농촌의 비약적발전을 위한 오늘의 력사적투쟁에서 열혈청춘들의 선구자적역할과 농촌청년분조, 청년작업반운동의 변혁적의의는 더욱 부각되고있다.
당과 조국의 부름에 언제나 불같은 충성과 애국헌신으로 화답해온 전세대들의 고귀한 력사와 전통을 이어 당의 농촌혁명강령실현의 앞장에서 조선청년특유의 혁명적기개를 과감히 발휘해나가는 미더운 청년전위들의 힘찬 발걸음에 의하여
주체111(2022)년 8월 6일 평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