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8월 10일 로동신문
전설적영웅의 만고불멸의 항쟁사를 전하며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를 찾아서(1)
조국해방은 우리 조국과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근본적인 전환을 가져온 력사적사변이였다.오늘 세계정치구도의 중심에 서서 자주시대의 흐름을 주도해나가는 우리 국가의 전략적지위와 영향력도, 불굴의 투쟁으로 사회주의승리의 필연성을 확증해나가고있는 우리 인민의 혁명적기상도 77년전 8월 15일과 잇닿아있다.
얼마전 우리는 뜻깊은 조국해방의 날을 맞으며
혁명의 명맥이 높뛰고 무궁무진한 애국열원이 끓어솟는 백두의 혁명전구를 편답하면서 뜨거운 선혈을 뿌려 조선혁명사의 첫 페지를 장엄히 아로새긴 빨찌산의 피어린 력사를 안아보느라니 우리의 가슴은 억만금과도 바꿀수 없는 우리 혁명의 만년재보가 어떻게 마련되였고 무엇으로 하여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나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뜨겁게 젖어들었다.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는
우리는 세해전 11월 백두산지구 혁명전적지에 새겨진
청봉숙영지는
청봉혁명전적지관리소 과장 길선희동무의 안내를 받으며 진대나무들이 여기저기에 보이는 밀림속으로 얼마간 들어간 우리는 그곳에 정중히 모신
조국진군의 그날 울창한 수림속 해묵은 나무그루터기에 앉으시여 무산지구진공작전계획을 더욱 완성하시는 백두산청년장군의 거룩한 모습을 형상한 동상,
주체108(2019)년 11월 30일 군마를 타시고 여기 청봉숙영지를 찾으신
청봉숙영지가까이에서 모닥불을 피우시면서도 오늘의 강대한 사회주의조국을 소중히 그려보시며 강인한 의지로 만난을 이겨내신
그이의 말씀에는 사회주의강국건설이 힘있게 전진하면 할수록, 우리의 앞길을 가로막는 난관이 크면 클수록 백두의 혁명전통을 순결하게 계승발전시켜나가실 억척의 의지가 얼마나 세차게 맥박치고있는것인가. 우리는 여기 유서깊은 청봉숙영지에서 잊지 못할 조국진군의 그 나날을 다시금 돌이켜본다.
북대정자회의에서 고난의 행군의 승리를 총화하시고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무산지구에로 진공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신
그렇게 들어선 조국땅 청봉이였고 숙영의 첫날밤이였다. 우리는 격동된 심정을 안고 숙영지를 돌아보았다.대낮인데도 해빛이 잘 스며들지 못하는 밀림속에는 영구보존대책이 세워져있는 구호나무들이 많이 있었다.그중에서도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쓰신 《조선청년들, 속히 달려나와서 항일전에 힘있게 참가하자》를 비롯한 구호문헌들은 특별히 우리의 눈길을 끌었다. 이 혁명적구호문헌들이야말로 우리 당의 혁명전통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하는것을 실물로 생동하게 보여주는 력사의 증견자이며 혁명의 만년재보이다.그 글발들은 오늘도 우리 인민에게, 후대들에게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어떻게 살며 투쟁하여야 하는가를 똑똑히 가르쳐주고있다. 숙영지의 사령부천막자리를 중심으로 있는 수십개의 우등불자리, 10여개의 밥짓던 자리, 칼도마들, 껍질벗긴 나무들을 비롯한 수많은 혁명유적들과 유물들도 비록 하루밤을 숙영하고 가지만 언제나 정돈되고 규모있게 생활을 꾸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의 혁명적인 생활기풍을 감명깊게 보여주고있었다. 사시장철 푸르른 바늘잎나무들이 덮여있다고 하여 청봉이라고 불리우는 곳, 력사의 증견자인양 수백년 자란 나무들이 청춘기처럼 오늘도 꿋꿋이 서있는 청봉숙영지에서 받아안았던 항일전의 그 혁명열, 투쟁열을 우리는 건창숙영지에서도 깊이 체험하였다.
청봉숙영지를 떠나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걸은 진군로를 따라 건창숙영지에 이른 우리를 김효심강사가 맞이하였다.
강사는 수림속에 있는 사령부자리와 우등불자리를 비롯한 혁명유적, 유물들에 대하여 설명하면서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이 무산지구진공작전을 승리적으로 결속할수 있은것도
민족의 운명개척에서 의의있는 력사적사변의 진가는 세월이 흐를수록 더 큰 생명력을 발휘하며 찬란한 빛을 뿌린다. 누구나 무산지구전투승리기념탑이 높이 솟아 빛나는 대홍단혁명전적지에 서보시라.
그러면
대부대를 이끄시고 청봉과 건창, 베개봉과 삼지연을 거쳐 대낮에 갑무경비도로를 유유히 행군하여 이곳에 전투진지를 구축하신 우리
조선인민혁명군의 국내진출을 막기 위하여 일제가 그토록 품을 들여 닦아놓은 갑무경비도로로 대부대가 일행천리로 행군하였다는 사실은 그때 적 몇개 련대나 사단을 소멸한것보다 더 큰 파문을 일으켰다고 한다. 보천보전투와는 달리 대홍단전투는 당시에 인차 알려지지 못하였다.한것은 보천보전투때 너무도 혼쌀난 적들이 조선인민혁명군이 국내에로 스며들었다는 정보를 입수하자마자 엄격한 보도관제를 실시하였기때문이다.하지만 손바닥으로 해빛을 가릴수 없듯이 조선인민혁명군의 승전소식을 제놈들이 아무리 발악한들 어떻게 막을수 있었겠는가. 무산지구에 높이 울린 혁명의 총성은 빼앗긴 내 조국을 기어이 다시 찾고 끝없이 빛내여나가려는 애국애족의 총성이며 제국주의침략자들과는 끝까지 싸워 결판을 내고야마는 조선혁명가들의 억센 신념과 의지의 메아리였다. 무산지구진공작전은 백두의 전설적령장을 모신 우리 군대는 언제나 백전백승하며 우리 인민을 건드리는자들은 반드시 처절한 대가를 치른다는 철리를 력사에 깊이 새기였다.
보천보전투와 대홍단전투가 가지는 력사적의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우리 당은 혁명전통교양을 지나간 력사적사실에 대한 추억으로가 아니라 대중에게 산 체험으로 간직되게 하기 위한 사업으로 틀어쥐고 박력있게 내밀데 대하여 강조하고있다.
백두에 뿌리내린 영광스러운 혁명전통을 영원히 옹호고수하고 계승발전시켜 그
혁명의 앞길에 아무리 큰 시련과 난관이 가로놓인다고 하여도 항일의 불길속에서 창조된 백절불굴의 혁명정신으로 살며 투쟁해나간다면 반드시 뚫고나가 승리를 이룩할수 있다.
글 본사기자 김준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