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8월 13일 로동신문
로병문필가의 60여년 피현군 백마로동자구에 살고있는 조만성박사에 대한 이야기
새날이 밝아오고있었다. 원고집필로 한밤을 꼬박 새운 피현군 백마로동자구의 조만성전쟁로병은 충혈진 두눈을 비비며 자리에서 일어났다.전승절 아침이 밝아오고있었던것이였다. 금시라도 전화의 포연내가 물씬 풍겨올듯싶은 군복을 단정히 차려입은 로병은 창문너머로 멀리 하늘을 바라보며 전우들과 마음속대화를 나누었다. 《동지들, 이 조만성은 전승절 아침도 원고집필로 맞이하였소!》 문학박사인 로병은 아흔살을 눈앞에 바라보는 오늘도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있었다.
《전쟁로병들은 불타는 전호가에서 최고사령부를 그리며 혁명가를 부르던 그때처럼 로쇠를 모르는 열정과 기백으로 당과 조국을 받들며 후대들에게 백옥같은 충정의 일편단심과 죽어도 버리지 않는 혁명신념, 불굴의 조국수호정신을 피줄기로 넘겨주어야 합니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어느날 봉화화학공장 정문을 나서는 한 로인이 있었다.오랜 기간 공장에서 신문주필로 일해오다가 년로보장을 받은 조만성로병이였다. 《그동안 많은 일을 해온 로병동지인데 이젠 집에 들어가 편히 쉬십시오.》 그를 바래주며 공장책임일군이 한 말이였다.진정이 담긴 말이였지만 그에게는 어쩐지 섭섭하게만 느껴졌다. (이제는 정말 손에서 붓대를 놓아야 한단 말인가.) 해방전에 룡천군의 가난한 농사군의 가정에서 태여난 그는 학교문전에도 가보지 못하였다.온 식구가 입에 풀칠도 하기 힘든 형편에서 글공부를 한다는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였다.
그의 가슴속에서 앞날의 유명한 작가나 기자가 되려는 푸른 꿈이 무럭무럭 자라던 때에 전쟁이 터졌다.조국이 있어야 꿈도 희망도 있기에 그는 용약 인민군대로 탄원하였다.
평양의 하늘을 지켜선 고사포병부대에서 용감히 싸우던 어느날 그는 악착스럽게 달려드는 한대의 적기를 보기 좋게 료정냈다.그날 그는 자기의 수첩에
전우들은 그의 시를 무척 사랑하였다.비록 미숙한 시들이였으나 한번 읊고나면 당과
한편의 글이 얼마나 큰 역할을 하는지 로병은 그때 깊이 깨닫게 되였다. 전후에 제대된 그의 앞에는 희망과 재능을 활짝 꽃피울 넓은 길이 열려져있었다.당에서는 20대초엽인 그가 어느한 수산사업소의 신문주필로 사업하도록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었으며 전문교육을 받지 못해 사업에서 애로를 느끼고있을 때에는 평양문학대학(당시)으로 불러주었다. 그 사랑속에 마음껏 배우며 문필가로 성장한 로병은 그후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장에서 발간하는 신문의 주필로 사업하였고 봉화화학공장이 일떠서자 그 공장의 신문주필로 오래도록 일하였다.
그 나날 그의 가슴속에서는 하나의 시대적사명감이 불타고있었다.오랜 기간 전투속보의 발전을 직접 목격한 산 증견자, 체험자로서 주체의 전투속보의 발전에 깃든
조만성로병은 새 전투좌지를 차지하는 병사마냥 온몸에 새로운 힘이 솟는것을 느꼈다. 그때는 온 나라가 어려움을 겪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였다.도서집필을 하자면 전투속보를 발간하는 온 나라의 수많은 령도업적단위들을 찾아가 사적자료들을 발굴고증하여야 하였다.하여 그는 그처럼 어려운 때에 년로한 몸으로 머나먼 출장길을 이어가지 않으면 안되였다. 년로보장을 받은 아버지가 출장을 떠나야 한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막내아들인 조정민동무는 여간만 놀라지 않았다.그러나 한번 결심한것은 무조건 실천하고야마는 아버지의 성미를 잘 아는지라 어려운 속에서도 출장준비를 갖추어주었다.그렇게 떠난 출장길에서 몇달만에야 돌아온 아버지의 건강이 몹시 나빠진것을 본 조정민동무는 더는 참을수 없었다. 며칠째 강추위가 계속되던 어느 겨울날 자강도에 대한 출장을 떠나기 위해 집을 나서는 아버지의 앞을 그가 막아나섰다. 《아버지, 다시한번 생각해보는게 어떻습니까? 우리 자식들을 위해서라도 말입니다.》 《뭐라구? 그래 넌 내가 왜 이길을 가고있는지 그렇게도 모른단 말이냐?》 《압니다.하지만 아버지가 아니라고 해도 그 도서집필을 맡아할 젊은 사람들이야 얼마든지 있지 않습니까.더우기 아버지에겐 출장을 떠나야 할 그 어떤 사회적의무도 없지 않습니까.》
그렇다.그가 그 일을 하지 않는다고 누가 탓할 사람은 없었다.하지만 전화의 나날에는 총을 잡고
《길을 비켜라!》 로병은 이렇게 집을 나섰다.순간 찬바람이 뼈속까지 스며들었다.그러나 한겨울의 강추위보다 자식들에게 전세대의 정신을 피줄기로 물려주지 못한 자책으로 심장이 얼어들었다. 로병의 가슴속에서는 이런 심장의 웨침이 흘러나오고있었다.
그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이길을 끝까지 갈것이다.이길은
만포시안의 령도업적단위들에 대한 출장길을 이어가던 그는 끝내 고열로 의식을 잃고 쓰러지게 되였다.병원으로 긴급후송된 로병은 며칠째 막내아들의 이름을 부르며 심하게 앓았다. 만포시당위원회와 병원일군들이 자주 찾아와 그의 건강회복을 위해 마음을 썼다. 어느날 의식을 회복한 그의 입에 미음을 한숟가락, 두숟가락 떠넣어주던 나어린 처녀간호원이 물었다. 《로병동지에게 꼭 이런 일을 하라고 누가 시켰습니까?》 《아니, 내스스로 하고싶어 하는 일이지.》
그날 그는 간호원에게 전화의 불비속을 헤치던 그때부터 자기가 문필가로 성장해오던 이야기를 감회깊이 들려주었다.그가운데서도 왕재산혁명사적지건설장에서 신문주필로 사업할 때 신문의 편집방향과 방도를 환히 밝혀주시고 취재에 리용할 승용차와 고급사진기까지 보내주신
주체의 전투속보의 이런 영광스러운 력사를 후세에 길이 전하지 못한다면 어찌 문필가의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그후에도 전국각지에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란 없었다.량강도의 심심산골로부터 분계연선도시인 개성시까지, 서해의 남포시로부터 동해의 원산시까지 그는 굴함없이 출장길을 이어갔다.수년세월 이렇게 그가 걸은 출장길은 헤아릴수 없었고 찾은 단위는 수백개나 되였다. 달리던 렬차가 때없이 멎어서던 고난의 시기 때로는 몇끼씩 굶기도 하고 때로는 얼어든 손을 입김으로 녹이며 수백리길을 홀로 걷고 또 걸은적은 그 몇번, 눈비를 다 맞으며 출장길에서 돌아와서는 등잔심지를 돋구어가며 도서집필에 심혈을 바치는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불사신과도 같았다. 마침내 수년세월 온갖 정열과 노력을 다 기울인 첫 도서의 원고집필을 끝내였을 때 로병은 온 세상을 다 안은것만 같은 기쁨에 휩싸였다. 그러나 그는 그것으로 자기의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는 련이어 여러 도서들을 집필함으로써 주체의 전투속보의 발전과 주체적로농통신원운동에 깃든
어느덧 그의 나이가 여든을 가까이하게 되였다.그때가 바로 10년전이였다.차츰 글을 쓰기도 힘들어졌다.동네의 로인들도 그만큼 글을 썼으면 이젠 좀 쉬라고 권고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로병은 군당위원회에서 찾는다는 소식을 받게 되였다.그를 반갑게 맞아준 군당책임일군은 이렇게 뜨거움에 젖어 말하였다.
《로병동지, 기뻐하십시오.
《예?!…》
로병은 너무도 뜻밖의 사실에 감격하여 어찌할바를 몰라하였다.
나이가 들었다고 잠시나마 손에서 붓을 놓으려고 했던 자신이 민망스러웠다. 그후 조만성로병에게 국기훈장 제1급과 문학박사학위가 수여되였다. 80대나이에 받아안은 박사의 학위, 그것은 한생 당을 위하여 충성의 붓대를 놓지 않고 화선병사의 모습으로 사는 로병에게 조국이 주는 값높은 칭호이고 영예였다.
그때부터 그는
몇해전 10월 어느날, 그날은 로병의 생일이였다. 아들 조정민동무와 며느리인 류옥화동무가 마련한 기념품을 보는 순간 로병은 더없이 기뻤다.두툼한 원고지와 원주필들, 그것이면 그는 더 바랄것이 없었다.… 어느덧 생각에서 깨여난 조만성로병의 얼굴을 새벽바람이 시원히 식혀주었다.그러나 그의 가슴속에서는 그냥 뜨거운것이 끓고있었다.
그는 전화의 포연을 헤치는 심정으로 또다시 집필전투를 시작하였다.그 시각도 그는
한생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유광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