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8월 21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어머니당의 목소리를 전하며 50여년 동창군체신소 공훈우편통신원 백옥보동무에 대한 이야기
《오늘 우리의 당원들과 근로자들속에는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묵묵히 자기가 맡은 초소에서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얼마전 동창군에 경사가 났다.온 군이 다 아는 군체신소 공훈우편통신원인 백옥보동무가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영예를 지닌것이다. 군안의 일군들과 주민들은 물론 학생들까지 찾아와 그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우편통신원이 된 그날로부터 50여년, 반세기가 넘는 그 세월 백옥보동무는 우리 당출판물과 우편물을 배포하며 한생을 하루와 같이 통신길을 이어왔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변함없이 어머니당의 목소리를 전하며 맡은 혁명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해가는 산골군의 한 평범한 녀인이 오늘은 군의 지경을 벗어나 온 나라가 다 아는 시대의 기수가 되였다. 당과 조국의 고마움을 뼈속깊이 간직하고 받아안은 은덕에 생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 보답할 일념으로 심장을 끓이며 자기가 선택한 길을 꿋꿋이 걸어온 백옥보동무의 한생은 우리들로 하여금 공민적본분과 의무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게 한다.
한계를 모르는 보답의 나이
지금으로부터 10년전 어느날 체신소의 한 일군이 백옥보동무를 찾아왔다.국가에서 정해준 로동년한이 훨씬 지나도록 많은 일을 하였는데 이제라도 나라의 혜택을 받으며 여생을 편히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 그에게 백옥보동무는 생각깊은 어조로 말하였다. 《나라의 은덕에 보답하자면 아직 멀었는데 어떻게 늙은 티를 내겠습니까.》 그리고는 일가친척들밖에 모르는 한가지 사실을 이야기했다. 해방전 백옥보동무가 태여나기 전에 그의 어머니는 다섯 자식을 낳았었다.하지만 약 한첩 구할수 없는 너무도 가난한 살림인지라 애어린 자식들을 모두 잃고말았다.그래서 부모들은 여섯번째로 태여난 딸은 아예 출생등록도 하지 않았다.팔자에 맡겼다가 요행 살아남으면 그때 가서 보자는 생각에서였다. 그런 옥보의 처지는 너무도 비참했다.출생등록을 하지 못했던탓에 일체 문밖출입도 못하고 숨어살지 않으면 안되였다.왜놈순사나 관리들에게 발각되는 날엔 그의 집이 무서운 봉변을 당해야 했던것이다. 그의 어머니는 방안에 박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자라는 딸의 정상이 하도 가긍하여 《저렇게 죽느니만 못하게 키울바엔 아예 낳지부터 말았을걸…》 하며 서럽게 눈물만 흘리였다.
먼저 간 형제들보다 명이 길어서인지 옥보는 4년이 지나도록 무난히 자랐다.그제서야 부모들은 어렴풋이나마 희망을 품고 출생등록을 하였다.그렇게 세상에 태여난 죄 아닌 《죄》로 하여 남모르는 불행과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며 살아가던 옥보의 그늘진 애어린 가슴에도 환희의 빛발이 찬란히 비쳐들었다.
하기에 부모들은 옥보에게 입버릇처럼 외우군 했다. 《이 세상에 태여난것부터가 죄로 되였던 너에게 로동당과 공화국이 진정한 삶의 나이를 주었구나.한생을 보답의 나이로 살거라.》 격동적인 사변들로 충만되였던 1970년대에 백옥보동무는 우편통신원의 첫걸음을 내짚었다. 아버지가 그처럼 긍지스러워하고 사랑했던 그 일을 자기가 하게 되였다는 생각에 그의 마음은 마냥 즐거웠다. 속도전의 불바람속에 창조와 기적의 새 소식이 끊임없이 태여나던 그 나날 출판물을 안고 담당지역을 찾아가는 그의 걸음에는 날개라도 돋친듯싶었다.어디서나 우편통신원을 기다렸다.날이 갈수록 그의 가슴은 자기 직업에 대한 긍지로 부풀어올랐다. 그는 어떻게 하면 출판물배포시간을 더 앞당기겠는가를 생각하며 담당지역의 략도를 그리고 시간측정까지 해보며 뛰고 또 뛰였다. 명절날, 휴식날이 따로 없는 직업이였건만 그는 오히려 그것을 행복으로, 보람으로 여기였다.
그의 가슴속에는 언제나 우편통신사업은 편지와 소포, 신문과 잡지같은 우편물을 나르는 단순한 전달사업이 아니라 인민들의 사상정신생활과 물질생활에 적극 이바지하는 봉사사업이라고 하신
참된 인간의 진가는 좋은 날에 외우는 열백마디의 맹세속에 있는것이 아니라 어려운 날에도 변함없이 이어지는 실천속에 있다. 안해로서, 어머니로서 한가정을 돌보기에도 힘에 부치였던 고난의 시기에도 백옥보동무는 변함없이 당보를 안고 걸었다.생활이 어렵다고 하여 우편통신길을 멈춘다는것은 그에게 있어서 참된 삶과 행복의 나이를 주고 고아였던 남편과 자기자신에게 베풀어준 어머니당의 은덕에 배은망덕한 길이였고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보살펴주는 고마운 조국앞에 죄를 짓는 길이였다.하기에 그는 우편통신차가 긴장한 연료사정으로 멎어서면 백여리 떨어진 철도역으로 남먼저 달려가 당출판물을 날라왔다. 쌀과 전기가 부족하고 어려움이 많을수록 《로동신문》을 생명수처럼 기다리며 거기에서 당의 목소리를 새겨듣고 신심과 락관에 넘쳐 일떠서는 우리 인민의 강직한 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왔던가.오직 우리 당만을 절대적으로 믿고 어떤 환경속에서도 당의 목소리만을 따르는 인민의 강직한 모습을 대할 때마다 그는 아무리 힘들어도 즐겁기만 하였다. 어느해 장마철이였다.우편물이 들어있는 가방을 비닐박막으로 겹겹이 감싸든 백옥보동무가 비발속을 뚫고 걷던 때였다.바람이 얼마나 세찬지 쓰고가던 우산이 허공으로 날아갔다.그는 얼른 비옷을 벗어 비닐박막으로 감싼 가방을 덧쌌다.장마비에 옷을 흠뻑 적시며 개울가에 이르니 나무다리가 보이지 않았다.사품치며 흘러내리는 물에 나무다리가 떠내려간것이 분명했다.불어난 물은 키를 넘을것같았다.물이 찐 다음에 건늘가 하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갈마들었다. (주민들이 지금 당의 목소리를 기다리고있다.그런데 내가 무슨 생각을…) 잠시나마 주저했던 자신을 질책하며 그는 개울에 들어섰다.시누런 감탕물이 가슴노리를 쳤다.통신가방을 머리에 이고 한치한치 안깐힘을 쓰며 전진하는 그의 눈앞에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랐다.한목숨 서슴없이 바칠 각오를 안고 적비행기의 무차별적인 폭격속에서도 통신길을 달려가던 아버지가 자기를 지켜보는것만 같았다.힘이 솟구쳤다.그는 용기를 가다듬으며 끝내 개울을 건너갔다. 억수로 퍼붓는 비에 다리까지 떠내려가 늦을것이라고 생각했던 우편통신원이 물기 한점 스며들지 않은 출판물을 안고 제시간에 나타났을 때 담당지역 주민들은 놀라움을 금할수 없었다.온몸이 비물과 강물에 푹 젖은 그의 찢어진 바지가랭이사이로 피가 흘러내리는것을 보며 주민들은 뜨거운것을 삼키였다. 그는 수십년을 하루와 같이 매일 받아안는 여러가지 출판물을 빠짐없이 읽었다.그리고 통신길에서 맞다들리는 바위와 나무들을 군중으로 여기고 당정책을 해설하는 련습을 하였다.일터마다에서 그의 해설을 들으며 일군들과 근로자들은 당정책관철을 위해 자기들이 어떻게 살며 일해야 하는가를 더 깊이 새겨안군 하였다. 그가 지금까지 짬시간을 리용하여 만들어 담당지역의 주민들에게 나누어준 우편함만 해도 수백개를 헤아린다. 로년기에 이른 오늘에도 그의 모습은 변함이 없다.군인민들은 우리 군의 아침종소리는 공훈우편통신원할머니가 제일먼저 울린다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다. 고령의 나이에 젊은 사람들 못지 않게 자전거를 타고 통신길을 달려가는 그에게 사람들은 묻군 한다.어디서 그런 활력이 생기는가고. 그때마다 백옥보동무는 흔연히 대답한다. 《사람은 마음으로 살아야 늙지 않는 법이라오.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국가의 은덕에 보답하려는 마음에 어찌 로쇠가 있을수 있겠나요.》 그렇듯 충성스럽고 애국적인 삶의 진가를 어떻게 나이로만 헤아려볼수 있으랴.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걷는 길
50여년을 우편통신원으로 일해오면서 백옥보동무에게는 많은 습관이 생겨났다. 그는 통신길을 이어가면서 어느것 하나 무심히 스쳐지나는것이 없었다.여기저기에 널려있는 파철과 파지, 파비닐까지 머리속에 곰곰히 새겨두었다가 통신을 마치고 돌아오던 길에 하나하나 수집하군 하였다. 꼭같은 우편통신원들의 자전거중에서도 그의 자전거만은 류달리 표가 났다.한것은 그의 자전거에 호미와 낫, 마대가 항상 실려있기때문이다. 어느날 담당지역에 대한 출판물배포를 끝내고 돌아오던 한 우편통신원은 어느한 농장의 밭머리에서 김을 매고있는 백옥보동무를 발견하게 되였다.어떻게 여기에서 김을 매고있는가고 묻는 그에게 백옥보동무는 일손을 놀리며 혼자소리처럼 뇌이였다. 《김이 있는 밭을 보고 그냥 지나칠수 없더군요.이렇게 조금씩만 김을 매주어도 농장원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겠나요.》 그때에야 비로소 그 통신원은 백옥보동무가 자전거에 낫과 호미를 가지고다니는 리유를 알게 되였다. 비록 그의 이름이 농장원명단에는 올라있지 않아도 그는 농장원들의 심장속에 쌀로써 사회주의를 지키고 우리 혁명을 보위해갈 철석의 신념과 의지를 깊이 심어주는 정열적인 선동원이였으며 힘자라는껏 농사일을 도와주는 성실한 지원자이기도 했다. 언제인가 통신길을 떠났던 어머니가 밤늦도록 돌아오지 않아 그의 둘째아들이 전지불을 켜들고 마중을 나간적이 있었다.어머니의 행적을 찾아 급히 걸음을 옮기던 그는 읍거리가 시작되는 모퉁이에서 낯익은 자전거불빛을 보게 되였다.그것은 분명 어머니의 자전거불빛이였다.어머니를 맞받아 달려갔던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자전거에는 부피가 큰 두개의 마대가 실려있었던것이다. 사연을 묻는 아들에게 백옥보동무는 멋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통신길을 가다보니 파비닐이 눈에 뜨이더구나.돌아올 때 가져오리라 마음먹었댔는데 파지와 파철을 모으는데 신경을 쓰다가 그만 잊어버렸구나.그래서 읍거리에 들어섰다가 되돌아섰지.이젠 나도 늙었나부다.》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난 둘째아들은 억이 막히였다.그것때문에 몇십리를 되돌아갔다온단 말인가, 그러다 몸져눕기라도 하면 어떻게 하겠는가, 통신원사업만 하재도 힘에 부칠텐데 이젠 제발 그런 일을 그만두라고 사정하다싶이 이야기하였다. 그러는 아들에게 백옥보동무는 머리를 저으며 자기 심정을 터놓았다. 《난 그저 나라에 보탬만 된다면 더 바랄게 없다.》 그는 그렇게 수집한 많은 량의 파철과 파지, 파비닐을 지방산업공장들에 가져다주어 생산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었다. 우편통신원의 통신길은 당의 목소리를 온 나라에 전해주는 더없이 성스럽고 영광스러운 길이다.백옥보동무는 그 길에 공민적본분을 다하기 위한 애국의 자욱도 뚜렷이 새겨가고있다. 군안의 전쟁로병들은 수십년간 자기들의 생활을 친혈육의 심정으로 돌봐주고있는 백옥보동무를 우리 통신원이라 친근히 불렀고 공장, 기업소의 근로자들은 성의있는 지원물자도 안겨주고 신문에 소개된 기사들도 읽어주면서 당정책관철에로 힘있게 떠밀어주는 그를 《우리 선동원》이라 존경하며 따랐다. 백옥보동무를 《우리 어머니》라고 부르는 자식들도 많다. 조국이 어려움을 이겨내던 시기에 그는 부모잃은 여러명의 아이들을 데려왔다. 아이들을 대하는 마음에 혹시 차이라도 생길것만 같아 친자식에게 우정 아픈 매를 들 때도 있었다.울먹이며 하소연하는 아들의 목소리가 가슴을 아프게 허빌 때면 그는 남편의 사회주의애국희생증을 꺼내보군 하였다.그러면서 자식들에게 아버지도 부모잃은 사람이였다고, 그러나 당에서는 아버지에게 이렇듯 값높은 생을 안겨주었다고 하며 사람은 의리가 있어야 한다고 일깨워주었다. 그렇듯 품어주고 키워준 고마운 품에 조금이나마 보답하려는 순결한 의리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사회와 집단, 나라와 인민앞에 지닌 의무에 충실하려는 그의 헌신의 길에는 진정 끝이 없었다. 그는 가정생활이 어려운 속에서도 식량난을 겪고있는 우편통신원세대들에 자기 집의 식량을 덜어주었고 이신작칙의 모범으로 그들모두가 인민들에게 사상정신적량식을 안겨주는 보람찬 우편통신의 길을 억세게 걸어가도록 이끌어주었다. 그들속에는 탁설화동무도 있다.그는 한때 마음속의 동요로 하여 고민한적이 있었다.직장에 다니는 남편의 뒤바라지도 하고 어린 두 자식들도 돌보면서 통신길을 걷자니 여간 힘들지 않았던것이다. 이런 그의 심정을 누구보다 깊이 헤아려본 백옥보동무는 그를 대신하여 통신길도 걷고 집에도 찾아가 그가 한번 택한 길을 변함없이 이어가도록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언제인가 백옥보동무의 자전거를 타보았던 우편통신원 김주심동무는 여간 진땀을 흘리지 않았다.얼마나 오래동안 리용하면서 수리를 거듭했는지 젊은 사람도 어지간히 맥을 뽑지 않으면 안되였던것이다.그런 자전거로 수십리 통신길을 달리고 유휴자재들을 수집하느라 백옥보동무가 흘린 땀은 그 얼마였으랴.무슨 기력으로 그 모든 일을 감당해왔는가고 물었을 때 백옥보동무가 한 말을 그는 오늘도 잊지 않고있다. 《조국에 조금이라도 보탬을 주겠다는 결심과 각오만 굳건하면 자전거가 대수겠나.자전거가 없었다면 등짐으로라도 해냈을거네.》
티없이 순결한 량심과 불같은 의리심으로 당과 조국을 받들어가는 나날에 백옥보동무는 공화국창건 70돐 경축행사에 참가하여 꿈결에도 뵙고싶던
이 세상에 또다시 태여난것만 같은 행복에 휩싸여
평양에서 돌아온 그날 백옥보동무는 늘 품고다니는 수첩에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적어나갔다.인생의 황혼기에도 보답의 일념으로 심장을 끓이며 일감을 두몫, 세몫으로 찾는 이런 참된 애국자, 참된 공민들을 이 땅 어디 가나 만나볼수 있기에 온갖 도전과 난관을 과감히 짓부시며 나아가는 우리 조국의 전진이 그렇듯 줄기차고 억센것이 아니랴. 오늘도 백옥보동무는 《우편통신원》완장을 팔에 두르고 우편통신가방을 어깨에 메고 인민들을 찾아 당의 목소리를 전해간다. 어머니당을 받드는 길에서 로쇠를 모르는 그 모습, 진정 거기에는 당과 국가의 은덕을 한시도 잊지 않고 앉으나서나 보답의 각오로 심장을 불태우며 공민적본분에 충실하려는 열렬한 지향이 비껴있다. 자기 맡은 혁명임무를 얼마나 사랑하고 어떻게 성실히 수행하는가에 의해 애국의 진가가 판별된다. 누구나 백옥보동무처럼 자기의 성실한 노력과 불같은 열정, 아낌없는 헌신의 땀으로 고마운 어머니당을 위하여, 사회주의 우리 조국을 위하여 충성과 애국의 자서전을 공백없이 써나가자.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경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