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9월 15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철탑처럼 굳건히 조국을 받들어 30여년

함경북도송배전부 산줄작업반 반장 박장학동무에 대한 이야기

 

이것은 김철의 오랜 용해공이나 철산봉의 영웅광부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은 일터에서 누가 보건말건, 알아주건말건 인민경제의 생명선인 송전선을 지켜 한생을 묵묵히 바쳐온 한 평범한 산줄공에 대한 이야기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함경북도송배전부 산줄작업반 반장 박장학동무는 지난 30여년간 산줄공으로 일하면서 수천회의 고압송전선 및 변전설비들에 대한 점검보수와 불량개소퇴치를 진행함으로써 도안의 공장, 기업소들의 생산정상화에 이바지하였으며 작업반을 단합되고 전진하는 애국집단으로 만들어 당결정관철의 전렬에 서게 하였다.

설사 송전선으로 흐르는 전류의 흐름은 멎을수 있어도 몸에 피가 뛰는한 심장의 정전, 사상의 정전이란 있을수 없다는 결사의 각오를 안고 당이 맡겨준 초소를 굳건히 지켜온 박장학동무의 헌신의 30여년은 조국의 초석이 된다는것이 과연 어떤 삶을 사는것인가에 대한 뚜렷한 대답으로 된다.

 

혁명임무수행에 혼심을 다 바쳐

 

우리가 박장학동무를 만나기 위해 함경북도송배전부에 도착하였을 때 산줄작업반의 산줄공들은 정문을 나서고있었다.박장학동무는 지금 어느한 지구의 선로를 순회하기 위해 떠나려던 참이였다고 하면서 몹시 미안해하였다.

송배전부문에 대한 체험이 적은 우리에게 있어서 그들과 함께 동행하는것은 더없이 좋은 기회였다.이렇게 되여 우리의 취재는 북방의 험한 산발을 타는것으로부터 시작되였다.

《우리에게는 정해진 일터가 따로 없습니다.송전선이 있는 어느곳이나 다 우리의 일터로 되지요.이렇게 송전선을 따라 걷느라면 도의 마지막골짜기까지 다 가보게 된답니다.》

산발을 톺으며 박장학동무가 례사롭게 하는 말이였지만 우리의 생각은 깊어졌다.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내대고 공업의 동력을 중단없이 보내주는 어렵고 책임적인 일을 하느라 늘 긴장하게 사는 산줄공들, 그 위훈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은 과연 그 얼마이던가.

군사복무를 마치고 함경북도송배전부에 배치받을 때까지만 하여도 박장학동무는 산줄공이란 직업이 있는지조차 몰랐다고 한다.

《솔직히 말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일터에서 한생을 일해야 한다고 생각하니 처음엔 정말 서운했습니다.》

이런 그가 산줄작업이 얼마나 위험하고 또 중요한가를 실체험으로 깨닫게 된 계기가 있었다.

박장학동무가 산줄공으로 배치된지 얼마 안되여 그가 속한 작업반은 선로공들이 발견한 불비한 개소를 보수하기 위하여 현장으로 떠나게 되였다.그런데 현지에 도착하여 작업대상을 쳐다보았을 때 모두가 아연해졌다.철탑우에 늘여진 고압선의 한곳이 벌겋게 달아올라있었던것이다.산줄작업경험이 많다고 하는 오랜 산줄공들의 얼굴에도 당황해하는 기색이 확연했다.그들의 말에 의하면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문데 자칫하면 생명을 잃을수 있다는것이였다. 유일한 방법은 전기를 끄는것이였는데 그렇게 되면 청진지구의 공장, 기업소들의 생산이 멎게 되고 다른 곳에도 큰 영향이 미치게 될것이였다.

모두가 망설이고있는데 철탑밑으로 불쑥 다가서는 사람이 있었다.작업반장이였다.박장학동무는 저도 모르게 그의 앞을 가로막아나섰다.

《위험합니다.》

뒤이어 다른 산줄공들도 작업반장에게 이번만은 전기를 끄고 작업하자고 제기하였다.

이러는 작업반원들에게 그가 한 말은 얼마나 절절했던가.

《동무들, 전화의 나날 통신병들은 한몸이 그대로 통신선이 되여 전투의 승리를 보장했는데 1950년대 조국수호의 그 정신으로 일한다면 무엇인들 못해내겠소.》

그날 작업은 성과적으로 끝났다.작업반장은 여느때와 다름없이 례사롭게 웃으며 산발을 내렸다.

하지만 그 모습을 바라보는 박장학동무의 생각은 깊어졌다.그가 도송배전부에 산줄공으로 배치되여온 그날 작업반장이 하던 말이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우리에겐 자기 맡은 초소에서 주저하거나 물러설 권리가 없소.우리가 일을 잘하지 못하면 공장의 동음이 멎게 되고 인민들의 웃음소리가 흐려지게 되거던.》

그 말을 새겨볼수록 박장학동무에게는 푸른 산발너머로 끝없이 뻗어간 전선줄들이 무심히 안겨오지 않았다.평범하게 보아오던 그 전선줄에 얼마나 크낙한것이 실려있는것인가.그 전선줄로 흐르는 전류가 잠시나마 흐름을 멈추게 된다면 나라의 전진속도가 떠지게 되고 인민들의 행복의 웃음꽃이 더 활짝 피여날수 없게 된다고 생각하니 산줄공이 된것을 후회했던 자신이 부끄러웠다.

그렇다.나의 일터는 나의 전호이다.내 비록 군복은 벗었지만 조국과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에서 언제나 전초병으로 살리라.

이렇게 마음속신들메를 단단히 조여맨 그는 높은 목표를 세웠다.

흔히 산줄작업을 단독으로 원만히 수행할수 있는 기술기능을 소유하자면 몇달이라는 시일이 걸린다고 한다.하지만 박장학동무는 한달동안에 기술기능을 소유하기로 결심하였다.

어느날 저녁 이동작업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던 박장학동무는 강기슭에 높이 솟은 철탑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하루빨리 산줄작업을 하려면 철탑부터 잘 타야 한다고 생각한 그는 한치한치 철탑을 오르기 시작하였다.

불어치는 강바람이 옷자락을 날리고 컴컴한 어둠속에 묵묵히 흐르는 강물이 아득히 내려다보였다.머리우에서는 고압전류가 그의 의지를 시험하듯 윙윙 소리를 내였다.그러나 박장학동무는 이를 악물고 철탑을 톺아올랐다.

이렇게 오르내리기를 몇번…

고압선을 다루는 산줄작업은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강한 의지와 숙련이 필요하였다.이 의지와 숙련을 위해 박장학동무는 열정과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남들이 다 자는 깊은 밤에도 기술기능수준을 높이기 위해 한밤을 지새웠고 낮이면 현장에서 몇번씩 철탑을 오르내리였다.도서관을 비롯하여 여러 단위를 찾아다니며 과학기술지식의 탑도 쌓았다.이런 피타는 노력이 있어 그는 불과 한달도 안되여 자기가 세운 목표를 기어이 달성하고야말았다.

첫 산줄작업에서 단번에 특고압전류가 흐르는 송전선을 택하고 능숙하게 전선줄을 이어가는 그를 두고 작업반원들은 또 한명의 《수리개》가 날개를 폈다고 기쁨을 금치 못해하였다.

그런데 이렇듯 훌륭한 산정의 수리개의 날개가 하루아침에 꺾이울줄이야.

한번은 그가 작업도중에 철탑에서 떨어져 병원에 실려간적이 있었다.

의식이 혼미해지는 속에서 박장학동무는 담당의사에게 말했다.

《내가 다시… 철탑에… 오를수 있습니까?》

자기 한몸보다도 맡겨진 혁명임무를 생각하는 그의 고결한 정신세계는 끝내 의사들을 울리고말았다.병원의 의료일군들은 기어이 환자의 소원을 풀어주자고 너도나도 궐기해나섰다.병원적인 협의만도 그 몇번이였던가.마침내 의료일군들의 정성은 꽃으로 피여 박장학동무는 다시 대지를 활보할수 있게 되였다.

병원문을 나서던 그날 박장학동무는 의사들의 손을 꼭 잡고 고맙다고 거듭 인사를 했다.그때 병원의 한 의료일군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진짜 인사를 받아야 할 사람은 동무요.솔직히 우린 처음 동무의 상태를 두고 다리를 자르는것은 어쩔수 없는것이라고 손맥을 놓았댔소.하지만 자기 한몸보다 먼저 혁명임무를 생각하는 동무의 그 마음속진정이 우리로 하여금 다시 분발하게 했소.동무야말로 자기 일터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를 가르쳐준 고마운 스승이요.》

그때로부터 세월은 많이도 흘러 박장학동무의 나이도 어느덧 60고개를 넘어섰다.하지만 그는 오늘도 조국의 푸른 산발을 넘고넘으며 인민경제의 생명선을 믿음직하게 지켜가고있다.

그 어떤 모진 시련과 역경속에서도 조국과 인민을 위한 복무의 길을 꿋꿋이 이어간 박장학동무의 삶은 우리에게 가르쳐주고있다.

당이 맡겨준 일터를 나의 전호로 여기며 언제나 병사의 각오와 마음으로 혁명임무수행에 량심과 혼심을 다 바치는 사람에게는 어렵고 힘든 초소, 못해낼 일이 없다는것을!

 

당원작업반의 세포비서

 

취재과정에 우리는 또 하나의 사실을 알게 되였다.그것은 산줄작업반원모두가 당원이며 박장학동무는 작업반장인 동시에 당세포비서라는것이였다.

당원작업반의 세포비서!

누구나 쉽게 지닐수 없는 이 영예가 과연 저절로 이루어진것이던가.

박장학동무가 처음 당세포비서사업을 시작할 때까지만 해도 작업반의 구성상태는 지금과 같지 못하였다.

물론 수십m높이에서 전기가 살아있는 전선줄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산줄작업을 튼튼한 육체와 함께 어지간히 든든한 심장이 아니고서는 진행할수 없다는것만은 분명하였다.그렇지만 작업반에서 산줄공들이 하나둘 빠져나갈 때마다 박장학동무는 자기 살점이 떨어져나가는것처럼 안타까와했다.

어느 작업반보다 높은 기술기능수준을 요구하는 산줄작업반에서 이렇게 한해가 멀다하게 작업반명단을 다시 써가지고서야 어떻게 작업반앞에 맡겨진 과제를 훌륭히 수행할수 있겠는가.

박장학동무는 작업반원들의 가슴속에 산줄공의 긍지와 영예감부터 심어주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작업반에는 자기 직업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못하여 늘 말밥에 오르는 한 청년이 있었다.출근도 바로하지 않고 아프다는 핑게로 일도 잘하지 않는 그를 위해 박장학동무는 진정을 쏟았다.일도 함께 하고 가정방문도 하고…

한번은 박장학동무에게 그 청년이 이렇게 자기 심정을 터놓았다.

《어제 중학교를 졸업하고 금속공장에 진출한 동창생을 만났는데 자기는 쇠물을 많이 뽑아 신문에까지 났답니다.그런데 난 이렇게 인적없는 외진 산중에서 고장난 선로나 수리하고있으니…》

그러는 청년을 한동안 아무 말없이 바라보던 박장학동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물론 매일 자기가 흘린 땀방울이 생산물로 전환되여나오는것을 바라보는 그 기쁨이야 이루 말할수 없겠지.하지만 생각해보라구.우리가 하는 이 일이 없이야 어떻게 용광로에서 쇠물이 쏟아져나오고 공장에서 제품이 생산되여나올수 있겠나.그래서인지 나에게는 저 고압전류흐르는 소리가 무심히 들리지 않아.내 조국의 거세찬 숨결처럼 언제나 정답게 들리거던.》

진정으로 열지 못하는 마음의 문은 없는 법이다.품을 들인것만큼 청년은 하루가 다르게 몰라보게 변모되였고 마침내는 작업반의 기둥으로 되였다.

박장학동무의 보증으로 조선로동당에 입당하던 날 그는 눈물에 젖어 뜨겁게 말하였다.숨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기앞에서 다진 맹세를 지키겠다고.

작업반원모두가 당원으로,기능공으로 자라나던 나날에 박장학동무가 남모르게 지새운 낮과 밤은 그 얼마였던가.

박장학동무는 늘 말했다고 한다.

우리 작업반원 한명한명이 다 철탑처럼 자기 일터에 굳건히 뿌리내릴 때 이 땅우에 만부하의 동음은 더 우렁차게 울리고 인민의 행복은 더 활짝 꽃펴난다고.

이렇게 모두 혁신자로 키운 작업반원들을 이끌고 그는 당대회결정관철을 위한 투쟁의 앞장에서 힘차게 내달렸다.

어랑천발전소건설을 위하여 북방의 험한 산발들에 림시전주대들을 세울 때 있은 일이다.

전선줄을 늘여나가던 작업반앞에 뜻밖의 정황이 조성되였다.폭이 어지간히 되는 강을 건너야 했던것이다.때는 초겨울이라 살얼음이 와삭거리는 강물은 뼈를 에이는듯 차거웠다.

작업반의 젊은 산줄공들이 저마다 앞장에 서겠다고 하였으나 박장학동무는 양보하지 않고 선참으로 전선줄을 어깨에 메고 강물에 뛰여들었다.

강물이 어찌나 찬지 누구라 할것없이 온몸을 덜덜 떨었다.

하지만 박장학동무는 가쁜숨을 몰아쉬면서도 작업반원들에게 힘을 주는것을 잊지 않았다.

《동무들! 우리는 이제 멀지 않아 이곳에서 고압전류가 흐르는 소리를 듣게 될거요.그러면 우리는 당에 또 하나의 기쁨을 드리게 되오!》

이리하여 얼마후 강우로 전선줄이 뻗게 되였다.

지난해 1월에도 박장학동무는 어느한 군의 험한 산중에서 선로가 끊어졌다는것을 알게 되자 이 생각, 저 생각할 겨를도 없이 작업반원들을 데리고 그곳으로 달려갔다.그곳은 고산지대다나니 눈이 무릎을 치게 왔고 세찬 바람이 눈보라를 일으켜 눈을 뜰수 없게 하였다.했으나 박장학동무는 주저없이 작업준비를 서둘렀다.

이때 어떤 사람들은 바람이 멎은 다음 작업을 시작하지 않겠는가고 하였다.

그러나 박장학동무는 단호하게 말했다.

《무슨 소리를 하오.지금 당 제8차대회를 빛나는 로력적성과로 맞이하자고 일터마다 더 많은 전기를 요구하는데… 분초가 새롭소.한시바삐 선로를 보수합시다.》

그는 이렇게 인민경제 여러 부문에 전기를 더 보내는 일이라면 한몸을 아끼지 않았다.

이런 그였기에 언제인가는 북부지구의 어느한 중요공장에 대한 전기공급이 선로의 불합리성으로 하여 자주 늦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자진하여 그 문제를 해결함으로써 국가에 많은 리득을 주었다.

작업반장, 당세포비서로 사업하는 기간 박장학동무가 앞장서서 산줄작업에 받아들인 창의고안, 기술혁신안은 가치가 큰것만도 10여건에 달하며 작업과정에 자체의 힘으로 만들어낸 산줄작업공구는 6종에 10가지나 된다.

이렇게 대오의 앞장에서 늘 신발이 닳도록 뛰여다니다나니 그에게는 집에서 산 날이 많지 못했다.

한번은 박장학동무가 선로순회길을 떠나려는데 집에서 안해가 앓는다는 련락이 왔다.집에 도착하니 안해의 병은 마을사람들에 의하여 급한 목은 넘긴 뒤였다.박장학동무는 다소 마음이 놓이였다.

허나 그것은 한순간, 방송에 귀를 기울이던 그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얼마후에 센바람이 불것이 예견된다는것이였다.

하지만 앓는 안해를 집에 두고 떠나자니 발길이 떨어지지 않았다.사실 그는 안해에게 미안한것이 많았다.두 딸이 다 자라 가정을 이룰 때까지 안해에게 집안살림을 떠맡기고 철탑에서 줄창 살다싶이 한 그였던것이다.

박장학동무가 이런 생각으로 주춤거리고있는데 안해 최금숙동무가 그의 손을 꼭 잡고 말하였다.

《내 걱정은 말고 어서 나가보세요.당신이야 한 가정의 세대주이기 전에 작업반장이고 당세포비서가 아닌가요.》

자신의 본분을 다시한번 새겨주는 안해를 고마운 눈길로 바라보며 박장학동무는 또다시 머나먼 길을 떠나갔다.

이렇게 오직 한마음 조국과 인민을 위해 헌신의 낮과 밤을 이어간 박장학동무의 공로를 헤아려 당에서는 그를 조선로동당 제4차 세포비서대회와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 대표로 불러주었으며 오늘은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의 값높은 영예를 안겨주었다.좋은 날에나 어려운 날에나 티없는 량심으로 수놓아온 애국의 자욱자욱을 긍지높고 아름다운 삶으로 시대의 단상에 세워주었다.

조국을 받들어 철탑처럼 꿋꿋이 애국의 한모습으로 한생을 하루같이 사는 박장학동무,

조국의 초석으로 삶을 빛내이는 이런 훌륭한 당원들, 참된 공민들이 있어 위대한 우리 당의 존엄이 빛나고 우리의 사회주의가 승승장구하는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정영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