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일    성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데 대하여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에 즈음하여
항일혁명투사들과 한 담화

l972년 4월 22일

 

나는 오늘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맞으며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나와 함께 오래동안 혁명투쟁을 하여온 동무들과 식사나 한끼 같이 하면서 이야기를 나누려고 오라고 하였습니다.

오늘 이렇게 오랜 기간 함께 싸워온 동무들과  만경대에서  사진도 찍고 자리를 같이 하고보니  항일무장투쟁시기  밀영의 우등불가에서  만경대를  그리며 《사향가》를 부르던 때가 추억됩니다.

만경대는  나의 고향입니다. 나는 간고한  항일무장투쟁시기에  고향생각이 날 때마다 동무들에게 아름다운  만경대와  대동강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고 이름난 평양랭면에 대한 이야기도 해주면서 마음속으로  만경대를  그려보군 하였습니다.

만경대를  그려보느라면 우리 어머니가 생각났습니다. 나는 어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다음 있은 일이 잊혀지지 않습니다.

그때 앓고계시던 어머니는 나에게  항일유격대원들을  한번 보고싶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나는 광목천으로 만든 새 군복을 입고 행전을 친 유격대원들을 마을뒤산에 정렬시켜놓았습니다. 늘 독립군만 보아오시다가 끌끌한 유격대원들을 보신 우리 어머니는 당장 일제놈들을 때려부시고 조국광복을 이룩할것 같다고 하면서 매우 기뻐하시였습니다. 그때의 어머니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가 아버지의 권총을 나에게 주시던 일도 생각납니다. 우리 아버지는 조선독립을 위하여 늘 권총을 가지고 다니시였습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있는 로인이 지금 있는데 그는 우리 아버지가 평양숭실학교에 다니실 때 평양녀자고보를 다니면서 아버지에게서 애국주의교양을 많이 받았습니다. 어머니가 나에게 넘겨주신 우리 아버지의 권총이 지금 조선혁명박물관에 보존되여있습니다.

어제 우리는 어머니의 탄생 80돐을 맞이하였습니다. 이날을 맞이하고보니 어머니가 더욱 그립습니다. 내가 우리 어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듯이 동무들도 자기 어머니를 사랑할것이며 그리워할것입니다. 우리가 두고온 고향과 어머니를 그리며 조국의 광복을 위하여 일제놈들과 싸우던 때로부터 많은 세월이 흘렀습니다.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맞이하고보니 우리가 강도 일제와 싸우던 간고한  항일혈전의  나날들이 감회깊이 떠오릅니다.  항일혁명투쟁은  참으로 간고하고 시련에 찬 투쟁이였습니다. 국가적인 후방과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20성상이나 일본제국주의자들과 간고한 투쟁을 하다보니  항일혁명투사들이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여기에 와있는 장철구동무만 하여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 동무는 사령부작식대일을 하면서 늘 가마곁이 아니면 나무밑에서 풀을 깔고 잤습니다. 장철구동무는 그때 고생한것으로 하여 지금도 한쪽팔을 잘 쓰지 못하고있습니다.

만경대혁명학원  원장인 리오송동무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이 동무는 마안산아동단원들가운데 한사람입니다.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도 고생을 많이 하였습니다.

나는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를 볼 때마다 사득판에서 적의 습격을 받던 때가 생각납니다. 소할바령회의가 있은 후 우리가 며칠간 행군을 하던 때 일입니다. 행군을 시작한 우리는 몇시간후에 사득판에 들어섰습니다. 사득판을 지나가야만 그 너머에 있는 목적지로 행군해갈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날이 어두워질무렵 맞은켠쪽에서 전지불같은 불빛이 번쩍하는것을 보았는데 그 불빛은 한번 나타났다가는 다시 보이지 않았습니다. 갈길은 오직 그 길밖에 없기때문에 우리는 그 길로 계속 행군해나갔습니다. 그때 사령부행군대오에는 대원들의 대부분이 전투임무를 수행하러 나가고 20명 되나마나한 성원만 떨어져있었는데 그들중에는 나보다 앞서가는 동무도 있었고 좀 뒤에 떨어져오는 동무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아마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가 나를 거의 따라섰던것 같습니다. 나는 사득판에 들어서기 전에 본 불빛이 아무래도 심상치 않아 전령병이였던 전문섭동무에게 앞에 나가서 적정이 없는가를 알아보고 오라고 임무를 주어보냈습니다. 내가 그를 보내고 조금 있는데 갑자기 적들의 기관총탄알이 우리가 있는 곳으로 비발치듯 날아왔습니다. 적의 기관총소리가 나자 어느 사이에 조선혁명박물관 당비서와 전문섭동무가 나에게 달려와 나를 호위하면서 적의 매복권을 벗어나기 위해 무진 애를 썼습니다.

우리가 적들을 뒤에 달고 큰길쪽으로 행군을 시작한지 얼마되지 않아서 이번에는 또 앞에서 적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때 나는 적들에게 골탕을 먹일 생각으로 앞뒤에서 달려드는 적들을 우리에게 접근시킨 다음 행군대오를 슬쩍 옆으로 빼돌리고 적들끼리 싸움을 붙여놓았습니다. 그때 우리가 자칫하면 사득판에서 큰 손실을 입을번 하였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을  시작하던 초시기에 우리의 력량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내가 1933년에 왕청에 나온 다음부터는  항일유격대의  력량이 늘어났습니다.  항일유격대의  력량은 내가 장백에서 활동할 때에 급격히 늘어났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우리와 함께 싸운 동지들이 수없이 많았는데 전투에서 희생되고 반《민생단》투쟁바람에 희생되고 조국이 광복될 때에도 희생되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조국해방전쟁때 적지 않게 희생되였습니다.

오늘 나와 함께 혁명의 길을 걸어온 동무들이 이 자리에 다 모이지 못한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아픕니다. 물론 혁명투쟁에서 희생이 없을수는 없지만 우리 혁명이 류달리 간고하다보니 우리는 지난날 너무나도 많은 희생을 냈습니다.

지금은  항일혁명투사들이  얼마 남지 않았으며 남은 동지들도 늙었습니다. 우리가 조선인민혁명군창건 50돐을 맞이할 때에는 로혁명가들이 지금보다 더 늙을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 더 많은 일을 하여야 하며 죽을 때까지 혁명을 계속하여야 합니다.

우리 혁명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남조선에서 미제침략자들을 몰아내지 못하였으며 공화국북반부에서 사회주의의 완전승리도 이룩하지 못하였습니다. 우리에게는 해놓은 일보다 앞으로 해야 할 일이 더 많습니다.

우리는 조국의 통일과 우리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기 위하여,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더 힘찬 투쟁을 벌려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하여  항일혁명투쟁에  참가한 로혁명가들이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하겠습니다.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는것은  혁명가로서의  본분을 다하기 위한 중요한 요구입니다.

혁명가들이  자기의 본분을 다하자면 두가지원칙을 지켜야 하는데 첫째원칙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는것이고 둘째원칙은 생의 마무리를 잘하는것입니다.

아름다운 꽃도 계속 피여있어야 곱고 항기롭지 시들면 볼멋이 없습니다. 우리  혁명가들도  역시 혁명의 꽃을 변함없이 끝까지 피울 때만이 인민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수 있지 중도에서 시들어버리면 인민의 버림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걸어온 혁명의 길은 장구하고 간고하였지만  항일유격대원들가운데는  적들에게 투항한 사람이 얼마 없습니다.  항일유격대  참모장을 하던 림수산이 적들에게 투항하였는데 림수산은 이미전부터 사상적으로 병이 든 자였습니다.

혁명가가   한생을  보람있게 사는것도 중요하지만 죽을 때 값있게 죽는것도 그에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혁명가들이   혁명가로서의  의무를 다하고 숨이 지는 마지막순간까지 당과  수령을  위하여,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투쟁하여야 죽어서도 우리 당과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원히 남아있게 됩니다.

로혁명가들은 혁명의 길에서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치고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생각해서라도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우리 혁명의 길에는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자기의 모든것을 다 바쳐 투쟁하다가 먼저 떠나간 혁명동지들이 많습니다. 최춘국, 강건, 김경석동무들이 바로 그런 동지들입니다. 그들은 당과 혁명을 위하여  한생을  보람있게 살았고 최후도 값있게 마쳤습니다. 김경석동무는 평양시당위원장을 하면서 반당반혁명분자들의 반당적행위를 들추어내는데 크게 기여하였습니다. 사실 그때 반당반혁명분자들의 죄행을 알고있는 사람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평양시당에 김경석동무를 배치하였기때문에 혁명의 어려운 시기에도 끄떡없었습니다. 류경수동무도 혁명에 충실한 동무였는데 아깝게 잃었습니다.

동무들은 혁명의 길에서 먼저 떠나간 동지들을 잊지 말아야 하며 그들의 념원을 풀어주기 위하여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야 합니다.

혁명가들이  생의 마지막순간까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우자면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화, 로동계급화하여야 합니다.  자신을  끊임없이 혁명화, 로동계급화할 때만이  혁명가로서의  의무를 다할수 있고 숨이 지는 순간까지 혁명의 꽃을 계속 피울수 있습니다.

지난날 혁명을 오래하고 공로를 세운 사람도  자신을  수양하지 않고 혁명화하지 않으면 사상적으로 락후해지고 변질됩니다. 모든 사물이 변하듯이 사람도 변합니다. 사람은 좋게 변할수도 있고 나쁘게 변할수도 있습니다.

오늘 사회주의를 건설한다고 하는 일부 사회주의나라들에서는 경제분야에서 자본주의요소가 적지 않게 복귀되고있으며 사람들의 정신도덕생활에서도 자본주의적생활양식이 부식되고있습니다. 혁명은 지주, 자본가제도를 때려부시고 로동계급이 정권을 쥐였다고 하여 끝나는것이 아닙니다. 정권을 쥔 로동계급의 당은 혁명을 계속하여 사람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고 사회주의의 완전한 승리를 이룩하여야 합니다. 최근 어느한 나라에서 우리 나라 예술영화 《로동가정》과 《꽃피는 마을》에 대한 관평을 신문에 냈는데 거기에는 아버지가 로동계급이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로동계급이 되는것이 아니며 아버지가  혁명가라고  하여 아들이 저절로  혁명가로  되는것이 아니라고 썼다고 합니다. 이것은 내가 한 말을 그대로 옮긴것이기는 하지만 관평을 잘 썼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혁명화, 로동계급화하기 위하여서는 학습과 사상투쟁을 강화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나는 어려서부터 소설책과 철학책을 비롯하여 많은 책을 보았습니다. 책이 없으면 먼곳에서라도 책을 얻어다보았으며 적들과 싸움할 때에는 로획한 책을 가지고다니면서 보았습니다. 나는 책을 보면서  자신을  끊임없이 수양하였으며  혁명가의  의무를 다하여왔습니다. 지금은 내가  수상을  하고있지만 그때에는  수상을  할것을 생각하고 책을 많이 본것이 아닙니다. 어려서부터 학습을 많이 한 덕을 지금 보고있습니다. 나는 지금도 신문과 여러 부문의 책을 보고있습니다. 사람이 학습을 하지 않으면 락후해지고 변질됩니다.

동무들은 당정책학습과 정세학습을 비롯한 여러가지 학습을 강화하여 자신을 부단히 수양하며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나가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완성하는데서 동지들사이에 맺어진 혁명적동지애를 귀중히 여기고 그에 기초하여 굳게 단결하는것이 중요합니다.

혁명적동지애라는 말에는 깊은 뜻이 담겨져있습니다. 혁명적동지애는 같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사이에 맺어지는 가장 아름답고 숭고한 사랑입니다. 사람들사이의 참다운 동지적관계와 혁명적동지애는 결코 저절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직 혁명투쟁과정에서 이루어지며 공고발전되게 됩니다.

우리들사이의 동지적관계는 장구한  항일무장투쟁과  조국해방전쟁, 새 사회건설을 위한 투쟁과정에 이루어진 참다운 관계입니다. 나는 지금까지 부모슬하에서는 열다섯살까지 살고 그다음부터는 동지들의 사랑속에서 살아왔습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  많은 동지들이 고난과 위험을 무릅쓰고 나를 사랑해주었고 보호해주었습니다.  항일무장투쟁의  마지막시기에 있은 일입니다. 그해 따라 눈이 많이 쌓였기때문에 식량을 해결하러 다니기가 매우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김일동무와 류경수동무를 비롯한 여러 동무들이 자기들은 통강냉이를 먹으면서도 나를 위해 늘 좁쌀을 구해가지고 다녔습니다. 내가 이 사실을 알고 좁쌀을 대원들에게 나누어주라고 하였는데 그들은 좁쌀을 조금씩 소비하는것처럼 하다가 도로 남겨놓고는 이 사실을 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내가 오늘까지 이렇게 건강하여 혁명을 할수 있은것은 다 동무들이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나를 사랑하고 위해주었기때문입니다. 나에 대한 동지들의 각별한 사랑에 대하여 나는 언제나 잊지 않고있으며 고맙게 생각하고있습니다.

나는 나를 이처럼 아끼고 사랑해주는 동지들을 소중히 여기고 사랑하여왔습니다.

나는 몇해전에 나를 그처럼 사랑해주던 김일동무가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에 접하게 되였습니다. 나는 그가 자기는 통강냉이를 먹으면서 나를 위해 좁쌀을 구해오느라 모진 고생을 다하던 일이 생각나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나는 즉시 전국의 유능한 의사들을 불러놓고 김일동무의 치료문제를 협의해보았습니다. 의사협의회에서는 절대다수가 암이니 수술을 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으나 한사람만이 암이 아니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김일동무를 수술대에 올려놓을수 없어서 외무상에게 이번에는 설명절을 쇠지 않겠으니 빨리 다른 나라 사람들과 교섭하여 유능한 의사들을 불러오라고 하였습니다.

나는 김일동무의 병이 암이 아니라는 다른 나라 의사들의 말을 듣고 마음을 좀 놓았습니다. 그후 김일동무를 그 나라에 보내여 진찰을 받게 하여보니 그의 병은 위암이 아니였습니다. 내가 그때 김일동무를 수술하게 하였더라면 그는 지금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였을는지도 모릅니다.

김일동무는 나의 오른팔과 같습니다. 나를 그처럼 위해주고 도와주던 김책동무도 일찍 갔는데 내가 김일동무까지 잃어버리면 견디여낼것 같지 못합니다. 내가 이런 말을 하는것은 혁명적동지애는 이렇게 동지들사이에 서로 사랑하고 도와주는 과정에 이루어진다는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항일혁명투쟁시기부터  높이 발양된 혁명적동지애와 단결의 전통을 가지고있으며 이것은 우리 혁명의 가장 귀중한 재부입니다.

동무들은 앞으로도 계속 동지들을 아끼고 사랑하고 도와주며 당의 유일사상에 기초하여 사상의지적으로 굳게 단결함으로써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높이 발양된 혁명적동지애와 단결의 전통을 더욱 아름답게 꽃피워나가야 합니다.

백두밀림에서 개척한 우리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자면 혁명의 후계자를 잘 키워야 합니다.

혁명의 후계자를 잘 키우는 문제는 우리 혁명의 현실적요구로부터 나서는 절박한 문제입니다.

지금 우리앞에는 사회주의를 건설하여 인민들을 더 잘 살게 하며 분렬된 조국을 통일하여야 할 혁명과업이 놓여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로혁명가들은 점점 늙어가고있으며 또 얼마 남지도 않았습니다.  항일혁명투사들가운데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할 때부터 있던 동무들은 몇명 되지 않습니다. 지금 있는 로혁명가들은 거의다 내가 조선인민혁명군을 창건한 다음에 입대시킨 사람들로서 제2기생이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그 2기생들도 이젠 60고개에 들어섰거나 60고개를 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혁명의 대를 이어나갈 후계자를 잘 키워 우리 혁명의 명맥을 끝까지 이어나가야 합니다.

혁명의 후계자를 잘 키우는것은 국제공산주의운동의 경험과 현 실태로부터 제기되는 절박한 요구입니다. 쏘련의 경험을 보면 레닌이 쓰딸린과 같은 혁명에 충실한 사람을 후계자로 키웠기때문에 레닌이 서거한 후 쓰딸린이 레닌의 뜻을 이어 쏘련공산당과 쏘련인민을 령도하여 혁명과 건설에서 빛나는 성과를 이룩할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쓰딸린은 자기의 후계자를 잘 키우지 못하였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쓰딸린이 서거한 후 흐루쑈브와 같은 배신자가 나오게 되였습니다.

혁명의 후계자를 키우는 사업을 잘하지 못하면 당과 혁명에 돌이킬수 없는 후과를 미치게 됩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당과 혁명에 끝없이 충실하고 우리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완성해나갈수 있는 능력있는 젊은 사람을 후계자로 선정하고 잘 키워야 합니다.

우리의 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빛나게 계승해나가자면 혁명의 핵심을 잘 키우는것이 또한 중요합니다.

혁명의 핵심이란 그 어떤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당의 로선과 정책을 철저히 관철하며 우리 당의 혁명전통을 견결히 옹호고수하고 계승해나갈수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핵심을 장악하고 키우는 사업을 잘하여야 우리의 혁명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해나갈수 있습니다. 모든 물질에는 다 핵이 있습니다. 원자에도 핵이 있고 열매에도 씨가 있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혁명투쟁에서도 반드시 핵심이 있어야 하며 핵심이 있어야 승리를 이룩할수 있습니다.

지난 혁명투쟁경험을 보아도 핵심육성사업이 매우 중요합니다. 나는  항일무장투쟁시기에  동무들과 같이 혁명에 충실한 핵심들을 꾸려놓았기때문에 일본제국주의자들과 싸워 승리할수 있었으며 광복후에도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을 제때에 적발숙청할수 있었습니다. 당중앙위원회가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책동에도 흔들리지 않은것은 우리에게 핵심이 많았으며 그들이 무력을 틀어쥐고있었기때문입니다. 혁명을 하자면 군대를 틀어쥐여야 합니다.

핵심육성사업은 당, 정권기관을 비롯한 모든 부문에서 다 잘하여야 하지만 특히 인민군대에서 더 잘하여야 합니다. 인민군대안에 핵심이 튼튼히 꾸려져있어야 우리가 마음을 놓을수 있습니다. 그런데 정전된지 20년이 되여오는 지금까지 인민군대에서는 핵심을 키우기 위한 사업을 잘하지 못하였습니다. 내가 오늘 핵심을 키우는 사업을 잘하지 못하였다고 하는것은 인민군대에 핵심이 없다는것이 아닙니다.

이 자리에 모인 집단군, 군단사령관들은 다 우리 당의 핵심이며 인민군대의 핵심입니다. 동무들은 다음대의 핵심, 다시말하여 동무들의 교대자들을 아무리 세찬 폭풍이 불어와도 흔들리지 않고 우리 당의 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수 있는 핵심들로 키워놓아야 합니다.

핵심을 키우자면 핵심대상을 바로 정하여야 합니다. 지금 인민군대에  혁명가유자녀들과  피살자, 전사자들의 자녀들 그리고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들이 많습니다. 이런 좋은 사람들을 장악하여 핵심으로 키워야 합니다. 지금 남조선에서 혁명투쟁을 하다가 희생된 사람들의 유가족들이 많은데 그들도 다 우리의 핵심으로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혁명가유자녀들과  피살자, 전사자들, 남조선혁명가들의 자녀들을 공부시켜 혁명의 핵심으로 키우기 위하여  만경대혁명학원과   강반석혁명학원을  앞으로도 계속 유지하여야 합니다. 학원에 학생들이 많지 않아도 좋습니다.

혁명의 핵심을 키우는것과 함께 복잡한 군중의 자녀들을 당의 두리에 굳게 묶어세우기 위한 사업도 잘하여야 합니다.

당의 대중적지반을 강화하고 혁명대오의 정치사상적통일단결을 강화하자면 복잡한 군중과의 사업을 강화하여 그들을 당의 두리에 더욱 굳게 묶어세워야 합니다. 지난해 내가 평안북도와 황해남도에 나가 사회정치생활경위와 가정주위환경이 복잡한 사람들과 그의 자녀들과의 사업을 잘할데 대하여 말해준 다음부터 적지 않은 문제들이 해결되였습니다.

인민군대에서도 정치사업을 잘하여 사회정치생활경위와 가정주위환경이 복잡한 군중의 자녀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그들을 다 우리 혁명의 편에 묶어세워야 합니다.

인민군대에서 월남자자녀들과의 정치사업을 잘하면 그들이 우리를 따라오지 자기 아버지나 할아버지를 따라가지 않을것입니다.

항일무장투쟁시기에  우리는 적들에게 복무하던 사람들속에 들어가 정치사업을 잘하여 그들을 혁명의 편에 돌려세우고 유격대에 입대시켜 잘 싸우게 한 실례들이 많습니다. 1939년 12월에 진행된 륙과송전투가 끝난 뒤 많은 채벌로동자들이 짐을 지고 우리를 따라왔는데 그때 우리가 그들속에서 정치사업을 힘있게 벌렸습니다. 우리는 그들에게 해설사업도 하고 연극공연도 보여주었습니다. 채벌로동자들은 나무가 얼어터지는 혹한속에서도 공연을 다 보았으며 적지 않은 사람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할것을 청원하였습니다. 그들가운데는 《자위단》에 복무하던 사람도 있었는데 그는 유격대에 입대하여 잘 싸웠으며 지금도 일을 충실하게 하고있습니다.

예술은 대중을 교양하는 위력한 무기입니다. 일부 사람들은 예술을 하나의 오락으로 여기고있는데 그것은 옳지 않습니다. 나는 혁명활동을 시작하던 초기에 《꽃파는 처녀》를 만들어가지고 공연하였습니다. 이 작품을  김정일동무가 영화로 옮겨놓았는데 지금 예술영화 《꽃파는 처녀》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습니다.

사람들을 교양하고 묶어세우는데서 실물을 통한 교양사업이 매우 효과적입니다. 이번에 전연일대에 살림집을 많이 건설하였는데 군인들이 이것을 보고 대단히 좋아한다는 반영이 제기되고있습니다.

정치사업은 누구나 다 할수 있고 또 하여야 합니다.

사령관들은  정치사업을 정치위원만 하는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신이  직접 하여야 합니다. 정치사업은 누가 시켜서가 아니라  자신이  연구하고 자발적으로 하여야 묘리를 체득할수 있고 실효도 높일수 있습니다.

분렬된 조국을 통일하기 위한 투쟁을 힘있게 벌려야 합니다. 우리가 후대들에게 분렬된 조국을 넘겨주어서는 절대로 안됩니다.

조국의 통일을 이룩하자면 먼저 인민군대의 싸움준비를 강화하여야 합니다.

인민군대의 싸움준비에서 중요한것은 무장장비를 현대전의 요구에 맞게 갱신하는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더 좋은 포들과 전투기술기재들을 생산하여 인민군대를 장비시키려고 합니다. 인민군대에서는 새로운 무기를 받으면 훈련을 강화하여 부대의 전투준비를 완성하며 언제 어느 곳에서 적들이 쳐들어와도 제때에 쳐부실수 있게 만단의 전투태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조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는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에 깊은 주의를 돌려야 합니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는것은 조국을 평화적으로 통일하기 위한 중요한 방도입니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가 실현되면 남조선에서 혁명적인 정당들이 나올수 있고 그의 합법적활동이 보장될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조국을 빨리 통일할수 있습니다.

남조선사회를 민주화하려면 인민들을 정치적으로 각성시키고 혁명력량을 부단히 장성시켜야 합니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투쟁을 인내성있게 하여야 합니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는 일조일석에 실현될수 없지만 남조선인민들이 투쟁을 잘하면 촉진시킬수 있습니다.

내가 지난해 8월 6일 캄보쟈국가원수 노로돔 시하누크친왕을 환영하는 평양시군중대회에서 남조선의 민주공화당을 포함한 모든 정당, 사회단체 및 개별적인사들과 아무때나 접촉할 용의가 있다고 하였는데 그 연설이 나간 다음 남조선당국자가 우리와 대화를 할 의사를 표명하였습니다. 물론 그가 쉽게 남조선사회를 민주화하려고 하지 않을것입니다. 남조선사회의 민주화는 누가 누구를 하는 심각한 계급투쟁입니다. 우리는 적들과의 총소리없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하여 잡도리를 잘하여야 합니다.

다른 나라들과의 관계를 잘 가져야 합니다. 이번에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경축하기 위하여 우리 나라에 오는 군사대표단들과의 사업을 잘하여 대표단성원들이 우리에 대한 인상을 좋게 가지고가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가야 할 길은 아직 멀고 험난합니다. 나는 동무들을 믿고 동무들은 나를 믿고 서로 아끼고 사랑하면서 혁명의 길을 꿋꿋이 걸어나가야 합니다.

나는 오늘 조선인민혁명군창건 40돐을 맞으며  항일무장투쟁시기부터  나와 함께 오래동안 혁명투쟁을 하여온 로투사들과 우리의 혁명위업을 무장으로 받들어나가는  사령관들의  건강을 위하여 이 잔을 들것을 제의합니다.

출처 : 《우리민족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