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0월 20일 로동신문
모두다 사회주의애국공로자들처럼 살며 투쟁하자! 애국은 심장으로 한다 화대광산 자력갱 갱장 공훈광부 박영복동무에 대한 이야기
불굴의 인간, 참된 애국자는 어떤 사람인가. 당과 조국을 위하여 몸과 마음을 깡그리 바쳐가는 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화대광산 자력갱 갱장 박영복동무에 대한 이야기가 그에 훌륭한 대답을 주고있다.
《모든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당과 혁명, 조국과 인민앞에 지닌 숭고한 사명감을 깊이 자각하고
박영복동무는 수십년을 막장에서 일하면서 로동자로부터 소대장, 중대장을 거쳐 갱장으로 사업하는 나날에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하여 참으로 많은 일을 하였다. 뜻밖의 일로 두다리를 상하고 한눈을 실명당한 불편한 몸으로 변함없이 막장을 지켜온 공훈광부, 심장의 박동이 다할 때까지 온넋으로 당과 조국을 받들려는 충성과 애국의 일념 안고 생의 한초한초를 불사신처럼 이어온 그의 삶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값높고 보람있는 인생이란 과연 어떤것인가를 새겨주고있다.
지하막장의 불사조
지금으로부터 13년전 2월 어느날 박영복동무는 여느날과 다름없이 갱에서 일하고있었다. 광부들과 함께 발파준비를 다그치던 그는 이상한 느낌이 들어 갱벽을 주시했다.순간 그의 눈에서 섬광같은것이 번뜩이였다.분초를 다투는 위험이 다가오고있었던것이다.그는 더 생각할 사이도 없이 함께 일하던 광부들을 힘껏 밀어던졌다.뒤따라 갱안을 뒤흔드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박영복동무는 의식을 잃었다. 병원에서 치료를 마치고 퇴원할무렵 의사는 그에게 힘든 일을 해서는 절대로 안된다고 당부했다.그에 대한 의학적진단은 명백히 로동능력상실이였던것이다.광산에서는 사회보장수속문건이 그를 기다리고있었다. 하지만 박영복동무는 자기에게 내려진 의학적진단을 완강히 거부했다.자기가 어떻게 되여 보람있는 생을 살게 되였는가를 돌이켜볼수록 그 생을 변함없이 이어가려는 결심이 그의 심신을 꽉 틀어잡았던것이다. 그는 한때 사람들의 속을 무던히도 태웠다.낳아준 어머니마저 단념하였던 《말썽꾸러기》를 꾸준히 교양하고 이끌어 인생의 새 출발선에 세워준것은 광산당조직이였다. 때로는 아픈 매도 들면서 걸음걸음 보살펴주고 재생의 길을 걷는 그를 두고 누구보다 기뻐하며 보란듯이 내세워주고 혁신자로 떠받들어주던 그 손길, 그 품이 너무도 고맙고 소중했기에 박영복동무는 정녕 일터를 떠날수 없었다. 광산에서는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쉬염쉬염 일하겠다는 그의 확답을 몇번이나 받아내고서야 갱안에 들어가는것을 허락했다. 막장일은 많은 육체적소모를 요구한다.평지길도 제대로 걷기 어렵게 된 다리를 가지고 한눈을 실명당한 상태에서 막장길을 하루와 같이 이어간다는것은 그야말로 헐치 않은 일이였다. 허나 그에게는 막장을 떠받들고있는 동발목처럼 든든히 뻗쳐주는 마음의 기둥이 있었다.그것은 바른길로만 멈춤없이 곧바로, 끝까지 걸어가라고 떠밀어주는 당의 믿음이였다.죽어도 그 믿음만은 베고죽겠다는 각오로 심장을 끓이였기에 박영복동무는 형언할수 없는 육체적고통을 강인한 의지로 이겨내며 막장길을 이어갔다. 불편한 다리로 걷는 자기의 모습을 보면 사람들이 걱정할것같아 그는 먼동이 터오는 이른새벽에 출근길에 올랐고 교대가 끝난 다음에도 인적이 뜸해진 한밤에 집으로 돌아오군 하였다.불편한 몸을 갱작업에 적응시키기 위해 남모르게 고심하면서 남들과 꼭같이 착암과 발파, 광석운반과 버럭처리를 하였다. 광부들이 그렇게 일하다가는 몸의 기력은 물론 땀마저 바닥이 나겠다고 걱정할 때마다 박영복동무는 웃으며 말하였다. 《너무 마음쓰지 마십시오.조국을 위해 흘릴 땀이 없으면 나는 죽은 목숨이나 같습니다.》 당과 조국을 위하여 흘리는 땀, 그것이야말로 박영복동무의 가슴속에 끓고있는 보답의 열정이였다. 영광스러운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소대장을 거쳐 중대장이 된 박영복동무는 당앞에 다진 엄숙한 맹세를 지켜 한몸을 아끼지 않았다. 당 제7차대회를 앞두고 충성의 70일전투가 시작되였을 때였다.70일전투의 앞장에서 본때있게 내달릴 열의로 가슴을 끓이며 갱으로 달려나왔던 광부들은 작업준비를 하고있는 박영복동무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며칠전에 병이 악화되여 병원으로 실려갔던 사람이 어떻게 갱에 있는가. 광부들은 그의 설명을 듣지 않고서도 능히 짐작할수 있었다.뜻깊은 당대회를 보위하기 위한 투쟁의 앞장에는 응당 당원이며 지휘관인 자기가 서있어야 한다는 자각을 안고 병원침상에서 뛰쳐나왔다는것을. 자기의 손에서 작업공구들을 빼앗는 중대원들을 믿음어린 눈길로 바라보며 박영복동무는 열렬히 호소했다. 《목표를 더 높이 정하고 올해 생산계획을 태양절전으로 무조건 끝냅시다.그래서 력사적인 당대회를 떳떳이 맞이합시다.》 주먹들을 내흔들며 자신있다고 호응하는 광부들의 가슴속에는 이런 지휘관과 함께라면 무엇인들 못해내겠는가 하는 배심이 더욱 깊이 자리잡았다. 충성의 70일전투의 하루하루를 알찬 실적으로 아로새기기 위해 박영복동무는 침식마저 잊고 뛰고 또 뛰였다.불편한 다리때문에 일에 지장을 받을가봐 그는 사무실로 잠자리를 옮기였고 온밤 신음소리를 내며 열에 떠있다가도 아침이면 또다시 광부들과 함께 막장으로 향하였다.입술이 부르트고 눈이 충혈된 그를 보다 못해 광부들이 앞을 막아나선적은 그 얼마였던가. 그러면 박영복동무는 결연히 말하군 하였다. 《당앞에 결의다진 목표를 수행하기 전에는 나에게 주저앉을 권리가 없소.내가 쓰러지지 않게 동무들이 좀 부축해주오.》 조국의 고지는 나의 고지라고 웨치며 결사전에 나서던 용사들, 팔다리가 부서지면 입에 수류탄을 물고, 턱으로 중기압철을 누르며 원쑤들을 족치던 불사조들이 어찌 전화의 나날에만 있었다고 하랴. 박영복동무와 같이 심장의 박동이 다할 때까지 당의 위업에 끝까지 충실하려는 조선로동당의 불사조들은 오늘도 끝없이 태여나고있다. 그렇게 온몸을 부시며 광부들을 혁신의 길로 이끌어가는 박영복동무의 노력으로 하여 중대는 70일전투목표를 빛나게 완수하였고 태양절전으로 년간계획을 완수하는 자랑찬 성과를 이룩하였다. 당 제8차대회를 보위하기 위한 80일전투때에도 박영복동무는 실천적모범으로 중대를 이끌어 당앞에 결의한 생산목표를 빛나게 수행하고 광산이 생산계획을 앞당겨 완수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박영복동무에게 있어서 겨울은 제일 힘든 계절이다.불편한 다리로 얼음진 미끄러운 경사길을 오르내리기가 몇곱이나 힘에 부쳤기때문이였다. 어느날 박영복동무가 난데없이 벼짚을 한아름 안고 집으로 들어섰다.어디에 쓰려는것인가고 묻는 안해 탁영화녀성에게 그는 좀 쓸데가 있어 그런다고 얼버무리였다. 다음날 탁영화녀성은 남편이 신발에 벼짚을 꼼꼼히 동여매고 출근길에 오르려는것을 보게 되였다.겨울철에 미끄러운 길을 걷기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그런 생각을 다 했으랴.남편의 신발에 감겨있는 벼짚을 쓸어보며 탁영화녀성은 오열을 터치였다.그리고 안타까운 심정을 터놓았다.당신의 몸상태를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꼭 이렇게까지 일해야 하는가고. 그러는 안해를 말없이 바라보던 박영복동무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나라고 왜 힘들지 않겠소.하지만 순간이라도 나약해지고 한걸음이라도 드티면 나를 키워주고 내세워준 품을 배신하는것으로 되겠기에 입술을 사려물고 달음질치군 하오.나는 동발나무처럼 꿋꿋이 광산을 떠받들고싶소.》 이렇듯 당과 조국을 위해 필요한 삶을 이어가겠다는 자각이 굳센 사람만이 남들의 눈길이 미치지 않는 지하막장에서도 값높은 생의 자욱을 새겨갈수 있는것이다.그 나날 그는 공훈광부의 값높은 영예를 지니게 되였다. 공훈광부, 그것은 어떤 시련과 난관이 앞을 막아도 당의 믿음에 결사의 실천으로 보답하려는 신념의 한길만을 억세게 걸어온 지하막장의 불사조 박영복동무에 대한 당과 조국의 뜨거운 사랑이였고 값높은 표창이였다. 불편한 몸으로 어떻게 13년을 그렇듯 불같이 살아올수 있었는가고 묻는 사람들에게 박영복동무는 이렇게 말하군 한다.애국은 육체가 아니라 정신으로 하는것이라고, 자기의 생을 당과 조국의 운명과 하나로 이어놓고 모든것을 바치겠다는 결심만 굳건하면 육체는 비록 말을 잘 듣지 않아도 당과 조국에 이바지되는 많은 일을 할수 있다고.
우리 갱, 우리 광부들
자력갱의 광부들과 가족들이 박영복동무를 진심으로 따르며 존경하는것은 그가 대중의 심장에 기적창조의 불을 지피는 훌륭한 지휘관이여서만이 아니다.그의 모습이 자신보다 당과 조국, 사회와 집단을 먼저 생각하는 참된 인생의 모범으로 되기때문이다. 어떻게 하면 광부들과 종업원들의 후방사업을 개선하겠는가를 진지하게 모색하던 박영복동무가 강기슭의 자갈밭을 개간하자는 안을 내놓았을 때였다. 일부 광부들속에서 의견이 분분했다.광물생산계획을 수행하자고 해도 바쁜데 어느 여가에 부업지를 개간하며 광산에서 생활에 리용할 물자들을 공급해주고있는 조건에서 자체로 농사까지 지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것이였다.그들에게 박영복동무는 말했다.우리가 부업도 하고 축산도 하면 그만큼 국가의 부담을 덜게 되고 생활도 윤택해지지 않겠는가고. 허나 새땅을 얻어내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았다.아무리 돌을 춰내도 밭갈이를 하고나면 또다시 자갈투성이로 변했고 지력을 개선하기 위해 수십리밖에서 진거름을 실어들이느라 밤을 꼬박 지새우는 때도 있었다. 하루종일 갱과 부업지를 오가며 생산지휘도 하고 돌지게, 거름지게도 지면서 땀을 흘리느라 남보다 곱절이나 힘들었지만 박영복동무는 주저앉을수 없었다.광부들과 종업원들의 가슴속에 자기의 행복은 제손으로 마련해야 한다는 신념을 깊이 심어주기 위해 입술을 사려물고 일어서군 하였다. 그렇게 애쓴 보람이 있어 첫해부터 그 땅에서는 사람들을 놀래우는 풍요한 작황이 펼쳐졌다.축산도 본때있게 해보리라 결심한 그는 집짐승우리건설을 힘있게 내밀었다.그 나날 우량품종의 돼지와 염소종자를 구해오고 빈약한 축산지식을 보충하기 위해 그가 지새운 밤, 걸은 길이 얼마인지 사람들은 다 알지 못하였다. 어느날 낮과 밤이 따로 없이 뛰여다니던 그는 육체적부담을 이겨내지 못하고 끝내 쓰러지고말았다. 안타까이 자기를 찾는 광부들의 목소리를 꿈속에서처럼 들으며 가까스로 눈을 뜬 그는 일어나려고 애썼지만 몸이 말을 잘 듣지 않았다.생산도 부업농사도 축산도 우리가 다 맡아할테니 병원에 입원하여 치료를 받으라고 권고하는 광부들을 미더운 눈길로 바라보며 박영복동무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우리 갱이 모든 면에서 광산의 본보기, 온 나라의 자랑이 되는 그때에 가서 마음편히 치료를 받겠소.》 그리고는 초인간적인 힘으로 강잉히 일어나 현장으로 걸음을 옮기였다. 박영복동무의 땀과 열정이 스며있는 부업지와 집짐승우리들에서 생산되는 많은 량의 알곡과 남새, 고기는 오늘 광부들과 종업원들의 식생활향상에 적지 않은 도움을 주고있다.갱의 뒤산에 수백㎥의 막돌을 날라다가 조성한 다락식과수원에서는 철따라 맛좋은 과일도 따들이고있다. 광부들 한사람한사람을 자기의 친혈육처럼 아끼고 사랑하며 뜨거운 정을 다해 보살피고 이끌어주는 박영복동무의 다심한 마음에 떠받들려 자력갱은 화목하고 단합된 집단, 힘있는 집단으로 자랑떨치게 되였다. 오늘도 광부들이 잊지 못하는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일찌기 부모를 잃은 한은철동무에 대한 이야기이다. 좀처럼 갱에 정을 붙이지 못하고있던 그는 어느날 거친 일본새로 하여 되게 비판을 받고나서 어디론가 훌쩍 떠나가버렸다.그런 그를 두고 광부들은 온 집단이 그렇게 위해주었는데 량심도 의리도 없는 인간이라고 하면서 갱에서 내보내자고 하였다.그때 박영복동무는 고개를 저으며 자책어린 목소리로 말하였다. 《은철동무가 그렇게 된데는 나에게 책임이 있소.량부모를 잃은 그의 생활을 돌봐주는것만으로 만족해했지 그가 집단의 귀중함을 깨닫도록 원칙적으로 교양하지 못했단 말이요.온 나라를 다 밟아서라도 그를 데려다 집단과 고락을 함께 하는 진짜배기광부로 키워야 하오.》 이런 말을 남기고 박영복동무는 한은철동무를 찾아 먼길을 떠났다.가방에 안해가 넣어준 도중식사가 있었지만 그는 차마 거기에 손을 댈수가 없었다.어디 가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있을 한은철동무의 모습이 눈앞에 밟혀왔기때문이였다. 끝내 한은철동무를 찾았을 때 그의 입에서는 너무 기뻐 이런 말이 튀여나왔다. 《우리 은철이가 여기에 있는줄 모르고 온 함경북도를 다 찾아다녔구만.동무들이 기다리오.어서 광산으로 가기요.》 얼마나 많은 걸음을 하였는지 바닥이 거의 밑창나다싶이 한 갱장의 신발을 보며 한은철동무는 눈물을 쏟고야말았다. 그후 박영복동무는 한은철동무가 한 처녀와 일생을 같이할것을 약속하였을 때에는 부모된 심정으로 결혼상도 성의껏 차려주고 그들이 생활할 집과 가구들, 생활필수품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알아보며 모든 조건을 그쯘히 갖추어주었다.그런 박영복동무의 모습에서 한은철동무는 자식이 잘되기를 바라는 친부모의 정을 느끼였고 결과 오늘은 광산이 자랑하는 혁신자로 성장하였다. 해마다 종업원들의 땔감을 해결해주고 김장철이면 남새는 물론 양념감에 이르기까지 마음쓰는 사려깊은 진정, 광부들의 자식들이 상급학교에 가거나 인민군대에 입대하면 제일처럼 기뻐하며 관심해준 이야기, 광부가정들에 새 생명이 태여날 때마다 친정어머니의 심정으로 몸보신에 좋은 보약재들과 영양식품을 마련해준 이야기… 정말이지 박영복동무의 마음속에는 우리 갱, 우리 광부, 우리 가족들에 대한 생각만이 꽉 차있었다.그들모두가 화목하고 단합되여 일터에서는 언제나 혁신의 새 소식들만 넘쳐나고 집집마다에서는 행복의 웃음소리가 높이 울릴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도 기쁘기만 하다는것이 그의 인생관이였다. 화대군 읍농장을 비롯하여 여러 농장들에 많은 영농물자와 소농기구들을 지원하고 건물들을 일신하는데 필요한 건설자재들도 보장해주면서 농장원들을 적극 도와준 사실, 교향천에 큰물에도 끄떡없을 제방을 쌓아 국토관리사업에도 이바지한 사실들은 조국의 부강번영에 도움이 되는 좋은 일들을 스스로 찾아하는 박영복동무의 애국심을 웅변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이런 박영복동무의 모습을 거울로 삼고 당과 조국, 사회와 집단을 위한 헌신에서 삶의 긍지와 보람을 찾는 자력갱의 광부들은 한결같이 외우고있다.사회주의애국공로자인 갱장동지를 닮고싶다고, 우리 갱장동지처럼 살고싶다고. 우리의 국가에는 《몸과 맘 다 바쳐 이 조선 길이 받드세》라는 구절이 있다. 몸과 맘 다 바쳐! 이 구절속에 우리 인민의 숭고한 애국관, 인생관이 담겨져있다. 박영복동무와 같이 당과 조국을 위해 심장의 마지막피 한방울까지, 인생의 마지막 한걸음까지 깡그리 바칠 일념을 안고 충성의 한길, 애국의 한길을 변함없이 걸어가는 참된 애국자들만이 어머니조국을 몸과 맘 다 바쳐 사랑한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다. 그렇다.애국은 심장으로 하는것이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경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