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일    성

 

자녀교양에서 어머니들의 임무

(발취)

 

전국어머니대회에서 한 연설

1961년 11월 16일

 

낡은 사상을 반대하는 투쟁에서 어머니들의 역할이 매우 큽니다.

사람은 대체로 가정에서, 학교에서 그리고 또 일반사회생활에서 교양을 받습니다. 그런데 가정교육은 학교교육, 사회교육의 기초로 되며 사람을 교양하는데서 매우 중요한 의의를 가집니다.

가정은 부모와 처자, 형제자매를 비롯한 육친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모여서 생활을 같이하는 우리 사회의 세포입니다. 여기에서 사람들은 어릴 때부터 제일 가까운 사람들에게서 늘 교양을 받을수 있습니다. 가정에서는 학교나 사회에서는 할수 없는 교양을 잘할수 있습니다.

그런데 가정교육에서는 어머니가 중요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왜 아버지보다도 어머니의 책임이 더 중요하겠습니까? 그것은 아이들을 낳아서 기르는것이 어머니이기때문입니다. 어린이의 첫째가는 교양자는 어머니입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걷는것과 말하는것, 옷입는것, 밥먹는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그들에게 필요한 모든것을 가르쳐줍니다. 어머니가 아이들에게 첫 교양을 잘 주는가 못주는가가 아이들의 발전에서 큰 의의를 가집니다. 어머니가 가정교양을 잘 주면 학교에서나 사회조직에서 교양하기 매우 헐합니다. 어머니가 교양을 잘하면 학교에서 공부도 잘하고 사회에 나가서 일도 잘할수 있습니다.

어릴 때에 어머니한테서 배운것은 일생동안 잊어지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제일 오래 기억하고있는것은 어머니가 해준 말씀, 어머니의 모범입니다. 어머니가 준 인상은 사람들의 성격과 습관을 이루는데 중요한 영향을 줍니다. 옛날부터 훌륭한 사람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머니의 좋은 교양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마동희동무의 어머니를 모시고있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딸들을 늘 애국주의정신으로 교양하였습니다. 그렇게 한 결과 그의 아들과 딸, 며느리까지 다 혁명가로 되였습니다. 마동희동무는 언제나 혁명과업을 충실히 집행하였습니다. 그는 혜산지구에 지하조직을 복구하러 나왔다가 일제경찰에게 붙잡혔습니다. 적들은 빨찌산들이 있는 지휘부를 대라고 갖은 고문을 다했습니다. 그때 지휘부는 멀지 않은곳에 있었습니다. 마동희동무는 우리의 지휘부가 적들에게 알려지면 혁명에 큰 손실을 준다는것을 잘 알고있었습니다. 그는 고문을 받아 정신을 잃었을 때 헛소리라도 하여 지휘부의 위치를 말하지 않을가 념려하여 자기 혀를 깨물어 끊었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이 진정한 영웅입니다. 일제놈들은 이런 지독한 공산주의자는 재판도 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그를 경찰서에서 야만적으로 학살하였습니다. 그러나 마동희동무의 어머니는 락심하지 않고 아들의 시체를 묻고 조국을 위하여 계속 지조를 지켰습니다. 오직 이와 같은 조선의 어머니가 있음으로 하여 그와 같은 영웅적인 아들이 나올수 있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은 사회와 인민을 위하여서는 자기의 생명까지 바쳐야 합니다. 마동희동무의 어머니는 자기 아들을 사랑하였으나 결코 리기주의적으로 사랑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아들이 적앞에 굴복하지 않고 죽은것이 마땅하며 또 비록 자기 아들이 죽었으나 혁명과 인민에게는 리익이 되였기때문에 잘되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이 어머니는 자기 아들의 생명보다도 조국과 인민과 혁명을 더 귀중히 여기고있는것입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마동희동무의 어머니처럼 자기 아들딸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한다면 아이들이 다 훌륭한 공산주의자로 자라날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어린이들은 누구나 다 훌륭한 사람으로 될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가지고있습니다. 원래 나쁜 사람의 종자가 있는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좋고 나쁜 종자가 있다는것은 지난날 지배계급들이 꾸며낸 거짓말입니다. 사람이 태여날 때에는 다같이 좋은 사람으로 될수 있는 소질을 가지고있습니다.

문제는 좋은 교양을 받는가 나쁜 영향을 받는가에 따라서 좋은 사람과 나쁜 사람으로 갈라지게 됩니다. 특히 부모들이 어떤 영향을 주는가에 크게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성분을 보는것은 옛날과 같이 사람의 종자를 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떠한 영향을 받았는가를 똑똑하게 알자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왜 지주의 아들이 나쁜가 하면 그는 자기 아비가 사람들을 착취하며 소작인들을 때리고 모욕하며 건방지게 행동하는것을 본받았을수 있기때문입니다.

지금은 지주도 없고 자본가도 없습니다. 착취도 없고 압박도 없습니다. 모두가 다 학교에서 공부할수 있으며 어떤곳에서 일하든지 다 좋은 교양을 받을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집 아이를 막론하고 다 좋은 사람으로 될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어머니들은 자기의 아이들을 훌륭한 공산주의건설자로 길러내야 할 무거운 임무를 지니고있습니다. 모든 어머니들이 앞날의 공산주의사회의 주인공들을 길러내는 무거운 책임과 영예를 더욱 깊이 느껴야 하겠습니다.

지금에 와서는 모든 조건이 다 좋기때문에 어머니들이 아들딸들을 교양하기 위하여 노력만 하면 됩니다.

아들딸들을 교양하는데 무슨 다른 방법이 요구되는것도 아닙니다. 오늘 우리 나라에서 많이 창조되고있는 긍정적모범으로 아들딸들을 교양하면 됩니다.

지금 가는곳마다에서 새형의 인간들이 나오고있으며 우리는 누구나 할것없이 감동적인 많은 사실들을 알고있습니다.

아마 여기에 모인 동무들가운데 어랑의 안해에 대한 이야기나 방하수소년을 구원한 붉은 의료일군들의 이야기, 길확실, 리신자동무들의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것입니다.

이와 같은 좋은 실례를 가지고 아들딸들을 교양하면 우리의 어린이들은 틀림없이 좋은 사람으로 될것입니다.

아들딸들에 대한 교양을 잘하기 위하여서는 어머니자신이 훌륭한 공산주의자로 되여야 합니다. 자신이 일하기도 싫어하고 공부하기도 싫어하며 리기주의적으로 행동하면서 아이들보고만 좋은 사람이 되라고 요구하여서는 안됩니다. 사람을 교양하는데서는 말보다도 실천적모범이 앞서야 합니다. 아이들을 공산주의건설자로 길러내려면 부모들부터 공산주의어머니가 되고 공산주의아버지가 되여야 합니다.

재경리에 사는 엄아바이는 지금 공산주의아바이로서 널리 알려져있습니다. 이것은 공산주의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는 아니지만 참고로 될것입니다. 엄아바이는 라진사람인데 해방전에는 남의 머슴살이도 하고 매우 가난하게 살다가 해방후 땅도 타고 잘살게 되였다고 합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그는 아들들에게 너희들은 자기 조국을 지키기 위하여 원쑤들과 끝까지 싸워야 한다고 하면서 그들을 전선에로 내보냈습니다. 전쟁이 끝나자 아들들은 돌아와서 학교에서 공부를 하였는데 그가운데서 한사람은 벌써 종합대학을 나오고 김책공업대학에서 교원을 하고있습니다. 그런데 아마 김책공대에서 선생노릇하고있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인제는 나이도 많고 일하기도 힘들터인데 평양으로 올라와 같이 사는것이 어떤가고 편지를 낸 모양입니다. 그래서 엄아바이가 평양에 있는 아들네 집에 올라왔는데 아빠트에서 창문을 열고 거리를 내다보니 여러곳에서 기중기가 움직이고 새로운 집들이 계속 솟아오르고있었으며 젊은 청년들은 물론, 모든 사람들이 다 매우 활기있게 일하고있었습니다. 이것을 본 그는 온 세상 사람들이 다 사회주의를 건설하기 위하여 떨쳐나섰는데 벌써부터 아들네 집에 와서 며느리가 끓여주는 밥이나 먹고 앉아있는것은 로동당원으로서 아주 부끄러운 일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시 일하기로 결심하였으며 재경리에 나가서 협동조합원으로 일하게 되였습니다. 그는 협동조합에 나가서 남보다 일도 더 모범적으로 하였으며 좋은 의견도 많이 내놓았습니다. 내가 언젠가 재경리에 나가 회의에 참가하였을 때에 올해에 알곡 100만톤 증산의 과업을 할수 있는가고 물었더니 뒤에서 한 로인이 일어서서 얼마든지 할수 있으며 또 반드시 해야 한다고 힘있게 대답하였습니다. 알고보니 그가 바로 이 엄아바이였습니다.

청산리에 있는 문정숙동무 역시 모범으로 될수 있습니다. 그의 남편은 조국전쟁에 나가서 전사하였습니다. 그가 어린애를 데리고 혼자 산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습니다. 그래서 내무성에 있는 오빠와 공장기사장으로 일하고있는 오빠들은 같이 살자고 자기 누이를 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문정숙동무는 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가 로동당원으로서 절대로 놀고먹을수 없다고 생각하였으며 자기 손으로 벌어서 아이를 공부시키며 나라를 위하여 더 일하겠다고 결심하였습니다. 내가 청산리당회의에 참가하였을 때 문정숙동무는 아주 좋은 토론을 하였습니다. 그는 이 동리에는 아직도 놀고먹기를 좋아하는 기생충아주머니들이 많은데 례를 들면 교장선생의 아주머니와 같은 사람이라고 말했습니다. 교장선생의 부인을 배속에 있는 벌레에 비교하였으니 비판이 너무 심한것은 사실이였으나 필요한 비판이였습니다. 비판을 받은 교장선생의 아주머니도 괜찮은 사람이였습니다. 이러한 비판을 받고 락망한것이 아니라 그 이튿날부터 기생충생활을 버리고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비판이 효력을 나타냈던것입니다. 나는 남의 신세를 지지 않고 자기의 힘으로 모든것을 꾸려나가려는 문정숙동무의 강한 의지와 모든 사업에 이악하게 달라붙는 그의 품성을 높이 평가합니다.

이밖에도 우리에게는 많은 모범적인 어머니들이 있습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들만이 공산주의어머니로 되는것이 아닙니다. 누구를 막론하고 리기주의를 버리고 당이 가리키는대로 나아가면 공산주의어머니로, 공산주의아바이로 될수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어머니들이 다 공산주의어머니로 되여야 하며 자기의 아들딸들을 공산주의건설자로 교양육성하여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어린애들을 거두는 문제에 대하여 말하려고 합니다. 지난날에는 조건이 갖추어지지 않아서 아이들을 잘 거두지 못했을수 있으나 오늘에 와서는 아무런 구실도 있을수 없습니다.

지금 아이들을 깨끗이 거둘수 있는 조건은 충분합니다. 2~3년전이라면 혹 돈이 없어서 아이들을 잘 거두지 못한다는 말도 할수 있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그렇게 말할수 없습니다. 아마 주요한 원인은 어머니들이 계속 낡은 습관에 사로잡혀있으며 아이들을 잘 거두어야 한다는 자각이 모자라는데 있는것 같습니다.

...

우리가 지금 고생을 하면서 새 사회를 건설하는것이 도대체 누구를 위한것입니까? 물론 우리들자신을 위한것으로도 되지만 주로는 우리의 후대를 위한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심은 사과나무에서 사과를 따먹을수도 있지만 그것이 우리들자신을 위한것이라기보다는 우리 후대들을 위한것이라는것이 더 옳을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대동강에 훌륭한 유보도를 만드느라고 힘을 들이고있는데 이것도 다 우리가 물려받은것이 빈약한탓입니다. 우리는 좀 고생하더라도 우리 세대가 일을 많이 해서 후대들에게 좋은것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요즘에 와서 어린애들의 죽는 률이 퍽 적어졌습니다. 그것은 인민들의 생활수준이 전반적으로 높아지고 보건의료시설들이 빨리 발전된때문이며 또 어머니들의 각성이 높아지고 녀맹에서도 노력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아이들의 건강을 위하여 결정적인것은 어머니들의 노력입니다. 어머니들이 어린애들을 깨끗하게 거두고 위생적으로 키워야 합니다. 어머니들이 위생지식을 가져야 하며 병을 어떻게 예방하며 어떻게 고치는가를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밥도 알맞게 먹이고 옷도 철따라 제대로 해입히고 병을 예방하기 위한 대책을 늘 세워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신문, 잡지, 라지오 같은것을 통하여 위생에 대한 지식을 보급하고있으며 어머니학교를 통하여 어머니들에게 필요한 지식을 주고있습니다. 우리 어머니들이 짬이 있을 때마다 열성적으로 배운다면 문화위생적으로 집안을 꾸리며 아이들을 거둘줄 아는 훌륭한 어머니로 될수 있을것입니다. 앞으로는 어린애를 잘 거두는 운동, 집을 깨끗이 거두는 운동, 어린애에게 병이 나지 않도록 하는 운동을 널리 벌려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녀맹사업에 대하여 간단히 말하려고 합니다.

사회주의건설에서, 특히 어린이들을 공산주의적으로 교양하는데서 녀성들의 역할이 매우 큰데 비추어 우리는 녀맹사업을 더욱 강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녀맹사업은 그전보다 훨씬 발전하였습니다. 지난날과는 달리 지금 녀맹에는 좋은 간부들이 많이 배치되였습니다. 지난날에는 핸드빽이나 들고 멋이나 부리고 다니던 사람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이들은 군중속에 들어갈수 없었으며 녀맹사업을 발전시키는데서 커다란 지장으로 되였습니다. 이와 같은 사람들을 내보내고 계급적립장이 튼튼한 당의 핵심들로 녀맹의 간부대렬을 꾸린것은 아주 옳은 조치였다고 생각합니다.

녀맹일군들이라고 하면 반드시 지난날 어떤 대학이나 전문학교를 나온 인테리들만 될수 있는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큰 잘못입니다. 녀맹에서 상대해야 할 녀성들은 공장과 농촌에서 일하고있는 근로녀성들입니다. 그런데 공장생활과 농촌생활을 하나도 모르고 화장이나 하고 머리나 잘 지지고 다닐줄 아는 소위 개명한 녀성들이 어떻게 녀맹사업을 할수 있겠습니까? 사실 머리나 지지고 옷이나 곱게 해입는것은 그리 중요하지도 않고 배우기도 쉬운 일입니다. 촌녀성들도 조금 가르쳐주면 인차 배울수 있습니다. 그러나 핸드빽이나 끼고 놀기나 좋아하는 녀성을 근로녀성들과 숨을 같이 쉬며 녀성들속에서 당정책을 관철시키기 위하여 견결히 투쟁하는 녀맹일군으로 만드는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때문에 공장과 농촌에서 실지 로동을 통하여 단련된 견실한 동무들을 간부로 쓰는것이 좋습니다. 어제 토론하는 동무들을 보아도 그들은 지난날 남의 집에서 머슴살이를 하고 고생하면서 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이 핵심으로 되는것이 당연합니다. 우리 당이 강하고 우리 나라가 강한것도 바로 이런 사람들이 모든 부문에서 핵심으로 되여있기때문입니다. 앞으로도 우리는 간부선발배치에 대한 당적원칙에 튼튼히 서서 녀맹의 간부대렬을 계속 강화하여야 하겠습니다.

나는 물론 인테리들을 간부로 쓰지 말라는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견실한 인테리들을 간부로 써야 하며 또 앞으로는 누구나 다 인테리가 되여야 합니다. 인테리라는것이 별다른것이 아닙니다. 반드시 대학졸업장을 가진 사람만이 인테리가 아닙니다. 어제오늘 여기에서 토론한 동무들이 다 인테리라고 말할수 있습니다. 진정한 인테리는 졸업장을 가진 사람이 아니라 생활에 필요한 지식을 가진 사람입니다. 옛날에 사각모나 쓰고 다닌 인테리들은 그때의 책이나 갖다놓으면 알는지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아무것도 모르고있습니다. 그러나 실지 사업을 통하여 배운 인테리들은 모든 문제에 대하여 정확하고 풍부한 지식을 가지고있습니다.

물론 학교를 못나온 동무들은 더 배워야 합니다. 대학통신학부를 통해서 배울수도 있고 자습할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녀맹간부들이 다 새로운 인테리로 되여야 합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로동자, 농민속에서 자라났으며 그들속에 깊이 들어가 일을 잘할수 있으며 당정책을 관철하기 위하여 이악하게 달라붙어 일하는 사람들로 녀맹의 간부대렬을 튼튼히 꾸리며 그들의 수준을 높이기 위하여 끊임없이 노력하여야 하겠습니다.

다음으로 녀맹앞에 나선 중요한 과업은 모든 녀성들을 공산주의어머니로, 후대들에 대한 훌륭한 공산주의교양자로 만들며 그들을 사회주의건설에 적극적으로 참가하게 하는것입니다. 공산주의어머니가 되는것과 사회주의건설자로 되는것은 서로 떼여놓을수 없는 일입니다. 놀고먹는 사람은 공산주의어머니가 될수 없습니다. 공산주의어머니가 되기 위하여서는 무엇보다먼저 사회주의건설에 열성적으로 참가하여야 합니다. 사회주의건설에 적극적으로 참가하여야만 끊임없이 발전하고있는 현실에서 뒤떨어지지 않을수 있으며 공산주의사상을 빨리 체득할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 나라에는 대학을 나오고도 일은 안하고 집에서 놀고있는 녀성들이 천수백명이나 있습니다. 원래 대학을 졸업하면 5년이상 직장에 복무하는것이 법적인 의무로 되여있습니다. 집에서 아이나 보고 밥이나 짓는 사람을 기르자고 국가가 대학공부를 시킨것이 아닙니다. 녀성들이 대학을 나오고도 직장에 나가지 않기때문에 간부양성기관들에서는 녀자들을 학생으로 받는것을 꺼리게까지 되였습니다. 물론 녀자들을 공부시켜야 합니다. 녀성들가운데서도 학사, 박사들이 많이 나와야 합니다. 지금 우리 녀성들가운데는 아직 박사가 없습니다. 이것은 유감스러운 일입니다. 녀성들속에서 정치, 경제, 문화의 모든 부문의 훌륭한 간부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합니다.

우리 녀성들가운데는 사회에 나가서 중요한 사업을 하는것보다도 아이나 낳고 가정에 들어앉아있는것이 좋은것 같이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나이 들어서 시집가는 동무들을 못났다고 자꾸 몰아주고있으며 또 늦도록 시집을 가지 않고 공부하고있는 사람들을 뒤에서 흉보고있습니다. 녀맹에서는 이와 같은 옳지 못한 경향과 강한 사상투쟁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녀성들이 시집가고 아이낳는것을 반대하는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이고 또 좋은 일입니다. 나쁜것은 시집을 가고 아이를 낳기 위하여 배우기도 하고 모든 일을 하는것 같이 생각하는 녀성들의 그릇된 사상입니다. 시집가고 아이를 낳고도 공부를 계속하여 학사와 박사도 될수 있으며 또 그렇게 되여야 합니다.

녀성들이 시집을 간 다음에도 계속 사회적으로 발전할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서는 그들에게 여러가지 조건들을 지어주어야 합니다. 탁아소, 유치원, 세탁소 같은것을 많이 만들어 녀성들의 사회적진출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나라에서는 이와 같은 시설들을 건설하는데 특별한 관심을 돌리고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모든 분야에서 방대한 건설사업이 진행되고있기때문에 나라에서 건설하는것만으로는 녀성들의 수요를 원만히 충족시키지 못할수도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는 녀성들의 사회적진출을 위하여 필요한 모든 시설들을 나라에서 완전히 건설하여주겠지만 얼마동안은 좀 힘들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녀맹에서 사업을 잘 조직한다면 녀성동무들이 힘을 합하여 자체로 많은것을 풀수 있을것입니다.

평양시 서성동에서의 경험은 좋은 모범으로 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녀맹에서는 녀성동무들이 모여서 탁아소와 세탁소, 공동식당 같은것을 만드는 투쟁을 조직하는것이 좋습니다. 이렇게 해서 녀성들이 사회에 나갈수 있는 조건을 충분히 지어주며 사회주의건설에서 녀성들의 역할을 더욱 높여야 하겠습니다.

지난날 녀맹사업에서 중요한 문제는 문맹퇴치사업과 녀성들을 억압하는 봉건사상을 없애는 사업이였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서는 이와 같은 사업은 그리 문제로 되지 않을것 같습니다. 오늘 녀맹에서는 녀성들을 사회주의건설에 적극적으로 발동시켜야 하며 그들이 일을 잘할수 있도록 조건을 마련해주는데 힘을 넣어야 할것입니다.

제4차당대회보고에도 지적되여있는바와 같이 녀맹사업은 우리 당 사업의 중요한 부분의 하나입니다. 시, 군당, 리당을 비롯한 각급 당조직들은 녀맹사업을 강화하기 위하여 적극적인 지도와 도움을 주어야 하겠습니다.

이번 어머니대회는 녀맹사업을 더욱 강화발전시키는데서도 좋은 기회로 될것입니다. 나는 이 대회가 있은 뒤에 어머니들의 자녀교양사업과 녀맹사업에서 새로운 전환이 있을것을 바랍니다.

출처 : 《우리민족강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