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1(2022)년 11월 5일 로동신문
도서 《조국해방전쟁참가자들의 회상기》를 펼치고 사지판에서도 불사신의 용맹을 낳는 원천
조국앞에 닥친 생사존망의 위기를 맞받아뚫고 이 땅의 귀중한 모든것이 파괴되고 지어 흙도 바위도 강물도 불타던 가렬한 전화의 나날 우리 인민군용사들속에서 발휘된 무비의 영웅성과 희생성, 용감성은 과연 어디에 그 뿌리를 두고있었던가. 《조국해방전쟁의 가렬한 불길속에서 우리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이 발휘한 《조국해방전쟁참가자들의 회상기》에는 이런 대목이 있다. 적들은 우리가 차지한 고지에 하루에도 여러 차례 반돌격을 감행하고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탄약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우리는 적들의 포격과 폭격이 아무리 심하다 할지라도 고지를 끝까지 사수할것을 맹세합니다.… 이 몸이 한줌의 흙이 되여 고지에 묻힌다 해도 이것은 락동강계선의 수암산전투에서 희생된 한 문화부중대장의 품속에서 나온 매일 평균 3 000여발의 포탄이 작렬하는 고지를 지켜 싸우는 그들에게 남은것은 아무것도 없었다.4문의 박격포도 다 파괴되고 탄약도 다 떨어져갔다.그러나 그들의 가슴속에는 한목숨 다 바쳐서라도 기어이 맹세문, 그것은 단순한 글줄이 아니라 전사들의 가슴속에 간직된 충성심의 결정체였다.대대로 머슴살이를 하며 노예의 운명을 강요당하던 자기들에게 나라를 찾아주시고 땅을 주시고 참된 삶을 안겨주신 결코 목숨바쳐 조국을 지킴은 곧 불과 17살이였던 한 인민군전사의 목소리가 오늘도 우리에게 들려온다. 락동강전투에서 미제침략자들을 호되게 족치고 전략적인 일시적후퇴의 길에 올랐던 인민군대 어느한 대대의 전사들은 꿈결에도 뵙고싶던 태백산줄기의 험한 령을 넘으며 머나먼 길을 걸어온 전사들, 그들의 모습을 대견하게 둘러보시던 난생처음 걸어보는 멀고 험한 길에 어찌 난관이 없고 참기 힘든 고비가 없었으랴.허나 땀배인 배낭의 무게도 가늠해보시고 어깨우의 무기에 대해서도 물어주시는 다심한 어버이의 사랑이 있어 그들에게는 새힘이 용솟음쳤다.하기에 우리의 인민군용사들은 불타는 전호가에서 마지막탄환이 떨어지면 총창을 비껴들고 백병전에 나섰고 적탄에 팔다리가 끊어지면 입에 수류탄을 물고서라도 적들을 혼비백산케 하였다. 1950년 8월말 락동강도하전투때 인민군대의 한 통신소대에는 도하를 위한 지휘부의 통신을 구분대마다에 신속정확히 보장할데 대한 임무가 하달되였다. 구분대들에 파견되였던 일부 무전수들이 희생되고 또 축전지가 제때에 보장되지 못하는 조건에서 그들이 맡은 유선통신은 중요한것이였다.더우기 벌써 한개 분대의 통신병들이 보병들과 함께 불바다를 헤치며 통신선을 늘이다가 거의 모두가 희생되였다. 하지만 그들에게 있어서 두려운것은 죽음이 아니라 바로 맡은 임무를 수행하지 못하는것이였다. 군데군데 돌을 매달고 물속으로 선을 늘인다면 적기의 폭격이나 불길속에서도 통신선이 안전할수 있다고 생각한 전투원들은 결사대를 뭇고 지체없이 강물속으로 들어갔다. 그날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무비의 희생성을 발휘하며 싸웠기에 그들은 끝끝내 지휘부와의 통화를 보장할수 있었다. 그렇다. 1950년대 전화의 용사들앞에서 우리 다시금 되새겨본다.진정으로 사람들은 평시에 누구나 당앞에 충실하겠다고 맹세도 많이 다지고 또 그렇게 살고있다고 자부하기도 한다.그러나 실지에 있어서 시련과 난관이 앞길을 가로막을 때 그것을 대하는 매 사람의 태도와 각오는 같지 않다. 전화의 나날 인민군용사들은 충성에 대해, 불굴성과 용감성에 대해 요란하게 말하지 않았다.그러나 그들은 탄약이 모자라고 수류탄이 떨어졌다고 해도 고지를 사수하고 강을 도하할데 대한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것은 바로 1950년대 인민군용사들이 지녔던 그런 티없이 순결한 충성심이고 불굴의 정신이다. 전승세대가 지녔던 그 정신을 만장약하고 그들처럼 살며 투쟁한다면 아무리 1950년대와 같은 엄혹한 시련의 시기가 열백번 닥쳐온대도 반드시 승리할수 있다는것이 바로 우리가 다시금 새겨안게 되는 진리이다. 전체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여! 누구나 안정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