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1월 18일 로동신문
1960년대, 70년대에 발휘된 우리 인민의 충실성 100만정보관개체계를 떠올린 힘
오랜 세월 사람들은 례사롭게 말해왔다.물은 곬을 따라 흐른다고. 그러나 《당의 부름이라면 한마음한뜻으로 떨쳐일어나 산도 옮기고 바다도 메우는 기적을 끊임없이 창조해나가는것은 우리 인민의 투쟁전통이며 기질입니다.》 우리 나라 농촌경리발전에서 당중앙위원회 1958년 9월전원회의는 큰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인 회의였다.바로 이 회의에서 온 나라 농촌의 수리화를 최단기간내에 끝낼수 있는 길을 밝혀주신 모든 힘을 100만정보의 관개면적확장에로! 생각만 해보아도 가슴이 쿵쿵 높뛰는 이 압록강관개건설자들은 1962년부터 일부 지역에 물을 보장하라고 하신 수십리 산허리를 맞뚫어 재령벌에만 흐르던 어느한 저수지물을 청단벌로 돌리는 청단지구관개건설장에서도, 물이라고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비방울밖에 구경할수 없었다는 신계미루등의 관개건설장에서도 지어 양덕, 맹산의 산간벽지에 이르기까지 전국의 이르는 곳마다에서 수리화의 불길이 세차게 타번지였다. 이 땅 그 어디서나 안아볼수 있는 그렇듯 고결한 충성의 마음이 지펴올린 혁신의 불길은 청산리에서도 거세차게 일어번졌다.어느날 농장에서 진행하는 하천공사장에서 하루일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농장청년의 머리속에서는 어떻게 하면 공사를 빨리 끝낼수 있을가 하는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그가 밤새 도면을 그리며 애쓰고있던 시각 다른 한 청년은 언땅을 파내는 작업의 능률을 높일 방도를 찾아 밤을 새우고있었다. 누가 시킨 사람은 없어도 자기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스스로 자각한 농촌청년들에 의해 사람들을 크게 놀래운 삭도, 목조기중기, 밀차의 세가지 기계화운동과 같은 새로운 운동과 공법들이 수많이 창조되게 되였다. 온 나라를 휩쓴 집단적혁신의 불길과 더불어 기적적성과들이 꼬리를 물고 일어났다. 안악군 청년저수지공사장에서는 작업속도가 어찌나 빨랐던지 달구지들이 아침에 제방안쪽 바닥에 들어갔다가 저녁에는 뚝이 높아져 10여리길을 에돌아나오지 않으면 안되였던 일도 있었다. 황해남도안의 여러 공사장에서는 한쪽으로 저수지뚝을 쌓아올리면서 동시에 물을 잡기 시작하였다. 알곡증산의 중요한 예비의 하나가 바로 고인물의 피해를 없애는데 있다고 하신 연안군에서 어느한 저수지 배수갑문확장공사를 진행할 때였다.기초구뎅이자리에 뜻밖에도 수천㎥를 헤아리는 방대한 량의 암반이 나타났다.새로 만드는 구조물이라면 마음놓고 발파를 꽝꽝 하겠지만 이미 있는 구조물에 잇닿아세우는 공사여서 그렇게 할수 없었다.암반을 순수 사람의 힘으로 까내야만 하였다. 하지만 그들은 조건이나 능력에 대하여 생각하지 않았다.하루이틀도 아니고 낮에 밤을 이어 함마와 정대로 굳은 바위를 까내는 격전이 벌어졌다.손바닥에는 물집이 생기고 퉁퉁 부어올랐으나 그들은 매일 400%의 작업실적을 올리지 않고서는 현장을 뜨지 않았다.그러고도 성차지 않아 집체적지혜를 합쳐 권양기에 의한 굴착기까지 만들어 대번에 10배의 작업능률을 기록하였다.그들은 그처럼 방대한 공사를 20일동안에 끝내는 기적을 창조하였다. 하여 6개월동안에만도 전국적으로 많은 저수지, 양수장과 그밖의 관개시설들이 조업을 하였다.결과 우리 나라 농촌에는 수만리에 달하는 물길이 새로 늘여졌다. 1967년에 우리 나라에는 력사에 보기 드문 큰물이 났으나 그 전해에 비하여 알곡생산이 16%나 늘어났고 1968년에는 산에 있는 소나무까지 말라죽었다는 해방전 어느해의 가물을 릉가하는 혹심한 가물도 이겨내고 또다시 1967년에 비하여 111%로 알곡생산을 높이는 기적이 창조되였다. 하다면 그 놀라운 기적의 원천은 어디에 있었던가.우리 농업근로자들의 가슴속에는 관개공사와 같은 대자연개조사업을 잘해서 후대들에게 물려주어야 후손들이 잘살게 된다고 하신 하기에 그들은 오늘 우리 농업근로자들앞에는 당에서 제시한 사회주의농촌건설강령을 높이 받들고 농촌진흥의 새시대를 앞장에서 열어나가야 할 중대한 임무가 나서고있다. 본사기자 김진욱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