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2월 2일 로동신문
정신도덕적으로 부단히 수양하자 락천성과 사는 보람
《자기 위업의 정당성과 승리의 필연성을 굳게 믿고 언제나 락천적으로 생활하고 투쟁하는 락관주의자만이 그 어떤 간고한 조건에서도 동요와 비관을 모르고 혁명의 한길로 꿋꿋이 걸어나갈수 있습니다.》 락천성이란 생활을 명랑하게 하며 미래를 확신하고 신심에 넘쳐 생기발랄하게 살며 일하는 품성을 말한다. 사람들이 생활을 락천적으로 다정다감하게 하여야 인간의 참된 삶을 누릴수 있으며 한생을 값있고 보람있게 살아갈수 있다. 생활을 락천적으로 다정다감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은 삶의 기쁨과 행복을 맛볼수 없으며 그런 사람에게서는 인정미도, 혁명동지에 대한 뜨거운 사랑도 기대할수 없다. 사람들에게 생기와 활력, 왕성한 투지와 사는 보람을 안겨주는것이 바로 락천성이다. 사람은 락천적으로 생활하고 일해야 사는 보람이 있고 힘이 생긴다. 사기가 없이 우울하게 생활하는 사람은 맡은 일도 잘할수 없으며 생의 기쁨도 느낄수 없다. 사람이 보람있게 산다는것은 생활을 창조하면서 사람답게 산다는것을 말한다.그런데 생활을 창조하는 과정에는 일시적인 실패와 곡절도 있을수 있고 넘기 어려운 난관이 앞을 가로막을수도 있다. 이러한 때에 조건에 포로되여 비관과 우울에 사로잡혀 사는 사람은 살아도 죽은 목숨이나 다름없지만 신심과 용기를 잃지 않고 더 큰 힘과 열정을 발휘하여 자체의 힘으로 고난을 뚫고나가는 사람은 보람있는 삶을 누릴수 있다. 전대미문의 시련과 고난속에서 혁명적락관주의가 항일혁명투사들의 심장마다에 꽉 들어차있었기에 그들은 혈전만리, 불바다만리를 웃으며 헤쳐올수 있었고 후손만대가 긍지스럽게 추억하는 혁명의 1세대의 값높은 삶을 누릴수 있었다. 혁명적락관주의는 결코 저절로 생기는것이 아니다.부단한 교양, 부단한 사상단련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것이 혁명적락관주의이다. 사람은 좋은 말에만 귀맛이 동하고 좋은 조건과 환경에서만 활기있게 사업하고 생활하여서는 안된다.일하는 과정에는 본의아니게 과오도 범할수 있고 엄한 처벌도 받을수 있다.그럴 때일수록 더 힘을 내고 락천적으로 생활하며 자신의 결함을 고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것이 수양된 사람의 풍모이다. 정서가 풍부하고 락천적인 사람은 대중의 존경을 받게 되며 사람들의 신망속에 살게 된다. 우리 주위에는 흔히 락천가로 불리우는 사람들이 많다.그런 사람들이 있는 곳에서는 어렵고 힘들 때에도 항상 웃음소리가 넘치고 집단의 분위기가 일신되며 사람들은 혁명적열정과 랑만에 넘쳐 맡은 일에서 보다 높은 실적을 내게 된다. 군중문화사업을 활발히 벌리는것은 사람들이 미래에 대한 포부와 희망에 넘쳐 살아가게 하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한다. 인간생활에는 시도 있고 춤도 있고 노래도 있어야 한다.인간생활에 시도 없고 춤도 없고 노래도 없다면 무슨 사는 재미가 있겠는가. 우리의 삶이 보람찬것은 생활속에 노래와 춤이 있고 랑만이 있기때문이다.락천적인 생활이 없다면 사는 보람에 대해 생각할수 없다. 사람들이 생활을 락천적으로 다정다감하게 하는데서 명절날이나 휴식날, 퇴근후의 생활을 다양하고 명랑하게 하는것도 중요하다.사람들이 명절날이나 휴식날, 퇴근후의 생활을 다양하고 명랑하게 하여야 가정과 사회에 화목하고 단란한 분위기를 세울수 있으며 휴식을 충분히 하고 건강한 몸으로 맡겨진 혁명과업을 잘 수행할수 있다. 모든 사람들이 락천적으로 살도록 하는데서 일군들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군들은 자기자신이 정서가 풍부한 인간으로 될뿐 아니라 락천적인 생활의 조직자가 되여야 한다. 당원들과 근로자들을 정서적인 인간으로, 문화적소양이 높은 락천가로 키우는가 그렇지 못하는가 하는것은 전적으로 일군들에게 달려있다. 우리가 어렵고 힘들수록 생활을 다정다감하게 하는것은 단순히 난관을 잊기 위해서가 아니라 혁명적인 노래, 정서적이며 랑만적인 생활속에서 사회주의위업의 승리에 대한 신념이 백배해지고 우리의 대오가 굳건히 다져지기때문이다. 투쟁속에 생활이 있고 생활속에 투쟁이 있다. 모든 사람들이 어떤 역경속에서도 비관과 동요를 모르고 언제나 신심에 넘쳐 생활을 락천적으로 해나갈 때 삶의 희열과 보람을 느낄수 있으며 우리의 전진은 더욱 빨라지게 될것이다. 본사기자 유광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