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2월 13일 로동신문
충성과 애국으로 수놓아진 당생활 60년, 로동년한 61년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 교관실 실장 공훈기술자 조근섭동지에 대한 이야기
《조국과 인민의 운명은 남흥청년화학련합기업소에는 일군들과 종업원들이 존경하며 따르는 85살의 로당원이 있다.교관실 실장 조근섭동지이다. 그의 당생활년한은 60년, 로동년한은 61년, 아마도 우리 나라에 이만한 경력을 가진 사람은 드물것이다. 그의 불같은 삶은 우리가 어떤 충성심과 애국적인 인생관을 지니고 살며 투쟁해야 하는가를 가르쳐주는 훌륭한 모범으로 된다.
지금으로부터 50여년전 갈대만이 무성한 청천강기슭에 오래도록 서있는 사람이 있었다. 그의 눈앞에는 서부지구에 대화학공업기지를 일떠세우실 웅대한 구상을 안으시고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터전을 잡아주시던 이런 결심을 품고 조근섭동지는 다른 기술자들과 함께 모래바람이 흩날리는 벌판에 말뚝을 박고 천막을 세웠다.그때부터 그는 낮에 밤을 이어 건설과 관련한 기술과제서들을 하나하나 작성했다. 건설이 본격화되면서부터 할 일은 곱으로 늘어났지만 그는 전혀 힘든줄 몰랐다.나라의 경제발전과 인민생활향상에 필요한 각종 기초화학제품들과 비료가 꽝꽝 생산되여나올 그날을 그려보면 온몸에 힘과 열정이 솟구쳤다. 우리 인민의 사회주의건설력사에 빛나게 기록된 1974년이 지나고 1975년이 밝아왔다.그사이 대화학기지건설장의 면모도 몰라보게 달라졌다.무수한 구조물들이 수풀처럼 하늘을 치받으며 일떠섰고 집채같은 대형탕크들이 틀지게 들어앉았으며 크고작은 관들이 그물처럼 뻗어나갔다. 뜻깊은 새해 신년사에서 청년화학종합공장 조업기일을 앞당길데 대하여 하신 1차조업대상들의 설비조립이 마감단계에서 진행되던 때에 조근섭동지는 시운전교대책임자로 사업하게 되였다. 그해의 겨울은 몹시도 기승을 부리였다.기온이 훨씬 떨어져 모든것을 얼구었다.이렇게 되자 외국의 기술자들은 화력발전소가 없이 어떻게 증기를 보장하겠는가, 그런 조건에서 겨울에는 절대로 시운전을 할수 없으니 봄이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제동을 걸었다.그러나 건설자들은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방도를 찾아 건설을 중단없이 내밀었다. 여러대의 증기기관차보이라에서 증기를 생산하여 공정별시운전을 진행하던 어느날 증기부족으로 뽐프와 압축기들이 얼어들기 시작했다.수많은 눈빛이 얼어드는 뽐프와 압축기들에 쏠리였다. 바로 그때 조근섭동지가 자기의 솜옷을 벗어 뽐프를 감싸고 몸으로 덮었다.한몸이 그대로 열원이 되여서라도 시운전을 보장하겠다는 그의 불사신같은 모습에 감동된 건설자들이 저마다 솜옷을 벗어 압축기와 뽐프를 감쌌고 합숙에 있던 이불과 모포도 전부 날라왔다. 이렇게 조근섭동지와 건설자들은 기술신비주의와 보수주의, 소극성을 비롯한 잡사상들을 단호히 물리치고 엄혹한 추위속에서 시운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였다. 다음해 4월 민족최대의 경사스러운 명절인 흰눈처럼 눈부신 비료를 두손에 받쳐들고 볼을 부비며 조근섭동지는 평양하늘가를 우러러 눈물속에 삼가 아뢰였다. 그것은 그때에도 서방의 기술자들은 조선사람의 기술로는 10년이 지나도 시운전을 보장할수 없다고 하면서 자기네 기술자들과 조립공들이 도와주겠으니 많은 돈을 내라고 코대를 높이였다. 예술영화 《보증》에 나오는것처럼 그때 서방기술자들은 그 계통의 폭발장면을 록화한 자료까지 보여주며 만일 자기들의 말을 듣지 않으면 철수하겠다고 을러댔다. 조근섭동지와 기술일군들은 오만한 서방기술자들에게 단호히 선언했다. 철수하라.우리는 자체의 힘과 기술로 설비들을 조립하고 시운전에서 성공하여 하지만 서방기술자들의 위세에 겁을 먹은 일부 동요분자들이 조근섭동지와 기술일군들에게 만일 자체로 시운전을 하다가 대폭발이 일어나면 그 후과를 어떻게 책임지겠는가, 엄한 법적제재까지 각오해야 한다고 하면서 심중히 고려해볼것을 권고했다. 그 자리에서 조근섭동지는 기술일군들을 믿음어린 눈길로 둘러보며 불을 토하듯 호소하였다. 그는 기술자들과 함께 생산계통을 구체적으로 따져보면서 일부 설비들이 거꾸로 조립되였다는것을 끝내 밝혀내였으며 시운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후날 기업소를 찾았던 서방의 한 기술자가 탄복을 금치 못하며 조선사람들은 정말 용감하고 슬기롭다고 찬탄할 때 조근섭동지는 단마디로 명백히 말해주었다. 일찌기 그 문제를 자신이 해야 할 사업으로 간주한 조근섭동지는 생산과정에 나오는 페수를 처리하기 위한 연구사업에 착수하였다.페수를 처리하는데 필요한 원료를 해결하기 위해 그가 걸은 길은 그 얼마였던가. 로자가 떨어져 몇끼를 굶을 때도 있었지만 그는 잠시도 걸음을 늦추지 않았다.그러던중 함경북도의 어느한 공장에서 페수처리에 리용할수 있는 원료를 찾아냈을 때의 심정을 무슨 말로 표현할수 있으랴. 언제인가 생산과정에 메여버린 정류탑을 보수하는 작업을 진행하던 조근섭동지는 그만 유독성물질이 눈에 들어가면서 앞을 보지 못하게 되였다.련합기업소일군들과 중앙병원의 유능한 의사들의 도움으로 그는 여덟달후에 시력을 회복할수 있었다.기업소에서는 그의 건강상태를 고려하여 그를 공업시험소(당시) 실장으로 임명하였다. 그가 여러달의 신고끝에 부타디엔합성고무를 만들어냈을 때 나라의 이름있는 과학자들이 남흥으로 달려왔다.그들속에는 세상이 다 아는 리승기선생도 있었다.부타디엔합성고무생산과 관련한 그의 설명을 듣고난 리승기선생은 나라의 권위있는 과학자들도 못해낸 일을 남흥의 평범한 기술자가 해냈다고, 당에 기쁨을 드리게 되였다고 거듭 탄복하면서 그에게 허리굽혀 인사까지 하는것이였다. 남흥에서 가스화대상공사가 진행된다는 소식에 접하였을 때 조근섭동지는 얼마나 바라던 오늘이였던가.생전에 무연탄가스화문제를 두고 그처럼 마음쓰시던 그는 《무연탄가스화에 의한 암모니아생산 변경 및 보충건설기술과제서》, 《무연탄가스화용가스발생로 보충기술과제서》 등 많은 기술문건들을 작성함으로써 가스화대상건설을 완공하고 시운전을 성과적으로 보장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으며 그 공로로 공훈기술자칭호를 수여받았다. 조근섭동지가 그의 막내딸이 7살 나던 해에 조근섭동지의 안해는 그때의 광경을 목격했던 사람들은 오늘도 그 일을 회상하며 조근섭동지야말로 정말 일밖에 모르는 불같은 사람이라고 말하고있다. 그의 수십년의 당생활년한과 로동년한, 진정 그 나날은
지식인의 가장 큰 명예
련합기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조근섭동지를 가리켜 한결같이 없어서는 안될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것은 조근섭동지가 오래동안 련합기업소에서 일하면서 풍부한 경험과 기술을 겸비하고있기때문만이 아니다. 젊은 사람들도 주저하는 어려운 일감, 기업소에 필요한 일감들을 스스로 맡아안고 많은 도움을 주기때문이다. 언제인가 그를 찾아왔던 련합기업소의 책임일군이 지금껏 숱한 기술과제서들을 작성했는데 그 하나하나가 다 학위론문감이 되지 않겠는가, 이제라도 학위론문을 쓰는것이 어떤가고 물었다. 그러자 조근섭동지는 정깊은 눈길로 기업소의 정경을 바라보며 말했다. 《나의 지식과 기술이 기업소의 생산에 이바지되고 나라에 도움이 된다면 그보다 큰 명예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마음가짐으로 그는 누가 시키지 않았지만 부단히 가치있는 새 일감을 찾고 걸린 문제들을 풀기 위해 피타는 노력을 기울이며 창조와 헌신의 길을 쉬임없이 이어갔다. 생산에 절실히 필요한 촉매가 뜻밖의 일로 못쓰게 되였을 때였다.촉매를 다시 마련해오자면 적지 않은 자금이 들어야 했다.일부 사람들속에서 국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울려나왔다. 경제건설과 인민생활향상을 위해 한푼의 자금이 귀한 때에 자기 단위만을 생각하며 서로가 나라에 손을 내민다면 그 무거운 부담은 결국 조국이 지지 않겠는가. 이렇게 생각한 조근섭동지는 촉매를 기어이 재생해낼 강심을 먹고 연구사업에 달라붙었다. 밤을 지새우며 기술서적들을 탐독하고 원리적으로 따져보면서 그는 실험을 거듭했다. 피로가 겹쌓이고 실패앞에서 손맥이 풀릴 때마다 그는 자기가 고생한만큼 나라의 짐이 가벼워진다는 생각에 입술을 사려물고 일어서군 하였다. 30%, 70%, 100%. 고결한 충성과 애국의 마음이 어떤 기적을 이루어내는가를 그는 끝내 증명하고야말았다. 수십t의 촉매를 완전히 재생할수 있는 방법이 확립되자 기업소의 일군들과 종업원들은 조근섭동지야말로 애국자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애국심은 자각이라는 깊고 맑은 샘에서 솟구치는 진심의 분출이다. 기업소에서는 회전로에 쓰이는 고온그리스를 수입에 의존하고있었다.고온그리스를 국내산원료로 해결할수 없겠는가를 두고 고심하던 조근섭동지는 페기된 압축기바킹을 분쇄하여 리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실마리를 잡게 되였다. 조근섭동지의 인간됨과 주인다운 일본새를 너무도 잘 알고있는 같은 실의 문혁철동무가 파쇄기와 초미분쇄기제작을 맡아나섰다. 높은 온도에도 견딜수 있는 고온그리스를 만드는데 성공한 조근섭동지는 기술안을 작성하여 기업소의 자재사업을 맡고있는 단위에 넘겨주어 꽝꽝 생산될수 있게 하였다. 습가스속에 있는 비소함량을 떨구는데 리용되는 촉매를 수입하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였다. 촉매의 성분을 구체적으로 료해한 조근섭동지는 기업소에 사장되여있는 페촉매를 리용해볼 착상을 무르익혔다. 페촉매를 가져다 분석해본 그는 열분해직장 책임기사와 무릎을 마주하고 그것을 리용하면 얼마든지 가능하다는데 대하여 진지하게 설명하였다.그의 설명을 듣고난 책임기사는 단번에 무릎을 쳤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였는가고 묻는 책임기사에게 조근섭동지는 흔연히 대답했다. 《나라일, 기업소일을 자기 집안일처럼 생각하면 궁리가 떠오르는 법이요.》 열분해직장에서 탈비소공정을 확립하기 위한 작업이 벌어지던 어느날 깊은 밤이였다.전등빛이 닿지 못하는 구석진 곳에서 일손을 놀리던 책임기사는 불시에 눈앞이 환해지는것을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그는 코마루가 찡해졌다.조근섭동지가 전지불을 비쳐주고있었던것이다.년로한 몸으로 밤중에 왜 나왔는가고 걱정하는 로동자들에게 그는 탈비소공정이 확립되여 기업소의 짐이 덜어지면 그때 가서 발편잠을 잘것같다고 웃으며 말하였다. 애국적인 행동은 자기를 조국의 한 부분으로 여길뿐 아니라 일터의 모든것을 자기 몸의 한 부분처럼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발현되는것이다. 조근섭동지는 기업소의 일을 두고 네일내일을 가르지 않았다. 모든것을 자기가 해야 할 일로 감수했다.하기에 어느 일터에서 무슨 문제가 제기되면 스스로 그것을 풀기 위한 방도를 모색했고 뼈심을 들여 완성하군 하였다. 사람들에게서 이제는 나이도 많은데 년로보장수속을 하고 집에 들어가 자식들의 공대를 받으며 여생을 편히 보내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는 남은 생의 앞날을 더듬어보았다.그리고 마음을 다잡았다. (남은 생이 또 하나의 옹근 생을 대신할수 있도록 줄달음쳐 살아야 한다.그래서 나라에 한가지라도 더 보탬을 주자.) 자본주의나라에서는 백만장자들이 인생의 짧음을 탓하며 그 연장을 위해 별의별 모지름을 다 쓰지만 조근섭동지는 당과 조국앞에 지닌 전사의 의리, 공민의 의무를 생각하며 새 출발의 길에 나서군 하였다. 그런 고결한 마음에 어찌 늙음이 깃들수 있으며 한계가 지어질수 있겠는가. 《청춘원건설기술과제서》, 《산업병원건설기술과제서》, 《안주공업대학건설기술과제서》, 《축산 3 000t능력 배합사료공정기술과제서》, 《탄소하나화학공업용 50t증기보이라 건설기술과제서》를 비롯하여 그가 작성한 기술과제서만도 수십건을 헤아린다. 그 하나하나의 기술과제서들은 단순한 기술문건이 아니라 남흥의 로동계급이 조근섭동지를 《우리 교관아바이》라고 따르며 존경하는것은 그의 수십년의 당생활년한과 로동년한이 자기들을 참된 삶의 길로 인도해주는 귀중한 수범으로 되기때문이다. 어찌 남흥의 로동계급뿐이랴. 한생의 모든것을 당과 조국을 위하여 깡그리 바쳐가고있는 조근섭동지의 무한히 충성스럽고 애국적인 모습은 온 나라의 교본으로 된다. 조근섭동지처럼 어디에서 무슨 일을 하건 충성과 애국의 일편단심으로 심장이 고동칠 때 당과 조국이 기억하는 참된 삶으로 값높은 인생길을 수놓아갈수 있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조경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