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2월 14일 로동신문

 

사랑과 증오

한 영예군인작가의 창작수첩을 펼치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자기 인민과 계급, 제도에 대한 열렬한 사랑은 그것을 해치려는 원쑤에 대한 불타는 증오심과 비타협적인 투쟁정신을 낳습니다.》

우리는 여러권의 부피두터운 창작수첩을 마주하고있다.한 인간의 고뇌와 심혈의 흔적이 력력한 보풀이 인 수첩의 갈피를 번지느라면 수많은 시가작품들이 가슴을 울려준다.그가운데는 TV련속극 《붉은 흙》을 비롯하여 인민들속에 깊은 인상을 남긴 예술영화와 TV극의 주제가, 부주제가들인 《사랑은 내 조국에 증오는 원쑤에게》, 《조국은 내 삶의 전부》, 《바라는 마음》, 《못잊을 나의 스승》도 있다.이 명가사들의 필자는 여든을 가까이하고있는 영예군인작가이며 그는 오늘도 여전히 손에서 붓을 놓지 않고있다.

중구역 동안2동에서 살고있는 그의 이름은 한창우, 청춘시절에 최전연초소에서 여러 차례 심한 부상을 입었지만 그는 수십년세월 군사복무를 했다.

경력이 보여주다싶이 그는 대학을 다닌적이 없으며 전문교육기관에서 문학수업을 받은적은 더구나 없다.하지만 그의 이름은 문단에, 그의 작품은 우리 인민들속에 널리 알려져있다.

하다면 무엇이 그를 시대가 요구하고 인민이 바라는 명작을 써내는 작가로 성장하게 했는가.과연 무슨 힘이 불치의 병에 걸려 몇해를 넘기지 못한다고 하던 그의 생명을 지금껏 연장시켜주는가.

그에 대한 대답이 창작수첩의 갈피에 있다.

《나는 생사를 판가리하는 준엄한 결전의 시기는 물론 평온한 시기에도 사랑과 증오를 명백히 안고 살아야 한다고 말하고싶다.…〈증오를 잊고 살면 사랑도 행복도 빼앗긴다.〉, 이것은 내 한생의 좌우명이기도 하다.사랑과 증오의 감정은 나에게 지혜와 열정을 안겨주었고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서리발치는 증오가 어떤 기적을 낳는가를 한 작가의 평범한 생활이, 한 영예군인의 창작수첩이 그대로 보여주고있었다.


* *


그가 북변의 벌목공가정에서 10남매의 막내로 태여난것은 나라가 해방된 이듬해 봄이였다.그의 어머니는 산후탈로 몸져눕다보니 갓난아이에게 젖을 먹일수가 없었다. 아버지와 형제들은 배고파 우는 막내동이를 눈물과 한숨속에 달래기만 했다.

그에 대해 영예군인작가인 한창우로인은 창작수첩에 이렇게 썼다.

《태여나자마자 너무도 병약했던 나를 11살 난 누이가 앓고있는 어머니를 대신하여 업고나갔는데 고마운 이웃들이 너도나도 도와준 덕에 살아날수 있었다.》

마을의 애기어머니들이 저저마다 그에게 젖을 물려주었다.뜨거운 사랑이 젖과 함께 모금모금 그의 몸에 흘러들었다.나라도 해방되였는데 아이 하나 살려내지 못하겠는가며 사람들은 집집에 중히 간수했던 귀한 보약재를 안고 쉼없이 문을 두드렸다.

이웃들의 후더운 사랑과 정은 숨져가던 그에게 생기를 부어주었다.날이 갈수록 포동포동 젖살이 오르는 귀여운 아기의 발랄한 모습은 온 마을의 기쁨으로 되였다.그는 이렇게 세상에 다시 태여났다.

사람의 한생에는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 충격적인 일들이 있다.그것이 때로 한 인간의 한생을 규정하는 중요한 계기로 되기도 한다.

그의 어린시절은 나라가 전쟁의 불구름을 헤치던 준엄한 시기와 함께 흘러갔다.그는 어머니의 손목에 이끌려 자주 피난길에 올랐다.적들의 포격과 폭격을 당할 때마다 그의 부모에게 있어서 제일 난문제는 올망졸망한 자식들을 대피시키는것이였다.하지만 그때마다 온 가족은 구사일생으로 살아나군 했다.생면부지의 사람들이 사생결단하고 그들을 도와주었던것이다.어린이들을 구원하고 희생된 이름모를 사람을 붙안고 목놓아울던 때를 오늘도 그는 생생히 기억하고있다.

산도 불타고 마을도 불타던 엄혹한 시련의 시기는 어린 그의 가슴에 서리발치는 증오만을 심어주지 않았다.

그처럼 처절한 운명을 판가름하는 전쟁시기에도 하루도 끊기지 않은 배움의 종소리, 그때를 회상하며 영예군인작가는 창작수첩에 이런 글을 남겼다.

《나라에서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들이 적비행기의 폭격을 받지 않게 분산교육을 실시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었다.교원들이 학생들을 나누어 맡아가지고 수업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준엄한 전화의 불길속에서도 교육사업을 한시도 중단하지 않도록 해주시였고 전선에 포탄을 더 날라야 할 자동차들에 아이들의 학용품이며 교과서들을 실어보내도록 하신 사실에 대하여 그는 먼 후날에야 알게 되였다.

우리 수령님 계시는 이 제도가 아니라면?!

철이 들수록 그는 가슴속에 차오르는 고마움과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의 감정을 금할수 없었다.사랑이 클수록 원쑤들에 대한 증오의 감정도 그만큼 격렬해졌다.그래서 중학교를 졸업하였을 때에는 대학에로의 길을 마다하고 혁명의 군복을 입었다.귀중한 이 제도, 자기의 성장에 잊을수 없는 자욱을 새긴 고마운 사람들을 목숨바쳐 지키는 병사가 되고싶었던것이다.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날 그의 부모는 이렇게 당부했다고 한다.

《너를 젖먹여 키워주고 목숨바쳐 구원해준 고마운분들을 잊지 말거라.》

사랑과 증오의 감정은 군사복무시절 더욱 강렬해졌다.

전투임무수행중 부상을 당하여 생사기로에서 헤매일 때 그의 몸에 흘러든것은 전우들의 피였다.그 사랑은 그를 소생시켜 대오에 세워준 불사약이였다.피를 나눈 귀중한 전우들이 원쑤의 흉탄에 맞아 피흘리며 쓰러졌을 때 그는 상실의 아픔만을 느끼지 않았다.

창작수첩은 그때에 있은 일들을 이렇게 전하고있다.

《최전연 분계선초소에서 적들이 정상적인 순찰근무를 수행하던 전우들을 대낮에 기관총으로 살해하였다.…나는 비로소 〈피는 피로써!〉라는 말의 참뜻을 새삼스럽게 느끼였다.》

그가 부상을 입은 몸으로 수십년동안 군사복무를 계속할수 있은것도 조국에 대한 사랑과 원쑤에 대한 증오의 감정이 컸기때문이리라.

당에서는 조국보위에 청춘을 깡그리 바치려는 그의 간절한 소망을 헤아려 군관으로 내세워주었다.그후 그는 여러 차례 대회에 참가하여 위대한 수령님들을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뿐이 아니다.

당에서는 그의 재능의 싹을 귀중히 여기여 어느한 창작기관에서 복무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었으며 후에는 작가대렬에 세워주었다.

그때 그의 나이는 50대였다.남들보다 뒤늦게 작가생활을 시작하였지만 그는 심장의 마지막피 한방울까지 깡그리 태워 조국에 대한 가장 뜨겁고 열렬한 사랑의 노래를 웨치고싶었다.

자신의 명예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과 수령의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조국과 인민에게 복무하기 위해 손에 붓을 들었기에 작가로서의 그의 걸음은 평범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의 창작수첩을 통하여 이런 사실도 알게 되였다.

주체90(2001)년 한해동안에만도 보천보전자악단에서 형상한 노래 《내 마음 별에 담아》와 예술영화와 TV극의 주제가, 부주제가를 10여편 창작,

필자는 그에 대하여 단 몇마디로 짤막하게 서술하였지만 그 하나하나의 작품마다에는 영예군인작가의 고심어린 사색과 열정이 어려있다.

지혜는 두뇌가 아니라 심장이 준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창작성과는 단순한 재능의 산물이 아니였다.귀중한 조국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원쑤들에 대한 서리발치는 증오심이 그대로 시어가 되고 가사가 된것이다.

결코 쉬운 일이 아니였다.한쪽으로 병치료를 받고 한쪽으로 창작을 하면서 밤을 잊고 살았다.어떤 때는 모자라는 지혜때문에 또 어떤 때는 과중한 정신육체적부담에 견디지 못하여 쓰러진적도 있었다.그때마다 갓 태여난 자기에게 어머니를 대신하여 젖을 물려주던 녀인들, 군사복무시절 피를 함께 나눈 전우들과 제대된 후 친혈육이 되여준 고마운 사람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영예군인작가라고 적극 우대하고 내세워주는 사회주의조국의 사랑을 되새기며 이를 악물고 글을 써나갔다.

정녕 그가 쓰는 한편한편의 작품들은 조국의 바다같은 믿음과 사랑에 대한 보답의 소중한 열매였고 자기 몸에 흉탄을 박아넣었으며 귀중한 전우들의 목숨을 앗아간 원쑤들에게 날리는 복수의 총탄이였다.

당에서는 그가 작품을 창작할 때마다 높이 평가해주었다.

영예군인작가는 지금도 사랑과 증오의 감정을 안고 창작활동을 벌리고있다.

우리는 그가 창작한 가사의 한개 절로 이야기를 마치려고 한다.한것은 그 가사에 영예군인작가의 좌우명이 어려있기때문이다.

아 사랑은 나의 조국

아 사랑은 나의 조국

심장에 간직한 삶의 진리를 죽어도 잃지 않으리

장군님품에 길이 번영할 귀중한 우리의 땅

한목숨 바쳐 지켜갈 맹세 변함이 없으리라

조국아 믿어다오

본사기자 신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