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2월 14일 《통일의 메아리》

 

《성냥파는 소녀》가 떠오르는 리유

 

이 시간에는 중앙아시아에서 살고있는 리유라동포의 글을 보내드리겠습니다. 《<성냥파는 소녀>가 떠오르는 리유》

 

얼마전 인터네트를 통해 남조선에서 가스료금급등으로 주민들이 이 한겨울철에 난방도 제대로 틀지 못하고 랭방에서 입김으로 얼어드는 손을 녹이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문득 안데르쎈의 동화 《성냥파는 소녀》의 장면장면이 주마등처럼 흘러갔다.

해가 저물어가는 겨울날 얇은 옷에 맨발차림으로 골목의 처마밑에 웅크리고 앉아 추위에 떨고있다가 《성냥 한가치면 손발을 녹일수 있을거야.》 하고 생각하며 팔다남은 성냥을 꺼내든 소녀. 성냥가치의 따뜻한 불, 모락모락 김이 나는 음식이 차려진 식탁과 소녀를 유일하게 사랑해주던 돌아가신 할머니가 그 성냥불빛속에 나타나고…

할머니를 조금이라도 오래 보고싶은 마음에 팔다남은 성냥을 모두 그었지만 다음날 아침 벽에 기대여 타버린 성냥가치를 손에 쥔채 행복한 미소를 담고 잠든듯 죽어있는 소녀…

동화속 《성냥파는 소녀》의 애절한 모습이 떠오르는것은 왜서일가.

추위는 빈부를 가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남조선에서 돈있고 권세있는자들은 이런 맵짠 추위를 기다리기라도 한듯 겨울코트와 털모자의 색갈에 맞춰 털목도리를 두르고 경쟁적으로 멋내기에 여념이 없다. 반면에 가난한 사람들은 집도 없이 한지에서, 집은 있어도 돈이 없어 난방을 틀지도 못한채 랭장고와 다를바 없는 방에서 몸이 얼어드는것을 알면서도 어찌할 방도가 없어 죽음을 기다리고있다. 그런즉 추위는 모두에게 꼭같은것이 아니라 경제적약자에게 훨씬 더 심각한 사활적인 문제로 나서고있는것이다.

가난한 사람들, 힘이 없고 약해서 누군가 옆에서 도와주지 않으면 너무도 무참히 시들어버릴것같은 사람들, 설사 그들의 가난이 어쩔수 없는것이라 해도 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구조적으로 상황을 개선시켜주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생존에 도움이 될수 있게 해주어야 하는것이 아닐가?

그런데 남조선의 윤석열은 중산층을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기존의 난방비조차도 힘에 겨워 난방을 제대로 틀지도 못한채 추위에 떨고있는 사실을 뻔히 알면서도 오히려 주택용난방료금을 2배이상으로 껑충 올려놓았다. 돈이 없으면 《성냥파는 소녀》처럼 얼어죽어도 무방하다는 무언의 사형선고가 아니겠는가.

우리가 세월이 퍽 흐른 오늘 까지도 《성냥파는 소녀》의 안타까운 죽음을 놓고 누구나 눈굽을 훔치는것은 그것이 아무데도 의지할데가 없는 애어린 소녀를 추운 겨울날 한지에 서슴없이 내버린 불평등한 사회제도와 정치체제가 초래한 사회적타살이기때문이다.

지금 남조선의 대다수 주민들이 느끼고있는 잔혹한 추위도 자연의 겨울이 몰아온 추위가 아니라 윤석열이 인위적으로 몰아온 살인적인 추위인것으로 하여 더욱 랭혹하고 잔인한것이다.

바로 그래서 남조선에서의 난방비급등소식에 《성냥파는 소녀》의 이야기가 머리속에 떠오른듯 하다.

해마다 오는 겨울이지만 남조선주민들은 윤석열의 집권이후 《겨울이 정말 무섭구나.》, 《얼어죽는다는게 별게 아니로구나.》 하며 진짜 겨울의 추위를 더 뼈저리게 통감하고있는것이며 윤석열과 같은 악한이 남아있는한 가혹한 겨울은 남조선에서 언제 가도 물러가지 않을것이다.

동화속의 《성냥파는 소녀》는 그래도 마지막순간에 자기를 제일 사랑해주던 할머니를 그려보며 행복의 미소를 지을수 있었다지만 남조선주민들은 폭정의 희생물이 되고도 그런 미소를 지을수 있을가?

윤석열악당에 대한 저주와 분노가 치솟아 초불광장에 떨쳐나서는 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지금까지 중앙아시아에서 살고있는 리유라동포의 글을 보내드렸습니다.

출처 : 《통일의 메아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