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3월 10일 로동신문
우리 국가의 발전행로에 뚜렷한 자욱을 새긴 충신, 애국자들 주체적인 화학공업창설에 크게 공헌한 과학자 국가과학원 함흥분원 초대원장 리승기선생
열렬한 조국애와 민족적량심을 지니고 나라의 부강발전을 위해 한생토록 탐구의 길을 걸어온 우리의 과학자들속에는 주체적인 비날론공업을 창설하고 화학공업의 자립적발전에 크게 공헌한 리승기선생도 있다.
《과학에는 국경이 없다고 하지만 우리 과학자들의 신념에는 국경이 있고 자기의 혁명진지가 있습니다.》
1905년 농민가정에서 출생한 리승기선생은 민족을 위한 학문연구에 뜻을 품고 이역땅에서 고학으로 대학까지 나왔다.당시 수재로 소문났던 그는 1939년에 벌써 새로운 합성섬유인 비날론을 발명하였다.그러나 그의 가슴에는 기쁨은커녕 과학자의 발명을 지켜줄 조국이 없다는 설음만이 덧쌓였다.불우한 식민지민족의 과학자였던 그는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주체39(1950)년 7월초
이렇게 되여 리승기선생은 가족들과 함께 공화국의 품에 안기게 되였으며 어려운 전시조건에서도 사소한 불편없이 과학연구사업에 전심할수 있었다.
주체41(1952)년 4월에 진행된 과학자대회에 참가하여
그는 가렬한 전화의 나날에도 비날론연구사업을 계속 내밀어 주체적인 비날론공업창설을 위한 과학적토대를 마련하였으며 그후 비날론생산의 공업화를 실현하는데 지혜와 정열을 아낌없이 바치였다.
리승기선생은 비날론생산이 공업화된 후 계속하여 비날론의 질을 높이고 품종을 늘이기 위한 연구사업과 모비론을 공업화하기 위한 사업에서 많은 성과를 이룩하였다.
당의 원대한 구상에 따라 화학섬유의 공업화를 실현하는 거창한 사업이 벌어지던 1960년대초 그는
농사에 필요한 살초제를 우리 나라 자원에 의거하여 만들 때에도 그는 농민들의 건강을 념려하시는
조국과 혁명을 위한 과학, 인민을 위한 참된 과학을 해야 한다는것을 삶의 신조로, 과학자의 인생관으로 체질화하였기에 그의 연구사업은 다 당이 바라는 문제를 풀기 위한것으로 될수 있었으며 하나하나의 성과들이
주체49(1960)년 가을
정녕 한생토록 오직 당만을 굳게 믿고 따르며 조국과 인민을 위한 과학탐구의 길을 변함없이 걸어온 그였기에 리승기선생의 이름과 공적은 우리 당과 인민들의 기억속에 길이 남아있다. 안정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