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3월 12일 로동신문
우리 청년들의 정신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서로 돕고 이끌며 단합된 힘으로 전진하는 우리 사회의 본태와 대풍모를 적극 살려나가야 합니다.》 사랑과 헌신, 온 나라가 화목한 대가정을 이루고 사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도 례사로이, 너무도 평범하게 쓰이는 말이다. 하지만 조국의 장한 아들, 더없이 귀중한 혁명동지에게 바쳐진 아름답고 고결한 삶에 대하여 우리는 사랑과 헌신이라는 말로밖에 달리 표현할수 없다. 의학연구원 합성제약연구소 연구사 김혁철, 은률군 읍에서 살고있는 최선영, 문덕군 상북동리에서 살고있는 전주옥동무들은 조국을 위해 피흘려 싸운 특류영예군인을 위해 보람찬 청춘시절을 가장 아름다운 선택으로 빛내여가고있는 훌륭한 청년들이다. 우리는 여기에 그들의 심장속에 간직된 우리 시대 청춘들의 숭고한 지향, 참된 사랑과 헌신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려고 한다.
친아들이면 이보다 더하랴
누구나 말한다.애국에 대하여, 사회와 집단, 동지를 위한 헌신에 대하여… 하다면 그가 누구이든 자신을 이런 물음앞에 세워보자. 나는 특류영예군인의 친자식이 되여 한생을 변함없는 헌신으로 이어갈수 있는가. 결코 가볍게는 대답할수 없는 물음이다.함흥시에는 시대의 이 물음앞에 말이 아닌 실천으로 대답하고있는 훌륭한 청년이 있다. 의학연구원 합성제약연구소 연구사 김혁철동무이다.그는 지난 10여년세월 함흥시 회상구역에서 살고있는 특류영예군인 박경호동무와 그의 가정을 위해 친혈육의 정을 아낌없이 바쳐가고있다. 김혁철동무가 영예군인가정과 남다른 인연을 맺은것은 지금으로부터 16년전이였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조국보위초소로 떠나는 동무들을 바래우기 위해 역두에 나왔던 그는 한 특류영예군인의 모습을 보게 되였다.영예군인은 한학교에서 공부하던 학생의 그날 아들에게 집걱정은 하지 말고 군사복무를 성실하게 할것을 당부하는 영예군인을 보며 그는 생각이 깊어지는것을 어쩔수 없었다.맏아들에 이어 막내아들까지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그가 더없이 돋보였다.당시 대학입학을 눈앞에 둔 김혁철동무는 역두에서 그들에게 말했다. 이제부터 자기가 영예군인의 친아들이 되겠다고. 박경호동무와 안해는 말만 들어도 고맙다고 몇번이나 뇌이였지만 진정어린 그 말과 더불어 자기들을 위한 헌신의 나날이 16년세월 이어지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했다. 그때부터 김혁철동무는 박경호동무의 가정과 한식솔이 되였다. 대학생이 되여 학과학습으로 바쁜 속에서도 영예군인에게로 향한 그의 발걸음은 언제 한번 드틴적이 없었다.대학을 졸업하고 연구사로 일하면서도 마찬가지였다. 하기에 많은 사람들이 김혁철동무의 소행에 감동을 금치 못할 때마다 영예군인은 자랑스럽게 말하군 하였다. 《친아들이면 이보다 더하겠소.》 김혁철동무가 오랜 세월 변함없이 새겨온 헌신의 발걸음, 그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인정으로 내짚은 걸음이 아니였다. 자기들의 행복한 오늘속에 조국을 위해 한몸내댄 전세대들의 피와 땀이 진하게 스며있음을 심장으로 절감한 세대, 바치는데서 삶의 보람과 행복을 찾는것을 인생관화한 한 참된 인간의 뜨거운 심장속에 간직된 보답에 대한 강렬한 지향과 불같은 인간애가 비낀 걸음이였다. 김혁철동무는 비록 불편한 몸이지만 년로보장을 받을 때까지 일손을 놓지 않은 영예군인의 결곡한 마음에 자신을 따라세우며 오늘도 나라를 위한 보답의 길, 혁명의 전세대를 위한 헌신의 길을 줄기차게 이어가고있다.
심산의 꽃
누가 말했던가.처녀시절의 사랑은 심산에 피여나는 꽃과 같다고. 인생의 반려, 한생의 길동무에 대한 기대와 더불어 행복넘친 미래를 설계하며 봄날의 아지랑이처럼 피여나는 처녀시절의 사랑은 얼마나 아름답고 순결한것인가. 은률군 읍에서 살고있는 최선영동무의 가슴속에 움터난 사랑은 그대로 심산의 꽃이였다.그렇게 조용히, 남모르게 찾아온 사랑이였다. 지금으로부터 여러해전 최선영동무의 언니 최선화동무는 은률군 읍종합진료소 의사로 일하던 나날 읍 187인민반에서 살고있는 영예군인에 대하여 알게 되였다. 조국을 지키는 길에서 청춘을 빛내인 영예군인의 모습은 최선화동무의 뇌리에서 좀처럼 지워질줄 몰랐다.그는 늘 입버릇처럼 외웠다. 《참 훌륭하고 의젓한 청년인데…》 언니의 이야기를 들으며 최선영동무는 왜서인지 그 영예군인에게로 쏠리는 마음을 어쩔수 없었다. 그리하여 최선영동무는 언니와 함께 휴식일과 명절때마다 전우철동무의 집을 찾군 했다.몸이 불편한 아들을 둔 부모의 일손을 돕고 영예군인의 말동무라도 해주고싶은 소박한 생각에서였다. 이렇게 그는 아름다운 이야기의 주인공으로 되는 첫걸음을 내짚었다.영예군인의 집을 찾고 또 찾던 나날 그는 전우철동무가 불의의 정황에서 한몸 서슴없이 내대여 임무를 끝까지 수행한 참된 병사였다는것을 알게 되였다. 어느날 그가 영예군인의 집에 들어섰을 때였다.전우철동무가 기타반주에 맞추어 열정적으로 노래련습을 하고있는 모습이 눈에 띄웠다.알고보니 주변농장의 모내기현장에서 진행할 경제선동준비를 하고있는 참이였다. 최선영동무는 군사복무의 나날과 마찬가지로 오늘도 마음속군복을 벗지 않고 조국을 위한 복무의 길을 변함없이 걷고있는 영예군인의 숭고한 정신세계에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그는 가슴이 달아올랐다.그리고 행복했다.이런 훌륭한 사람에게 생의 기쁨과 희열을 안겨주는것이 얼마나 가슴벅찬것인가를 새롭게 느끼였다. 하지만 그는 미처 몰랐다.전우철동무에게 어쩔수없이 끌리게 되는 마음이 심산의 꽃처럼 남몰래 움터나게 될 사랑의 씨앗이라는것을. 지난해 11월 15일 만사람의 축복속에 전우철동무와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날 정말 훌륭한 소행이라고 찬사를 아끼지 않는 사람들에게 최선영동무는 붉어지는 얼굴을 숙이며 이렇게 대답했다. 《심장이 가리킨대로 했을뿐입니다.》
권리와 의무
지금으로부터 세해전 11월 23일 문덕군 상북동리는 류다른 경사로 들끓었다.리에서 살고있는 특류영예군인 백원철동무가 희천시에서 살던 전주옥동무와 행복한 새 가정을 이루었던것이다. 하다면 이날의 뜻깊은 결혼식에는 어떤 가슴뜨거운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그해 초가을 어느날이였다. 자정도 넘은 깊은 밤 교교한 달빛이 창가로 비쳐들며 솔곳이 잠든 전주옥동무의 얼굴을 어루쓸고있었다.임정순녀성은 이윽토록 딸의 얼굴을 들여다보았다.수십년세월 보아온 얼굴이지만 왜서인지 새삼스레 생각되는 모습이였다.슬하에 두고 금이야옥이야 키우면서 늘 어리다고만 여겨온 딸이였다. (원 자식두, 그런 어벌큰 생각을 하고있으면서도 이 어미에게 한마디 말도 안하다니…) 문득 얼마전에 있었던 일이 삼삼히 떠올랐다. 어느날 늦은저녁 전주옥동무는 깊은 생각에 잠긴채 집에 들어섰다.밥상을 마주하고도 몇술 뜨는둥마는둥하던 그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오늘 우리 동네에서 살고있는 명애아주머니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던중 그의 사촌동생에 대해 알게 되였어요.동생이 특류영예군인인데 지금 고향인 문덕군에서 살고있다더군요.군사복무시절 전우들을 위해 한몸을 기꺼이 내댄 훌륭한 사람이래요.》 계속하여 그는 어머니에게 마음속진정을 이렇게 터놓았다. 우리가 늘 딛고다니는 이 땅, 그처럼 희열에 넘치고 행복한 자기의 생활에 그것을 지켜 청춘도 생명도 아낌없이 바쳐 싸우는 우리 병사들의 붉은 피가 스며있음을 다시금 되새겨보게 되였다고, 비록 운신할수 없는 몸이지만 군사복무시절의 열정과 기백으로 오늘도 혁명의 꽃을 계속 피워가는 그 영예군인이 무척 돋보인다고. 하지만 그때까지만 해도 어머니는 딸의 가슴속에서 어떤 아름다운 지향이 움터나고있는지 다는 알수 없었다.우리 당이 아끼고 내세우는 영예군인들에 대한 존경의 마음을 그저 대견히 여겼을뿐이였다. 그런데 오늘 주옥이가 그처럼 엄청난 결심을 터놓을줄이야. 《어머니, 전 지금껏 행복을 응당한 권리로만 알고 살았습니다.이제는 보답할 때가 되였습니다.백원철동지를 위해 한생을 바치겠습니다.그것을 저의 영원한 의무로 간직하겠습니다. 이 딸을 믿어주십시오.비록 어머니의 슬하를 멀리 떠나지만 전 선택한 이길에서 한치의 드팀도 없을것입니다.》 임정순녀성은 딸을 힘껏 껴안았다.미소가 비낀 그의 눈굽에 뜨거운것이 고여올랐다. 그것은 향유의 권리앞에 보답의 의무를 먼저 놓을줄 아는 장한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따뜻한 축복이였다. 김혁철, 최선영, 전주옥동무들은 어디서나 볼수 있는 평범한 청년들이다.그러나 이들의 심장속에 간직된 청춘의 리상, 사랑과 헌신에 대한 지향은 그 무엇과도 비길수 없이 숭고하고 열렬하다. 얼마전 본사기자 리남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