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3월 19일 로동신문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에 참가하였던 한 소년단원이 받아안은
이것은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가 남긴 또 한편의 전설같은 이야기이다. 우리 당의 은혜로운 사랑속에 온 나라의 관심사로 성대히 진행되였던 대회가 끝난지 두달이 되여오는 지난 2월 어느날 우리는 5 000명 대표들중의 한 소년단원이 제일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나 고향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10여일간의 행사일정을 훨씬 넘긴 그의 남다른 평양체류에는 어떤 사연이 깃들어있는것인가.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가 소집된다는 소식이 전해진 때로부터 소년단대표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까지 어머니당이 베풀어준 사랑에 대한 이야기들은 지금도 인민들속에서 전설처럼 전해지고있다.조선소년단대회력사상 가장 큰 영광과 은정을 받아안고 모교로, 고향으로 돌아간 나어린 대표들을 얼싸안으며 눈물짓지 않은 사람이 있었던가. 한방울의 물에 온 우주가 비낀다고 한 소년단대표가 받아안은 크나큰 은정에 대한 이 이야기는 우리 당이 어린 소년단원들의 대회를 어이하여 그토록 중시하고있으며 후대들을 위한 그 열렬한 사랑이 우리 국가의 오늘과 래일을 얼마나 위대하고 아름답게 가꿔주는가에 대한 한편의 서사시이다.
《우리 당이 하늘처럼 받드는 인민앞에, 인민우에 우리의 아이들이 있습니다. 더 담차고 더 활기있게 자라야 할 우리 후대들을 위해서는 억만자루의 품이 들어도 그것은 고생이 아니라 행복으로, 영광으로 됩니다.》 평양을 제일 마지막으로 떠나는 한 소년단대표에 대한 소식을 듣고 우리가 서둘러 김만유병원에 들어섰을 때는 이른새벽이였다.콩팥내과 과장 최건일동무가 우리에게 두툼한 병력서를 보여주었다. 이름은 정일심, 나이는 14살, 재령군 금장고급중학교 학생… 《당에서는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 대표들을 위하여 전례없이 강력한 의료진을 무어주었습니다.평양에 온 소년단대표들의 건강상태를 료해하던 과정에 의료일군들은 정일심소녀에게서 본인도 모르는 병을 발견하게 되였습니다.이 사실은 지체없이 보고되였습니다.》 구체적인 진단결과 소녀의 병은 하루이틀의 치료로는 해결할수 없다는 결론이 내려졌다.이렇게 되여 일심이는 두달동안이나 김만유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게 되였으며 그 나날에 본인은 물론이고 부모들도 상상조차 못했던 우리 당의 크나큰 사랑을 받아안게 되였다. 어스름이 채 가셔지지 않은 입원실에서 우리는 주인공과 마주앉았다. 귀여운 능금볼, 웃음이 남실거리는 밝은 눈빛, 생기발랄한 언동… 최건일과장의 말에 의하면 입원할 때보다 소녀의 체중도 눈에 띄게 늘고 키도 컸다고 한다.한시바삐 날밝기를 기다리는 소녀의 침대머리에는 곱게 다린 교복과 함께 솜옷이 걸려있었는데 책가방곁에는 벌써 꽃다발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사연깊은 교복이며 솜옷을 정히 쓸어보는 우리에게 소녀는 자랑했다.
《이 교복이랑 솜옷은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에 참가하는 대표들에게 교복과 가방, 신발, 양말을 특별히 잘 만들어주어야 하겠다고, 옷이 날개라고 소년단대표들에게 옷을 잘 해입혀야 한다고 하시며 5 000명 대표들이 사는 방방곡곡을 빠짐없이 찾아가 몸치수를 깐깐히 재여 유명한 피복공장들에서 최상의 수준으로 만들도록 해주신
겨울이 오려면 아직은 멀었건만 어린 대표들이 평양으로 오게 될 추운 계절을 먼저 생각하시며 겨울옷까지 멋있게 만들어 입히면 우리 아이들이 정말 고울것이라고 하시면서 솜옷도안까지 하나하나 지도해주신 육친적사랑은 12월의 평양에 때아닌 꽃바다를 펼쳐주었다. 편안하고 풍족한 때였다면 그 한벌한벌의 교복과 솜옷이 이다지도 우리 가슴을 격정으로 파고들지는 않았을것이다.은정어린 교복과 《해바라기》학용품을 받아안고 잠 못들던 그런 밤들이 우리 가정에도, 우리 자식들에게도 있지 않았던가. 《그런데 난 저 멋진 옷을 입고 대회에 하루도 참가하지 못했습니다.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때 일심이의 눈앞에 제일먼저 떠오른것은 자기를 소년단대표로 추천해주며
지나친 흥분으로 환자의 혈압은 계속 오르고 식사량은 점점 줄어드니 누구보다 안타까와한 사람들은 구급과의 의사, 간호원들이였다.일심이를 딸처럼 대해주던 허석철의사는 정말로 성을 냈다.
《네가 병을 고쳤다는 소식을
일심이는 놀라왔다.대회에도 참가하지 못한 내 소식을
그것은 사실이였다.당중앙위원회 일군들이 수시로 치료정형을 알아보고 보건부문과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일군들이 매일같이 병원에 찾아왔다.중앙병원의료일군들의 협의회만도 몇차례나 진행되였는지 소녀는 다 알수 없었다.우리의 귀전에는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들려주던 이야기가 새삼스럽게 되새겨졌다.
병원에서 긴장한 치료의 순간순간이 흐르던 그때 재령군 장국리의 일심이네 집으로는 저녁마다 마을사람들이 모여들군 했다고 한다.대회가 시작된 날부터 장국리사람들은 TV앞에 마주앉아 자기들이 손저어 바래준 대표의 모습을 찾아보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날마다 일심이를 그리는 부모와 선생님, 동무들과 마을사람들은 멀리에 있었다.하지만 그의 곁에는 언제나 혈육보다 더 극진한 손길이 있었다. 한달이 지나도록 크게 차도가 없는 일심이의 병치료를 두고 누구보다 고심어린 사색을 거듭하며 과장 최건일동무가 뜬눈으로 맞은 새날은 그 얼마였던가. 환자의 회복을 위해 한시도 발편잠에 못들고 정성의 날과 달을 이어온 담당의사 서경희동무, 그를 두고 일심이는 말했다.꼭 우리 어머니같다고.
어린 자식을 시어머니에게 맡겨두고 환자를 위해 손마를새없이 뛰여다닌것은 담당간호원 김은향동무만이 아니였다.일심이는
우리는 소녀의 일기장에서 이제는 자기 학교의 선생님처럼 정이 푹 들었다는 중구역 련화소학교의 한일심소년단지도원과 퇴근시간까지 바쳐가며 밤늦도록 공부를 배워준 평양제1중학교의 선생님들에 대한 이야기도 읽었다.소년혁명가, 소년애국자의 징표는 최우등성적증이라고 하신
일기장에는 입원치료의 나날에 인연을 맺은 소년단대표들에 대한 이야기도 적혀있었다.일심이가
영웅의 손자인 재웅이는 일심이에게 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고 한다.
《누나의
구급과에서 콩팥내과로 전과한지도 어느덧 수십일이 지나 설명절이 왔을 때였다.태여나 지금껏 부모와 함께 집에서 쇠던 설명절을 고향멀리 평양에서, 병원의 침상에서 맞게 된 일심이의 마음에 잠시라도 집생각이 깃들세라 김만유병원 원장과 초급당비서가 제일먼저 찾아왔다. 《고향의 어머니에게 어서 설인사를 해야지.》 하며 손전화기를 소녀의 손에 들려준 원장은 감격에 흐느껴우는 일심이 어머니에게 뜨겁게 말했다.
《일심이는 우리
정녕 그랬다.일심이만이 아닌 5 000명 소년단대표모두가
올해처럼 그렇게 달력을 한장한장 힘들게 번져본적은 없었다고 우리
진정 우리 당이 하늘처럼 받드는 인민앞에, 인민우에 우리 아이들이 있었다.아무리 고난이 크고 힘겨워도
그것은 단순히 아이들에 대한 사랑으로만 말할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였다.혁명의 미래를 위해서라면 눈속에서도 꽃을 피우는
어머니당에서는 퇴원을 앞둔 정일심소녀에게 또다시 크나큰 사랑을 안겨주었다. 일심이는 대회에 참가했던 대표들의 로정을 따라 만경대고향집과 만경대학생소년궁전을 비롯한 참관지들과 옥류관에까지 가게 되였다.특별대표인양 승용차를 타고 《소년단대표동지!》라고 떠받들리우면서.
소년궁전앞마당에서,
퇴원을 며칠 앞둔 어느날 당중앙위원회 일군이 일심이를 찾아왔다.일군은 새 교복에 붉은넥타이를 매고 의젓하게 선 소녀의 손목에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 대표들에게 수여한 우리 당의 크나큰 은정이 담긴 손목시계를 정중히 채워주었다.
《이 시계의 초침을 새겨들으며
한 평범한 소년단원이 거듭 받아안는 영광을 제 자식일처럼 기뻐하며 축하해주는 병원의 의료일군들앞에서 일심이는
그날에 불렀던 노래를 소녀는 우리앞에서도 불렀다.그 노래가 울려퍼지는 창가에 어느덧 새날이 밝아왔다.우리는 의료일군들에게 에워싸인 정일심소녀와 함께 김만유병원 앞마당으로 나왔다.2월의 눈부신 해빛이 소녀의 생기발랄한 얼굴과 함께 소년단넥타이를 더욱 붉게 물들여주었다.
떠나는 아이도, 바래주는 사람들도 모두다 울며 웃었다.우리의 눈시울도 젖어들었다.그 시각 우리의 심장에
소년단원동무들의 명랑하고 씩씩한 모습을 대할 때면 혁명하는 보람과 긍지가 더해지고 동무들이 부르는 《소년단행진곡》을 들을 때면 힘이 난다고 하시던 그 말씀이… 이윽고 정일심소녀가 탄 차는 재령군을 향해 출발하였다. 문득 차가 다시 멈춰섰다.차창밖에 나타난 일심이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있었다.더 하고싶은 말대신에 소녀는 작은 손을 힘차게 흔들었다.그 귀여운 손목에서 해빛에 보석처럼 빛을 뿌리는것이 있었다. 사랑의 손목시계였다.평양에서 시간을 맞춘 그 시계는 이제 저 소년단원의 밝고 창창한 앞날에 영원한 보답의 초침소리를 쉬임없이 울려줄것이다.
마지막으로 평양을 떠나는 소년단대표를 오래오래 바래주는 우리의 가슴에는 동무들이 오늘은 붉은넥타이를 두른 소년단원이지만 래일은 영웅메달, 박사메달을 단 강국의 기둥으로 명성떨칠것이며 동무들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그때에 우리 나라는 더 아름답고 강대한 모습으로 온 누리에 빛을 뿌릴것이라고 하시던
정일심소녀를 맞이한 재령군에서도 평양에서와 같은 감격의 열파가 일어번졌다.평양으로 바래워주던 그날부터 손꼽아 기다려온 자기들의 나어린 대표를 온 학교, 온 마을이 얼싸안았다.조선소년단 제9차대회와 더불어 대대손손 전해갈 전설같은 사랑을 안고온 복덩이딸을 품어안고 정일심소녀의 부모 역시 이렇게 목메여 외웠다고 한다.
그것은 어머니당의 품에 운명도 미래도 다 맡기고 사는 행복이 얼마나 귀중한것인가를 실체험으로 다시한번 절감한 온 나라 인민이 복받은 아이들과 함께 심장을 합쳐 부르는 또 한편의 《세상에 부럼없어라》의 노래와도 같은 로동당찬가, 사회주의찬가였다.
후대들을 위한 일에서 혁명하는 가장 큰 보람과 긍지를 느끼는
글 본사기자 조향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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