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정     일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령도업적을 후손만대에 빛내여나가야 한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돌아보면서 일군들과 한 담화

주체87(1998)년 4월 18일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가 평양시내와 가까우면서도 위장조건이 아주 좋은 명당자리에 위치하고있었습니다.

조국해방전쟁시기에는 최고사령부지휘처의 주변산들에 숲이 무성하였습니다. 그때에는 저수지에서 최고사령부지휘처쪽으로 오는 길도 숲속의 오솔길밖에 없었습니다. 나무가 얼마나 많고 숲이 무성했던지 저수지쪽에서는 지금 사적지가 꾸려진 골안의 집들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 골안에 추리나무와 물앵두나무, 밤나무가 많았습니다. 전쟁시기에는 이곳에 나무가 많고 큰길이라고는 달구지길밖에 없어 골짜기가 상당히 깊어보였는데 지금은 사적지가 꾸려지고 주변이 정리되여 그런지 골짜기가 깊어보이지 않습니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력사주의원칙에서 원상대로 꾸려놓고 잘 유지관리하여야 합니다.

1960년대에 이곳을 찾으셨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부 사람들이 여기에 초대소를 건설하고 과수원을 확장하느라고 나무들을 마구 찍은데 대하여 매우 가슴아파하시였습니다. 이 사적지에 수령님의 동상을 모시면 좋겠다는 문제가 제기되였을 때에도 수령님께서는 그렇게 하지 못하게 하시면서 사적지를 전쟁시기의 모습대로 보존하고 주위환경을 절대로 파괴하지 말데 대하여 거듭 강조하시였습니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전쟁시기의 모습과 다르게 꾸려놓으면 안됩니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원상대로 꾸리려면 나무를 많이 심어야 합니다.

지금 사적지구역안에 잔디밭이 너무 많습니다. 잔디밭들만 관리하자고 하여도 숱한 품이 들것입니다.

사적비주변의 잔디밭에 나무들을 심고 주차장 건너편과 저수지주변공지에도 뽀뿌라나무와 같은 빨리 자라는 나무들을 많이 심어 도로와 저수지쪽에서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을 비롯한 사적건물들이 보이지 않게 하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전쟁시기의 환경을 되살리고 위장도 잘될수 있게 나무를 심겠는가 하는것을 록화전문가들과 토론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을 영구보존하여야 합니다.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은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활동과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해주는 력사적인 건물입니다. 수령님께서는 1951년초부터 전쟁이 끝날 때까지 이 건물을 리용하시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전승동에 있는 내각사무국청사에 나가시여 일을 보신적도 있지만 주로는 여기 최고사령부지휘처에서 집무를 보시였습니다. 나는 이 력사적인 건물을 영구보존하기 위하여 일군들에게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에 덧집을 지어놓을수 없겠는가 하는것을 연구해볼데 대한 과업을 주었고 그후 조선인민군 제583군부대에서 덧집공사를 맡아하도록 지시하였는데 덧집이 짧은 기간에 훌륭히 건설되였습니다.

새로 건설한 최고사령부지휘처덧집이 아주 훌륭합니다.

덧집앞면에 유리를 대여 밖에서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을 들여다보게 한것이 좋습니다. 덧집안의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이 한폭의 그림처럼 보입니다.

덧집지붕을 콩크리트로 충진하고 복토를 한 다음 거기에 소나무들과 잣나무들을 심었는데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아도 덧집이 알리지 않을것입니다. 이렇게 하니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가 위치하고있던 골짜기에 산이 하나 더 생겨났습니다. 사람의 힘이 정말 대단합니다. 건설자들이 덧집지붕공사를 하면서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에 손상을 주지 않기 위해 이동식대형강철보를 리용하였다는데 착상을 기발하게 하였습니다. 건설자들이 덧집을 지으면서 사적건물에 손상을 주지 않으려고 연구를 많이 한것 같습니다.

덧집의 방호문도 잘 만들었습니다. 방호문을 평시에는 열어놓아 덧집안의 사적건물이 들여다보이게 하고 유사시에는 정면유리창까지 다 막을수 있게 한것이 좋습니다. 육중한 방호문이 닫기는것을 보니 요란합니다. 이제는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이 적비행기들의 폭격을 받아도 끄떡없고 해빛과 눈비에 의한 피해도 받지 않게 되였습니다.

덧집내부미장도 잘하였습니다. 덧집천정미장을 얼마나 잘하였는지 넓은 면이 매끈하고 자그마한 실금도 보이지 않습니다.

내가 지난 시기 조선인민군 제583군부대관하 부대군인들이 미장한것을 많이 보았는데 이 덧집내부미장을 제일 잘한것 같습니다.

덧집안의 조명과 음향상태도 괜찮습니다. 조명을 보강하여 덧집안을 더 밝게 하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안벽과 천정에 흰 물뼁끼를 칠하고 조명을 하니 덧집안이 집안이라는감이 나지 않습니다. 밤에는 덧집안이 더 희한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그럴것입니다.

이번에 조선인민군 제583군부대관하 부대일군들과 군인들, 공장, 기업소로동자, 기술자들이 큰일을 하였습니다. 나는 조선인민군 제583군부대관하 부대일군들과 군인들, 공장, 기업소 로동자, 기술자들이 6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에 덧집을 훌륭하게 건설한데 대하여 대단히 만족하게 생각하며 그들에게 최고사령관의 이름으로 특별감사를 줍니다.

덧집공사에 참가한 성원들을 크게 표창하여야 하겠습니다. 인민군총정치국에서 표창안을 작성하여 제기하여야 하겠습니다. 조선인민군 제583군부대에 현대적인 건설장비들도 보내주겠습니다.

며칠전에 당중앙위원회 당력사연구소에서 인민군군인들이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에 덧집을 훌륭하게 지어놓았다는것을 알고 만경대고향집에도 이렇게 덧집을 짓겠다고 제기하여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만경대고향집은 좀 다른 방법으로 영구보존대책을 세우라고 하였습니다.

덧집을 완공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런지 덧집안의 습도가 높은것 같습니다. 습도가 높으면 덧집안에 있는 사적건물과 사적물들이 못쓰게 될수 있습니다.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 집무실에 깔아놓은 주단 같은것은 습기를 받으면 인차 못쓰게 됩니다. 주단이 습기를 받지 않게 대책을 세우는것이 좋겠습니다. 덧집안의 습도를 정확히 보장하여야 하겠습니다.

덧집앞면의 유리를 자외선차단유리로 바꾸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야 덧집안에 있는 사적건물과 사적물들이 자외선에 의한 피해를 받지 않을수 있습니다.

덧집정면아치부분에 외장재를 칠하는것이 좋겠습니다. 흰 물뼁끼를 칠한 덧집정면아치부분이 지금은 깨끗해보이지만 비바람을 몇번 맞으면 얼룩지고 보기 싫게 될수 있습니다. 원래 흰물뼁끼는 건물내부에 칠하는것이지 외부에 칠하는것이 아닙니다.

덧집안에 세운 표식비를 덧집밖에 내다세워야 하겠습니다. 표식비는 사적물이 아닙니다. 덧집안에는 사적건물과 사적물들만 있어야 합니다.

덧집안의 사적건물과 사적물들에 대한 해설강의는 기본적으로 덧집밖에서 하여야 합니다. 참관자들을 덧집안에 데리고 들어가서는 주로 개별적인 사적물들에 깃든 구체적인 사연들만 소개해주도록 하여야 합니다.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 집무실, 침실, 취사장을 원상대로 잘 보존하였습니다. 취사장을 보니 그때 수령님의 식사를 보장하던 사람들이 생각납니다. 그들이 수령님께 식사를 잘 보장해드리려고 전시의 어려운 조건에서도 정말 온갖 성의를 다하였습니다.

최고사령부지휘처가까이에 폭탄이 떨어졌던 자리가 있는데 그때 떨어진 폭탄이 500kg짜리였습니다. 그 폭탄이 터졌더라면 큰일날번 하였습니다. 그때 수령님의 부관들과 호위성원들이 불발된 폭탄을 치우느라고 위험한 작업을 하던 일이 눈에 선합니다. 전쟁시기 수령님께서 위험한 고비를 넘긴 때가 한두번이 아니였습니다. 언제인가는 수령님께서 도로상에서 적비행대의 불의의 습격을 받은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친위중대 대원들이 수령님을 자기들의 몸으로 막아 보위하였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박헌영, 리승엽을 비롯한 나쁜 놈들은 최고사령부를 해치려고 악랄하게 책동하였습니다.

최고사령부지휘처 갱도입구로 가는 길 좌우측을 석축하였는데 전쟁때에는 석축하지 않았댔습니다. 전후에 사적지를 꾸리면서 석축한것 같습니다.

최고사령부지휘처 갱도를 잘 보존하였습니다. 갱도안에 들어와보니 전쟁때맛이 납니다. 갱도안에 있는 영사실과 침실이 그전 그대로입니다.

작전실도 원상대로 꾸려놓았습니다. 작전실에 있는 라지오가 당시에는 좋은것이였습니다.

수령님께서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을 만나신 장소에 표식비를 세우고 표식비에 수령님께서 공화국영웅 및 모범전투원들과 담화하시는 모습을 찍은 사진을 모시였는데 그 사진에 있는 녀성군인이 지금 평양산원 당비서를 하는 동무입니다. 지금 조국해방전쟁사적관 관장을 하고있는 동무는 전쟁시기 내각사무국에서 수령님의 접견을 받고 수령님과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동무입니다.

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에서 삼석인민학교쪽으로 내려가면 구락부가 있었는데 수령님께서는 그때 그 구락부에서 회의도 지도하시였고 예술공연도 보아주시였습니다.

사적비를 통돌로 잘 만들어 세웠습니다. 사적비를 1991년 7월에 세웠으면 수령님께서 와보시지 못하였을것입니다.

그전에 항일혁명투사 박두경동지가 이곳에서 오래동안 생활하면서 사적지관리를 잘하였습니다. 관리원들이 앞으로 맡은 일을 더 잘하여야 하겠습니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와 관련한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적들을 다 찾아 고증해놓아야 하겠습니다. 수령님의 혁명사적들은 우리 당의 사상정신적재부이며 국보입니다. 혁명사적일군들이 조국해방전쟁시기의 사적자료들을 많이 찾아냈지만 아직도 찾아내여 고증하여야 할것이 적지 않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시기 여기에 계실 때 자주 말을 타고 산보하시였는데 아직 수령님께서 산보하신 로정을 찾아내여 고증하지 못하였습니다. 수령님께서 산보하신 로정을 찾아내여 고증하고 표식주를 세워야 하겠습니다.

최고사령부지휘처 갱도를 당시 총참모부직속 공병련대 군인들이 굴설하였다는것은 알려져있지만 어떻게 되여 여기에 갱도를 굴설하게 되였고 누가 갱도설계를 하였는가 하는것은 아직 모르고있습니다. 최고사령부지휘처 갱도설계를 잘하였습니다. 최고사령부지휘처 갱도를 어떻게 되여 지금 있는 곳에 굴설하게 되였고 누가 갱도설계를 하였는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알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사업하던 일군들과 친위중대에서 복무하던 성원들이 살아있을 때 조국해방전쟁시기의 혁명사적자료들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여 고증하여야 하겠습니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여야 합니다.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통한 교양사업을 잘하여야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 특히 새 세대들에게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시기 당과 국가, 군대를 어떻게 령도하시였으며 우리 조국이 어떻게 고수되였고 오늘의 행복한 생활이 어떻게 마련되였는가 하는것을 깊이 인식시킬수 있습니다.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 특히 새 세대들에 대한 교양체계를 똑바로 세워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 세대들이 우리 혁명의 명맥을 순결하게 이어나갈수 없습니다. 이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싸운 항일혁명투사들도 얼마 없고 가렬한 조국해방전쟁과 엄혹했던 전후복구건설의 시련을 이겨낸 사람들도 얼마 없습니다. 우리는 인민군군인들과 인민들 특히 새 세대들을 잘 교양하여 그들을 우리 혁명의 1세대, 2세대들처럼 당과 수령, 조국과 인민을 위하여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싸우는 견결한 혁명가로 억세게 키워야 하겠습니다.

건군절을 계기로 우리 나라에 주재하고있는 다른 나라 대사관 무관들에게 조국해방전쟁사적지를 참관시켜야 하겠습니다.

이전 쏘련국방상이 우리 나라에 오면 그도 이 사적지를 참관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그가 전번에 우리 나라를 방문하면서 이 사적지를 참관하였다고 하지만 그사이에 우리가 조국해방전쟁시기 최고사령부지휘처건물에 덧집을 새로 지어놓은것을 보면 생각이 많아질것입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사적지참관을 한 다음 느낀 감상을 가지고 글도 쓰게 하고 이야기도 하게 하여야 합니다. 우리 일군들이 이런 사업을 잘하지 못하고있습니다. 그전에 이곳을 참관하였던 이전 쏘련국방상도 감상록에 글을 남기지 못하였다고 합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을 위하여 꾸려놓은 응접실이 작습니다. 응접실을 잘 꾸려놓는것이 좋겠습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응접실에서 청량음료도 마실수 있게 하여야 합니다.

오늘 조국해방전쟁사적지에 왔던 기념으로 일군들과 기념사진을 찍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