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4월 4일 로동신문
조선의 웅지가 어린 혁명의 천리길을 억세게 이어가리 전국학생소년들의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대 대원들의 실체험담을 듣고
《학생소년들은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을 통하여
배움의 천리길, 이 땅 그 누구의 마음속에나 소중히 새겨져있는 력사의 길이다.
단정한 학생복차림에 강반석어머님께서 밤새워 지으신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몇권의 책이 들어있는 자그마한 보꾸레미가 전부인 소박한 행장으로 12살 어리신 나이에 단신으로 배움의 천리길을 떠나신
조선을 알아야 한다는 아버님의 당부를 가슴에 새기시고 지금으로부터 한세기전
높은 산, 험한 고개를 오르내리고 어려운 고비들을 이겨내며 10여일의 낮과 밤을 이어 천리행군을 마친 답사대원들,
300만이 걷는 길
그로부터 1년후에는 5 000명의 청소년들로 국가적인 첫 정기답사행군대가 무어졌으며 또 1년후에는 1만명으로 된 큰 규모의 답사행군대가 포평을 떠나 만경대로 향하였다.이것이 우리 나라에서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의 시발점이라고 할수 있다. 사회주의애국청년동맹 중앙위원회 부부장 김창국동무는 이번에 진행된 답사행군은 지난 시기에도 그러하였지만 이번에는 학생소년들의 정신세계와 인민들의 환영열도에 있어서 높은 경지에 이르렀다고 하면서 답사행군대원모두를 그 어떤 난관도 이겨내는 강의한 정신력의 소유자로 만드는 하나의 교육과정, 교양마당이였다고 이야기하였다.
100년전
전국의 소학교 5학년부터 고급중학교 1학년 학생들가운데서 선발된 1 000여명의 답사행군대원들은 모두가 학교를 대표하는 모범소년단원들로서 기세도 정신도 남달랐다.
그들이 메고가는 《소나무》책가방에는
그들의 대오에서는 언제나 람홍색공화국기와 조선소년단기가 나붓겼고 그들이 입고있는 당의 은정어린 새 교복과 솜옷에는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대원마크가 영예와 긍지의 상징인양 빛나고있었다.
그들가운데는
대오의 락오자가 되지 말고 몸성히 돌아오라는 부모들의 당부, 누구에게나 쉽게 차례지지 않는 한생의 귀중한 체험을 하게 될것이라는 선생님의 가르치심, 자기들의 마음까지 합쳐 학교의 명예를 떨치라고 고무해주던 학급동무들의 모습을 가슴속깊이 새기고 천리길의 려정에 나선 한명한명의 답사행군대원들, 결코 그들만이 천리길을 걷는것이 아니였다. 1 000여명의 답사행군대원들만이 아닌 온 나라 300만 소년단원들이 그들과 함께 천리길을 따라나섰고 온 나라 인민의 기대어린 눈빛이 그들을 고무하고있었다.
한생토록 잊지 못할 귀중한 수업
포평에서 만경대까지의 천리길에서 도보로 행군한 거리는 870여리, 그가운데서 제일 힘든 구간이 바로 오가산령과 직령을 넘을 때였다고 답사행군대원들 누구나 이야기한다. 만경대혁명학원의 한 원아는 《나는 이번에 답사행군대의 기발을 휘날리며 맨 앞장에서 행군해왔습니다.제가 쓰러지면 전체 행군대오의 걸음이 드티여지게 된다고 생각하니 힘들어도 주저앉을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하였다. 이번 답사행군대의료진의 한 성원으로 참가했던 옥류아동병원 의사 박광혁동무는 험한 오가산령을 나어린 학생들이 자기 힘으로 넘는 모습에서 깊은 충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행군 전 기간 하루에 70~80리나 걸으면서도 《힘들지 않습니다.》, 《아프지 않습니다.》라는 말이 입버릇처럼 울려나왔다고 이야기하였다. 난생처음 부모의 슬하를 떠나 험한 령길을 걸어보는 학생들이 대다수였지만 그들은 가다가 쓰러지는한이 있더라도 제발로 걸어가겠다고 이악하게 따라나서고 힘들어하는 동무들의 가방을 두개, 세개씩 메고 대오에서 떨어지지 않도록 이끌어주었으며 혁명가요를 높이 부르며 전진해갔다.
항일유격대원들을 생각하며 하모니카와 북을 비롯한 악기들로 흥겨운 오락회를 펼쳐놓은 황해북도의 대원들, 강계시안의 공장, 기업소로동계급을 당중앙위원회 제8기 제6차, 제7차전원회의 결정관철에로 불러일으키는 학생소년예술선전대활동을 높은 수준에서 진행한 함경남도의 대원들… 답사행군기간 위문편지쓰기,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발표모임, 학교소년단, 분단사업경험토론회, 우리 학교, 우리 고향 자랑모임, 웅변모임, 소묘전시회 등이 치밀하게 조직되였다.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은 새세대들의 작은 가슴들에 주체혁명의 천만리길을 꿋꿋이 이어갈 신념과 의지를 심어준 혁명전통교양의 귀중한 학교였으며 그들이 높은 령, 험한 산발을 넘고 헤쳐온 나날은 한생에 잊지 못할 귀중한 수업과정이였다.
답사행군대원들은 강의한 의지를 안고 하산령과 오가산령을 비롯한 험한 산을 넘고 화평, 장강, 강계, 성간, 전천, 희천 등을 지나 개천시에서 렬차를 타고 혁명의 수도 평양으로 행군을 다그쳤다.
어렵고 힘든 행군의 나날 답사행군대원들의 가슴속에는 항상
답사행군대오가 명문고개를 넘어설 때였다. 평양중등학원 학생 류송은 동무들이 힘들어하자 그들의 가방을 자기가 솔선 맡아 메며 이렇게 말했다.
《난 행군길의 어려운 순간마다
그러면서 류송이는 어려서부터
그의 이야기를 들은 동무들도
가는 곳마다 답사행군대원들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주고 친부모의 사랑을 안겨준 인민들의 진정은 또 얼마나 뜨거웠던가. 소년단넥타이를 날리며 발걸음도 씩씩하게 행군해가는 나어린 답사행군대원들의 그 모습이 너무도 미덥고 자랑스러워 길가던 사람들도 걸음을 멈추고 환영군중과 함께 뜨거운 박수를 보내주었다. 행군으로 지친 답사행군대원들의 양말과 신발을 빨아주고 성의껏 준비한 식사도 마련해준 동신군인민들, 답사대원들의 생일상을 차려주며 친부모의 심정으로 축하해준 량강도, 자강도, 평안남도일군들, 추위에 몸이 얼어들세라 더운물도 안겨주고 산길을 걸을 때는 미끄러질세라 흙을 깔아주었으며 힘들어할세라 지팽이를 쥐여주며 진심으로 고무해준 김형직군인민들…
우리 소년단원들을 제일로 아끼고 사랑하시는
그 마음을 안고 답사행군대원모두가
지금 답사행군대원들의 가정들에서는 해볕에 탄 검실검실한 얼굴, 떠날 때보다 몰라보게 성장한 자식들을 보며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의 생활력과 의의를 다시금 깊이 절감하고있다. 포평에서 만경대까지, 세월이 흐르고 세대가 바뀌여도 천리길의 로정은 변함이 없다.
배움의 천리길답사행군대오의 힘찬 발구름소리, 이는 조선의 웅지가 어린 혁명의 천리길을 억세게 이어가려는 300만의 소년혁명가, 소년애국자대군의 심장의 맹세로 높이높이 울려퍼질것이다. 본사기자 강효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