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4월 12일 로동신문

 

김일성상계관도서《인민들속에서》를 펼치고(3)


위대한 수령님과 자위의 성새

 

《인민들속에서》, 이는 한평생 인민과 더불어 후손만대에 길이 빛날 업적을 쌓아올리신 진정한 인민의 수령을 높이 모신 우리 조국에서만 태여날수 있는 불멸의 위인전, 위인실록이다.

한페지 또 한페지 번질수록 얼마나 걸출한분을 우리가 모시고 살며 투쟁하여왔는가에 대한 생각으로 솟구치는 격정을 금할수 없다.

자위의 길만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는 길이라는 투철한 신조를 지니시고 고귀한 한생을 바쳐 우리 조국을 자위의 성새, 불패의 보루로 억척같이 다져오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

우리 수령님께서 자위적국방건설을 국사중의 국사로 내세우시고 조국과 인민의 자주권과 존엄을 굳건히 지켜오신데 대한 회상실기들은 실로 심오한 의미를 안고 우리 인민의 가슴가슴을 세차게 울려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위의 군사사상을 우리 나라의 구체적현실에 맞게 빛나게 구현하시여 우리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하고 온 나라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다지시였습니다.》

모든 나라와 민족에는 자주적인 권리가 있으며 그것을 확고히 담보해줄수 있는것은 다름아닌 자위적국방력이다.

력사는 대국들을 쳐다보면서 자기의 힘을 키우지 못하면 제 할 소리도 못하고 어쩔수 없이 남에게 굽어들게 되며 종당에는 제국주의자들의 희생물이 된다는 진리를 확증하였다.

우리에게는 무진막강한 자위적국방력이 있다.

해방후 첫 시기에 정규적혁명무력을 건설할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고 인민군대를 창건하시여 자위적국방력의 중추를 마련하신 위대한 수령님이시다.

《인민들속에서》 제65권에 수록되여있는 항일혁명투사 박성철동지가 쓴 회상실기 《정규무력창설의 첫 기슭에서》는 정규무력의 탄생이 선포되던 잊지 못할 사실에 대하여 오늘도 감동깊게 전하고있다.

나라가 해방된지 5일만에 군사정치간부들앞에서 《해방된 조국에서의 당, 국가 및 무력건설에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중요하게 강조하신 문제의 하나는 우리 나라가 완전한 자주독립국가로 되기 위하여서는 자기의 강력한 민족군대를 창건하여야 한다는것이였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에게는 자체의 힘으로 정규화된 혁명군대를 건설할수 있는 튼튼한 밑천이 있다고, 항일무장투쟁의 불길속에서 단련육성된 혁명투사들을 골간으로 하고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근로인민의 우수한 아들딸들로 혁명군대를 건설하여야 한다고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이렇게 정규무력건설의 휘황한 앞길을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에 개선하시여 진행하신 첫 사업은 항일혁명투사들을 건군의 길과 잇닿은 새로운 전구에로 파견하신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조국땅에 돌아온 투사들을 며칠만이라도 휴식시키고싶으신 마음이 간절하시였다.

하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도 일제와 싸우느라고 어느 하루도 발편잠을 자지 못한 동무들에게 평양랭면도 맛보이지 못하고 또다시 어려운 길로 떠나보내자니 마음이 좋지 않다고, 그러나 우리 혁명과 내외정세가 그것을 요구하니 여기에서 곧바로 전국각지로 떠나가야 하겠다고 하시며 그들을 파견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신 첫 임무를 받아안은 투사들이 항일전장의 신들메도 풀 사이없이 조국땅 방방곡곡으로 떠나가게 되였으며 그들이 가닿은 곳마다에서는 정규무력창설에서 중요한 몫을 맡게 될 골간들이 자라나게 되였다.

해방후 석달만에 우리 나라에 처음으로 창설된 인재양성기지가 다름아닌 정치군사간부들을 육성하기 위한 평양학원이였으며 그 명예원장이 바로 우리 수령님이시였다는 사실은 또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뜨겁게 하여주는것인가.

평양학원과 중앙보안간부학교, 평양학원 항공반과 수상보안간부학교를 내오도록 하시고 국방에서의 자위를 실현하는데 이바지할 정치군사간부들을 키워내도록 세심한 지도와 가르치심을 주시며 위대한 수령님께서 기울이신 심혈과 로고에 대하여 다 전하자면 아마도 며칠밤을 새워도 모자랄것이다.

정규무력건설을 위한 사업이 힘있게 벌어지고있던 어느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몸소 중앙보안간부학교에 나오시였다.

당시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군사간부를 육성하는데 적어도 3년이상 걸리기때문에 우리도 반드시 최소한 3년간의 과정안을 거쳐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있었다. 그러한 견해를 바로잡아주시기 위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귀중한 시간을 내시였던것이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갓 해방된 우리 나라에서는 우리의 실정에 맞게 군사교육기간을 선정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남들처럼 한가롭게 3년이요, 4년이요 할것이 아니라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맞게 정규적혁명무력건설에 긴절히 요구되는 군사간부들을 하루빨리 양성하기 위하여 군사교육기간을 1년으로 앞당겨야 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어디 그뿐이랴.

김일성동지의 따뜻한 손길에서 조선인민혁명군이 정규적인 혁명무력으로 강화발전되기까지》, 《인민군대의 첫 간부양성기지를 꾸려주시고》를 비롯한 회상실기들은 잠시의 휴식도 없이 혁명무력의 골간을 이룰 군사간부양성사업과 자위적인 군건설사업을 이끌어주신 우리 수령님의 업적을 오늘도 감명깊게 전하고있다.

위대한 수령님의 이렇듯 정력적이고도 세심한 령도가 있어 주체37(1948)년 2월 8일 조선인민군의 창건이 온 세상에 선포되였다.

조선인민군의 창건, 진정 이는 나라의 자위를 담당한 정규적혁명무력의 탄생을 알리는 력사적사변이였다.

혁명과 건설의 모든 분야를 다같이 발전시키면서 자체의 힘으로 나라를 방위하기 위한 최선의 방도는 하나가 백, 천을 감당할수 있는 강위력한 무장대오를 꾸리는것이다. 우리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하고 온 나라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다지신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예로부터 싸움 잘하는 장수를 가리켜 혼자서 백을 당한다는 의미에서 《일당백》이라고 불러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일당백》의 구호는 단순한 상징적의미가 아니라 우리 인민군대를 자체의 힘으로 나라와 인민을 보위할수 있는 강력한 무장대오로 강화하기 위한 우리 식의 또 하나의 군건설방침이였다.

인민군대를 일당백의 혁명강군으로 키우시기 위하여 우리 수령님께서 기울이신 심혈과 로고는 그 얼마였던가.

《〈초소는 동무들에게 맡기오〉》라는 제목의 회상실기에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후시기 분계선가까운 어느한 초소를 찾으시고 군인들의 훈련을 지도해주신데 대한 사실이 서술되여있다.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군인들에게 여러가지 정황도 제시해주시고 나타난 부족점에 대하여서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고는 전술훈련에 대한 총화까지 하여주시며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동무들이 지키는 이 진지는 조국의 방선이요. 바로 동무들이 조국의 방선을 튼튼히 지키고있기때문에 당과 인민은 안심하고있소.

진정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손길이 있어 인민군대가 그 어떤 대적도 감히 덤벼들지 못하는 일당백의 혁명무력으로 강화되고 전체 인민이 총을 잡고 조국을 지키는 전인민적자위의 력사가 흐르게 되였으며 그 나날 우리 공화국을 겨냥한 적들의 군사적도발책동들은 걸음마다 산산쪼각나지 않았던가.

자체의 국방공업을 떠나서 자위적국방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고 그 어떤 국력도 론할수 없다는것이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불길속에서 뼈저리게 절감하신 문제였고 새 조국건설을 시작하시면서 다시금 새겨안으신 철리였다.

해방후 국방공업의 토대도 없고 중공업의 기초도 미약하였던 우리 나라에서의 국방공업창설은 참으로 어려운 사업이 아닐수 없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에 의존하여서는 언제 가도 자체의 국방공업을 가질수 없었고 나라를 보위할수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자체의 병기공업을 창설하실 의지를 안으시고 평천벌을 찾으신 사연을 전하는 《자위적국방공업창설의 첫 페지를 더듬어》의 잊지 못할 이야기들이 오늘도 우리의 가슴을 세차게 울려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의 군복차림그대로 평천벌을 찾으신 그날은 주체34(1945)년 10월 2일이였다.

항일혁명투사들과 함께 잡초가 무성한 험한 길을 걸으시며 주체적인 병기공업을 창설할데 대하여 밝혀주신 위대한 수령님,

아직은 당도 정권도 태여나지 않은 때였고 많은 사람들이 어느 길로 어떻게 가야 할지 갈피조차 잡지 못하고있던 때였다. 바로 그러한 때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천리혜안의 예지로 조국의 먼 앞날을 내다보시며 자위적국방력을 건설할데 대한 휘황한 전망을 펼쳐주신것이였다.

우리 수령님께서 평천벌에 불멸의 자욱을 아로새기신 이날과 더불어 우리의 국방공업의 력사가 시작되였다.

주체37(1948)년도 다 저물어가던 12월 12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자체의 힘으로 만든 기관단총에 대한 시험사격을 진행하시였다.

기관단총의 장쾌한 총성, 그것은 이 땅에 태여난 주체적국방공업의 자랑찬 고고성이였고 조선혁명을 영원히 총대로 빛내여가시려는 천출위인의 철석같은 의지의 선언이 아니였던가.

새 조국건설의 나날 빈터우에서 창설된 우리의 병기공업의 력사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포탄과 수류탄, 지뢰 등 여러가지 무기와 전투기술기재를 꽝꽝 만들어낸 군자리병기공장의 자랑찬 력사로 이어졌으며 자립적이며 현대적인 국방공업의 발전에로 끝없이 이어지였다.

지금도 우리 인민은 1960년대 나라의 정세가 그토록 엄혹한 속에서 경제국방병진로선이 제시되던 때의 사실을 잊지 못하고있다.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다같이 틀어쥐고 병진시켜나가는 그자체가 생소하고 방대한 사업이고 또 그로 하여 인민생활이 어려워질수 있음을 알고계시였지만 바로 그길이 나라와 민족을 지키고 존엄을 수호하는 길이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저없이 그길을 택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주체51(1962)년 12월 당중앙위원회 제4기 제5차전원회의에서는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방침이 제시되였다.

《한손에는 총을, 다른 한손에는 낫과 마치를!》이라는 전투적구호가 힘차게 나래치는 속에 우리 조국은 전민이 무장하고 전국이 요새화된 무적의 성새로 솟아올라 세상사람들의 경탄의 대상으로 되였다.

돌이켜보면 왕궁의 호위마저 외국군대에 의탁할수밖에 없었던 우리 민족이였다. 나라를 통채로 빼앗기고도 맨주먹으로 땅을 두드릴수밖에 없었던 민족이 다름아닌 우리 민족이였다.

그러하였던 우리 조국이 오늘은 불패의 무장대오와 강력한 국방공업을 가진 사회주의강국으로 만방에 존엄을 떨치고있으니 우리 인민에게 혁명의 총대를 안겨주시고 그 총으로 자기의 운명을 개척하도록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어찌 천만년세월이 흐른들 잊을수 있겠는가.

우리의 눈앞에 지난 2월 8일 밤 김일성광장에 굽이치던 열병대오가 어리여온다.

그 어떤 강적과도 정면승부를 낼수 있는 무적강군의 모습앞에서, 멸적의 굉음을 높이 울리며 힘차게 나아가던 현대적무장장비들의 충천한 모습앞에서 우리 인민은 강력한 자위적국방력건설의 새 력사를 개척하시고 빛나는 모범을 창조하신 위대한 수령님의 영원불멸할 업적을 더욱 심장깊이 새겨안지 않았던가.

그렇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마련하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강화발전시켜오신 자립적국방공업의 력사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비길데 없는 주체조선의 불패의 위력은 또 한분의 걸출한 위인을 모시여 줄기차게 이어지고 높이 떨쳐지고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계시여 우리 조국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숭고한 념원대로 자위의 강위력한 성새로, 주체의 강국으로 끝없이 빛을 뿌릴것이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