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4월 13일 로동신문

 

기행

내 나라는 어디에 가나 애국자들이 많다

두만강기슭의 여러 시, 군을 돌아보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그 어떤 난관과 시련앞에서도 주저하거나 동요하지 않고 참된 애국의 한길을 걷는 사람, 조국과 인민이 맡겨준 혁명과업을 한치의 드팀도 없이 제때에 성실히 수행하는 사람이 진짜애국자입니다.》

국경도시 라선시로부터 경흥군과 경원군, 온성군과 회령시, 무산군 등 두만강기슭에 위치한 시, 군들은 수도 평양의 나라길시작점으로부터 제일 멀리 떨어져있는 조국의 최북단이다.바로 이 바람세찬 북변에도 세대와 세대를 이어오며 나라를 받드는 초석이 되여 우리 국기의 힘찬 펄럭임에 숨결을 더해주는 애국자들이 많다.

두만강기슭에서 깨끗한 당적량심과 공민의 본분을 다하여 자기 고장, 자기 초소를 굳건히 지키며 훌륭히 전변시켜가고있는 사람들을 찾아 우리는 기행길에 올랐다.

 

수도 평양과 멀리 떨어져있어도

 

끝간데없이 펼쳐져 출렁이는 동해를 끼고 뻗어간 두줄기 궤도를 따라 달리던 렬차는 어느덧 라선시지경에 들어섰다.차창으로는 산뜻한 도로들과 규모있게 정리된 강하천들, 새멋을 자랑하는 살림집들이 언뜻언뜻 비껴들었다.

결코 례사롭게 바라볼 풍경이 아니였다.8년전 엄혹한 자연재해를 입은 라선시인민들을 찾아 머나먼 하늘길, 배길을 달려오시여 흙먼지 날리는 피해복구현장에 헌신의 자욱을 찍어가시던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자애로운 영상이 어려와 우리의 마음은 후더워졌다.

멀리 떨어져있는 자식에게 더 지극한 친부모의 심정으로 베풀어주시는 위대한 어버이의 사랑이 끝없이 흘러든 북부국경도시, 바로 여기에서는 또 어떤 애국자들을 만날수 있을것인가.이런 기대로 충만된 우리는 렬차에서 내려 취재지로 걸음을 옮기였다.

우리의 걸음이 제일먼저 향한 곳은 라진구역 동명동의 나지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라진구역제3예방원이였다.한것은 렬차에서 만난 라선시당위원회의 한 일군이 들려준 이야기가 뇌리에 깊이 새겨졌기때문이다.그것은 보건부문에서 수십년동안 일해오면서 인민들로부터 훌륭한 의료일군이라고 존경받는 이곳 기술부원장 정영옥동무에 대한 이야기였다.

《그 동문 늘 말하군 한답니다.심장에서 뿜어진 피가 인체의 그 어느 부분에나 다 미치듯이 사회주의의 따스함은 수도 평양에서나 머나먼 북변에서나 다 한결같아야 한다는것이 당의 뜻이 아니겠는가고 말입니다.이런 좌우명을 안고 그는 한명이든 열명이든 병원에 찾아오는 모든 환자들에게 친혈육의 정을 부어주고있습니다.》

아담한 3층짜리 병원건물안에 들어서자 우리는 곧장 정영옥동무의 방으로 향했다.방문은 걸려있었다.우리를 띄여본 한 나이지숙한 의사가 기술부원장선생은 좀전에 구역안의 주민들에 대한 왕진을 나갔다고 알려주었다.

《한개 단위 기술일군이지만 그는 늘 이렇게 주민들의 건강증진을 위해 앞장에서 뛰여다닌답니다.》

어차피 우리는 그에게 정영옥동무에 대해 좀 구체적으로 이야기해줄것을 부탁하지 않을수 없었다.의사는 자기가 직접 목격한 사실을 들려주었다.

몇해전 겨울 어느날이였다고 한다.새벽에 병원으로는 상태가 위급한 구급환자가 실려왔다.퇴근하였던 정영옥동무가 련락을 받고 병원에 들어섰을 때는 환자의 생명이 경각에 달한 상태였다.의사, 간호원들이 다급히 의료기구를 준비할 때 그는 지체없이 구급치료에 달라붙었다.

《저도 오래동안 보건일군으로 일해왔지만 그렇듯 최선을 다해 환자를 기어이 소생시키는 그의 모습앞에 머리를 숙이지 않을수 없었습니다.이와 같은 일들이 한두번이 아니랍니다.》

우리는 병원의 여러 의사와 일군으로부터 환자들을 위해 자신을 깡그리 바치는 정영옥동무의 고결한 소행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을 듣게 되였다.

시간이 퍼그나 흘러서야 우리는 왕진을 마치고 돌아온 정영옥동무를 만날수 있었다.항상 웃는 눈매를 가진 그의 얼굴에는 생을 포기하였던 환자들에게도 신심과 희망을 안겨주고 힘겨워도 웃으며 고난을 이겨내는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성품이 그대로 비껴있었다.

멀리 있는 자식, 고생하는 자식을 위해 더 마음쓰는 위대한 우리 당의 한량없는 사랑의 세계에 자신을 늘 비추어본다고, 비록 북부국경도시의 자그마한 병원에서 치료사업을 벌려도 그것이 곧 당중앙의 사랑이 마지막 한사람에게까지 빠짐없이 가닿도록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면 긍지에 넘친다고 하는 정영옥동무의 말은 우리에게 깊은 여운을 남기였다.잊을수 없는 북방의 의료일군이였다.

다음취재의 주인공은 라선제1중학교의 소문난 30대의 젊은 부부교원인 김성강, 류은주동무였다.

학교건물의 정면에 큼직하게 새겨진 《조선을 위하여 배우자!》라는 구호를 흐뭇하게 가슴에 안아보며 학교에 들어선 우리를 교장이 맞아주었다.그는 김성강동무는 정보기술소조 지도교원이고 그의 안해인 류은주동무는 외국어소조 지도교원이라고 하면서 후대교육의 길에서 청춘의 사랑도, 가정의 행복도 꽃피워가는 젊은 부부교육자에 대한 자랑을 아끼지 않았다.

교장은 김성강동무의 제자들이 중앙대학들에 입학하였으며 그들속에서 세계기억력선수권대회에 참가하여 소년급에서 우승하고 기니스세계기록에 등록된 세계적인 명수도, 김책공업종합대학에서 진행되군 하는 프로그람작성도전경연들에서 우승의 영예를 지닌 학생들도 배출된데 대하여, 남편에게 뒤질세라 류은주동무도 자기가 맡은 학생들이 전국적인 외국어경연들에서 여러 차례 우승의 영예를 지니도록 하기 위해 이악하게 노력하여 성과를 거둔데 대하여 이야기해주었다.

그의 안내를 받으며 우리는 정보소조실에 들어섰다.마침 김성강동무와 류은주동무가 무엇인가를 토론하고있었다.김성강동무는 안경을 추슬러올리며 안해와 함께 새 교수방법에 대해 이야기하던중이라고 했다.부부교원의 남다른 긍지에 대하여 들려달라는 우리의 청에 김성강동무는 웃으며 말했다.

《북변이 고향인 제가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하던 날 우리 부모님은 눈굽을 적시며 이렇게 당부했습니다.이 나라를 받드는 뿌리가 되고 초석이 되라고 말입니다.그래서 전 대학을 졸업하고 미래를 가꾸는 밑거름이 되자고 다시 고향에 돌아와 교단에 섰습니다.비록 몸은 수도로부터 멀리 떨어져있지만 이길이 우리 조국, 우리 수도 평양을 제일 앞장에서 빛내이는 길이라고 저는 긍지스럽게 말하고싶습니다.》

그들은 북변의 평범한 중학교교원들이였다.하지만 그들의 포부와 지향, 그들이 가꾸어가는 래일은 얼마나 아름다운것인가.

이들뿐이 아니였다.

라선시체신운영국 선봉체신소에서는 남편이 지켜섰던 초소를 맡아 수십년세월 수도 평양과 조국의 한끝을 피줄기처럼 이어주고있는 중계공 민영희동무를 만날수 있었고 라선철도국 선봉철길대 두만강철길중대를 찾았을 때에는 자기가 관리하는 철길이 나라길의 끝이 아니라 수도 평양으로 가는 길의 시작점이라는 자각을 안고 구슬땀을 바쳐가고있는 북철길소대 소대장 황영천동무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선봉구역산림경영소 두만강산림감독분소에서는 제대배낭을 푼 때로부터 70고령에 이른 오늘까지도 험한 산발을 누비는 산림감독원 강명일로인의 진정을 안아볼수 있었다.

끝이 없을것같은 북부국경도시에 대한 취재를 마친 우리는 두만강기슭을 따라 경흥군으로 향했다.

경흥군일군들은 지난 30여년간 군편의봉사관리소 가내작업반에서 로동자로 일해오고있는 한 녀성에 대한 이야기부터 꺼냈다.이름은 강귀녀, 올해 62살인 그는 사람들로부터 《경흥이 어머니》로 불리운다고 했다.

우리는 군당위원회청사에서 얼마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신발수리소에서 《경흥이 어머니》인 강귀녀녀성을 만났다.

《아들 이름이 경흥이인가봅니다.》

인사를 나누고 우리가 꺼낸 첫말이였다.그러자 그의 얼굴에는 가벼운 미소가 비끼였다.신발을 맡기러 왔던 한 녀인이 홰홰 손을 내저었다.

《원 참, 경흥이일게 뭡니까? 이 집 아들의 이름은 광명이인데요 뭐.》

영문을 몰라하는 우리에게 강귀녀녀성은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지금으로부터 7년전인 2016년 조국의 북변 두만강연안의 여러 시, 군에서 엄중한 자연피해를 입는 재난이 빚어졌던 그때 당중앙위원회 호소문을 높이 받들고 인민군군인들이 급파되여오고 어머니당의 극진한 혈연의 정이 북방의 피해지역으로 뜨겁게 흘러드는 현실앞에서 그는 피해를 직접 당한 사람은 아니였지만 큰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위대한 우리 당의 사랑에 천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수 없겠는가.

그렇게 선택한 신발수리공의 직업이였다.그렇게 시작된 원군의 길이였다.

병사들은 수수한 작업복차림의 녀인이 새것처럼 수리해준 신발들을 받아안고 고향어머니의 체취를 느끼군 하였다.점차 강귀녀녀성의 아름다운 소행에 대한 이야기는 군인들속으로, 인민들속으로 널리 퍼져갔고 《경흥군의 어머니》라는 정다운 부름으로 불리우기 시작하다가 종당에는 《경흥이 어머니》라는 부름으로 되고말았던것이다.

그후에도 《경흥이 어머니》의 발걸음은 사회주의건설에 동원된 병사들을 찾아 끝없이 이어졌다.그의 품안에는 언제나 군인신발수리계획이 적힌 수첩이 정히 간직되여있었다.

강귀녀녀성은 우리에게 이렇게 진정을 터놓았다.

《이 나라 그 어디이건 공민이 있는 곳에는 애국자가 있듯이 인민군군인들이 있는 곳에 원군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원군미풍열성자의 영예를 안고 건군절경축행사에 특별대표로 초대되는 꿈같은 행운을 지녔던 지난 2월의 격정을 한생토록 가슴에 안고 이길을 끝까지 걸어가겠습니다.》

이런 애국의 마음이 어찌 강귀녀녀성의 심장에서만 끓어오른다고 하랴.

1990년대의 고난의 나날에 농장원으로 탄원해온 그때부터 오늘까지 나라의 쌀독을 가득 채울 일념으로 포전에서 살다싶이 하고있는 경원군농업경영위원회의 한 초급일군인 림영수동무가 한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엄혹한 자연재해를 당한 그때 두만강기슭에 위치한 우리 마을에도 당의 사랑이 얼마나 속속 와닿았는지 모릅니다.우리는 정녕 평양에서 멀리 떨어져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어머니품에 제일 가깝게 안긴 자식들입니다.》

그렇다.

비록 조국의 북변 두만강기슭은 수도 평양으로부터 지리적으로 제일 멀리 떨어져있어도 우리 당의 마음속에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었으니 바로 그래서 북방의 인민들은 수도 평양을 늘 자기 일터, 자기 초소와 떼여놓지 못하는것이다.정녕 그래서 평양은 여기서 멀지 않았다.

 

북방의 노을은 무엇으로 하여 뜨겁고 아름다운가

 

두만강을 옆에 끼고 기운차게 달리던 승용차는 어느덧 온성군에 들어섰다.점차 날이 밝으면서 고산지대특유의 풍치가 살아나는 농장마을의 이채로운 아침풍경이 비껴들었다.온성군 강안농장이였다.

우리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제3작업반 초급일군인 김련숙동무였다.우리의 취재목적에 대하여 알게 된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이제 우리 반장동지를 만나보십시오.아마 그런 사람은 쉽지 않을겁니다.》

작업반까지 동행하면서 그는 최명균동무의 노력과 헌신으로 하여 작업반포전들에 두만강물이 흘러들게 된 사연을 이야기해주었다.

몇해전까지만 해도 작업반의 대부분 농경지들은 물부족으로 농사작황이 씨원치 않았다고 한다.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도 관개수문제를 풀지 않으면 다수확을 기대할수 없다는것을 느낀 최명균동무는 며칠동안의 수소문끝에 농장의 한 로인으로부터 오래전에 쓰던 물길굴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그때로부터 그의 일과가 달라졌다.하루일을 마치고 저녁이 되면 물길굴을 찾아 안가본 곳이 없는 최명균동무였다.

온몸이 말그대로 땀주머니, 흙투성이가 되여 물길굴을 찾아나가던 최명균동무가 끝끝내 그것을 찾아냈을 때 작업반원들은 누구나 속수무책으로 앉아 물걱정만 하던 자신들을 돌이켜보며 늘 입버릇처럼 외워오던 애국에 대해 다시금 깊이 생각해보지 않을수 없었다고 한다.

김련숙동무의 이야기를 들으며 작업반에 들어서니 당의 사상이 힘있게 맥박치는 구호, 표어들이 꽉 들어찬 선전실과 집약형으로 꾸려진 축산분조며 그쯘하게 갖추어진 문화후생시설들이 우리의 시야에 비껴들었다.

한 인간의 량심과 헌신이 비껴있는 작업반의 여기저기를 돌아볼수록 그의 가슴에 간직된 불같은 애국의 열정을 똑똑히 느낄수 있었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작업반원들과 함께 포전에서 들어오는 최명균동무를 만났을 때 그는 우리에게 별로 자랑할것이 없어 송구하다고, 올해에도 기어이 풍작을 거두어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 기쁨을 드리겠다고, 그때 다시 만나자고 이야기하는것이였다.

다음목적지인 회령시를 향해 가는 길에서 우리의 눈앞에는 최명균동무와 작업반원들의 해볕에 탄 얼굴들이 자꾸만 밟혀왔다.

우리를 태운 승용차는 강안농장을 떠나 회령시를 향하여 굽이굽이 백수십리길을 달리고달렸다.

그 이름 조용히 불러만 보아도 우리의 가슴 뜨겁게 젖어드는 력사의 고장 회령,

우리들이 목적지인 회령과수농장 창효묘목분조에 도착하였을 때는 해가 하늘중천에 떠오른 점심참이였다.우리들을 마중한 분조장 조영건동무는 얼굴에 순박한 웃음을 띠우고 자기 분조에서 지난해 수확한것이라고 하며 뜻밖에도 사과를 내놓는것이였다.불리한 자연지대적조건에서 살고있는 북방인민들에게 과일을 마음껏 먹이는것을 한생의 소원으로 안고계신 위대한 수령님들의 뜻을 실현하는것을 자기의 리상으로 삼고 그 리상을 실현하기 위해 참으로 많은 길을 걷고 무수한 낮과 밤을 바쳐온 그였다.회령의 사과에 깃든 사연도 충격이 컸지만 그 사과와 더불어 회령시의 평범한 분조장이 학위까지 받아 석사분조장이 되였다는 말에 우리는 더 놀라지 않을수 없었다.

그가 내놓은 사과알마다에 언땅을 녹이며 애어린 나무모를 자래운 그의 충성의 마음, 애국의 열의가 그대로 비껴있었다.그와 헤여져 동구길을 천천히 걷는 우리의 눈앞에 붉디붉은 북방의 저녁노을이 안겨왔다.그 붉은 노을과 함께 《홍옥 국광 알알이 붉게 익을 때 이 가슴도 붉게 핀줄 알아나 주소》라는 명곡의 구절이 저절로 입가에서 흘러나왔다.

두만강기슭의 애국자들에 대해 이야기할 때 철산봉을 떼여놓을수 없다.나라의 굴지의 광산로동계급을 만나지 않고 어떻게 북방사람들을 다 안다고 말할수 있겠는가.

우리들이 온밤 달려 철산봉에 닿은 때는 눈부신 해살이 퍼지기 시작한 아침녘이였다.동녘하늘에서부터 피기 시작한 노을은 온 철산봉을 황금빛으로 물들이며 우리의 마음을 부풀게 하였다.

산허리를 감돌며 뻗은 도로를 따라 철산봉의 중턱에 올랐을 때 우리와 만난 무산광산련합기업소 차수리분공장 기술과 유압실장 류성철동무는 기계기름이 묻은 투박한 손을 흔들며 이렇게 말하는것이였다.

《김철이 자립경제의 기둥이라면 무산은 그 기둥의 초석이라고 할수 있습니다.나라의 기둥이 끄떡없자면 그 초석부터 든든해야 할게 아닙니까.》

그가 실장으로 일해온 20여년동안 받은 과학기술증서만 하여도 50여건이 된다고 했다.광산설비들의 핵심인 유압설비들을 100% 국산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는 유압실 성원들의 이야기는 우리를 더욱 놀라게 하였다.

어찌 이뿐이랴.수십년세월 운광길을 달려온 702호대형자동차의 초소장 박영백동무, 216호대형자동차의 초소장 김성호동무…

철산봉의 굽이들을 감돌아 오르내리며 만나는 사람들모두가 비록 겉모습은 수수하여도 북변의 로동계급특유의 강의한 기질과 뜨거운 애국의 열정을 지닌 열혈의 인간들이였다.조국의 북변에 우뚝 솟은 철산봉에서 광석처럼 굳세게 경제건설의 1211고지를 떠받들고있는 이 나라의 자랑스러운 맏아들들이였다.

무산을 떠나 김철로 달리던 길에서 우리는 한 녀인과 동행하게 되였다.함경북도소아병원 호흡기내과 과장 김옥실동무였다.

그의 묵직한 큰 가방안에는 육아원원아들을 위한 의약품들이 가득 들어있었다.그의 이야기의 대부분은 육아원과 애육원, 초등학원과 중등학원의 원아들에 대한것이였다.그 이야기를 듣느라니 조국의 무거운 짐을 조금이나마 덜수 있다면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쳐도 더 바랄것이 없다는 고결한 마음을 안고 헌신분투해온 그의 인생길이 선히 보이는듯싶었다.

어느새 청진시에 들어선 승용차는 김책제철련합기업소로 향했다.산소열법용광로의 웅장한 모습이 멀리에서도 한눈에 안겨오는 대야금기지는 바라만 보아도 가슴이 벅찼다.우리는 김철의 심장부인 용광로부터 찾았다.

때마침 다급히 울리는 종소리와 함께 용광로의 출선구가 터지는 참이였다.수천수만개의 주홍빛불꽃을 꽃보라처럼 날리며 주체쇠물이 뿜어져나왔다.정말 장관이였다.

산소열법용광로 로장 김주성동무가 우리들에게 쇠물이 얼마나 잘 익었는지 보라고, 저런 맑은 쇠물을 볼 때가 제일 기분이 좋다고 말하는것이였다.

맑은 쇠물! 무엇때문에 쇠물을 맑다고 하는가고 묻는 우리에게 그는 손채양을 하고 로안을 들여다보며 이렇게 대답했다.

《그 어떤 불순물도 들어가지 않은 쇠물이니까요.우리 로동계급의 량심과도 같지요.》

그 어떤 불순물도 들어가지 않은 주체의 쇠물을 끓이며, 충성의 맑고맑은 쇠물빛이 자기들의 량심의 빛갈이라고 말하며 용광로의 거세찬 열풍속에서 이들은 밝게 웃고있었다.

구태여 이곳에서 애국자들을 따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당 제8차대회와 당중앙전원회의들의 결정을 높이 받들고 심장의 열기로 쇠물을 끓여 사회주의강국의 강철기둥을 굳건히 세워가는 이곳 로동계급모두가 우리 시대의 훌륭한 애국자집단이였다.

우리는 충성과 애국의 위대한 힘이 분출하는 이곳에서 쇠물처럼 뜨거운 피가 끓어넘치는 열혈의 심장들이 피워올리는 불노을을 온몸으로 체감했다.

누구나 탄복하는바이지만 북방의 노을은 정말 아름답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그것이 단순한 자연의 풍치로만 안겨오지 않았다.왜냐하면 그것은 그 어떤 시련의 광풍이 몰아친다 해도 뿌리깊은 이깔나무처럼 자기 고장, 자기 초소를 굳건히 지켜 조국의 북변에 사회주의락원을 일떠세워가는 수천수만의 애국자들의 불같은 열정이 발산하는 빛이고 열이라는 생각때문이였다.이런 뜨겁고 아름다운 노을이 바로 이 나라 어디서나 펄럭이는 람홍색공화국기발의 색조를 더욱 진하게 해주는것이며 이런 순결하고 억센 심장의 박동이 그 기폭의 펄럭임을 더해주는것 아니랴.


* *


수천리에 달하는 기행길에서 만난 그 많고많은 훌륭한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는 여기에 다 전하지 못한다.하지만 그들모두의 진정을 담아 하나의 진리는 꼭 말하고싶다.

이 땅에 뻗어간 길들에는 끝이 있어도 머나먼 북변에서 사회주의를 지키고 빛내여가는 강의하고 미더운 인민들에 대한 당의 사랑은 젖줄기마냥, 피줄기마냥 끝없이, 끝없이 와닿고있다.그와 더불어 그 사랑에 보답하려는 마음들이 대하를 이루고 바다를 이루고있다.바로 그래서 조국땅 한끝 두만강기슭에서도 우리의 국기는 그리도 아름답게, 세차게 나붓기고있는것이다.

본사기자 안성혁
김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