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4월 23일 로동신문

 

조국이 영웅으로 내세워준 훌륭한 어머니들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은
정영란, 송은희, 오순옥녀성들에 대한 이야기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녀성들은 자식을 많이 낳아 훌륭한 사람들로 키우는것을 나라와 민족을 위한 장한 일로, 애국으로 여겨야 합니다.》

로력영웅, 그것은 사회주의건설을 위한 투쟁에서 특출한 로력적위훈을 세운 공민들에게 우리 공화국이 안겨주는 최고의 영예이다.그러나 우리가 이야기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위훈의 주인공들이 아니다.

승호군 안골로동자구의 정영란, 덕천시 제남동의 송은희, 성천군 신지리의 오순옥녀성은 많은 자식을 낳아 훌륭히 키우고있는것으로 하여 뜻깊은 태양절을 맞으며 로력영웅칭호를 수여받았다.

겉모습은 그지없이 평범하지만 만사람의 축복속에 영광의 단상에 오른 세 녀성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생각한다.조국을 위하여 성실한 땀과 노력을 바치는것도 애국이다.그러나 혁명의 대를 굳건히 이어나갈 나라의 기둥감들을 훌륭히 키우고있는 그들의 애국심이야말로 얼마나 아름다운것이며 그들의 헌신을 공민의 최고영예인 영웅메달로 빛내여주는 우리 조국은 얼마나 고맙고 위대한 어머니품인가.

 

세 어머니가 간직한 하나의 소원

 

이 이야기는 지금으로부터 근 20년전 당보에 실렸던 한편의 기사로부터 시작된다.그것은 위대한 장군님을 보위하는 여덟자루의 총이 되고 여덟개의 폭탄이 되겠다는 신념의 맹세와 더불어 온 나라에 알려진 8형제군관들에 대한 기사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높이 평가해주신 엄복순군인가정과 더불어 온 나라를 들끓게 했던 그 훌륭한 군인가정의 이야기가 사람들의 심금을 뜨겁게 울려주던 그날 승호군 안골로동자구의 어느한 집에서도 밤깊도록 불빛이 꺼질줄 몰랐다.

기사의 글줄을 또다시 읽어내려가는 정영란녀성의 가슴은 무등 달아올랐다.나라가 그처럼 어려운 때 위대한 장군님께 기쁨을 드린 8형제군관은 얼마나 미덥고 그 많은 자식을 하나같이 끌끌하게 키워 조국앞에 내세운 부모는 또 얼마나 훌륭한가.그럴수록 자기도 그들처럼 자식을 많이 낳아 나라의 방선초소를 지키는 병사들로 내세우고싶은 생각이 머리속에서 떠날줄 몰랐다.

그는 이미 세 아들과 딸 하나를 둔 어머니였다.네 자식을 키우는것도 헐치 않았다.하지만 정영란녀성의 심정은 너무나 절절했다.고생을 감당할 준비가 되여있는가고 묻는 남편에게 그는 웃으며 말했다.

《제 자식을 키우는게 무슨 고생이겠나요.오히려 자식 하나라도 더 키워 우리 장군님께서 찾으시는 초소마다에 세운다면 난 그보다 더 기쁘고 행복한 일이 없겠어요.》

이렇게 되여 그의 가정에는 아들딸이 다섯명 더 늘어나게 되였다.어머니의 소원대로 자식들은 중학교를 졸업하는 차제로 군복을 입었다.애지중지 온갖 정을 다 쏟아부으며 키운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로 바래우는 때가 정영란녀성에게는 제일 행복한 순간이였다.

그러던 어느해 정영란녀성은 가슴아픈 일에 부닥치게 되였다.초소로 떠나갔던 셋째가 뜻밖의 일로 더는 군사복무를 하지 못하게 되였던것이다.부모의 기대에 따라서지 못했다는 죄책감으로 머리를 들지 못하는 아들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정영란녀성은 말하였다.

《걱정하지 말아.이 어머니가 있지 않느냐.내 어떻게 하나 네 몸을 추세울테니 다시 군복을 입자꾸나.》

며칠후 그는 터밭에서 싱싱하게 자라던 남새들을 뿌리채 들어냈다.대신 그는 갖가지 약초들을 정히 심었다.어떻게 하나 제손으로 자식들모두를 튼튼히 키워 초소에 세우고싶은 간절한 소원을 안고 그는 약초밭을 정성다해 가꾸면서 한편으로는 집짐승을 많이 길렀다.그런 지극한 사랑과 정에 떠받들려 몸이 너무 약해 군대에 나갈수 없다고 하던 넷째도 끝내는 총잡은 녀병사가 되였고 다섯째도 이제 얼마 안있어 초소로 떠나며 셋째도 올해에 다시 군복을 입게 된다.

어머니라면 누구나 자기 자식들이 훌륭하게 자라 나라의 역군이 되기를 바란다.그러나 우리 어머니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소원은 바로 자식들이 나라를 지키는 군대가 되는것이다.

이런 소원을 안고 덕천시 제남동에서 살고있는 송은희녀성도 아홉자식을 낳아 키우고있다.

그러나 자식들이 절로 부모가 바라는대로 훌륭하게 성장하는것은 아니다.

어느해 가을날이였다.그가 애들의 옷을 빨고있는데 넷째의 담임교원이 찾아왔다.그가 하는 말이 넷째가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며 오전수업에만 참가하고 돌아갔는데 혹시 도울 일은 없겠는가고 묻는것이였다.

그제서야 송은희녀성은 그날따라 학교에서 일찍 돌아온 아들이 터밭김을 맨다, 집안팎을 청소한다 하며 자기의 일손을 돕던 모습을 떠올렸다.어머니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그랬다는것을 알지만 그날 저녁 그는 아들의 바지가랭이를 걷어올리고 매를 들었다.

잘못했다고 하는 아들에게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공부를 잘하지 못하고 조직생활에 잘 참가하지 않는 학생은 앞으로 훌륭한 병사가 될수 없다고, 리수복영웅과 같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조국을 지켜싸운 용사들은 모두가 모범학생이였다고.

평시 이웃들에게는 온화하고 부드러운 녀성이였지만 자식들앞에서는 그리도 엄한 어머니인 송은희녀성의 행동을 결코 귀한 자식 매로 키운다는 모성애로만 설명할수 없다.

그는 이웃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나라고 왜 어머니를 생각하는 자식이 기특하지 않겠나요.하지만 그애들은 장차 제 한가정보다 나라일을 먼저 생각하는 군대가 되여야 하지 않나요.인민군대는 나라의 기둥인데 설익은 자식을 군대에 내보낼순 없어요.》

군대에 자식들을 내보내는것만으로는 결코 공민으로서, 어머니로서의 의무를 다했다고 말할수 없다.자식을 훌륭한 사람으로 키워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울 때 조국을 굳건히 지킬 병사를 인민군대에 보냈다고 떳떳이 말할수 있으며 바로 그길에 우리 시대 어머니들의 참된 량심과 애국이 있는것이다.

이런 남다른 지향을 안고 성천군 신지리에서 살고있는 오순옥녀성도 아홉 자식을 키웠다.

사실 그가 자식을 많이 낳게 된데는 남다른 사연이 있었다.금방 가정을 이루었을 때 그의 남편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마음속고충을 터놓았다.누구에게나 한생의 가장 소중한 추억으로 간직되여있는 군사복무시절이 자기에게는 없는것이 나라앞에 빚을 진것만 같다고 하는 남편의 말을 들으며 오순옥녀성은 굳게 마음다졌다.꼭 아들을 낳아 군복을 입히는것으로 남편의 가슴속에 맺혀있는 응어리를 풀어주겠다고.

그런데 그의 소원과는 달리 처음으로 본 자식은 딸이였다.두번째도 그렇고 일곱번째까지 련속 딸을 낳았을 때는 미안하다는 말도 차마 못하는 그에게 남편이 웃으며 한 말은 무엇이였던가.

《일없소.딸이라고 군대가 못된다는 법이야 없지.위대한 장군님께서 내세워주신 엄복순군인가정의 자식들도 녀병사들이요.우리 애들도 나라를 지키는 끌끌한 녀병사들로 키우자구.》

남편의 그 말에 오순옥녀성은 눈물을 쏟고야말았다.그후 크지 않은 그의 집뜨락에는 여러개의 높고낮은 철봉대들이 생겨났고 찬바람부는 겨울에도 이른새벽이면 어김없이 아버지를 따라 아침달리기를 하는 처녀애들의 채랑채랑한 목소리가 온 마을을 흔들었다.

그렇게 몸을 튼튼히 단련하고 군대에 나갔던 맏딸이 두해전 조선로동당원의 영예를 지니고 제대되여 고향에 돌아왔고 세 딸은 군사복무중에 있으며 고급중학교를 졸업한 다섯째는 군복입을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있다.여덟번째만에 본 아들과 막내딸도 아직은 어리지만 누나와 언니들처럼 앞으로 군대에 나가겠다고 말끝마다 외운다고 한다.

정영란, 송은희, 오순옥녀성들은 이렇듯 사는 곳도, 가슴속에 품은 사연도 서로 다르다.그러나 그들이 품고 사는 소원은 오직 하나 군복입은 자식들을 두고 이 병사들이 바로 내 아들딸들이라고 떳떳이 말하고싶은것이다.

어찌 이 세 녀성뿐이겠는가.

뿌리없는 거목을 생각할수 없듯이 어려서부터 가슴속에 조국보위의 소중한 꿈을 심어주고 그 꿈을 꽃피워주기 위해 사랑과 정을 다 바치는 이 나라의 모든 어머니들의 수고를 떠나 어찌 우리 조국의 막강한 군력과 우리가 누리는 행복에 대하여 생각할수 있으랴.

조국의 천리방선과 사회주의건설장마다에서 기적과 위훈을 떨치고있는 미더운 병사들의 뒤에는 바로 이렇듯 조국보위를 최대의 애국으로 여기고 가정에 늘어나는 조선인민군입대증에서 더없는 긍지와 보람을 찾는 훌륭한 녀성들, 장한 어머니들이 있다.

 

어머니의 의무앞에 공민적본분이 있다

 

예로부터 자식 하나 키우는데 오만공수가 든다고 하였다.하물며 아홉이나 되는 그 많은 자식을 키우는데 얼마나 큰 품이 들겠는지 상상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을것이다.

그 수고를 깊이 헤아려 우리 나라에서는 아이를 많이 낳아 키우는 어머니들을 우대하고 존경하며 그들의 생활상편의를 위해 온갖 혜택을 다 베풀어주고있다.

어느한 농장에서 일하고있는 오순옥녀성이 여섯째를 낳았을 때였다.하루는 이웃에 살고있는 사람이 찾아와 하는 말이 이제는 자식들도 적지 않은데 농장일을 그만두어야 하지 않겠는가고 하는것이였다.

그 말에도 일리는 있었다.많은 자식을 키우면서 농사일을 한다는것은 정말 힘에 부친 일이였다.끼니때마다 식사를 준비하자고 하여도 가마를 여러번 갈아대야 했고 어느 하루도 빨래감이 없는 날이 없었던 그에게 제일 귀중한것은 시간이고 정말 그리운것은 잠이였다.그래서 때없이 저도 모르게 일을 그만두고싶은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때마다 떠오른것은 시어머니의 말이였다.사실 그의 시어머니는 처음에 자식을 많이 낳는것을 그리 달가와하지 않았다고 한다.그러나 하나둘 손녀들이 늘어날수록 생각이 달라졌다.매일같이 찾아오는 의사선생님들과 학교선생님들, 다자녀세대라고 특별히 관심하며 식량과 부식물, 땔감이 떨어질세라 보살펴주는 농장일군들의 모습을 대할 때마다 시어머니는 눈굽을 적시며 말하군 했다.

《나라없던 그 세월에 우리 어머니는 무자식이 상팔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외우군 했지.하지만 로동당시대에는 자식을 많이 낳을수록 복을 받는구나.지금같이 나라가 고난을 겪고있는 때에도 말이다.》

그러면서 그더러 자기가 애들을 잘 돌볼테니 아무 근심말고 일을 잘하라고 이르군 하였다.

시어머니는 세상을 떠났지만 나라의 은혜를 순간도 잊지 말라고 하던 절절한 당부가 귀전에 들려오는듯하였다.더우기 당에서 식량문제를 놓고 그처럼 근심하고있는데 한평의 땅이라도 더 일구어 농사를 짓는것이 공민의 본분이 아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그는 농사일을 그만둘수 없었다.그후 일곱째딸이 태여난 후에도 그는 꿋꿋이 자기 포전을 지켰다.

그런데 어찌 알았으랴.제4차 전국어머니대회에 자기도 참가하게 될줄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모시고 영광의 기념사진을 찍던 한생토록 잊지 못할 그날 그는 마음속으로 결의다졌다.자식들도 훌륭히 키우고 농사일도 더 잘하여 당과 국가의 크나큰 은덕에 기어이 보답하겠다고.

뜻깊은 그날 승호군의 정영란녀성도 이런 물음앞에 자신을 세워보았다.

내 과연 이런 영광을 받을만큼 해놓은 일이 있는가.

그때까지만 하여도 어머니로서 자식들을 훌륭히 키워 내세우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해온 그였다.그러나 자기와 나란히 대회장에 들어선 어머니들의 모습을 한명한명 새겨볼수록 생각이 많아졌다.부모잃은 아이들을 맡아 키우고있는 어머니들이며 초소에서 병사들의 어머니로 묵묵히 헌신의 자욱을 새겨가고있는 군인가족들, 가슴에 훈장과 메달을 번쩍이는 녀성과학자들과 로력혁신자들…

그들도 자식을 가진 어머니들이지만 그보다 나라의 공민으로서의 의무를 앞에 놓고 그것을 다하기 위해 가정의 행복을 바쳐가고있지 않는가.

정영란녀성의 마음속에는 이제부터 아이들도 더 잘 키우고 사회와 집단을 위한 좋은 일을 많이 찾아하리라는 결심이 자리잡게 되였다.

얼마후 그는 조국보위초소들과 사회주의건설장들에 보낼 원호물자를 성의껏 마련했다.살림살이가 넉넉해서가 아니였다.오히려 아홉 자식이나 둔 그의 가정에는 다른 집들보다 필요한것이 더 많았고 그런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하여 탓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한 가정의 어머니이기 전에 이 나라의 공민이라는 자각과 함께 조국의 안녕과 번영속에 가정의 행복도, 자식들의 밝은 미래도 있다는것을 깨달은 그였기에 력사적인 당 제7차대회를 앞두고 있은 충성의 70일전투의 나날 남편이 일하는 광산에 자식들과 함께 찾아가 로동자들을 고무해주었다.

이런 사연은 덕천시의 송은희녀성에게도 간직되여있다.

앞에서도 말하였지만 그의 넷째아들은 중학시절에 제멋대로인 성격때문에 부모와 선생님들의 애를 어지간히 태웠다.그 성격을 고쳐주자고 담임선생은 높은 산언덕에 자리잡고있는 그의 집으로 매일이다싶이 걸음을 했다.어제는 맏이의 담임교원으로 학습지도를 위하여 찾아왔고 오늘은 넷째의 담임교원으로서 아름다운 품성을 키워주기 위해 수십리길도 마다하지 않는 그 모습에 눈물을 흘린적은 얼마였던가.

어느해인가 운동회날에는 이런 일도 있었다.며칠전부터 몸이 불편하여 자리에 누워있던 송은희녀성은 자식들의 운동회준비를 잘해주지 못해 마음이 무거웠다.그런데 저녁이 되여 자식들이 밝게 웃으며 집에 들어서는것이 아닌가.

저저마다 어깨에 멘 불룩한 가방들에는 갖가지 간식이 한가득 채워져있었다.

알고보니 애들의 담임선생님들과 운동회를 보려고 학교에 왔던 다른 학부형들이 넣어주었다는것이였다.

송은희녀성은 눈굽이 뜨겁게 달아올랐다.나라를 위해 큰일을 해놓은 가정도 아니고 단지 자식이 많은 집이라고 뜨겁게 생각해주는 그 지극한 마음에 어느 누구인들 감동되지 않겠는가.

비단 그뿐이 아니였다.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간 둘째가 고향에 보내온 편지마다에서 우리 녀맹원어머니들은 다들 잘 지내는가고 안부를 꼭꼭 물은데도 사연이 있었다.둘째아들이 군복을 입고 조국보위초소로 떠나갈 때 막내를 낳은지 한주일밖에 안된 송은희녀성을 대신하여 바래워준 사람들이 바로 동초급녀맹일군들과 녀맹원들이였던것이다.

이런 가슴뜨거운 사실들을 꼽자면 끝이 없다.하기에 아홉 자식을 키우는 속에서도 사회와 집단 그리고 이웃들을 위한 좋은 일을 찾아하기 위해 애쓰는 그의 수고에 대하여 사람들이 감탄할 때마다 송은희녀성은 이렇게 말하군 했다.

《그애들을 내가 키웠나요.다 나라에서, 이 고마운 사회주의대가정이 키워주었지요.나는 그저 고마운 사람들에게 조금이나마 보답하고싶었을뿐입니다.》

이런 송은희녀성을 두고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고있다.그는 정말 로력영웅의 자격이 있다고.

그렇다.

세 어머니의 가슴에 빛나는 로력영웅메달, 그것은 단순히 자식을 많이 낳은데 대한 표창만이 아니다.자식들모두를 조국의 미래를 떠메고나갈 대들보감으로 훌륭히 키우고있을뿐 아니라 그들자신이 나라를 받드는 초석이 되고저 묵묵히 바쳐온 성실한 땀과 노력에 대한 값높은 평가이다.

이런 훌륭한 어머니들을 우리 어찌 조국을 위해 사랑과 정을 다 바치는 애국자들이라고 소리높이 자랑하지 않을수 있으랴.

글 및 사진 본사기자 김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