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5월 11일 로동신문
고결한 충성의 삶은 오늘도 우리를 영광의 한길로 이끈다
1970년대 당의 령도계승시기 일군들이 지녔던
1970년대는 우리 혁명발전에서 특별하고도 중대한 의의를 가지는 시기였다.
세상을 놀래우는 창조와 기적으로 수놓아진 긍지높은 그 년대에 얼마나 많은 충신, 애국자들의 이름이 새겨졌던가.그 전렬에
그들의 나이와 생활경위, 초소와 직무는 달라도 하나와 같이 찾게 되는 공통점이 있다.그것이 바로 그 어떤 사심도 가식도 없이, 그 어떤 풍파속에서도 변함없이
그들은 지금 우리곁에 없다.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자기
《우리 혁명력사에는 당과
1970년대 당의 령도계승시기 일군들의 정신세계와 일본새, 투쟁기풍은 오늘도 우리모두가 따라배워야 할 귀감으로 된다.
그가운데서도 자기
수십년전 조세웅동지가 평안북도의 어느한 기계공장에서 당사업을 할 때 있은 일이다.그때 한 반당수정주의분자는 그 무슨 《10개년계획》이라는것을 내들고 련못을 파라, 정각을 지으라, 무도장을 꾸리고 오작교를 놓으라는 등 황당한 지시를 내리먹이였다.그자가 조세웅동지가 사업하는 공장에까지 내려와 자기 지시를 집행하라고 강박할 때 그는 《우리는
우리는 7개년계획밖에 모른다!이 말은
하다면 조세웅동지는 어떤 사람이였는가.해방전 가난한 산당집의 맏아들로 태여난 그는 부자집자식들이 놀려대는 《꼬맹이산당지기》라는 수모에서 벗어나보려고 산골에서 뛰쳐나와 공사판들을 헤매며 피눈물나는 고역을 강요당하였다.해방후에야 비로소 새 생활을 누리게 된 그는 오래동안 청년사업에 종사하였으며 그후 당일군으로 성장하였다.
막벌이군로동자로부터 청년일군, 당일군으로
1970년대 당의 령도계승시기 일군들은 모두 자기를 키워주고 내세워주신
하기에 그들은
어느해 여름
《내 눈에 피발이 좀 선것은 일없소.아직 나는 입술이 터질만큼 힘들게 일하지는 못하였소.우리가 눈에 피발이 서고 입술이 부르트도록 일해야
이렇게 밤과 낮이 따로 없는 나날을 보내면서 심창완동지는 지칠줄 모르는 열정으로 공사를 힘있게 추진시켜 7개월 남짓한 기간에 대상건설을 완전히 끝낼수 있었다.
1970년대 당의 령도계승시기 일군들이 당에서 준 과업을 그 어떤 조건과 환경속에서도 훌륭하게 수행할수 있은것은 결코 직무가 높거나 뛰여난 능력을 타고나서도, 그 어떤 특별한 교육을 받아서도 아니였다.
《충성심의 높이는 곧 실력의 높이, 사업실적의 높이이다.누구나 열성 하나만 가지고는 충성할수 없다.특히 조국이 가장 준엄한 시련을 겪고있는 지금은 우리 간부들이 빈말로써가 아니라 오직 실력의 높이, 실적의 높이로 충성할 때이다.》 직위와 간판만으로는, 빈구호나 맹세만으로는 결코 당에 충성할수 없으며 자기에게 맡겨진 과업은 열가지든 백가지든 훌륭하게 감당해나갈수 있는 높은 실력을 갖춘 일군이라야 참된 충신이 될수 있다는것이 그 시기 일군들이 지니고있던 한결같은 신조였다.
1970년대중반기부터 우리 나라의 일터와 가정들에서는
하지만 한없이 겸허하신
《오늘 그이로부터 모진 비판을 받았다.초상화요, 노래요 하면서 자신을 너무 내세운다는것이였다.이 비판만은 정말이지 접수할수가 없다.그것은 강물이 왜 바다로 가는가고, 꽃더러 왜 해빛을 따르는가고 탓하는것과 같기때문이다.의도적으로 한번 가보자고 떠난 길이라면 비판을 받고 움츠러들겠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들자신도 우리를 멈춰세울수 없는것을 어찌하랴.사실 우리가 그토록 충실할수밖에 없게끔 만드신분은 바로
이렇듯 1970년대 당의 령도계승시기 일군들은
이런 그들에게 있어서 제일 행복한 날은 언제였던가.어느해 여름
《정말 고맙소.
리찬선동지가 림종을 앞두고
《저는 저와 같이
생명이 끝나는 마지막순간에도 자기 가정, 자기 자식들이 아니라 오직
이 땅에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전세대들의 충성의 일편단심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살아야 한다.
살아도 죽어도 오직
우리 전세대들이 걸어온 티없이 깨끗한 충성의 삶은 이 진리를 가르쳐주며 오늘도 우리를
본사기자 김송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