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5월 13일 로동신문

 

헌신적인 삶에 대한 인민의 공감과 지향은 이렇게 크고 열렬하다

당과 조국을 받들어 한생을 불같이 살아온 서재렬녀성과 혈연의 정을 맺고
그와 같은 애국의 자욱을 새겨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소행을 놓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과 같이 혁명적이고 고상한 사상정신적풍모를 지니고 살며 투쟁하는 훌륭한 인민은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난 기간 신문과 방송에는 단발머리병사시절부터 80고령의 오늘까지 당과 조국을 받들어 한생을 불같이 살아온 서재렬녀성과 스스로 그의 친자식이 된 수많은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널리 소개되였다.

하지만 우리가 오늘 서재렬녀성의 생활과 잇닿은 가지가지의 이야기들을 다시금 펼치게 되는것은 단지 그 어떤 미풍과 미덕을 소개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이 시각도 수많은 사람들이 한 인간이 보여준 참된 삶의 모범을 진심으로 긍정하고 뜨겁게 호응하며 적극 따라배우고있는 격동적인 현실을 통하여 우리 인민의 한결같은 지향과 고결한 사상감정이 어떤것인가를 온 세상에 소리높이 전하기 위해서이다.그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사람들이 온 나라 인민의 지지와 선망의 대상으로 되는가, 어떤 삶이 가장 참되고 가치있는것으로 공감되고 찬양받는가 하는데 대한 하나의 명백한 대답으로 된다.

 

《인생의 교본을 안고 갑니다》

 

《어머니들이 애기에게 젖을 먹이러 갈 때 난 내 살붙이나 같은 꽃나무들에 물을 주러 가군 했어요.애기들의 울음소리가 들릴 때면 꽃나무들이 목이 마르다고, 물을 달라고 하는것만 같았고.다른 어머니들이 영웅이 된 아들딸을 보며 기뻐할 때 난 무럭무럭 자라는 꽃과 나무를 보며 보람과 행복을 찾군 했습니다.》

이것은 지금으로부터 여러해전에 진행된 TV축하무대 《온 나라 아들딸들의 축하의 꽃다발을 받으시라》에서 서재렬녀성이 한 이야기이다.

17살 꽃나이병사시절 전우들과 인민들을 위해 자기의 피와 살을 서슴없이 바쳤고 특류영예군인과 한가정을 이룬 후 원군사업과 사회주의건설장들에 대한 지원사업에 언제나 앞장섰으며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80고령에 이르도록 나라위한 보답의 한길만을 꿋꿋이 걸어온 애국자할머니,

그의 솔직하고 소박한 이야기에 누구나 눈시울을 적시였다.녀성으로서 응당 누려야 할 모성의 기쁨도 없었지만 그 모든 권리우에 헌신의 의무를 놓고 한생토록 충성과 애국의 길을 묵묵히 걸어온 녀인, 만수대언덕과 만경대혁명사적지를 비롯한 성지마다에 심어가꾼 수만그루의 꽃과 나무들을 귀여운 자식삼아 살아왔다는 그의 이야기가 너무도 가슴을 울렸던것이다.

그후 평양시는 물론 멀리 리원군과 천마군, 은률군을 비롯한 온 나라 곳곳에서 편지가 날아들었다.출입문에 불이 일 정도로 사람들이 찾아왔고 하루종일 전화종소리가 그칠줄 몰랐다.

그 과정에 전국각지의 많은 사람들이 서재렬녀성과 혈연의 정을 맺었다.그들속에는 나어린 학생도 있고 20대 단발머리처녀도 있었으며 예순고개를 훨씬 넘긴 로인도 있었다.하는 일 또한 각이했다.누구는 사회안전원, 누구는 상점판매원이였고 또 누구는 어느한 중앙기관의 일군…

그런 사람들이 무려 백수십명이나 된다고 하니 그 많은 사람들을 자석처럼 끌어당긴 힘은 과연 무엇인가.

나이도 직업도 다른 그들이 처음 서재렬녀성의 집문을 두드리게 된 동기는 80고령에 이르도록 나라를 위해 헌신해온 그의 여생을 보살피고 슬하에 일점혈육없이 홀로 살아온 그에게 친자식의 따뜻한 정을 안겨주고싶어서만이 아니다.그를 둘러싸고 근 10년세월 하루와 같이 이어져오고있는 남다른 인간관계를 그 어떤 미덕과 미풍의 소행만으로는 다 설명할수 없다.

서재렬녀성의 친혈육으로 살고있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자.

《어머니에게서 지금껏 정말 많은것을 배웠습니다.》

《우리가 돕는것이 아니라 할머니가 우리에게 천금보다 더 귀중한 사상정신적량식을 주고있습니다.》

《무엇인가 바치고싶어 왔다가 비할수없이 큰것을 얻고 갑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이 진심!

정녕 그것은 전우를 위해 피와 살만이 아닌 청춘을 바치고 한생을 바친 참된 인간, 키워주고 내세워준 품을 열과 정을 다해 따르고 충직하게 받들어온 고결한 삶에 대한 열렬한 공감과 긍정이였다.그런 숭고한 정신세계에 자기들도 함께 발맞추려는 불같은 지향이고 열망이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서재렬녀성은 단순히 혈육의 정을 맺고싶은 마음씨 아름답고 정깊은 녀인만이 아니였다.당과 조국을 받드는 참된 마음, 옳바른 삶이란 어떤것인가를 가르쳐주는 스승이고 혁명동지였으며 인생의 산 모범이였다.

하기에 그들모두는 서재렬녀성을 삶의 거울로 삼고 자기의 사상정신과 생활의 갈피갈피를 비추어보며 이런 시대적물음앞에 스스로 서군 했다.

나도 그처럼 받아안은 은혜를 잊지 않고 참되게 살고있는가.

바로 그처럼 나의 본분과 의무를 시대가 바라는 높이에서 수행하고있는가.

내 마음도 어머니당과 조국의 따사로운 사랑을 안고 사는 그의 마음처럼 한없이 고결하고 깨끗한가.

어느 사회에나 선망과 동경의 대상으로 되는 사람들이 있고 누구나 본받고싶은 인생이 있기마련이다.

황금만능의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거액의 재부를 한손에 거머쥔 자산가들이 뭇사람의 시선을 받는다.남이야 어떻게 되든말든 자기 하나만의 리익을 절대시하는 인생관을 추구하며 그길에서 《성공》한 사람만이 선망의 대상으로 된다.

서재렬녀성에게는 자식도, 눈에 띄울만한 재산도 없다.직권과 금전만을 따지는 자본주의사회 속물들의 눈으로 보면 그는 아마 외롭고 불행한 녀인일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 사회주의사회는 조국을 위해 바치는 삶을 가장 아름다운 삶으로, 그런 인간을 시대의 참된 본보기로 값높이 평가하고 내세웠다.

이렇듯 서재렬녀성과 그를 둘러싸고 펼쳐지는 가지가지의 이야기는 결코 단순한 미풍과 미덕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는 어떤것을 가장 아름답게 보는가 하는 우리 시대 인간들의 미학관에 대한 문제이며 어떻게 살며 투쟁하는것이 가장 옳바른 생으로 되는가 하는 참된 인생관에 대한 문제이다.

인생과 그 가치에 대한 우리 인민의 견해와 지향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하나는 전체를 위하여,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라는 집단주의구호를 높이 들도록 해주신 천리마시대에나, 위대한 장군님을 따라 고난과 시련을 승리적으로 뚫고나가던 나날에나 그리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를 높이 모시고 천만의 뭉친 힘으로 새로운 승리를 향해 나아가는 오늘에나 변함이 없다.

하기에 서재렬녀성과 한식솔을 이룬 사람들은 누구나 말한다.

순간순간 참된 삶의 교본을 받아안는다고.

 

너도나도 함께 걷는 길

 

한사람의 긍정이 열백의 긍정을 낳고 하나의 모범이 수천의 모범을 낳는것은 우리 사회의 고유한 륜리이다.

세해전 가을 실버들 우거진 보통강기슭에 그린듯이 앉아있는 한 처녀가 있었다.창광원 로동자 최홍심동무였다.

그는 당보에 실린 서재렬녀성에 대한 기사를 읽고있었다.몇번씩이나 읽어 이제는 뜬금으로도 외울수 있는 기사였지만 보면 볼수록 그의 충성과 헌신의 한생에 가슴뜨거워지고 한번도 만난적 없는 그가 마치도 친혈육처럼 정깊게 여겨지는것이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큰어머니에 대한 면회로 김만유병원을 찾았던 최홍심동무는 뜻밖의 일에 부닥쳤다.바로 그 호실에 그토록 만나고싶었던 서재렬녀성이 입원해있었던것이다.

처녀는 면회시간이 어떻게 흐르고 지나는지 미처 의식하지 못했다.늘 맘속으로 그려보군 한 애국자할머니가 바로 자기앞에 있다는 사실, 중병을 앓고있는 그를 위해 입원실문이 닫길새없이 찾아오는 수많은 사람들의 진정앞에서 그저 눈굽이 뜨거워질뿐이였다.더우기 그들모두가 서재렬녀성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본받아 나라를 위한 애국의 길을 걷고있는 훌륭한 사람들이라는 사실은 선동원이며 청년해설원인 그의 가슴을 끝없이 울려주었다.

얼마후 창광원의 청년학교에 일곱명의 처녀들이 모여앉았다.최홍심동무로부터 사연깊은 이야기를 전해들은 그들은 서재렬녀성을 따라배워 청춘시절을 값있게 보낼 불같은 결의를 다졌다.

그때부터 애국자할머니에게로 향한 그들의 발걸음은 언제 한번 드틴적이 없었다.기쁠 때도 찾았고 힘들 때도 찾았다.

서재렬녀성의 모습에 자신들을 비춰보며 집단과 동지를 위해 좋은 일을 스스로 찾아하고 맡은 일을 깐지게 하기 위해 아글타글 애썼다.더 많이 일하고 더 많이 바치고싶어 남먼저 출근하고 제일 늦게 퇴근하는 나날 그들은 일터의 자랑으로, 본보기집단으로 성장했으며 오늘은 그들만이 아닌 김진옥, 조정옥동무를 비롯한 온 작업반원들이 늘 《서재렬할머니와 나》라는 마음속글발을 안고 나라를 위한 애국의 길, 헌신의 길을 힘차게 걷고있다.

여러해전 뜻깊은 TV축하무대가 있은 날 밤이였다.

만경대구역 팔골2동 22인민반에서 살고있는 오영순녀성은 쉬이 잠들수 없었다.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가장 깨끗한 량심과 의리로 간직하고 산 한 인간의 값높은 한생에 머리가 숙어졌다.

이튿날 오영순녀성은 자식들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말했다.

예로부터 은혜를 알아야 인간이고 갚을줄 알아야 참사람이라는 말이 있다.이제부터 서재렬할머니의 뒤를 따라 우리도 보답의 한길만을 걷자.

한인민반에서 사는 홍성옥녀성도 마찬가지였다.지난 시기 원군사업에 앞장섬으로써 TV축하무대에 서재렬녀성과 나란히 섰었지만 그의 남다른 인생행로에 비해볼 때 너무도 한 일이 적은것만 같은 심정이였다.이튿날 서재렬녀성의 집으로 들어선 두 녀인은 비록 예순고개를 바라보는 나이였지만 그의 품에 스스럼없이 안기였다.

《오늘부터 저희들이 어머니의 친딸입니다.60여년세월 어머니가 걸어온 길을 이제는 우리가 이어가겠습니다.》

긴말은 필요없었다.세상에 심장의 언어보다 더 진실하고 뜨거운것이 어디에 있으랴.

오영순, 홍성옥녀성은 자신들은 물론 온 가정이 그의 고결한 정신세계를 따라배워 절세위인들을 순결한 량심과 의리로 받들며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한 애국사업에 앞장서도록 했다.

금수산태양궁전지구의 수목원과 만경대혁명사적지주변에 수백그루의 진귀한 꽃과 나무를 심어가꾸고 려명거리와 송화거리, 화성거리건설장을 비롯한 건설전역마다에 아낌없는 지성을 바쳐오는 나날 오영순녀성과 맏딸 김류화동무, 손녀와 손자들인 박연정, 유성룡학생은 여러 차례에 걸쳐 당에 기쁨을 드리였고 조선소년단 제9차대회에 대표로 참가한 박연정학생은 지난 새해의 첫날 경애하는 아버지원수님을 몸가까이 모시고 기념사진을 찍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다.

얼마전 서포지구 새 거리건설장의 한복판에 류다른 공연무대가 펼쳐졌다.오영순, 홍성옥녀성과 그의 자식들이 출연한 가족중창단공연이였다.

그날 청년건설자들의 투쟁을 고무하여 그들이 부른 노래, 그것은 단순한 노래가 아니였다.서재렬녀성과 같은 참된 애국자들의 넋을 이어 당을 따라 충성의 한길을 끝까지 가고갈 그들의 철석같은 신념의 분출이였다.

오늘 서재렬녀성은 자기를 친어머니로 모시려는 고마운 마음에 이끌려 대성구역 룡흥2동의 높다란 아빠트에 삶의 보금자리를 펴고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있다.그 가슴뜨거운 소행의 주인공은 다름아닌 그날의 TV축하무대를 사회했던 조선중앙방송위원회 공훈방송원 박옥희동무이다.

서재렬녀성을 집으로 모셔온 날 그들부부는 조국보위초소에 서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한생 당과 조국을 받들어 참되게 산 서재렬할머니는 또 한분의 친할머니이라고, 그의 삶을 본받아 군사복무시절을 충성과 위훈으로 빛내여가라고.

그로부터 얼마후 한설혁동무가 복무하는 중대주변에 소나무와 황목련, 향나무를 비롯한 갖가지 나무들이 정히 심어졌다.서재렬녀성의 헌신과 정성, 부모들의 뜨거운 당부가 깃든 뜻깊은 나무들이였다.

그 나무들을 정성껏 가꾸며 복무의 나날을 빛내여온 그는 지난해 김일성종합대학에 입학한 기쁨을 안고 만경봉의 솔씨를 받아 키운 애어린 소나무를 교정에 심었다.그리고 맹세다졌다.

서재렬할머니처럼 일편단심 당만을 굳게 믿고 따르는 참된 충신이 되리라.

만사람이 공감하는 숭고한 정신세계, 참된 인간이 울리는 시대의 진폭은 이렇듯 크고 열렬하다.그것은 하나의 충실한 씨앗에서 무성한 잎새가 펼쳐지고 알찬 열매가 무르익듯이 이 땅에 더욱 아름다운 충성과 애국의 화원으로 만발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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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렬녀성과 한식솔을 이룬 수많은 사람들, 그들은 수령에 대한 충실성을 가장 깨끗한 량심과 의리로 간직하고 가사보다 국사를 먼저 생각하며 나라의 부강번영을 위해 성실한 피와 땀을 아낌없이 바쳐가는 우리 인민의 모습그대로이며 천만대오가 애국의 발걸음을 함께 하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과도 같다.

온 나라가 이런 하나의 지향과 숨결로 높뛰고있기에 사회주의 새 승리를 향해가는 우리의 발걸음이 그토록 힘있고 줄기찬것이다.

글 본사기자 리남호
사진 본사기자 최충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