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7월 5일 로동신문
영광스러운 전승세대에 대한 긍지높은 추억-그들처럼 영원히 승리하리라 1950년대 영웅세대의 특질-대중적영웅주의 평범한 청년들이였지만 전장에서는 용사들이였다
《우리 인민군용사들과 민청원들이 발휘한 영웅주의는 대중적영웅주의입니다.그들은 특별한 사람도 비범한 사람도 아니고 모두가 다 어제날의 평범한 로동자, 농민, 청년학생들이였으나 전쟁에서 모두가 영웅적으로 살며 싸웠습니다.》 조국해방전쟁사에 특기된 모든 승전의 주인공들은 지극히 평범한 청년들이였지만 조국을 지키는 전장에서는 결코 평범하지 않은 민족의 장한 아들딸들이였다. 그가운데는 뙤약볕이 내려쪼이고있던 주체41(1952)년 7월 11일, 평양상공으로는 적들의 수많은 각종 비행기가 갑자기 갈가마귀떼처럼 날아들었다. 적기들은 고사포진지상공에서 단일고도가 아니라 세개 층의 고도에서 각이하게 기동하면서 폭탄과 기총사격을 퍼붓고있었다.그야말로 피의 결사전이였다. 이날 아침부터 치렬하게 진행된 대공전투는 다음날인 7월 12일까지 계속되였다.적들은 이 하루동안에 25~500kg짜리 폭탄을 무려 1 392발이나 투하하였으며 1 534회에 걸쳐 기총소사를 하고 소이탄까지 미친듯이 퍼부어 평양시내를 불바다로 만들어놓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하지만 적폭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는 속에서도 최고사령부직속 근위 제19고사포병련대 1대대 전투원들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찾는 사람들은 오늘도 포항의 16용사라는 부름과 더불어 영생하는 영웅전사들의 사진앞에서 발걸음을 쉬이 옮기지 못한다. 바로 이들이 포항계선의 무명고지와 384.6고지를 점령하고 끝까지 사수하는 전투에서 무비의 용감성과 희생성,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하여 빛나는 위훈을 세움으로써 1950년 8월중순 영웅적인민군대의 맹렬한 반공격에 의하여 락동강계선까지 쫓겨간 미제는 제놈들의 마지막지탱점인 부산의 관문이라고 할수 있는 포항을 견지하기에 미쳐날뛰였다.적아간의 공방전은 포항의 관문이라고 할수 있는 무명고지와 384.6고지에서 치렬하게 벌어졌다. 우박치듯 쏟아지는 총탄과 포탄속에서도 인민군용사들은 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맹렬한 기세로 돌진하였다.적참호에 뛰여든 차린호동지는 적병 4놈을 단숨에 찔러눕혔으며 리영춘, 김상태, 장병달분대장들과 량관옥, 정인선전사들은 총창과 총탁 그리고 공병삽으로 발악하는 적들을 수십놈이나 료정냈다.오상진분대장도 대항하는 적들에게 불벼락을 안겨 30여놈을 살상하였다.인민군전투원들은 끝끝내 무명고지와 384.6고지를 탈환하였다. 하지만 그것을 다시 차지하려고 달려드는 적들의 발악적인 공격으로 하여 가렬한 전투는 계속되였다.피어린 격전끝에 384.6고지와 무명고지에는 각각 8명의 용사만이 남게 되였다.그러나 그들은 적들의 끈질긴 공격을 물리치면서, 굶주림과 갈증을 이겨내면서 고지를 끝까지 사수하였다.리히욱동지는 《동무들! 이처럼 포항의 16용사는 한주일동안에 수십차례나 되는 적들의 집요한 공격을 물리침으로써 련합부대의 공격작전에 유리한 조건을 마련하였다. 조국해방전쟁행정에서 별로 큰 전투도 아니였지만 이 전투가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들이 더 많던 조국의 서해의 작은 섬 월미도에서 벌어진 가렬한 전투는 우리 인민군대의 대중적영웅주의를 론할 때마다 손꼽히군 하는 전형적인 전투로 후세에 길이 전해지고있다.그것은 이 싸움이 조선인민군의 평범한 전투원들이 적은 력량으로 5만의 대병력과 수백척의 함선, 약 1 000대의 비행기와 맞서싸워 세계전쟁사에 있어본적이 없는 군사적기적을 창조한 전투이기때문이다. 1950년 9월 10일부터 련 3일째 들씌워지는 포격과 폭격으로 하여 월미도는 통채로 불타고 순식간에 재더미로 화하였다.상륙작전을 개시한 9월 13일에도 미제는 이른새벽부터 수백문의 함포들로 포탄을 마구 퍼부었고 전투기들과 함재기들을 동원하여 휘발유통과 폭탄을 쏟아부었다.그러나 포화속에서도 죽지 않는 불사조와도 같은 용감한 우리 인민군용사들은 일제히 포문을 열어 미제의 함선들에 맹렬한 포사격을 들이대였다. 적들의 야수적인 포격과 폭격으로 하나밖에 남지 않은 샘물마저 파묻혀 갈증을 가실 한모금의 물조차도 구할 길 없었지만 월미도의 해안포병들과 보병들은 적들의 대상륙집단을 맞받아 단 1문밖에 남지 않은 포로 마지막포탄이 없어질 때까지 적함을 쏘았으며 중기관총, 경기관총, 기관단총으로 적의 상륙정들에 집중사격을 퍼부었다. 리대훈중대장이 지휘하는 해안포병중대는 해안포병들과 보병전투원들은 9월 13일부터 15일까지의 3일동안에 적구축함 3척을 포함하여 각종 함선 13척을 격침격파하고 적의 상륙을 지연시킴으로써 후퇴하는 인민군부대들에 천금보다 귀중한 시간을 보장하여주었으며 최고사령부의 전략적인 작전실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세계전쟁사에 일찌기 있어본적이 없는 이런 영웅적위훈의 원천은 과연 어디에 있는것인가. 지난 3년간의 조국해방전쟁에서 평범한 인민군용사들이 이처럼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높이 발휘할수 있은것은 그들모두가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 70년세월이 흘렀지만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여 미제에게 참패를 안긴 1950년대 조국방위자들은 우리들의 가슴속에 오늘도 래일도 영원히 백절불굴하는 본사기자 안성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