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7월 21일 로동신문

 

만대에 빛나라 위대한 전승의 혁명대학이여!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70년사가 전하는
절세위인들의 거룩한 령도의 자욱을 더듬어

 

이 땅에 전승의 축포가 터져오른 때로부터 어느덧 70돌기의 년륜이 새겨지고있다.

영웅조선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처음으로 청사에 빛나게 새겨넣은 전승세대의 불멸의 공적이 더더욱 부각되고 공화국력사에 가장 큰 승리봉을 떠올린 긍지높은 년대에 대한 추억과 자부심이 날로 더해가고있는 지금 온 나라 인민과 인민군장병들의 마음이 끝없이 달려가는 곳이 있다.

보통강기슭에 웅장하게 솟아있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후대들이 참관을 통하여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령도업적과 전쟁시기에 인민군용사들과 인민들이 발휘한 영웅적투쟁정신을 따라배우고 그 정신으로 무장하도록 하는 훌륭한 교양거점이 되게 하여야 합니다.》

기나긴 인류사의 갈피를 더듬어보면 전쟁도 많았고 전승을 이룩한 나라들도 많았다.승리의 력사를 후세에 전하기 위해 세운 기념비나 박물관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세상사람들도 한결같이 공인하는바와 같이 영웅조선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처럼 단순히 전승의 유산을 전시하고 보존하는 장소가 아니라 승리의 고귀한 전통을 가르치고 전승세대의 사상과 정신을 줄기차게 이어나가도록 새세대들을 억세게 키워주는 대학과도 같은 교양거점은 세계의 그 어디에도 없다.

영웅조선의 승리전통을 창조하시고 굳건히 이어주신 절세의 위인들의 령도업적을 길이 전하는 혁명박물관, 보병총으로도 원자탄을 이길수 있다는 전승철학을 가르치는 혁명대학,

이 성스러운 이름에 바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우리 혁명과 공화국력사에서 차지하는 지위가 있고 절세의 위인들께서 조국과 후손만대를 위해 쌓아올리신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 담겨져있다.

 

전화의 불길속에서 설계된 기념관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전후복구건설의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주신 전설같은 사실에 대하여서는 우리 인민 누구나 다 알고있다.하지만 바로 그 나날에 우리 수령님의 발기와 지도에 의해 전승의 기념관이 설계되고 준비사업이 추진되고있은데 대하여서는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전쟁의 포화가 멎은 때로부터 20여일밖에 안되던 주체42(1953)년 8월 17일이였다.어디서나 전쟁의 피해를 가시기 위한 복구건설의 마치소리 높이 울리고있던 그때 평양의 해방산기슭에서는 온 나라, 전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조국해방전쟁승리를 기념하는 조선인민군종합전람회가 성대히 열리였다.

비행기며 땅크, 포를 비롯하여 조국해방전쟁사와 더불어 길이 전해질 무훈담들과 만단사연들이 깃든 전투기술기재들, 각종 문건들, 사진, 미술작품, 1211고지 갱도모형, 미제의 패배상을 보여주는 전리품들 그리고 승리를 위해 귀중한 청춘과 목숨을 서슴없이 바쳐 싸운 유명무명의 영웅전사들이 고지우에 휘날리던 공화국기발, 피묻은 당원증들, 화약내배인 맹세문과 영웅들의 사진, 고향에 보낸 용사들의 편지, 화선악기들…

잊을수 없는 귀중한 추억들과 승리자의 자부심으로 가슴부풀게 하는 전람회장의 곳곳에서는 놀라움과 감탄이 연방 터져나왔다.

《엊그제까지 페허였던 곳에 언제 이런 희한한 전람회장을 일떠세웠을가?》

《여기에 우리 전우들의 피가 슴배인 당원증도, 전투에 나가기 전에 쓴 맹세문도 있구만.》

그러나 참관자들은 3년의 전승사를 한가슴에 안아보게 하는 이 전람회가 어떻게 되여 이렇듯 빨리, 의의있게 열리게 된것인지 그 사연을 미처 알지 못하였다.

주체42(1953)년 3월 6일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시고 조국해방전쟁이 우리 인민군대와 인민의 승리로 끝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하시면서 전쟁이 끝나면 인차 종합전람회를 열수 있도록 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일군들은 누구나 놀랐다.그때로 말하면 미제가 대병력으로 《신공세》를 감행하여 전쟁형세를 역전시켜보려고 악착스럽게 발악하고있던 시기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흥분된 일군들을 둘러보시며 종합전람회를 잘 준비하면 우리 당의 령도밑에 인민들과 인민군장병들이 미제침략자들을 반대하는 조국해방전쟁에서 이룩한 불멸의 업적과 위훈을 후대들에게 길이 전할수 있으며 많은 사람들을 혁명적으로 교양할수 있다고 하시였다.그러시면서 세계 혁명적인민들에게도 조선인민이 미제침략자들과 어떻게 싸워 이겼는가 하는것을 생동하게 보여줄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조국과 인민의 운명을 책임지시고 승리를 위하여 3년세월 위험천만한 화선길도 서슴없이 걸으신 우리 수령님, 그이께서 헤쳐오신 전화의 불바다길은 진정 몇천몇만리였고 그 헌신의 자욱우에 태여난 승전의 위훈과 전설들은 또 얼마였던가.

최고사령부를 승리의 기치로 우러르며 전선과 후방에서 생명도 아끼지 않고 결사전을 벌리고있는 사랑하는 군인들과 인민들, 그들을 이끌어 전화의 불길속을 앞장에서 헤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심중에 후손만대가 잊지 말아야 할 승리의 피어린 력사를 길이 전하는 불멸의 기념비를 세우실 또 하나의 숭고한 책임감이 깊이 간직되여있은줄 과연 누가 알았으랴.

탄알이 떨어지면 수류탄으로, 수류탄이 떨어지면 육탄으로 원쑤의 숨통에 복수의 총창을 꽂으며 반드시 승리를 쟁취하고야말겠다는 맹세문을 남기고 판가리결전에 나갔던 전사들, 불뿜는 적의 화구를 한몸으로 막아 돌격로를 열고 중기관총의 압철을 턱으로 누르며 최후의 순간까지 멸적의 총탄을 날린 불굴의 용사들, 석수가 떨어지는 갱도속에서 맨손으로 피대를 돌리면서까지 생산을 중단하지 않은 군자리로동계급이며 적들의 맹폭격속에서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며 전시식량증산에 이바지한 후방인민들…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세계전쟁사의 기적을 창조하고있는 충직하고 자랑스러운 인민군장병들과 인민들의 위훈을 후손만대에 전하는것을 그 누구도 대신할수 없는 자신의 사명으로 새겨안으셨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불길속에서 전후복구건설의 웅대한 설계도와 함께 조선인민군종합전람회에 대한 구상을 무르익히신것이였다.

이렇게 되여 전선에서 한명의 전투원이 귀중한 때에 많은 학술일군들과 미술가, 건설전문가, 전기기술자들이 소환되여 전람회준비사업에 즉시 착수하는 전설같은 사실이 기록되게 되였다.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을 책임자로 하고 민족보위성의 각 국 국장들을 비롯한 수십명의 일군들이 망라된 준비위원회가 조직되였으며 전승사를 길이 전할 수많은 자료들과 유물, 전투기술기재들과 전리품들이 종합되게 되였다.

조선인민군종합전람회장에 몸소 나오시여 모든 자료들을 빠짐없이 보아주시며 인민군전사들의 위훈을 추억하시던 그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뜨겁게 교시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를 기념하여 조선인민군종합전람회를 연것은 매우 뜻깊고 의의있는 일입니다.조선인민군종합전람회는 미제를 괴수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침략으로부터 조국의 자유독립과 민족의 존엄을 굳건히 수호한 영웅조선의 기상을 과시하는 중요한 계기로 될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가 미제와 싸워 이긴 귀중한 자료들을 이렇게 전시하여놓지 않으면 후대들이 인민들과 인민군군인들이 조국해방전쟁에서 어떻게 싸웠는가를 모를수 있다고, 인민군종합전람회는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기념하여 조직한것만큼 그 명칭을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이라고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영광스러운 력사의 첫 페지는 이렇게 씌여지게 되였다.이때로부터 로동당이 키워낸 영웅전사들과 애국자들의 위훈과 전승사의 유산들을 자료적으로, 학술적으로 종합체계화하여 우리 인민들을 공화국의 위대한 승리의 전통으로 교양하는 정연한 체계가 서게 되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에 의해 조선인민군종합전람회장을 꾸렸던 해방산기슭의 넓은 부지에는 조국해방전쟁기념관(당시)이 짧은 기간에 새로 훌륭히 건설되게 되였다.

돌이켜보면 항일빨찌산의 력사가 후세에 길이 전해질수 있은것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몸소 고증자, 증견자가 되시여 항일의 전구들을 찾으시며 자료도 확증해주시고 회고록 《세기와 더불어》의 집필로 조국과 민족을 위해 쌓은 혁명의 1세들의 위훈을 빛내여주시였기때문이다.

전승세대의 넋과 정신도 우리 수령님의 숭고한 혁명적의리심과 위대한 령도의 손길에 떠받들려 만대에 빛날수 있게 되였으니 여기에 만고절세의 위인께서 조국과 후대들을 위해 쌓으신 또 하나의 위대한 업적이 있음을 사람들이여, 부디 잊지 마시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1970년대에 조선혁명박물관이 새로 건설되는것과 관련하여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을 따로 둘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의견이 제기되였을 때에도 《앞으로 조선혁명박물관을 개관하여도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그대로 두어야 합니다.》라고 하시며 기념관을 더 크고 웅장하게 건설하도록 하시였다.그리고 보통강기슭의 갈대무성한 진펄길을 걸으시며 몸소 그 터전까지 잡아주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야말로 자신의 모든것을 바쳐 인류전쟁사의 기적을 창조하신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님께서 전승세대의 위훈과 정신을 후세에 길이 빛내여주시려 전화의 불길속에서 구상하시고 일떠세워주신 고결한 혁명적의리의 기념비임을 력사는 자기의 갈피에 진하게 새겨넣었다.

 

세계에 유일무이한 수령의 전승기념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정령 제1361호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 기념메달을 수여함에 대하여》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탁월한 군사의 영재이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10대에 최고사령부의 작전대에서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주체적인 군사사상과 전법을 체득하시고 위대한 수령님은 곧 조국이라는 철리를 밝혀주시여 우리 군대와 인민의 심장마다에 필승의 신념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생애에서 참으로 귀중한 체험으로 된 전쟁의 3년세월 그이께서 강철의 령장이시며 인민의 어버이이신 우리 수령님의 위대성과 영웅적군대와 인민의 투쟁모습을 직접 목격하시면서 깊이 새기신것은 무엇이였던가.

청소한 신생국가의 군대가 제국주의련합세력을 때려부시고 빛나는 승리를 이룩한 위대한 조국해방전쟁력사는 철두철미 강철의 담력과 백전백승의 지략, 열화같은 어버이사랑으로 군대와 인민을 승리에로 이끄신 우리 수령님의 령도를 떠나서는 생각할수 없다는 절대불변의 진리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간직하신 이 고귀한 신조는 주체혁명위업계승의 성스러운 길에 나서시면서 더욱 억척으로 다져졌으니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연혁사에 새겨진 불멸의 혁명일화들은 오늘도 잊지 못할 사연들을 가슴뜨겁게 전하고있다.

주체61(1972)년 4월 2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을 찾으시였다.

그 시기로 말하면 위대한 장군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해 혁명사적사업에서 근본적인 전환이 이룩되고있던 시기였다.혁명사적사업에서 어버이수령님의 전승령도업적을 길이 빛내이는것이 가지는 중요성을 깊이 통찰하시였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날 조국해방전쟁기념관에 불멸의 자욱을 새기신것이였다.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령도업적을 널리 선전하는데 기본을 두고 꾸려야 한다.

이것이 그날 위대한 장군님께서 밝혀주신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을 꾸리는데서 나서는 기본원칙이였다.

사실 그때까지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은 자신께서 이룩하신 크나큰 공적에 대해서는 고스란히 묻어두시고 전화의 나날에 발휘된 인민군전사들과 인민들의 위훈을 빛내주시기 위해 마음쓰신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는 겸허성으로 하여 전쟁력사를 소개하는 식으로 되여있었다.비행기사냥군조운동에 대한 자료를 전시한것만 보아도 고사기관총을 한문 가져다놓고 적비행기를 몇대 떨구었다는 식으로 통계수자만 게시하였기때문에 그것을 보고는 비행기사냥군조운동이 어떻게 시작되였는지, 그 의의가 무엇인지 깊이 알수 없었다.

조국해방전쟁기념관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업적을 기본으로 하여 꾸리는것을 원칙으로 내세우시고 그 실현을 위한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투철한 혁명적수령관앞에 일군들모두가 머리를 숙이였다.

일찌기 조국해방전쟁시기 불후의 고전적명작 《조국의 품》《축복의 노래》를 창작하시여 수령과 조국, 수령과 인민사이의 관계를 사상예술적으로 훌륭히 해명하신 위대한 장군님이시기에 전승기념관은 곧 수령님의 전승업적을 길이 전하는 혁명박물관, 혁명적수령관확립의 또 하나의 교양거점으로 되여야 한다는 심오한 원리를 력사에 뚜렷이 아로새겨주신것 아니랴.

진정 위대한 장군님의 그날의 현지지도와 더불어 다른 나라들에서와 같은 전쟁박물관이 아니라 명실공히 전쟁을 승리에로 령도하신 수령의 혁명사적관으로서의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의 성격과 본도가 뚜렷해지게 되였으며 그에 따라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력사자료를 중심으로 학술배치의 대가 확고히 서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조직령도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불멸의 업적을 길이 전하고 우리 군대와 인민이 미제침략자들을 때려부시는 전쟁에서 높이 발휘한 불굴의 투쟁정신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비롯한 정신도덕적풍모를 내외에 널리 선전하는 기지로 되여야 한다고 하시며 전승기념관이 자기의 사명과 역할을 다하도록 이끌어주신 하많은 이야기를 어떻게 다 전할수 있으랴.

머리에 흰서리내린 전화의 공화국영웅들과 모범전투원들이 다시 군복을 입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사업하게 된 사연도 참으로 감동깊은것이다.

어느해인가 일군들과 자리를 같이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혁명이 승리적으로 전진할수 있은것도 우리 조국의 번영하는 오늘이 있는것도 혁명의 1세대들과 함께 혁명의 2세대들이 피흘려 싸웠기때문입니다.》

이윽고 그이께서는 몇몇 공화국영웅들의 이름을 한사람한사람 꼽으시더니 그들을 복대시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강사로 배치하는것이 좋겠다고 말씀하시였다.위대한 장군님의 이렇듯 크나큰 은정과 한없는 도덕의리에 의하여 전쟁시기 커다란 위훈을 세운 공화국영웅들과 전쟁로병들이 전승기념관에서 삶을 더욱 빛내이게 되였다.

인류사에는 세계를 경탄케 한 전승의 력사를 가지고있으면서도 그 승리를 안아온 수령의 업적을 덮어버린탓에 나중에는 전통자체가 허물어져버린 비극이 심각한 교훈으로 새겨져있다.

세계가 공인하던 령장이 후날에는 비난의 대상이 되고 시신까지 모독당하였지만 그 비렬하고 악랄한 궤변을 력사문헌적으로 론박할만한 학술체계도 없었고 그것을 집대성하여 실증해주는 전시관도 없었다.하지만 영웅조선에서는 자기의 고귀한 승리전통을 억세게 지키고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빛내이는 력사적사변이 펼쳐져 세계를 놀래웠다.

조국해방전쟁승리 40돐을 맞으며 세계의 이목이 영웅조선의 수도 평양으로 집중되였다.위대한 수령님과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 준공식이 성대히 진행되였던것이다.

우리 장군님께 있어서 위대한 전승사를 지키고 빛내이는 사업은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을 고수하고 계승하기 위한 성스러운 위업이였다.

하기에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전승 4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과 함께 교양마당을 건설하여 그 지구를 위대한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과 조국해방전쟁참전자들이 발휘한 열화같은 충성심과 애국심으로 후대들을 교양하는 세계에 없는 승리전통교양거점으로 꾸릴것을 발기하시고 전 과정을 정력적으로 이끌어주신것이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탑의 준공이 온 세상에 선포되던 그 시각 우리 인민은 아니 세계는 절감하였다.

이 땅에서는 그 어떤 천지풍파가 닥쳐온다고 하여도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룩하신 전승업적이 영원히 빛을 뿌리게 되리라는것을, 창공높이 휘날리는 람홍색공화국기와 더불어 전승세대의 충성과 애국의 전통이 후세토록 이어지게 될것이라는것을.

 

영원한 전승의 진리를 가르치는 혁명대학

 

세월이 흐르면 력사가 멀어지고 아무리 훌륭한 전통도 망각의 이끼가 덮이기 시작하면 잊혀지기마련이다.

그러나 공화국의 첫 년대기에 영웅조선이라는 이름과 더불어 세계전쟁사에 특기할 전승을 아로새긴 영웅세대의 넋은 단 한점도 흐려질수도 퇴색될수도 없으며 세월의 흐름속에 더더욱 눈부시게 빛나야 한다는것이 우리 당의 불변의 신념이고 의지이다.이 숭고한 신념과 의지에 받들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세상에 다시없는 승리전통교양의 대전당, 세계의 그 어느 군사대학에서도 배울수 없는 전승의 철학과 경험을 가르쳐주는 혁명대학으로 거연히 솟구쳐오르게 되였다.

새로운 주체100년대가 시작되는 뜻깊은 해의 7월 8일이였다.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한없는 그리움을 안으시고, 위대한 수령님들께서 조국과 인민앞에 쌓으신 불멸의 업적을 길이 빛내이실 불같은 의지를 안으시고 우리의 총비서동지께서 찾으신 곳은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반미교양의 중심지일뿐 아니라 세계에서 처음으로 두 제국주의를 타승한 조선인민의 승리의 력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세계에 하나밖에 없는 교양거점이라고 깊은 뜻을 담아 말씀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울에 나가실 때 타시였던 승용차를 보시고서는 수령님께서 어느 자리에 앉으시였댔는가고 조용히 물어도 보시고 여기에는 수령님께서 직접 쓰신 친서와 같은 생동한 자료들이 많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수령님의 친서들을 더 많이 찾아 모실데 대하여 간곡히 당부도 하시였다.

그날 오랜 시간 기념관을 돌아보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렇게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조국해방전쟁승리 60돐을 맞으며 새롭게 잘 꾸려야 합니다.》

전승기념관건설은 우리 대에 반드시 해놓아야 한다고 하시면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전승 60돐까지 무조건 끝낼데 대한 과업을 주실 때 일군들의 가슴은 얼마나 크나큰 격정으로 설레였던가.

그로부터 얼마후 전승절을 앞두고 일군들은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하신 참으로 가슴뜨거운 말씀에 접하게 되였다.

우리는 이번 전승절행사를 통하여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신 수령님의 전승령도업적을 더욱 빛내이고 새세대들을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군대와 인민이 발휘한 조국수호정신으로 교양하여야 한다.…

전승절경축행사를 온 나라가 들썩하게 진행하도록 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그로부터 얼마후 또다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자리잡고있는 보통강기슭에 나오시였다.

자신께서 직접 가지고 오신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건설형성안을 펼쳐드시고 오래도록 귀중한 가르치심을 주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승리상뒤쪽의 공지에 기념관을 건설하면 좋을것이라고 하시며 그 위치를 확정해주시였다.

《여기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요란하게 건설합시다.》

이렇게 말씀하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건설은 자신께서 직접 틀어쥐고 본격적으로 내밀겠다고 힘주어 선언하시였다.

얼마나 하많은 가슴뜨거운 사연들이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연혁사의 새 페지에 아로새겨졌던가.

나라의 정세가 시시각각 전쟁접경에로 치닫고있던 그때 분별없이 날뛰는 미제의 머리우에 준엄한 철추를 내리실 승리의 작전도를 최종비준하신 길로 공훈무기전시장과 로획무기전시장을 찾으시였고 머나먼 현지지도의 길에서 돌아오시는 걸음으로 기념관건설장을 찾으시여서는 전선시찰의 길에서도 자신의 마음은 언제나 기념관건설장에 와있었다고, 기념관을 자그마한 손색도 없이 완전무결하게 완성해놓고 전승 60돐을 뜻깊게 경축하자고 고무해주신 우리의 총비서동지이시였다.

몸소 현지에 나오시여 해결할 건설공법들과 시공문제들을 도안을 그려가시며 구체적으로 제시해주시던 깊은 밤의 이야기, 건물의 외부장식과 조명, 주변의 꽃밭, 록지조성방법도 가르쳐주시고 쇠울타리형식문제까지 마음쓰신 사연, 위대한 수령님의 전승업적을 보여주는 사진문헌들과 친필명령서를 비롯한 귀중한 사적자료들을 더 많이 찾아 전시하고 건설과 동시에 전시준비를 힘있게 내밀도록 취해주신 조치들…

그 나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온 세상을 다 뒤지고 그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우리 대에 반드시 수령님의 사적자료들을 다 찾아내여 전시함으로써 기념관이 수령님의 불멸의 전승업적을 깊이 새겨주는 혁명대학으로 되게 하여야 한다고.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건설의 웅대한 설계도를 펼쳐주신 때로부터 개관을 앞둔 시기까지 1년 남짓한 기간 건설장을 무려 18차례나 현지지도하시고 백수십차의 가르치심을 주시였으며 수없이 많은 문건을 보아주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사람들은 누구나 놀라움을 금치 못한다.하지만 그 수자만으로는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헌신과 로고의 무한한 세계를 다는 헤아릴수 없다.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모습을 형상한 립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천연색으로 형상되게 된것도, 수령님의 영상사진문헌들이 천연색으로 형상되여 정중히 모셔질수 있게 된것도, 조국해방전쟁의 준엄한 상황이 그대로 안겨오는 진렬전시의 새로운 경지가 개척되게 된것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직접적인 가르치심과 세심하고도 정력적인 령도가 안아온것이다.공훈무기전시장의 무장장비해설판에 군사기술적제원이 아니라 혁명사적, 전투위훈자료가 반영되여 그 공적이 조국과 인민앞에 긍지높이 빛나게 된것도 그리고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가 보통강반에 끌려와 후대들에게 영웅조선의 련전련승의 력사를 실증해주는 증거물로 전시되게 된것도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세심한 지도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전승기념관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 혁명무력령도관이 새롭게 꾸려진데는 또 얼마나 깊은 뜻이 깃들어있는것인가.

우리 혁명의 계승성의 원칙에서 보아도 장군님께서 미제와의 대결전에서 이룩하신 업적을 보여주는 전시관을 꾸려 장군님의 업적을 우리 인민들과 새세대들에게 대를 이어 전해갈수 있게 하여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신 우리의 총비서동지,

1960년대초부터 반제반미대결전의 진두에 서시여 미제의 침략책동을 걸음마다 짓부시고 련전련승만을 안아오신 위대한 장군님의 업적을 길이 전하게 될 전시관을 꾸릴데 대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발기야말로 독창적인 착상이기 전에 이 세상 그 누구도 따를수 없는 고결하고 숭고한 의리의 정화였다.

영웅조선의 위대한 전승의 력사와 전통을 전하는 하나의 립체적인 대전승관, 군사박물관은 이렇게 새롭게 태여났다.

주체102(2013)년 7월 27일 전승 60돐을 맞으며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이 개관되였다.

참관자들모두가 놀라움과 경탄을 금치 못하였다.

《승리상에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친필 〈위대한 년대에 경의를 드린다〉를 모시니 기념탑의 품위가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되는것은 물론이고 전승의 의의도 더욱 부각되는것같습니다.》

《원수복을 입으시고 한손을 높이 들어 답례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거룩한 모습을 우러르느라니 꼭 전승열병식장에 서계시던 우리 수령님을 또다시 뵙는것만 같아 절로 눈굽이 젖어듭니다.》

《해방된 서울의 괴뢰중앙청에서 세차게 휘날리는 우리의 공화국기발이 찍혀진 사진을 보니 승리에 대한 쾌감으로 가슴이 세차게 높뛰는것을 어찌할수 없습니다.》

《이렇게 보통강에 끌려와 웅크리고있는 〈푸에블로〉호의 가련한 꼴을 보니 정말 통쾌하기 그지없습니다.

또 한분의 천하제일위인을 모시여 우리는 언제나 승리하고 미국은 패배의 쓴맛만을 보게 된다는것을 〈푸에블로〉호가 다 말해주는것같습니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의 직접적인 발기에 의해 주체104(2015)년에는 근위부대관이 꾸려짐으로써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은 승리전통교양의 거점으로서의 면모를 더욱 완벽하게 갖추게 되였다.

진정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을 영웅조선의 영원한 전승의 혁명대학으로 되게 하시려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 기울이신 심혈과 로고는 몇십권의 부피두터운 책으로도 다 전할수 없다.

승리를 지켜낸것 그 자체가 또 하나의 승리이다.승리전통을 승리의 새 력사로 굳건히 떠받들고 빛내이는것이야말로 가장 위대한 계승이며 공훈이라고 할수 있다.

이것은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 지켜주시고 빛내여주신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이, 영웅조선의 전승기념관이 력사와 세계앞에 당당히 선언하는 또 하나의 위대한 전승철학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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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님들의 탁월한 군사사상과 불멸의 전승업적이 집대성되여있는 세상에 유일무이한 승리전통교양의 거점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

위대한 혁명대학은 지난 70년세월 세대와 세대를 이어가며 전승세대의 혈통을 이은 수많은 용사들과 영웅들, 애국자들을 키워냈다.

미제무장간첩선 《푸에블로》호를 나포하여 세상을 들었다놓은 영웅적해병들, 미제의 간첩비행기 《EC-121》을 단방에 격추시킨 인민군비행사들, 연평도에 대한 무자비한 포격전으로 빈말을 모르는 우리 군대의 무진막강한 위력을 시위한 주인공들, 화성포의 련이은 뢰성으로 적대세력들의 군사적허세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고있는 우리의 자랑스럽고 미더운 전투원들…

이들만이 아니라 조국해방전쟁승리기념관에서 전승의 철학과 경험을 배운 이 나라의 아들딸들은 전승세대들처럼 자기 세대의 이름으로 공화국력사에 새로운 승리의 력사를 아로새겼다.

오늘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전승의 혁명대학에서 신념과 의지를 굳힌 수천수만의 용사들과 영웅들이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받들어 조국해방전쟁승리 70돐을 자기들의 위훈으로 자랑스럽게 경축하고있다.절세의 위인들께서 일떠세워주시고 년대와 년대를 이어가며 더욱 빛내여주시는 영웅조선의 전승기념관과 더불어 불패의 강국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전승사는 앞으로 70년, 700년 영원히 줄기차게 이어질것이다.

본사기자 백영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