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8월 5일 로동신문
기행 백두산의 모습으로 조국이여 끝없이 번영하라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가 자리잡고있는 량강도를 돌아보고
우리 공화국의 국장에는 백두산이 있다.
가장 준엄한 년대를 가장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의 기적과도 같은 전변사에 대한 편답 역시 공화국국장의 웃머리에 새겨진 백두산에서부터 시작하는것은 너무도 응당한 일이다.하여 우리는 혁명의 성산이 자리잡고있는 유서깊은 고장 량강도로 떠났다.
오늘도 오르고 래일도 오르자, 혁명의 성산으로!
우리는 구름덮인 산길을 따라 백두산의 정점으로 올랐다.
계절은 찌는듯이 무더운 한여름철이지만 백두산은 역시 백두산이라 골짜기마다 녹지 않은 눈무지들이 희끗희끗 드러나있었고 무딘 칼날도 서슬푸르게 갈것만 같은 맵짠 바람이 우리의 온몸을 휘감았다.어느때 올라도 백두산바람은 정신이 번쩍 들게 하는 칼바람이였다.마침내
모든것이 변한다는 세월의 흐름속에서도 달라지지 않은 백두산의 모습이다.조국의 기상과도 같은 거창한 웅자도, 수수천년 높이 솟아 이 나라의 정점과 모든 산줄기의 시작점을 이루고있는 아득한 메부리들도, 온갖 잡것들을 깨끗이 쓸어버리는 맵짠 칼바람도 예나 지금이나 조금도 변함이 없다.바로 이 불변의 모습이 안고있는 혁명의 법칙, 애국의 법칙으로 하여 조선의 혁명가들, 애국자들이 세대를 이어가며 이 성스러운 산정에 오르는것이 아닌가.
백두의 칼바람을 맞으며 천리수해를 굽어보는 우리의 귀전에 울려오는 크나큰 메아리가 있었다.세월이 흘러 강산도 변하고 세대가 바뀌고있지만 백두산의 그 웅자는 변함이 없다고, 언제 와보아도, 걸으면 걸을수록 몸과 마음에 새로운 혁명열, 투쟁열이 흘러들고 새로운 의지를 다지게 되는 곳이라고 하신
하루한시, 일각일초가 상상할수 없는 중압의 련속이였던 지난 10여년의 나날에 그이께서는 왜 그리도 자주 백두산에 오르시였던가.그 어떤 력사의 광풍속에서도 언제나 변함없는 백두의 한모습에서 무한한 힘과 용기를 얻으시였기때문이다.조국앞에 닥쳐온 준엄한 난국을 타개해야 할 때에도, 우리 공화국의 부강번영을 위한 새로운 구상을 펼치실 때에도
그이께서 앞서가신 자욱을 따라 또 얼마나 많고많은 이 나라 사람들이 백두산으로 올랐고 여기서 애국의 새로운 강행군을 시작했던가.
그들속에는 사나운 칼바람을 헤치며 눈보라치는 산정에서
우리는
몇해전 답사대오의 한 성원이 되여 눈속을 헤치며 걸었던 길이였지만 그때와는 또 다른 감정이 우리의 가슴에 치밀어올랐다.그사이에만도 우리 조국은
기묘한 지세에 자리잡고있는 소백수골에 들어선 우리의 눈앞에 붉은 기발이 펄펄 휘날리는 백두산밀영이 나타났다.우리는 만단사연이 깃든 사령부귀틀집의 기발대를 정히 쓸어보았다.자랑스러운 공화국기를 게양대에 띄울 때마다 이 나라 인민의 가슴속에 먼저 안겨드는 붉은기!
동무들, 저 기발을 보시오! 기폭은 크지 않아도 저 붉은 기발이 조국해방의 불바람, 백두의 폭풍을 안아왔소라고 격정을 터치시던
수십년동안 혁명의 성지를 지켜온 삼지연혁명사적관 관장 강정옥동무가 반겨맞아주었다.
혁명의 성지에 대한 답사행군로정에는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를 돌아보지 않고서야
우리를 안내하는 강사동무가 들려준 이야기였다.
조국의 래일을 떠메고나갈 청년들을 견결한 혁명가로, 불굴의 투사로 키우고싶으신
우리는 강사동무의 안내를 받으며 백두산영웅청년위훈전시관을 돌아보았다.
하나하나의 자료들과 증거물들은 우리의 눈앞에
멎어있던 공장을 현대화하여 자체의 힘으로 세멘트를 생산하고 청춘의 피끓는 심장으로 쇠물을 끓여 강재를 뽑아내기도 한 자력갱생의 강자들, 전기기관차까지 만들어 공사장으로 잇닿은 두줄기 궤도를 달리며 자재와 물자수송을 보장한 우리의 청춘들이였다.언제의 좌우안지대, 중력부콩크리트치기에서 지난 10년간의 작업량과 맞먹는 량을 몇달동안에 해제낀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새 명령을 받고 공사장에 진입하기 위해 수백리길을 단 이틀동안에 달려온 돌격대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그러하였다.한교대시간에 100m의 경사급한 발판을 오르내리며 1인당 3t의 골재를 운반하였다는 놀라운 사실도, 보통 3년은 달려야 할 2만㎞, 최고 2만 5 000㎞의 주행거리를 단 석달 남짓한 기간에 달린 돌격대운전사들의 투쟁도 기존의 상식을 초월하는 그야말로 기적이였다.
우리는 청춘언제의 정점에서
《백두의 칼바람에 돛을 달고 우리 당이 정한 조선혁명의 침로따라 폭풍쳐 내달리는 백두청춘들의 영웅적기상과 위훈이여》 이 시구절을 심장에 품고 수도의 새 거리건설장으로 떠나간 백두산영웅청년돌격대원들이 웨치는 충성과 애국의 함성이 금시 우리의 귀전에 쟁쟁히 들려오는듯싶었다.지나온 10여년세월 백두산은 이렇게 자기의 천만아들딸들을 키워왔다.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의 아스라한 언제우에서 우리는
백두대지에 펼쳐진 희한한 천지개벽
이 나라의 천만산악을 거느린 백두산이 태동하면 온 나라가 태동한다.이것은
아득한 천고밀림에 둘러싸인 백두산, 그 기슭에는 온 나라 인민에게 래일에 대한 희망을 주고 끊임없는 기적과 번영을 창조하게 하는 거창하고도 힘있는 본보기, 전형들이 수없이 많다.백두산기슭에 바로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의 전변사에서 가장 중대한 전변을 말할수 있는 실체들이 있었다.다름아닌 삼지연시가 그 거울이다.
허항령기슭에 정중히 모셔진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 말도 있지만 삼지연은 변한 정도가 아니였다.옛 모습을 조금도 찾아볼길이 없이 모든것이 새로 태여난 곳, 세기를 뛰여넘은 리상향이라고 불러도 과언이 아닐 만점짜리 산간문화도시였다. 감탄을 금치 못하는 우리에게 동행한 시의 일군은 이렇게 말하였다.
《량강도에는 기후조건이 불리하고 땅이 척박하여 예로부터 사람 못살 곳으로 불리우는 고장들이 많았습니다.하지만
우리는 그의 안내를 받으며
삼지연려관에 려장을 푼 우리는 소층, 다층건물들이 조화롭게 배치되여 독특한 미를 자랑하고있는 시내의 거리들을 따라
어디를 가나 희한한 전변과 가슴벅찬 미래를 안고있는것이 바로 영광의 땅 삼지연시의 진모습이였다.삼지연학생소년궁전에서는 수십개를 헤아리는 소조들에 망라되여 배움의 나래를 활짝 펼치고있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눈시울 젖어들고 삼지연들쭉음료공장에 가보면 량강도의 특산 들쭉제품을 명제품으로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있는 기술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수 있었다. 우리가 베개봉이 바라보이는 거리에서 수도의 유명한 음식점거리를 방불케 하는 전문식당들과 베개봉국수집을 돌아보고 온 나라에 소문난 삼지연시병원에 도착한것은 날이 어슬어슬 저무는무렵이였다.재잘거리는 새소리가 마치도 산골특유의 저녁음악소리처럼 유정한 광명성동지구에 산간도시의 병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현대적인 건물이 자리잡고있었다.이 건물이 바로 온 나라에 널리 알려진 삼지연시병원이였다.
병원의 일군이 들려준 어머니당의 은정에 대한 이야기는 우리의 심금을 세차게 울려주었다.삼지연시인민들을 위해 마음쓰시는 자애로운
백두산을 지켜선 경위대원산이라고도 불리우는 포태산기슭에 마치 휴양소건물처럼 멋쟁이로 일떠선 삼지연감자가루생산공장에 가보아도, 아지마다 탐스러운 이삭들을 드리우고 백두대지의 시원한 바람결에 춤추듯 설레이고있는 삼지연시 중흥농장의 드넓은 밀, 보리포전들을 돌아보아도 삼지연시와 량강도인민들의 생활을 위해 그토록 마음쓰시는
기적과도 같은 삼지연시의 전변은 감동적인 일화들도 수없이 낳았다. 이곳에서 살면서 일생에 네번이나 이사를 하였다는 김성환로인은 우리에게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정말 꿈만 같은 일이지요.한생을 살아오면서 희한한 새집으로 네번씩이나 이사를 하니 우리자신도 쉽게 믿어지지 않습니다.화전민으로 세상밖에 밀려나 살던 우리 할아버지,
눈물이 글썽해서 터치는 로인의 진정도 그렇지만 새집, 새 건물들이 일떠설 때마다 편지를 전할 주소를 찾고 집주인들을 찾느라고 걸음을 더 걷군 했다는, 그렇지만 다리아픈줄 모르겠더라는 삼지연시체신소 우편통신원의 이야기도 우리의 마음을 뜨겁게 울려주었다.거리에 나서게 되면 다른 지방에서 온 사람들이 자꾸만 길을 묻고 주소를 묻는통에 어쩔수없이 안내자가 되군 해야 한다는 리명수동의 한 인민반장의 이야기도, 밤이면 눈부시도록 희한한 시내의 야경을 바라보며 우리 고향, 우리 삼지연이라고 마음속으로 끝없이 외워보군 한다는 삼지연시 광명성소학교의 로교원의 진정도 웃음속에 그냥 넘길 이야기가 아니였다. 인민의 리상도시에 차고넘치는 가슴뜨거운 일화들만으로도 우리 국가제일주의시대를 노래하는 서사시나 교향곡을 엮을수 있지 않겠는가.
량강도에 깃들어있는
북방고유의 산악미를 자랑하는 소소리높은 산봉우리들, 붉은기를 펄펄 휘날리며 끝없이 흐르는 답사행군대오, 산기슭에서 풀을 뜯는 염소떼, 양떼들…
새로 건설된 혜산-삼지연철길을 따라 렬차를 타고 달리며 우리가 본 량강도고유의 이채로운 풍경이였다.동행하는 려객들에게서 듣게 되는 이야기도 역시 백두산지구를 혁명전통교양의 대로천박물관으로, 온 나라에 자랑할만한 락원으로 꾸리시기 위해 바쳐오신
량강도의 소재지 혜산시에서도 우리는 유서깊은 고장에서 사는 긍지와 영예를 가슴에 간직하고 충성과 애국의 길을 성실하게 걷고있는 많은 사람들을 만날수 있었다.
혜산시에는
혜산시도 새시대의 리상에 맞게 자기의 면모를 일신해가고있었다. 당의 기본구호를 게시한 직관구조물들과 표어들이 눈에 번쩍 띄우는 시내의 거리를 걷는 우리에게 동행한 일군은 몇해전부터 혜산시에서는 이채로운 얼음조각풍경까지 펼쳐지기 시작했다는 자랑도 들려주었다.그러면서 철다리와 수많은 다리들이 건설되고 지금은 시내의 중심도로를 새로 포장하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라면서 지난해부터 시작된 시내의 하부망공사를 올해중으로 결속하자는것이 도당위원회의 계획이라는것도 이야기해주었다. 그뿐만 아니라 도에서는 혜산시에 아름답고 환한 불야경을 펼칠 큼직한 발전소건설에 대담하게 달라붙었고 도모체양묘장에 필요한 많은 설비들과 젖가공설비들을 자체의 힘과 기술로 척척 만들어 시, 군들에 보내주고있었다.북부지대에서는 자랄수 없다던 여러가지 과일나무들을 풍토순화시켜 지금은 량강도에 사과와 배, 추리, 살구가 육종되고있다는, 량강도사과는 큰것이 200g이나 된다는 이야기도 우리의 흥미를 끌었다.
우리와 만난 도당위원회의 책임일군은 량강도의 전변의 력사를 알자면 대홍단군에 꼭 가보아야 한다고 권고하였다.그래서 우리는 유명한 대홍단군에로 기행길을 이어갔다.끝없이 펼쳐진 드넓은 대지, 차창을 스치는 방풍림을 따라 달리느라니
우리는 대홍단혁명사적관에 먼저 들려보았다.
서관과 6개의 호실로 되여있는 사적관에는 항일전의 나날로부터 오늘에 이르는 기간
소홍단수와 서두수를 따라 건설된 중소형발전소들도, 600석능력의 대홍단군문화회관도 깊은 감명속에 돌아본 우리는 농마국수를 잘하기로 소문난 국수집에서 량강도특유의 시원한 농마국수도 즐겁게 맛보았다.
우리는 량강도를 으뜸가는 감자산지, 감자도로 만드시기 위해 끝없는 로고를 바치신
그의 안내를 받아 공장을 돌아보며 분탕직장, 엿직장건설과 제품창고확장공사를 비롯한 방대한 공사를 자체의 힘으로 해내고있는 로동자들의 모습을 보니
대홍단군을 떠난 우리의 기행길은 백암군으로 이어졌다.우리 나라의 군들중에서 제일 면적이 크고 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위치하고있는 백암군, 이곳은 먼 옛날 빽빽한 밀림에 바위가 끝없이 련달아있어 연암이라고도 불리웠다고 한다.그러나 오늘 이곳에서는 바위이야기가 아니라 백암군인민들의 당정책결사관철의 억센 신념과 불굴의 의지에 대한 교향곡이 울리고있었다. 덕포지구에 웅장하게 일떠서는 백암감자가루생산공장도 규모가 큰 공장이였다. 백암군농기계작업소에서는 올해에만도 숱한 유기질복합비료생산설비들과 젖가공설비, 감자수확기, 중소농기구들을 생산하였다.우리와 만난 지배인 김정만동무는 감자농사에 필요한 각종 농기계들과 부속품들을 다량생산하고있다고 자랑삼아 이야기하였다. 군에서는 해마다 많은 면적의 흙깔이를 하여 토지를 개량하고있었다.감자포전들을 둘러싼 방풍림들과 푸른 숲의 래일을 담보하는 양묘장들에 대한 이야기, 해마다 서두수에서 잡은 빙어를 주민들에게 공급한다는 사실이며 농촌살림집건설에 필요한 마감자재로 자기 고장의 석재를 리용한다는 긍지높은 이야기, 흔한 지방원료와 자재로 성냥과 그릇도 맵시있게 만들어 인민들의 호평을 받고있다는 이야기… 나무다리가 많은 이 고장에서는 최근 몇해동안 10여개의 콩크리트다리를 새로 건설하였으며 무인지경에 100대의 콩크리트전주를 세워 전력공급의 안전을 담보하였다고 한다.자력으로 지방이 변하는 새시대를 앞당겨오고있는 백암군의 일군들과 인민들의 투쟁이 맺은 하나하나의 열매들은 얼마나 소중하고 아름다운것인가.
우리는 량강도에 대한 기행과정에 당중앙의 의도에 따라 도에 급파된 당원대대의 투쟁도 목격할수 있었다.
수도와 멀리 떨어진 북변이지만 당중앙과 하나의 숨결로 자기 발전의 시간표를 새겨가고있는 량강도는 이미 천지개벽의 새로운 력사의 페지를 써나가고있었다. 우리 나라 지도를 볼 때 량강도가 차지하고있는 면적은 그리 크다고 말할수 없다.하지만 그 연혁사의 비중은 참으로 크다.혁명의 성산, 유서깊은 혁명의 성지가 자리잡고있는 고장이기때문이다.
백두산과 더불어 이 유서깊은 고장은 오늘도 래일도
혁명의 성산을 다시한번 마음에 깊이 새겨안고 우리는 량강도를 떠나 조국편답의 기행길을 계속 이어갔다.
본사기자 림정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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