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8월 11일 로동신문
로병이 쓰는 전투실화
얼마전 우리는 락랑구역 락랑1동에서 살고있는 박생근전쟁로병이 고령의 몸으로 글작품을 창작하고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 올해 나이가 89살인 로병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근위 제6보병사단에서 싸웠으며 전후에는 제대되여 년로보장을 받기 전까지 의료부문에서 일했다고 한다. 경력이 보여주다싶이 로병은 전문교육기관에서 문학수업을 받은적이 없었다. 하다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년로한 몸이지만 오늘도 창작활동을 멈추지 않게 하는것인가. 얼마전 우리가 로병의 집을 찾았을 때에도 그는 작품창작에 여념이 없었다. 그런 로병의 모습을 보느라니 지난 시기 여러 출판물에 실리였던 작품들의 제목이 돌이켜졌다. 우리는 로병의 인생길의 자욱자욱이 시와 가사로 엮어져있는 창작수첩을 펼치였다.수첩의 첫 갈피에는 이런 글이 씌여있었다. 《나에게는 문학에 대한 지식도, 시나 가사를 창작해본 경험도 없다.하지만 전쟁참가자라는 사명감이 나로 하여금 붓을 들게 하였다.이제부터 나의 무기는 붓이다.내가 쓰는 글 한편한편이 어머니조국을 떠받드는 성돌이 되고 원쑤에게는 증오의 총탄이 되리라.》 이것은 로병이 전후 제대되여 대학에서 공부하면서 쓴 글이였다. 그 글발에서 우리는 전화의 시절처럼 살기 위해 애쓴 로병의 정신세계에 대해 깊이 느낄수 있었다. 전쟁의 불구름이 밀려왔을 때 로병은 자기 키보다 더 큰 보병총을 메고 용약 전선으로 달려나갔다. 전쟁의 3년세월 위생병으로 싸운 그의 손에서 얼마나 많은 전우들이 구원되였던가.또 그의 몸에서 얼마나 많은 피가 전우들의 몸으로 흘러들었던가.한명의 전우라도 더 소생시키기 위해 그는 그야말로 불사신처럼 싸웠다. 하지만 로병은 그것으로 자기가 할바를 다한다고 생각지 않았다.그는 짬짬이 쓴 시를 전우들앞에서 랑송하군 하였다.비록 미숙한 시였지만 그것은 전우들에게 큰 힘을 안겨주었다. 제대되여 의료일군으로 일하는 속에서도 로병은 짬시간마다 글을 썼다. 그중에는 《빨찌산간호병》이라는 제목의 작품도 있었다. … 눈에 묻힌 벼랑을 톺아오르며 빨찌산간호병은 약초를 캐였네 전우의 상한 몸 어서 구하자 밤새워 달인 약 정히 드렸네 … 이것이 처음 출판물에 실리였을 때 전우들은 전쟁시기 전사의 영예훈장을 수여받은 용감한 《꼬마위생병》이 《작가》가 되였다고 방방곡곡에서 축하편지를 보내주었다. 그 편지마다에서 그는 근위부대의 위생병답게 살기를 바라는 기대와 당부를 읽었다. 심장의 마지막피 한방울까지 깡그리 바쳐 전우들의 위훈을 전하리라 결심한 그는 더더욱 억세게 붓을 틀어잡았다.그 나날에 로병은 수기 《하나의 혈맥을 잇고》를 비롯한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우리는 그의 창작수첩을 통하여 주체105(2016)년 한해동안에만도 여러편의 작품을 창작했다는것을 알수 있었다.고령의 나이에 중단없이 창작활동을 한다는것은 말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언제인가 자식들이 로병의 건강을 걱정하였을 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 자기는 언제 한번 작품창작을 고생으로 생각해본적이 없다고, 조국수호의 길에 바친 전우들의 피가 헛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날에 못다 쓸어눕힌 원쑤를 끝까지 족치기 위해 누구든 후대들에게 위훈의 력사를 알려주어야 할게 아닌가고. 로병은 밤을 잊고 창작을 하였다.어떤 때는 과중한 정신육체적부담에 견디지 못하여 쓰러진적도 있었다. 그때마다 자기의 글을 보며 기뻐하던 전우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자리를 차고일어났다. 정녕 그가 쓰는 하나하나의 작품은 조국을 지켜 피흘려 싸우던 그 정신으로 애국의 삶을 꿋꿋이 이어가려는 불같은 지향이 어려있는, 후대들에게 전화의 용사들의 위훈을 전해주는 길에서 전승세대의 의무를 다해가려는 숭고한 자각이 비껴있는 전투실화들이였다. 조국수호의 결전에 꽃다운 청춘을 아낌없이 바치며 영웅적으로 싸운 공적만으로도 로병의 삶은 그 얼마나 긍지높고 떳떳한것인가. 하지만 박생근전쟁로병은 지금도 전투실화를 쓰고있다. 이런 로병들이 있기에 이 땅에는 전화의 나날에 높이 울려퍼지던 신념의 노래, 승리의 노래가 영원한것이며 그들이 지녔던 불굴의 조국수호정신이 피줄기로 끝없이 이어지는것이다.
글 본사기자 신 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