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9월 1일 로동신문

 

100년세월이 지났어도 절대로 덮어버릴수 없다

일제의 극악한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을 두고

 

인류력사에는 사람들을 경악케 하는 대학살사건들이 적지 않게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지금으로부터 100년전 간또대진재때 일제살인마들이 감행한 조선인대학살만행은 그 규모와 잔인성, 야수성에 있어서 동서고금에 전례를 찾아볼수 없는 가장 극악한 반인륜범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죄악의 력사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한사코 력사외곡놀음에 매여달리면서 이 엄연한 사실을 부정, 말살하려 하고있다.

하지만 그 어떤 술책으로써도 력사의 한 페지에, 조선인민의 가슴속에 피맺힌 원한으로 남아있는 천인공노할 대학살범죄를 절대로 가리울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23년의 간또대진재는 지각운동이 일으킨 자연의 재난과 함께 일본의 국수주의자들에 의하여 조선민족에게 강요된 인공적인 재난도 기록하고있다.》

1923년 9월 1일 일본의 도꾜와 요꼬하마를 중심으로 한 간또지역에는 새벽부터 강한 바람을 동반한 많은 비가 쏟아졌다.비가 그치고 한낮의 더위가 시작될 정오무렵 리히터척도로 7.9의 지진이 이 지역을 타격하였다.건물과 집, 나무들이 모조리 쓰러지고 도로가 꺼져버렸으며 다리가 끊어졌다.순식간에 모든것이 파괴되고 수많은 사상자와 행방불명자가 생기였다.불과 13초동안의 지진으로 간또지역은 그야말로 페허로 되였다.

진동이 멎자 이번에는 곳곳에서 불이 일었다.그것은 강한 바람을 타고 도시전체를 휩쓸었다.결국 지진이 일어난 후 두시간사이에 간또지역은 무서운 화재에 휩싸였다.도꾜와 요꼬하마의 량곡창고들이 불타버렸고 수도관들과 가스관, 가스탕크들도 모조리 폭발하였다.철도와 전신전화선들을 비롯한 교통, 통신수단들도 완전히 파괴되였다.

언론보도에 의하면 당시 간또지역의 인구 1 000만명가운데 사상자는 무려 20여만명에 달하였다.지진보다 화재로 인한 피해가 더 컸고 깔려죽은 사람보다 불타죽은 사람이 더 많았다.120만여명이 한지에 나앉아 엄습하는 여진의 공포와 굶주림, 극도의 불안과 절망속에서 허덕이였다.

하다면 자연재해에 불과한 이 사건이 어떻게 되여 조선인대학살이라는 무시무시한 살풍경에로 이어졌는가.

세월의 이끼도 덮어버릴수 없는 일제의 반인륜적범죄행위의 진상을 발가본다.

 

일본당국에 의해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감행된 범죄

 

자연의 재난이 초래한 사태는 엄혹하였다.그러나 당시 일본반동지배층은 아무런 구호대책도 세우지 않았다.오히려 파산에 직면한 자본가들을 살려주는데만 급급하였다.당국의 처사에 대한 일본국민들의 불만은 극도에 달하였고 폭동이 일어날 기미까지 보이였다.

급해맞은 일본반동지배층은 자국민들의 불만을 눅잦히기 위해 조선사람들을 제물로 삼을 무서운 흉계를 꾸미였다.

9월 1일 오후 일본반동당국은 정보기관에 민심안정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데 대한 명령을 하달하였다.

다음날인 9월 2일 일본왕의 《칙령》 401호로 계엄령을 발표하여 무시무시한 공포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한편 각 지방장관들에게 조선인들과 사회주의자들을 철저히 탄압할데 대한 공식지령을 내려보냈다.

한때 조선총독부의 정무총감을 하면서 조선인민을 야수적으로 학살한 내무대신 미즈노 렌따로는 지바현 후나바시해군무전국을 통하여 전 일본에 《조선인박멸》을 긴급명령하였다.

때를 같이하여 일본신문들은 《조선인이 방화한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 《조선인이 강도질을 한다.》라는 터무니없는 류언비어들을 련일 내돌리였다.

경찰관들이 확성기를 들고 도시를 순회하면서 조선사람들을 죽이라고 공공연히 선동하였으며 《반항하면 죽여도 일없다.》는 게시문이 곳곳에 나붙었다.삽시에 온 일본땅에 조선사람에 대한 증오의식과 집단공격의 분위기가 조성되였다.

당시 외신들은 진재지역에서 느닷없이 발생한 조선인폭동에 관한 풍설이 《전혀 근거가 없다.》라고 주장하였다.후날 일본중의원의 한 의원은 조선인학살에 돌아치는 일본군사병이 《조선인이 왜 적인가?》라는 물음에 《상관의 명령이니 모른다.》라고 대답하였다고 증언하였다.《조선인폭동설》은 완전히 무근거한것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또계엄사령부》의 사촉하에 일제군경들과 《자경단》족속들은 《오래간만에 법이 허락하는 사람잡이이니 흥이 난다.》라고 떠벌이며 피에 주린 이리떼처럼 날뛰였다.

제반 사실은 간또대진재를 계기로 감행된 조선인살륙만행이 결코 자연발생적으로 일어난 우발적인 사건이 아니라 정권유지를 위한 출로를 다른 민족에 대한 배타주의를 고취하는데서 찾은 일본정부가 계획적으로, 조직적으로 감행한 무차별적인 대학살범죄임을 실증하고있다.

다시말하여 대지진으로 하여 입은 피해와 손실의 책임을 재일조선인들에게 넘겨씌워 일본인들의 반정부감정을 무마하고 저들이 처한 사회정치적위기에서 벗어나려는 음흉한 목적으로부터 일본정부와 군부가 주도하고 총동원되여 감행한 범죄였다.

지각운동이 일으킨 자연의 재난인 간또대진재를 계기로 감행된 일제의 극악무도한 조선인집단살륙범죄의 막은 이렇게 열렸다.

국제법에는 나라와 민족, 종족성원의 전부 또는 그 일부를 전멸할 목적으로 감행한 학살행위는 반인륜적범죄로 규정하며 그에 대하여 시효를 적용하지 말고 처벌할데 대한 내용이 명백히 밝혀져있다.

일제의 간또조선인대학살범죄야말로 그 무엇으로써도 가리울수 없는 가장 엄중한 반인륜적죄악이다.

 

간또지방을 피로 물들인 천인공노할 만행

 

일본반동정부의 살인지령에 따라 인간사냥에 피눈이 된 야수들의 귀축같은 도살만행으로 말미암아 간또지방은 무고한 조선사람들의 피로 물들었다.

당시 계엄령을 선포한 일본당국은 군대와 경찰은 물론 극우익깡패집단인 《자경단》것들까지 동원하였다.《자경단》은 경찰을 도와 일정한 경내에서의 화재나 도난 등을 자체로 처리, 단속한다는 구실밑에 조직된 반동적인 관제민간단체였는데 이런것이 간또지역에만도 수천개나 있었다.

놈들은 이르는 곳마다 《검문소》들을 만들어놓고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5원 55전》이라는 발음하기 까다로운 일본말을 시켜보고는 조금이라도 정확치 않으면 조선사람이라고 단정하고 그 자리에서 가차없이 목을 자르거나 배를 갈라 죽였다.머리수건을 동여매보게 하여 일본인들과 차이나면 조선사람으로 몰아댔고 갑자기 몽둥이로 때릴 때 터져나오는 비명소리를 감별하여 색출하기도 하였다.

일제야수들은 붙잡은 조선사람들을 제방에 묶어세워놓고 새로 만든 기관총의 성능검사대상으로 삼아 죽이였고 해탄로에 집어던져 불태워죽였다.몽둥이, 참대창, 칼, 쇠갈구리, 날창 등으로 때리고 찔러 잔인하게 학살하였다.지어 전주대에 비끄러매놓은 상태에서 눈을 도려내고 코를 베여내여 고통을 준 다음 배를 찔러죽이였고 어린아이들을 줄세워놓고 부모들이 보는 앞에서 목을 자른 후 부모들을 또 찔러죽였다.각종 흉기들을 휘두르며 조선인학살에 미쳐돌아치는 살인귀들의 몰골은 먹이감을 향해 달려드는 승냥이무리를 방불케 하였다.

당시 조선인학살에 관여하였던 한 일본인경찰은 《참살정형은 도저히 입으로 표현할수 없었다.…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의 팔을 톱으로 켜는자도 있었다.그것도 도중에서 팽개치고 또 다른 조선사람들을 톱질하는 모습은 보기도 끔찍하였다.죽은 사람들의 눈을 식칼로 도려내는것도 보였다.…경찰서구내는 피바다를 이루었으며 장화를 신지 않으면 걸을수 없는 형편이였다.》라고 실토하였다.

학살만행을 직접 목격한 한 일본인은 이렇게 증언하였다.

《…한 애젊은 조선녀성의 시체도 있었다.그 녀성의 배는 갈라져있었고 6~7개월쯤 되여보이는 태아가 창자속에 딩굴고있었다.그것을 본 순간 나는 너무나도 놀라 옆으로 뛰면서 물러섰다.우리 일본사람들이 이렇게까지 잔인한짓을 했단 말인가.…내가 일본사람이라는 수치감을 이때처럼 절감하기는 처음이였다.》

피에 주린 야수들의 살인만행으로 하여 대진재가 발생한 때로부터 열흘 남짓한 기간에 2만 3 000여명의 조선사람들이 학살당하였다.

그 참상이 얼마나 끔찍했으면 당시 도꾜주재 외국의 대사와 공사들이 《일본은 놀랄만한 한개 야만국이다.이 야만국을 상대로 외교를 계속할수 없다.》라고 일본외무성에 련명으로 항의하였겠는가.

이것은 그대로 사람잡이에 이골이 난 식인종, 민족배타에 쩌들대로 쩌든 정신적기형아로서의 일제야수들의 몸서리치는 죄악에 대한 력사의 고발이다.

간또조선인대학살, 실로 그것은 일본반동들의 체질적인 민족배타주의와 섬나라 사무라이고유의 잔인성과 야만성이 혼탁되여 빚어낸 대류혈참극이였다.

력사에는 미국의 인디안살륙만행과 히틀러도당의 유태인멸살행위 등 극악한 살인범죄행위들이 수없이 기록되여있다.

하지만 일제야수들처럼 자연재해까지 타민족말살의 기회로 악용하여 무고한 사람들을 잔인하고 악착하게 학살한 례는 없다.

일제야말로 인간증오와 민족배타주의, 야수성이 골수에 꽉 배인 야만들이고 사람잡이에 이골이 난 살인마이며 조선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장장 한세기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갔어도 간또에서 감행된 일제살인귀들의 조선인대학살범죄는 절대로 지워질수 없으며 억울하게 숨진 조선사람들의 령혼은 영원히 잠들수 없다.

 

교활하고 파렴치한 진상은페책동

 

죄를 지었으면 사죄하고 책임을 지는것이 마땅하다.

그러나 일본은 범죄행위에 대해 성근하게 사죄하고 배상할 대신 사건발생당시부터 지금까지 한세기가 되도록 시종일관 그 진상을 가리우고 책임을 회피하려고 간특하게 놀아대고있다.

대학살범죄를 덮어버리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미쳐날뛴데서 극악한 살인마, 파렴치한 날강도로서의 죄악적정체는 더욱 낱낱이 드러나고있다.

사건발생후 일제는 엄격한 보도관제를 실시하는것과 함께 당시 도꾜에 거주하고있던 외국사람들을 한곳에 몰아넣고는 외출을 철저히 단속하였다.

한편 일본정부는 간또대진재를 계기로 감행된 대학살이 《비상설민간인집단인 자경단이 재난당시 류언비어에 말려들어 벌린 우발적범죄》라고 하면서 사실을 외곡하였다.사건의 진상을 가리우기 위해 조선사람들을 적극 《보호》하였다는 역선전과 학살된 조선사람들의 수를 극히 축소하여 발표하는 사기협잡행위도 거리낌없이 벌리였다.

당시 조선총독이였던 사이또 마꼬도는 살해된 조선사람의 수가 2명에 불과하다는 뻔뻔스러운 거짓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그것으로도 성차지 않아 일제는 간또지방에서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조선사람들을 수용소에 가두어두고 소나 말보다 더 혹독하게 부려먹었다.재일조선인들을 죄인처럼 취급하면서 피해지역에 내몰아 강제로동을 시킨탓에 간또대학살때보다 더 많은 우리 동포들이 무참히 학살당하고 굶어죽었으며 로동재해로 쓰러졌다.

일본반동정부는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과 관련한 국가적책임에서 벗어나보려고 주범인 군대와 경찰을 사법처리대상에서 고의적으로 제외시키였다.

간또대진재가 있은 때로부터 100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흘러갔지만 사건은 퇴색되는것이 아니라 더욱 선명하게 진상을 드러내고있다.당시의 대학살만행의 배후에 일본정부가 있었음을 립증하는 자료들이 계속 발굴되고있다.

하지만 사건발생당시부터 오늘까지 일본정부는 의연 《학살에 관여한적도, 사과할 생각도 없다.》는 철면피한 태도를 취하고있다.일본당국자들은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에 대해 《사실관계를 파악할수 있는 기록이 없다.》고 외면해왔으며 지어 《간또대지진당시 조선인학살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명할 계획이 없다.》라는 후안무치한 망발까지 늘어놓았다.

한때 일본에서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이 당국의 관여하에 벌어진 사실이라는데 대해 비교적 객관적으로 서술한 중학교용력사교과서가 발행되였는데 일본반동들은 그것을 전부 회수하는 파렴치한짓을 하였다.

오늘도 일본당국자들은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과 관련하여 《여러가지 견해가 있다.》느니, 《력사가들이 풀어야 할 문제이다.》느니 하면서 그에 대한 국가적책임을 부정하고있다.이것이 간또조선인대학살만행이후 100년간 일본당국의 처사이다.

일본반동들은 천인공노할 반인륜범죄에 대한 죄의식은 꼬물만큼도 없이 오히려 반공화국, 반총련모략책동을 일삼으면서 일본사회전반에 반공화국적대시분위기를 고취하고 총련과 재일조선공민들에 대한 탄압을 정당화하려 하고있다.그로 하여 지금도 일본에서는 땅이 조금만 흔들려도 인터네트에 재일조선인들에 대한 증오와 적대감이 풍기는 론조의 글들이 실리는 등 간또조선인대학살사건때의 악몽을 되살리는 무시무시한 분위기가 감돌고있다.몇해전 규슈의 구마모도지방에서 대규모지진이 일어났을 때 인터네트에 조선사람이 우물에 독약을 쳤다는 황당무계한 글이 실렸는가 하면 조선인의 폭동에 조심하라는 등 극단한 적대감을 고취하는 류언비어들이 공공연히 나돌았다.우익반동들은 간또대진재당시 학살된 조선인희생자들을 추모하는 행사장주변에 몰려들어 《거짓력사를 후세에 남길수 없다.끊어야 한다.》라고 고아대며 조선인학살범죄를 부정하는 란동까지 부리였다.

일본에서 재일조선인들을 적대시하는 망동들이 거리낌없이 감행되고있는것은 군국주의광신자들이 집요하게 추구해온 반공화국, 반총련적대시정책의 직접적산물이며 우리 민족을 또다시 노예화하고 《대동아공영권》의 옛꿈을 실현해보려는 재침야욕의 발로이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였다.그 10년이 열번도 흘렀지만 일본반동들의 속심은 절대로 변하지 않았다.지금도 일본반동들은 력사외곡, 야스구니진쟈참배 등으로 죄악에 찬 침략력사를 미화분식하면서 자국민들과 자라나는 새세대들을 군국주의광신자로 만들려고 발광하고있으며 무력증강과 《자위대》의 해외파병 등 재침책동에 광분하고있다.

일본반동들이 피비린 과거를 덮어버리면서 범죄의 전철을 다시 밟으려고 발악할수록 우리 인민의 대일결산의지는 더욱 강렬해지고있다.

우리 인민은 일제에게 짓밟혔던 수난의 과거를 절대로 잊지 않을것이며 천년숙적 일본과 반드시 총결산을 하고야말것이다.

은정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