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9월 3일 로동신문

 

영광스러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위대한 75성상을 더듬으며

붉은기높이 사회주의조국을 굳건히 지키고 빛내인 영웅적인 년대

우리는 영원히 잊지 않으리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나는 수령님의 뜻대로 인민군대를 틀어쥐고 선군정치를 하여 가장 어려웠던 고난의 행군과 강행군시기에 제국주의자들의 반공화국압살책동을 짓부시고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지켜냈으며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수호하였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이전 쏘련의 레닌그라드에 대한 파쑈도이췰란드군의 약 900일간에 걸치는 봉쇄는 인류사에 가장 참혹한 재난의 하나로 기록되여있다. 그러나 20세기말에 이르러 세계는 그 죽음의 900일보다 훨씬 장기적이며 더 극악한 봉쇄 그것도 전쟁이 아닌 평화시기에 한개 도시가 아니라 한개 국가에 대한 제국주의자들의 전대미문의 봉쇄를 목격하였다. 그 봉쇄의 대상은 바로 사회주의진영이 붕괴되는 동란속에서도 사회주의기치를 꿋꿋이 고수하고있는 우리 공화국이였다.

하늘처럼 믿고 따르던 민족의 어버이를 잃고 커다란 슬픔에 잠긴 우리 조국이 사면팔방으로 제국주의떼무리들의 공격을 받던 그때 우리 인민의 의지를 시험이라도 하려는듯 몇해째 상상하기 어려운 자연재해까지 겹쳐들었다. 게다가 사회주의나라들의 련이은 붕괴로 익측없는 전선으로 된 우리 공화국은 사실상 위기의 극한점에 이르게 되였다.

원쑤들은 예비량곡을 바다에 처넣으면 넣었지 우리 공화국에는 단 한알의 쌀도 줄수 없다고 고약스럽게 지껄이였고 임의의 시각에 평양을 탈환하기 위한 《외과수술식타격계획》이란것까지 뻐젓이 발표하였다. 사전에도 없는 《대용식료품》이라는 말을 놓고 매일같이 당위원회들의 비상협의회가 벌어지고 적들이 김철의 해탄로가 마지막숨을 몰아쉰다고 떠들던 때가 바로 이때였다. 말그대로 한개 국가, 한개 민족이 절멸될수 있는 그 최악의 상황, 참혹한 정상을 어떻게 다 표현할수 있으랴. 이 준엄한 시기는 우리 공화국력사에 고난의 행군, 강행군시기라고 기록되였다.

바로 이러한 때 어버이수령님의 한생이 어린 붉은기를 높이 드시고 사랑하는 조국과 인민, 사회주의의 운명을 걸머지신 위대한 장군님께서 결단코 먼저 찾아가신 곳은 바로 인민군군인들이 지켜선 조국방선초소들이였다.

오늘도 우리 인민의 마음속에는 피눈물의 해를 보내고 맞은 새해 주체84(1995)년의 첫아침에 우리 장군님께서 위대한 수령님께 경의를 드리신 그길로 찾으셨던 잊지 못할 다박솔초소에 대한 가슴뜨거운 추억이 소중히 간직되여있다.

민족의 대국상을 당한 조선에서 무엇이든 조금이라도 변화가 일어나기만을 기다리던 적들은 새해 첫날에 단행된 위대한 장군님의 인민군부대 현지시찰소식에 아연해지고말았다. 그날 저녁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일군들에게 이렇게 교시하시였다.

《인민군대를 강화하는데 선차적힘을 넣으며 총대로 우리식 사회주의를 옹호고수하고 위대한 수령님께서 개척하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가려는것은 우리 당의 확고부동한 신념이며 의지입니다.》

그때부터 우리 장군님께서는 늘 멀고 험한 천리방선 전선길에 계시였다. 우리가 매일같이 뵈와온 장군님의 모습은 위장망을 친 최전방지휘소나 바람세찬 고지우에 서계시는 최고사령관의 모습이였다. 그이께서 찾아가신 곳은 말단전투단위인 중대와 같은 구분대들과 최전연의 감시초소들 그리고 크지 않은 외진 섬방어대를 비롯하여 인민군군인들이 생활하고있는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초소모두였다. 작전전술연구실이나 훈련장, 무기, 전투기술기재 및 군사장비들이 있는 곳만이 아니라 병사들의 체취가 슴배인 병실과 뜬김서린 식당, 세목장과 후방물자보관창고, 부업밭 등에로 이어진 그길은 누구도 걸을수 없고 대신할수 없는 길, 오직 병사들의 친어버이이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만이 가실수 있는 길이였다.

선군장정 천만리!

지금도 외워보면 위대한 장군님께서 이어가신 그길이 너무도 멀고 너무도 험난하여, 그길에 자신의 모든것을 깡그리 바치신 장군님의 헌신의 자욱이 눈물겹게 어려와 격정을 금할수 없다.

야전솜옷, 쪽잠과 줴기밥, 달리는 집무실…

그 나날 우리 장군님의 선군장정에 아로새겨진 한편한편의 혁명일화들이 오늘도 이 나라 인민의 가슴을 친다.

자그마한 단정에 오르시여 사나운 날바다를 헤치시며 기어이 찾아가셨던 초도,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오신단 말입니까라고 웨치며 눈물을 비오듯 쏟는 병사들에게 동무들이 너무 보고싶어 이렇게 왔다고 가슴치는 말씀을 남기신 그날의 이야기, 군사분계선 코앞에까지 나가시여 최전방의 병사들에게 자주적근위병의 신념과 기개를 안겨주신 판문점의 안개길에 대한 이야기, 지쳐내리는 야전차를 몸소 밀고오르신 선군의 산악 오성산칼벼랑길에 깃든 눈물겨운 추억…

혁명의 령도자이시기 전에 그 누구보다 인민을 사랑하시는 인민의 어버이이신 우리 장군님께서 선군장정의 길에서 겪으셔야 했던 정신적고충과 아픔은 또 얼마나 큰것이였던가.

힘겨운 생활난을 겪고있는 인민의 정상을 보시면서 선군의 천만리길을 강잉히 이어가시는 나날에 언제인가 그이께서 국방력강화에 돌려야 할 자금문제와 관련한 문건에 힘들게 수표를 하시며 일군들에게 절절히 하신 교시가 우리의 눈굽을 적신다.

인민들이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는 때에 이런 결심을 내리자니 정말 가슴이 아파 견딜수 없다. 나는 이런 때가 제일 괴롭다. 하지만 이제 우리가 통장훈을 부르게 될 때 인민들에게 다 이야기하자. 인민들은 왜 허리띠를 조이지 않으면 안되였는가에 대하여 다 리해할것이다.

이렇듯 강의한 의지와 신념으로 꿋꿋이 선군장정을 이어가신 위대한 장군님이시였다.

우리 당과 인민에게 있어서 준엄한 시련의 시기였던 지난 세기 90년대를 추억하시면서 경애하는 총비서동지께서는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령님의 한생의 유산인 사회주의조국과 사랑하는 인민들을 위하여 사생결단의 의지를 지니시고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추켜드시였으며 그 나날에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천만고생을 다 겪으시였다고, 지금도 고난의 행군시기 선군만이 우리 민족을 살리는 길이라는 신념과 의지를 지니시고 최전연초소들과 군수공장들을 찾고찾으시던 최고사령관동지의 모습을 되새겨보느라면 눈시울이 뜨거워지군 한다고 절절하게 말씀하시였다.

우리 장군님의 선군정치로 하여 원쑤들이 사회주의조선이 1996년 5월을 넘기지 못할것이라는 《5월위기》설까지 내돌리면서 포위환을 끈덕지게 좁히였던 이 땅에서는 군사는 물론 나라의 모든 부문에서 근본적인 변혁이 일어났으며 인간도 사회도 생활도 일신한 선군시대라는 위대한 하나의 새시대가 탄생하였다. 우리앞에 닥쳐왔던 고난의 구름장들은 밀려나고 나라와 민족의 존엄, 사회주의기치는 굳건히 지켜지게 되였다.

피눈물의 언덕에서 시작된 고난의 천만고비들에서 우리 인민은 제국주의와 맞서 조국을 수호한 기적의 창조자, 인류의 자주화위업, 사회주의위업을 피로써 지켜낸 승리자, 자력갱생의 강자, 전설적인 신화의 주인공으로 솟구쳐올랐다.

20세기말엽에 우리 인민이 겪어야 했던 고난의 행군, 강행군은 결코 력사의 추억으로만 남아있지 않다.

공화국의 공민이라면 누구든 우리 장군님께서 쓰러진 인민을 부둥켜안으시고 일생일대의 대용단을 내리시며 다박솔초소에로의 령도의 자욱을 새기시던 1995년의 그 1월 1일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더욱 가슴깊이 쪼아박아야 한다. 1990년대의 준엄한 그 나날에 우리 장군님 조국과 인민을 한품에 안으시고 어떤 험로역경을 헤쳐오셨는가를, 그 누가 내 마음 몰라줘도 몰라준대도 희망안고 이길을 가고가리라는 노래를 늘 마음속으로 부르시며 비바람불고 눈보라쳐도 불굴의 의지로 이어가시던 우리 장군님의 강행군길에 깃든 만단사연들을.

우리는 또 한분의 위대한 령장이시며 절세의 애국자이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앞으로도 고난의 행군정신으로 만난을 뚫고 공화국의 존엄과 자주권을 영예롭게 지켜낼것이며 사회주의승리의 필연성을 세계앞에 똑똑히 각인시킬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그 업적을 후손만대는 영원히 잊지 않을것이다.

본사기자 안성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