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9월 20일 《우리 민족끼리》
절대로 묵인할수 없는 죄악의 행적
지금으로부터 148년전에 감행된 《운양》호사건은 우리 나라에 대한 일제의 침략이 얼마나 악랄하였는가를 똑똑히 보여주고있다. 《정한론》이 우리 나라에 대한 강도적인 침략교리였다면 《운양》호사건은 그를 실천에 옮기기 위한 첫 시도였다. 다시말하여 《정한론》이 일본침략자들의 호전적이고 강도적인 사고방식의 반영이라면 《운양》호사건은 그 행동방식과 야수적기질을 드러낸것이라고 할수 있다. 1875년 5월 침략선《운양》호를 부산에 불법침입시켜 그 무슨 《발포연습》을 한다고 하면서 우리 나라를 위협공갈한 일제는 그해 9월 《항로측량》의 구실밑에 《운양》호를 또다시 우리 나라 연해에 침입시켰다. 다른 나라의 령해에 들어가자면 해당 나라의 사전승인을 받는것이 국제법상요구이며 국제관례이다. 당시 조선봉건정부는 불법침입한 일본침략선이 즉시 물러갈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나 일본침략자들은 그에 응하지 않았다. 사전에 군사정탐임무와 강화도공격임무를 받고왔기때문이였다. 이에 대하여 일본륙군대장 야마가다는 《1875년 9월 <운양>호 함장 이노우에소좌는 조선연해안으로부터 청나라 우정에 이르는 해로를 조사한다는 명목으로 암암리에 조선에 대한 시위운동을 실시하라는 내적훈령을 해군성으로부터 받았다.》고 토설하였다. 《운양》호의 침략무리들은 9월 19일 강화도앞바다에 불법침입하여 월미도일대에서 수로 등을 정찰하고 그 다음날인 9월 20일 우리 나라 서해의 중요군사요새이며 서울을 지키는 요충지였던 초지진포대 700m앞까지 접근하였다. 조선군대가 자위적조치를 취하자 《운양》호는 기다렸다는듯이 초지진포대에 맹렬한 포사격을 가했으며 방어시설이 없거나 약한 항산도 등을 습격하여 수많은 무고한 주민들을 살륙하는 만행을 감행하였다. 분노한 조선군대는 침략자들에게 된타격을 가하였다. 이것이 《운양》호사건의 전말이다. 력사적사실은 《운양》호사건이 일본이 조선침략의 발판을 마련하기 위한 계획적인 도발책동의 한 고리였다는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고있다. 《운양》호사건을 조작한 일본침략자들은 부단한 무력위협책동으로 조선봉건정부에 압력을 가하면서 예속적인 불평등《조약》을 강요하였으며 종당에는 《강화도조약》을 조작하고 그 이후 《을사5조약》, 《정미7조약》, 《한일합병조약》 등을 련속 날조하여 조선을 완전히 식민지로 만들어버렸다. 력사적사실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일본반동들은 《운양》호사건을 《일본군함이 측량을 하다가 조선군대와 교전한 사건》, 《포격을 당한 사건》 등으로 모호하게 묘사하면서 사건전말을 심히 외곡날조하고있다. 《운양》호사건이 있은 때로부터 근 한세기반이라는 기나긴 세월이 흘렀지만 오늘도 일본반동들의 침략책동은 끊임없이 이어지고있다. 일본반동들은 과거죄악에 대한 인정과 사죄, 배상을 한사코 외면하면서 저들의 침략력사와 범죄의 행적을 계속 미화분식하고있으며 조선반도재침야망을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있다. 더욱 문제로 되는것은 오만한 왜적의 침략야망에 부채질하고있는 윤석열괴뢰역적패당의 추악한 친일사대매국적망동이다. 윤석열역적패당은 지금 온 민족의 끓어오르는 반일의지에는 아랑곳없이 민족의 천년숙적과 그 무슨 《관계개선》을 한다고 하면서 일제의 과거죄악을 한사코 무마시키려 하고있다. 나중에는 일본의 후꾸시마원자력발전소 핵오염수해양방류를 앞장에서 적극 비호두둔하면서 조선반도와 그 주변의 생태환경을 엄중한 위험에 몰아넣고있으며 오만하고 파렴치한 일본반동들의 대변인노릇도 마다하지 않고있다. 148년전이나 오늘에나 변함없는 섬나라족속들의 파렴치한 망동과 민족의 분노를 자아내는 친일역적들의 죄악을 묵인한다면 언제 가도 수치와 오욕을 면할수 없기에 분노한 민심은 료원의 불길처럼 타올라 이렇게 웨치고있다. 《일본정부는 과거력사에 대해 반성하고 전쟁가능한 군사대국화정책 페기하라!》, 《친일매국노 윤석열을 몰아내자!》, 《못살겠다! 갈아엎자! 윤석열정권 퇴진하라!》… 본사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