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2(2023)년 10월 23일 로동신문

 

사람이 산다면 천년을 살랴,
순간을 살아도 조국이 기억하게 살자

전세대들의 고결한 삶을 돌이켜보며

 

사람에게 있어서 생은 한번밖에 차례지지 않는다.때문에 누구를 막론하고 값있게 살기를 원하며 그를 위해 노력하고있다.

세상을 둘러보면 삶의 가치와 보람에 대한 견해는 각이하다.직위와 공명을 탐내는 사람들도 있고 재부와 향락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다.허나 결코 오래 산다고 하여 가치있는 삶으로 되는것이 아니며 한당대 잘 먹고 잘살았다고 해서 보람있는 생이라고 자부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우리에게는 삶의 진가가 어디에 있는가를 깨우쳐준 사람들이 있다.항일의 혈전만리길, 전화의 포연탄우를 헤치며, 간고한 전후복구건설과 사회주의건설의 험난한 길을 헤치며 피와 땀을 뿌리고 한목숨 기꺼이 바쳐 조국을 찾아주고 지켜준 우리 혁명의 전세대들이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우리는 새세대들도 당과 수령에게 끝없이 충실하였던 전세대들처럼 한생을 빛나게 살도록 교양하여야 합니다.》

세월이 흐르고 시대가 발전해도 후대들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 모습으로 남아있는 우리 혁명의 전세대는 과연 어떤 인생관을 지닌 사람들이였던가.

우리가 어렵고 힘들 때마다 자주 펼쳐보군 하는 《항일빨찌산참가자들의 회상기》에서 그에 대한 대답을 찾을수 있다.

원쑤들에게 두눈을 빼앗기고도 혁명의 승리가 보인다고 웨친 녀투사도 있고 야장간에서 맨손으로 폭탄을 만들어낸 자력갱생강자들도 있다.참된 인생을 재부나 명예, 일신의 향락에서 찾은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그렇듯 뼈속까지 스며드는 혹한과 모진 굶주림, 피어린 혈전으로 이어진 하루하루를 강의하게 이겨낼수 있었겠는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몇편의 장편소설을 써도 모자랄것이라고 감회깊이 회고하신 1940년의 준엄한 가을을 돌이켜보자.

상상할수 없는 난관과 절망속에서 혁명을 다시한번 상승시키기 위하여 강행군을 할것을 결심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항일유격대원들에게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툭 털어놓으시였다.

우리가 10년이나 고생이란 고생은 다하면서 싸웠지만 그런 고생을 이제 5년 더 하게 될지 10년 더 하게 될지 그것은 찍어말하기 어렵다.…우리가 이때까지 겪은 난관보다 몇배, 몇십배 더 큰 난관도 있을수 있다.그러니 우리를 끝까지 따라가 혁명을 계속할 자신이 없는 사람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집으로 가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려비도 주고 길량식도 주겠다.그리고 투쟁을 중도반단한데 대하여 문제시하지 않겠다.힘이 약하고 신심이 모자라서 대오를 떠나는거야 어떻게 하겠는가.갈 사람은 가라.…

그때 위대한 수령님의 품에 와락 안겨들며 투사들이 눈물을 뿌리면서 한 말은 무엇이였던가.

장군님, 혁명이 성공하는 날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 해도 일없습니다.살아도 좋고 죽어도 좋으니 우리는 장군님곁을 떠나지 않겠습니다.사람이 살면 얼마나 살겠습니까.동지들을 배반하고 산에서 내려가 적들한테 머리를 숙이고 살바엔 여기서 싸우다 죽는것이 낫습니다.우리는 장군님과 생사를 같이하겠습니다.…

꾸밈없는 이 진정의 토로는 투사들이 지녔던 아름다운 인생관의 분출이였다.

공화국력사에 영웅세대로 남아있는 1950년대 전승세대가 우리 후대들에게 남긴 정신적재부와 유산은 또 얼마나 고귀한것이였던가.

탄알이 떨어지면 수류탄으로, 수류탄마저 떨어지면 총창을 비껴들고 육박전에로 나아가며 피로써 한치한치의 조국땅을 사수한 그들의 모습은 오늘도 우리 인민의 가슴속에 충성과 애국이란 어떤것인가를 말해주는 불멸의 군상으로 새겨져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전승세대의 인생관에 대해 다 이야기할수 없다.피로써 전쟁승리를 안아온 그 공적만으로도 조국과 후대들앞에 떳떳한 사람들이였건만 포화속을 뚫고헤친 전화의 영웅들은 피흘린 대가를 바라며 편안한 일감을 찾은것이 아니라 전화의 군복차림으로 복구건설의 전구마다에 또다시 용약 뛰여들었다.그 어떤 시련도 난관도 이겨내며 복구와 건설에로 힘차게 나아간 그 불굴의 투쟁정신이야말로 위대한 전승세대가 창조한 또 하나의 고귀한 사상정신적재부이며 우리 후대들이 대를 이어 물려받아야 할 삶과 투쟁의 훌륭한 교과서이다.

비단 투사들과 전화의 용사들만이였던가.

이 땅 그 어디를 가보아도 공장은 공장마다 농촌은 농촌마다 연혁사의 갈피갈피에 새겨진 잊지 못할 전세대들이 남긴 애국의 자욱을 찾아볼수 있다.

그들은 누구라 할것없이 순간을 산다 해도 자기자신과 가정보다 먼저 수령이 바라는 문제, 당결정을 두고 몸부림친 사람들, 후대들을 위한 창조물마다에 깨끗한 량심을 묻은 사람들이였다.다름아닌 우리의 오늘을 위해 바쳐진것이 바로 우리모두의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의 한생이였다.그들이 아낌없이 바친 지혜와 땀, 열정은 그대로 거창한 창조의 동음으로, 불밝은 창가마다에서 울리는 아이들의 행복의 노래소리로 이어지지 않았던가.

뿌리가 없는 거목에 대해 생각할수 없듯이 혁명선배들이 이룩한 공적을 떠나 존엄높고 강대한 우리 국가에 대해 생각할수 없다.우리가 노래 《후대들을 위하여》, 《아버지 어머니의 청춘시절》을 그토록 즐겨부르는것도 아마 그때문일것이다.

그렇다.사람이 산다면 천년을 살겠는가.순간을 살아도 전세대들처럼 후대들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 생을 살려는 각오와 의지, 자기의 성실한 땀과 량심이 슴배여있는 창조물들로 후대들의 행복의 터전을 마련해주겠다는 불같은 자각과 열망을 안고 일해야 한다.삶의 가치는 오래 살고 잘사는데 있는것이 아니라 바로 조국과 혁명을 위하여 깡그리 바치는 헌신과 자기희생에 있으며 시대와 력사앞에 기여한 공적의 높이에 있는것이다.

하다면 전세대들이 자신들의 피와 땀으로 안아온 행복의 터전에서 마음껏 희망의 나래를 펼치고있는 우리 새세대들은 어떤 삶의 지향을 안고 살아야 하는가.

개척하고 창조하는 세대가 따로 있고 향유하는 세대가 따로 있을수 없다.만일 우리가 전세대들의 고생과 희생의 대가로 마련된 행복의 터전에서 태여난것을 행운으로만 감수한다면, 그속에서 락을 누리려고만 한다면 그것은 후대들에게 넘겨주는 무거운 짐으로 될것이다.우리는 전세대의 아름다운 삶을 찬양하는것으로 그칠것이 아니라 그들의 아름다운 인생관을 피줄처럼 이어가는 세대, 그들처럼 후대들의 기억속에 남는 세대가 되기 위해 분투해야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세대가 개발의 첫 발파소리 울린 탄전과 천리마작업반운동의 불길을 지펴올린 사연깊은 일터에 섰다고 해서 전세대의 혁명정신, 애국정신이 저절로 계승되는것이 아니다.향유의 권리보다 헌신의 의무를 먼저 생각하는 고결한 량심, 오늘의 창조와 헌신이 없이 다음세대의 번영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다는 숭고한 사명감을 가슴깊이 간직하고 공화국발전사에 가장 위대하고 강인한 세대로 남기 위해 힘과 지혜, 열정을 깡그리 바쳐 분투함으로써 삶의 순간순간을 빛나게 수놓아가야 한다.

공화국발전사에 가장 위대하고 강인한 세대!

이 얼마나 값높은 부름인가.그것이 곧 우리 세대에 대한 후대들의 평가로 된다고 생각해보면 얼마나 가슴이 뿌듯해지는가.

그렇다.후대들의 기억속에 잊혀지지 않는 생처럼 아름다운 삶은 없다.

누구나 먼 후날 후대들이 오늘의 우리를 두고 정말 훌륭한 사람들이였다고, 그들이 창조와 헌신으로 안아온 재부가 있어 자기들의 행복한 생활이 있다고 두고두고 추억할수 있게 오늘의 하루하루를 떳떳하게 살자.

본사기자 강금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