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1월 29일 로동신문

 

한 교육자가 심장깊이 새긴 진리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인민대중중심의 우리식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이 국가와 사회의 주인으로 되고 국가와 사회의 모든것이 인민대중을 위하여 복무하는 참다운 사회주의이며 우리 인민의 생명으로, 생활로 깊이 뿌리내린 불패의 사회주의이다.》

우리 인민 누구나 사회주의조국을 사랑하며 자랑하지만 조국의 은혜로움에 대하여 다 알고있는것은 아니다.

얼마전 김일성종합대학 교원 박사 부교수 지경남동무가 들려준 이야기를 통하여 우리는 조국의 귀중함과 고마움에 대하여 다시금 깊이 느끼게 되였다.

지경남동무가 사업상용무로 다른 나라에 간것은 몇해전이였다.

당시 그는 대표단성원들과 함께 그 나라에서 이름있다고 하는 병원들을 참관하게 되였다고 한다.

그곳 의사들은 저마끔 자기들의 병원이 규모도 크고 기술설비의 측면에서도 발전되였다고, 치료받을 일이 생기면 어느때든지 오라고 자랑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 지경남동무는 뜻밖의 병에 걸리게 되였다.

그의 뇌리에는 얼마전에 참관하였던 병원의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때는 23시, 하지만 그는 조국에서의 습관대로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큰 기대를 안고 전화기를 들었지만 의사의 목소리는 너무도 랭랭했다.

의사는 지금은 깊은 밤인데 자기들도 휴식을 해야 하니 래일 아침에 보자는것이였다.

(세상에 이런 의사들도 있는가?!…)

낯설은 이역땅에서 병으로 모대기며 한밤을 지새우느라니 그의 가슴속에는 불현듯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갈마들었다.

이른새벽이건, 깊은 밤이건 주민 한사람이라도 빠질세라 집집을 찾아다니며 예방주사를 놓아주던 호담당의사들의 엄하면서도 정깊은 목소리들이 귀가에 울리는가 하면 어린 자식이 아파할 때 밤길도 마다하지 않고 땀흘리며 달려와 구급대책을 세워주고 한밤을 지새던 진료소의사의 정다운 모습도 떠올랐다.

그의 입에서는 부지중 이런 말이 흘러나왔다.

《조국에서라면 벌써 의사들이 달려왔을텐데…》

순간 병문안왔던 동무들도 숙연한 감정에 휩싸였다.

그날 밤 그들은 인민의 건강을 국가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의사들이 일정한 수의 가정세대를 담당하여 주민들의 건강을 돌보며 의사가 환자를 찾아가는것이 례사로운 일로 되고있는 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이 얼마나 고마운것인가를 다시금 되새겨보며 눈굽을 적시였다.

다음날 해가 중천에 떠서야 기다리던 의사가 왔다.

그런데 병을 보기 전에 손부터 내미는것이였다.

왕진비, 왕진비를 어서!그래야…

바로 이것이였다.돈을 쥐여주어서야 의사는 진찰을 시작하였다.

한동안 환자의 상태를 살펴보고나서 의사는 도리머리를 흔들었다.

그리고나서 원인을 딱히 알수 없으니 병원에 가서 종합검진을 받아보라고 하고는 또다시 돈을 요구했다.이번에는 상담비라는것이였다.

지경남동무는 입을 딱 벌렸다.사회주의제도의 혜택을 받으며 살아온 그로서는 정말 리해할수 없는 일이였던것이다.너무도 기가 막혀 그는 의사가 언제 돈을 받아가지고 돌아갔는지 의식조차 할수 없었다.

이튿날 그는 동무들과 함께 병원으로 갔다.

그곳 의사들이 친절하게 맞아주었지만 실상은 환자의 돈주머니를 노린것이였다.

그를 더욱 아연케 한것은 치료를 받기 전까지만 해도 완쾌를 장담하다가도 일단 치료가 시작되자 후날 효과가 없어도 병원측은 책임지지 않는다고 미리 침을 놓는 의사들의 이중적인 태도였다.

참으로 험악한 세상이였다.

한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어느날 저녁 그가 치료를 받는 병원으로 한 환자가 실려왔다.보매 상태가 몹시 위급한듯싶었지만 누구도 환자에 대해 관심을 돌리지 않았다.영문을 몰라 의사에게 묻자 대답이 실로 가관이였다.

《퇴근시간이기때문에 치료를 할수 없습니다.》

후에 알고보니 이곳 의사들은 아무리 급한 환자가 제기된다고 해도 일단 퇴근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집으로 향했고 환자들인 경우에는 예약이 없으면 병원측과 《사업》을 하여야만 치료를 받을수 있었다.

결국 의사들의 최대의 목적은 환자치료가 아니라 오직 돈을 버는것이였다.

지경남동무에게는 그쯘한 실험설비 및 의료설비, 방대한 하부구조를 가지고있는 병원건물이 《수준높은 봉사》를 통해 수입을 올리는 《상업기관》으로 여겨졌다.

환자들을 위해 정성을 기울여야 할 의사들이 수전노가 되였으니 그들의 손에서 치료가 될리 만무했다.

그의 병은 더욱 악화되였다.날이 갈수록 지경남동무는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못견디게 사무쳤다.

너무나도 평범하게만 여기였던 모든것들이 다시 되새겨졌다.

얼마후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중앙병원에 입원하였다.

의료일군들의 뜨거운 정성속에 집중치료를 받고 병원정문을 나서는 그날 그는 격정의 눈물을 쏟았다.

그는 잊을것같지 못했다.

치료가 잘되자면 영양상태가 좋아야 한다면서 색다른 음식들을 집에서 들고나와 침상에 놓아주고 매일 저녁 자기 호실에 들려보고서야 퇴근길에 오르던 의료일군들의 모습들을.

어찌 이들뿐이랴.

학부의 일군들과 교원들도 자주 찾아와 혈육의 정을 부어주었다.

이것은 남의 아픔을 자기의 아픔으로 여기고 서로 돕고 이끄는것이 하나의 사회적기풍으로 되고있는 우리 사회에서만 꽃펴날수 있는 미덕이였다.

정녕 내 나라, 우리 제도는 얼마나 좋은가.

지금도 지경남동무는 자주 학생들에게 이렇게 말하군 한다.

《우리의 사회주의제도를 사랑하고 대를 이어 지키며 빛내여가야 합니다.사회주의제도를 사랑하는 여기에 우리모두의 보람찬 오늘이 있고 더 밝은 래일이 있습니다.》

이것은 한 공민이 자기의 실체험으로 심장깊이 쪼아박은 진리이고 교육자로서 제자들에게 하는 당부이기도 하다.

본사기자 신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