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3월 9일 로동신문
무고한 사람들의 붉은 피가 하나의 지층을 이룬 땅 미제에 대한 치솟는 복수심의 발원점, 력사의 고발장인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신천박물관을 참관하면 미제야말로 인간살륙을 도락으로 삼는 식인종, 살인귀들이며 우리 인민이 왜 미제를 반대하여 견결히 싸워야 하는가를 똑똑히 알게 될것입니다.》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 미제의 죄악을 만천하에 폭로하는 력사의 땅 신천, 우리는 참관자들과 함께 강사의 안내를 받으며 신천박물관 전시실-3에 들어섰다.거기에는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 11월 신천군 읍지구의 범바위산중턱에서 수십구의 애국자들과 무고한 인민들의 유골이 발굴된데 대한 자료가 전시되여있었다. 당시 땅겉면으로부터 40㎝의 깊이에서 나오기 시작한 유골들은 반듯이 누운 자세만이 아니라 모로 눕거나 거꾸로 머리를 박은 상태, 앉은 자세, 손으로 땅을 허비며 몸부림치던 자세 등 각이한 상태에 있었다. 특히 머리뼈들가운데 일부는 미제살인귀들이 흉기로 사용한 대못과 레루못, 꺾쇠, 괭이날들이 그대로 박힌채로 있었다.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의 야수성과 악랄성은 다음전시실에 전시된 자료들을 통해서도 잘 알수 있었다. 전시실-4에는 방공호에서 벌어진 끔찍한 참변을 보여주는 생동한 자료들이 수많이 전시되여있었다. 미제야수들은 군내무서창고에 가둔 인민들을 학살할 방법을 모의하는 자리에서 그들을 다른데 끌어내가지 말고 내무서방공호에 처넣고 비밀리에 죽여야 한다, 그렇게 하면 후에 공산주의자들이 학살한것으로 역선전을 할수 있다고 지껄이면서 수백명의 주민들을 방공호에 몰아넣고 입구를 흙가마니로 밀페한 다음 이미 장치해놓았던 폭발물도화선에 불을 달아 그들모두를 야수적으로 학살하였다.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전시실을 돌아보는 참관자들의 눈앞에 폭발로 무너져내린 어둑컴컴한 방공호입구며 바위돌들에 치여 팔다리와 몸, 머리가 깨여진 애국자들의 피에 젖은 처참한 모습들이 어려왔다.그날의 참상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광경앞에서 치를 떠는 참관자들에게 강사는 미제살인귀들과 계급적원쑤들은 방공호뿐 아니라 군내무서주변 전호에서도 비밀리에 수많은 애국적인민들을 학살하였다고 하면서 여러 차례에 걸쳐 현지에서 수백구의 유해가 발굴된데 대하여 말하였다.미제승냥이들과 계급적원쑤들은 길이가 10m도 안되는 협소한 전호에서 무려 145명의 남성과 52명의 녀성들, 42명의 어린이들을 학살하여 비밀리에 묻어버리였다.유해들가운데는 어머니들의 등과 가슴에 유착된 어린이들의 유해도 적지 않았다. 강사는 이미 239구의 유해가 발굴된 전 신천군내무서주변 전호와 련결된 곳에서 1990년대에 또다시 79구의 유해가 발굴된데 대하여 격분에 넘쳐 말하였다.아직도 피물이 축축히 배인듯한 땅속에서 파헤쳐진 유해와 유물들은 죽어서도 봉분에 잠들지 못한 억울한 령혼들의 울부짖음을 그대로 전하는듯싶었다. 우리는 신천에서 감행된 미제의 극악한 살륙만행을 전시실-5에서 더 똑똑히 체험할수 있었다. 전시실에는 차마 눈뜨고 볼수 없는 참혹한 광경이 반경화로 형상되여있었다. 그것은 전쟁전 우리 공화국의 인민적시책에 의해 근로자들의 문화휴식터로, 휴양지로 이름높던 온천휴양소에서 미국놈들이 어떻게 우리 녀성들의 정조를 유린하고 학살하였는가를 생동한 화폭으로 보여주고있었다. 깊은 밤 휴양소 이르는 곳마다에서 녀성들을 강간, 릉욕하고는 그들을 칼로 찔러죽이고 목눌러죽이고 련못에 빠뜨려죽이는 인간백정 미제살인귀놈들, 찢겨진 옷도 미처 여미지 못한채, 너무도 분하고 절통하여 눈도 감지 못한채 쓰러진 수많은 녀성들… 산천초목도 치를 떨 극악한 살인만행앞에서 치솟는 분노를 금치 못하는 참관자들에게 강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미제야수들에 의해 근로자들의 행복넘친 웃음소리, 노래소리만 울려퍼지던 온천휴양소에서 수많은 녀성들이 자기의 꽃다운 청춘과 목숨을 잃었습니다.》 온천휴양소뿐이 아니였다. 미제는 온천얼음창고에서도 사나운 군견을 풀어놓아 사람들을 물어뜯게 하고 나중에는 그들의 머리우에 불을 지름으로써 녀성들과 아이들을 비롯한 1 200여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는 야수적만행을 감행하였다. 실로 신천은 이르는 곳마다가 학살터였고 죽음의 생지옥이였다.전시실-6을 비롯하여 신천박물관의 여러 전시실은 당시 북부면과 가산면을 비롯한 신천군의 곳곳마다에서 미제원쑤들이 감행한 짐승도 낯을 붉힐 야수적인 살륙만행을 수많은 자료와 전시물들을 통해 구체적으로 폭로하여주고있었다. 미제에 대한 증오와 복수심을 안고 참관의 길을 이어가던 우리의 귀전에 문득 어린이들의 애처로운 울음소리와 녀성들의 울부짖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에 이끌려 전시실-9에 들어선 우리는 눈앞에 펼쳐진 처참한 광경앞에서 전률하지 않을수 없었다. 전시실에는 원암리 밤나무골의 화약창고에서 미제야수들이 감행한 반인륜적만행을 보여주는 반경화와 함께 불에 타 시꺼먼 숯덩이처럼 되여버린 어머니들의 모습이 그대로 형상되여있었던것이다. 《인민군대의 재진격에 의해서 신천땅에서 쫓겨나게 된 미제침략군놈들은 원암리 밤나무골 두개의 화약창고에서 또다시 야수적인 대학살만행을 감행하였습니다.》 강사는 이렇게 말하면서 당시 신천의 거리와 마을을 미친개마냥 싸다니며 어머니들과 어린이들을 모조리 잡아들인 미제승냥이놈들이 그들을 두개의 화약창고에 따로 가두어넣고 얼구어죽이고 굶겨죽이다 못해 제놈들이 신천땅에서 쫓겨가는 날인 12월 7일 새벽에는 그들의 머리우에 불을 지르고 나중에는 수류탄까지 던져 학살한 사실을 구체적으로 해설하였다.참관자들의 얼굴마다에는 철천지원쑤 미제에 대한 불같은 적개심과 복수심이 력력히 어려있었다. 《저는 지금껏 신천을 여러번 찾았지만 오늘 이렇게 신천박물관을 참관하고보니 령혼들의 피타는 절규가 귀전에 쟁쟁히 들려옵니다.미제를 모조리 때려잡고 쌓이고쌓인 원한을 기어이 풀어야겠다는 결심이 더욱 굳어집니다.》 이것은 황해제철련합기업소의 한 로동자만이 아닌 참관자들모두의 격동된 심정이였다.우리는 미제와 계급적원쑤들에 의해 무참히 생명을 빼앗긴 수많은 사람들의 붉은 피가 하나의 지층을 이룬 신천에서 천백배의 복수를 다짐하며 다음전시실로 참관의 길을 이어갔다. 글 및 사진 본사기자 송 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