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7월 26일 로동신문

 

력사가 보여주는 패배자들의 가련한 몰골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창건된지 2년도 채 안되였던 청소한 우리 공화국이 세계〈최강〉을 자랑하는 미제를 우두머리로 하는 제국주의련합세력을 타승하고 조국을 수호한 승리의 력사는 세계전쟁사에 빛나는 한페지로 영원히 남아있을것입니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허장성세하며 달려들던 미제는 전쟁초기부터 우리 인민군대에게서 된매를 맞고 심대한 정치군사적패배를 거듭하였다.

더는 헤여나올수 없는 가긍한 처지에 빠진 미제는 전쟁개시 한해만에 드디여 머리를 숙이고 우리 공화국에 정전담판을 구걸해왔다.

미제가 제놈들의 야망을 실현하지 못하고 먼저 정전담판을 제의해온것은 미국의 지나온 100여년의 침략력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일이였다.

담판장에 나온 미제침략자들은 백수십차에 달하는 정전담판의 나날 《대아메리카제국》의 장관들다운 《당당한 기개와 위풍과 위신》도 줴버리고 《패전대표》로서의 가련한 몰골로 많은 일화들을 남기였다.

 

조소거리가 된 미군장교의 물음

 

첫 정전담판이 진행되기 이틀전인 1951년 7월 8일 개성의 래봉장에서는 담판의 서막으로 되는 쌍방련락군관들의 예비회담이 열리였다.

후줄근한 몰골로 회담장에 들어선 적측장교들은 그야말로 법정에 나선 피고자들을 방불케 하였다.

이윽고 회담이 시작되여 우리측 수석련락군관이 《당신들은 어떠한 문제를 먼저 토론하는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가?》라고 물었다.

공포에 질려 한동안 멍청히 앉아있던 적측 수석련락장교는 난데없는 물음으로 상대방의 말에 응수하였다.

《정전에 관한 정식회의는 언제 열겠는가?》

이 물음으로 적측 수석련락장교는 만장의 웃음거리가 되였다.

본회담날자는 이미 쌍방이 서한을 통하여 1951년 7월 10일에 하기로 합의를 보았던것이였다.

극도의 절망감과 불안감에 사로잡혀 내뱉은 수석련락장교의 발언으로 미제는 회담시작부터 세계의 놀림가마리가 되고말았다.

 

패배자들이 받는 응당한 《대접》

 

세계의 이목이 조선으로, 군사정전담판장인 우리측지역 개성의 래봉장으로 쏠리고있던 1951년 7월 10일 조선정전담판이 개시되였다.

어깨가 축 처져 담판장에 들어서는 미국측대표들은 우리측의 당당하고 자신만만한 태도와 일시에 쏠리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사방에서 번쩍이는 사진기의 섬광에 얼이 나갔다.

쌍방대표들은 담판탁을 마주하고 앉았다.

우리측대표들은 남쪽을 향한 북쪽의자에, 미국측대표들은 북쪽을 향한 남쪽의자에 자리를 잡았다.

미국측 수석대표는 대번에 이마살을 찌프렸다.

전승국이 남쪽을 향한 자리를 차지하고 전패국이 북쪽을 향한 자리를 차지하는 동양풍습대로 자리가 정해졌기때문이였다.

이자들이 우거지상을 하게 된데는 또 다른 사연이 있었다.

이날 직승기로 판문점까지 온 적측대표들은 우리가 로획한 미군찌프차와 석대의 화물자동차에 실려 회담장소로 오게 되였는데 그 차들에 예비회담에서의 합의에 따라 큼직한 흰기가 꽂혀있었던것이다.

비록 아메리카제국의 장관들에게는 수치스러운 일일테지만 패배자들이 받는 응당한 《대접》이 아닐수 없었다.

 

번민속에 저지른 황당한 실수

 

이른바 힘으로 조선인민을 《정복》하겠다고 흰소리치며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고 《영예로운 정전》이 아니면 절대로 정화를 하지 않겠다고 뻗쳐대던 미제는 전선에서도 정전담판에서도 완전히 패배하고 마침내 우리에게 손을 들고야말았다.

1953년 7월 27일 10시 판문점의 정전협정조인식장으로 쌍방의 수석대표, 수석련락군관, 비서장들이 입장한 가운데 력사적인 정전협정조인식이 거행되였다.

조인식이 시작되자 우리측 수석대표인 남일 총참모장과 적측 수석대표인 해리슨이 각각 협정문에 서명하였다.

미국측 수석대표는 서명을 끝내고나서 펜대를 놓으며 저도 모르게 긴 한숨을 내쉬였다.

그자는 얼마나 긴장되여있었던지 《유엔군》사령관인 클라크가 서명하게 되여있는 협정문의 수표란에 자기 이름을 써넣는 실수를 저지르고도 알지 못한채 그대로 협정문을 우리측에 넘기였다.

적측 수석대표가 먼저 서명한 후 《유엔군》사령관이 최종서명해야만 그 문건이 미국의 패배를 인정하는 문건으로서 정식 효력을 발생하게 되는것이였다.

우리측에서 너무도 어이가 없어 협정문에 퇴짜를 놓고 도로 던져주자 해리슨은 협정문의 서명란을 뚫어지게 들여다보다가 너무도 당황하여 황급히 정정하였다.이렇게 큰 실수를 저지른 그자는 자리에서 일어나면서 어떻게 해서든 웃음을 지어보려고 했지만 초췌해진 얼굴엔 웃음이 아니라 패자의 번민만이 짙게 드러나있었다.

 

《유엔군》사령관의 탄식

 

드디여 세계《최강》을 떠들던 미제침략자들은 조선전쟁에서 많은 인적, 물적손실을 내고 우리 인민앞에 무릎을 꿇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 이딸리아주둔 파쑈도이췰란드군대와 무쏠리니군대의 항복을 받아냈다고 우쭐대며 조선에서도 다시한번 그러한 《공적》을 세우려고 꿈꾸던 미극동군사령관 겸 《유엔군》사령관 클라크는 한참동안이나 손을 부들부들 떨다가 협정문에 겨우 수표를 하였다.

그리고 미국의 패배에 대해 이렇게 비명을 질렀다.

《나는 패배감을 느꼈다.솔직히 말해서 휴전협정조인을 끝낸 후 형언할수 없을만큼 좌절감에 빠졌던것이다.그리고는 끝내 소리없는 눈물마저 흘렸다.비단 나만이 이런 심정이였을가.나의 전임자였던 맥아더와 릿지웨이도 나와 똑같은 심정이였을것이다.》

《유엔군》사령관의 탄식, 그것은 그대로 패배한 미합중국의 탄식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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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제가 조선전쟁을 도발한 때로부터 7월 27일의 력사의 시각까지는 옹근 3년, 흰기를 들고 정전담판을 구걸한 때로부터 158차례의 본회의가 2년나마 진행되였다고 볼 때 협정문에 조인하는데 걸린 13분은 너무도 짧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짧은 순간은 온 세계가 승리한 영웅조선, 영웅인민의 혁명적기개와 장한 모습,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진 미제의 수치스럽고 가련한 몰골을 한눈에 볼수 있게 한 통쾌한 순간, 수천년이 흘러도 지워지지 않을 력사적순간이였다.

수십년전 담판장에 흰기를 들고나온 패배자들의 가련한 몰골, 이것이야말로 거덜이 난 《불패의 미국》의 비참한 몰골이였다.

미국이 조선전쟁에서 당한 참패에서 교훈을 찾을 대신 그때 이루지 못한 침략야망을 실현해보려고 지금 이 시각도 침략의 칼을 갈고있지만 만약 이 땅에 또다시 덤벼든다면 지난 1950년대와 대비할수 없는 더욱 처절한 파멸을 면치 못할것이다.

본사기자 엄수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