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8월 1일 로동신문
실화 《백발소년》
《일본제국주의는 지난날 근 반세기동안 조선을 식민지로 만들고 우리 인민에게 헤아릴수 없는 재난과 고통을 들씌운 피맺힌 원쑤입니다.》 얼마전 증산군 신흥리를 찾아가는 우리의 뇌리에서는 줄곧 한 로인에 대한 생각이 떠날줄 몰랐다. 이제는 아흔을 가까이한 나이인데 건강은 어떠한지, 혈혈단신인 로인이 년로한 지금 생활을 어떻게 꾸려가고있는지… 우리가 한일룡로인을 처음으로 알게 된것은 10여년전 어느한 출판물을 통해서였다.거기에는 이런 내용의 글이 실려있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일제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수난의 그 세월에 태여나 조선사람이라는 하나의 리유로 하여 애어린 6살에 종신불구자가 된 증산군 신흥리에 사는 일흔살 난 한일룡로인이다.어른이라고는 도저히 믿을수 없는 작은 키, 기형적인 육체, 성장발육부전으로 70나이가 된 오늘까지 〈총각〉으로, 〈여섯살〉의 〈소년〉으로 살아오고있는 한 인간의 불우한 모습…》 그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제의 만행을 두고 치를 떨고 격분을 금치 못했던가. 《바로 이 집에서 한일룡로인이 살고있습니다.》 마을어구에서 만난 리의 일군이 아담한 농촌살림집의 대문을 열어젖히며 우리에게 하는 말이였다. 인기척에 한 중년녀인이 물젖은 손을 문대기며 토방에 내려섰다. 알고보니 그는 의지가지할데 없는 한일룡로인을 집에 모셔다 함께 살고있는 김용란동무였다. 리일군에게서 우리가 찾아온 사연에 대해 전해들은 녀인은 난색을 지었다. 《어쩌나, 아버님은 방금 집에 찾아왔던 학생들을 바래주러 나가셨는데…》 그 말에 우리는 안도의 숨을 내쉬였다.로인이 아직 정정한것같다고 하는 우리에게 온 마을이 관심사가 되여 돌봐준다고 하던 김용란동무는 로인과 함께 지내면서보니 어느 하루도 발편잠을 이루지 못하더라고, 가슴에 쌓인 원한이 얼마나 크면 그러겠는가고 하면서 이렇게 말을 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생전에 자주 동년배인 한일룡로인이 당한 불행에 대해 가슴아프게 추억하군 하였습니다.》 …1936년 봄, 찌그러져가는 농가에서 한일룡이 태여났다. 그의 출생은 한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온 마을의 경사로 되였다.한것은 태여날 당시 갓난아이라고 하기에는 도저히 믿기 어려울만치 몸집이 크고 울음소리 또한 우렁찼던것이다.태여나 1년이 되기 전에 형들보다 키가 더 컸고 힘도 셌다. 이 소식은 일제경찰놈들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였다.놈들은 때없이 집에 달려들어 그의 옷을 벗긴 다음 거꾸로 들고 얼마나 견디는가 시간을 재여보기도 했고 이걸 들어봐라, 저걸 들어봐라 하면서 못살게 굴었다. 그가 여섯살 잡히던 해였다.형들과 함께 들판을 뛰여다니던 그는 와뜰 놀랐다.험상궂게 생긴 일제경찰놈이 그앞에 떡 버티고서있는것이 아닌가.놈은 일룡이를 군화발로 툭툭 건드리며 자기를 한번 들어보라고 손시늉을 했다.일룡이 머뭇거리자 놈은 그의 팔을 붙잡고는 서툰 조선말로 《너 내 말 안들으면 죽인다.》라고 엄포를 놓았다.일룡은 하는수없이 경찰놈의 혁띠를 한손으로 잡고 힘을 썼다.순간 놈이 통채로 버쩍 들리우며 두다리가 허공에서 버둥댔다.낯짝이 금방 구운 벽돌장처럼 시뻘겋게 달아오른 놈은 땅에 내려서기 바쁘게 황황히 뺑소니를 쳤다. 주변에서 일하던 마을사람들은 입을 딱 벌렸다. 《우리 마을에 장사가 났수다.》, 《일룡아, 어서 자라서 왜놈들의 목대를 모조리 분질러놓거라.》 하지만 누구나 희한해한 그날의 일로 하여 일룡이에게 어떤 불행이 닥쳐오게 될지 마을사람들은 알수 없었다.… 김용란동무의 집마당가에서 《계십니까?》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매일과 같이 집에 들려 로인이 앓을세라 따뜻이 돌봐준다는 리병원원장이 찾아온것이였다.로인의 건강상태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던 원장은 추연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왜놈들은 세상에서 제일 악독한 놈들입니다.》 알고보니 그도 이 고장내기여서 로인의 래력에 대해 잘 알고있었다. …어린 한일룡이 억대우같은 경찰놈을 한손으로 들었다놓은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날이였다. 그의 집으로 흰 위생복을 입은 왜놈들이 들이닥쳤다. 《여기 한일룡이 누군가?》 불길한 예감을 감촉한 어머니가 아들을 치마폭에 꼭 감싸안았다. 《걱정이나 말아.아들이나 튼튼하게 자라라고 예방주사를 놓으려고 한다.》 놈들은 이렇게 이죽거리며 주사기를 뽑아들고는 발버둥치는 한일룡에게 다짜고짜 주사를 놓았다. 《악-》 한일룡은 비명을 지르며 의식을 잃었고 이튿날부터 시름시름 앓기 시작했다.한겨울에 홑베잠뱅이를 걸치고도 감기 한번 앓지 않던 막내였던지라 속이 덜컥해난 부모는 여기저기 병원들을 찾아다녔지만 원인을 알수 없었다.한일룡은 《예방주사》를 맞은 후부터 자주 앓았고 키도 더 자라지 못하였다. 그 주사약에 깃든 흉계는 시일이 흐른 뒤에야 알려지게 되였다.병원에서 일하는 한 조선사람을 통해 왜놈들이 한일룡에게 놔준 그 주사약이 성장발육을 억제시키는것이며 주사를 맞고도 아이가 다른 일이 없이 계속 튼튼하게 자라면 독주사를 놓아 아예 없애치우기로 하였다는것을 알게 된 마을사람들은 경악을 금치 못하였다. 일제놈들의 책동은 이에만 그치지 않았다. 놈들은 마을뒤산에 올라가 정기를 막는다고 하면서 쇠말뚝까지 박았다. 마을사람들은 일제에 대한 분노로 치를 떨었다.허나 나라없던 그 세월 어디에 가서 놈들의 만행을 하소하랴.… 원장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다. 한동안 무거운 침묵이 흐르는데 김용란동무가 《저기 아버님이 오십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대문이 열리더니 한일룡로인이 마당에 들어섰다.수십년전이나 다름없는 120㎝정도의 작은 키, 다른것이 있다면 머리의 흰서리와 얼굴에 깊이 패인 주름뿐이였다. 로인의 모습을 바라보느라니 아이나 다름없는 자기의 신체때문에 사람들의 발길이 덜 미치는 오솔길을 찾아다녔다는 이야기며 일생 목욕탕에도 못가고 겨울이면 집에서 함지목욕을 하고 여름이면 한밤중에 개울에 나가 몸을 씻군 하였다는 눈물겨운 이야기들이 가슴아프게 되새겨졌다. 한일룡로인은 목갈린 소리로 이렇게 말하였다. 《사실 죽자고 모진 마음을 먹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수다.하지만 그때마다 네가 목숨을 끊으면 좋아할건 쪽발이놈들뿐이라고 하던 부모님과 형들의 당부가 떠올라 강잉히 마음을 다잡군 했습니다.나를 종신불구자로 만들고 내 인생을 망쳐놓은 왜놈들을 이 손으로 탕쳐죽일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겠소.》 우리는 그의 모습을 처절한 아픔속에 바라보았다. 《백발소년》, 결코 한 인간의 불우한 인생이 비낀 부름만이 아니였다.우리 민족을 멸살시키기 위해 미쳐날뛴 일제의 야수성과 잔인성에 대한 진실한 고발이며 수십년세월 쌓이고쌓인 증오와 복수의 대명사였다. 정녕 한일룡로인처럼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안고 일생 분노로 가슴을 태웠고 오늘도 원한에 떠는 수난자들이 이 땅에는 그 얼마나 많은가. 로인은 헤여지면서 우리에게 말했다. 《나의 피눈물나는 과거사를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해주시오.그래서 후대들이 왜놈들이야말로 얼마나 악독하고 비렬한 족속들인가를 잘 알고 복수의 칼날을 더 억세게 벼리도록 해주시오.》 《백발소년》의 피타는 목소리는 메아리를 일으키며 우리의 귀전에 계속 들려왔다. 본사기자 리경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