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23일 로동신문
과수의 고향은
북청군혁명사적관을 찾아서
우리 인민들에게 사철 신선한 과일을 먹이시려고 그처럼 마음쓰시던
《조국땅 이르는 곳마다에 펼쳐진 훌륭한 과수원들은
강사 지예성동무는 참관자들과 함께 1호실에 들어선 우리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는것이였다.
가렬처절한 3년간의 전쟁으로 재더미만 남은 조국땅에 하루빨리 인민의 락원을 일떠세우실 일념을 안으시고 끊임없는 현지지도의 길을 이어가시던
일군들로부터 군안의 실태를 구체적으로 료해하고나시여 한동안 벌거숭이산들을 가슴아프게 바라보시던
그로부터 3년후인 주체46(1957)년 3월 북청군을 찾으신
눈석이물이 질벅한 비탈밭과수원에 오르시여 과일나무들의 모양과 수세, 과수원의 경사도를 가늠해보신
자그마한 산경사지과일밭에서 계단식과수원의 새싹을 발견하신것이 그리도 기쁘시여 만면에 환한 웃음을 담으시고 자신께서는 오래전부터 우리 인민들과 어린이들에게 과일을 더 많이 먹일 생각을 해왔는데 그것을 실현할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게 되였다고 하시던
과수의 고향으로서 북청군의 자랑찬 전변의 력사는 이렇게 시작되였다.
북청군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은
북청군에서 타오른 한점의 불꽃을 온 나라에 타번지게 하시려 이 고장을 찾고찾으시며 대자연개조의 봉화를 지펴주신 우리
이에 대해 우리는 2호실에 대한 참관을 통해 잘 알게 되였다. 주체50(1961)년 4월초 어느날이였다.
내리는 찬비를 맞으시며 북청군 룡전리의 산비탈과수원과 뽕밭을 돌아보신
당과 국가의 중대사를 토의하는 회의가 이런 두메산골의 수수한 농촌마을에서 진행되다니…
그때에야 비로소 일군들은
주체50(1961)년 4월 7일
강사의 해설을 들으며 우리는 지금으로부터 60여년전 한 평범한 농촌마을에서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가 우리 나라 과수업발전에서 일대 전환의 계기를 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음을 다시금 절감하게 되였다. 당중앙위원회 상무위원회 북청확대회의이후 십여년간 우리 나라에서는 과수원조성사업이 전당적, 전군중적운동으로 힘있게 벌어져 20만정보의 과수원이 마련되게 되였다. 그 나날 북청군은 나라의 과수업발전을 주도하는 력사의 고장으로 되였다. 3호실과 4호실, 5호실에 전시되여있는 사적자료들은 이에 대해 뚜렷이 웅변하고있었다. 깊어지는 생각을 안고 우리는 강사를 따라 6호실로 향하였다.
6호실에는
룡전과수농장 전망대에서 새 세기 과수업의 발전방향에 대하여 밝혀주시는
북청군 과수밭들에 있는 늙은 사과나무들을 대담하게 그루바꿈하여야 한다.한시바삐 키낮은 우량품종의 사과나무들로 바꾸어야 한다.…
쪽잠과 줴기밥으로 애국헌신의 초강도강행군길을 이어가신 우리
주체100(2011)년 5월 북청군 룡전과수농장을 찾으시여 키낮은사과나무들로 꽉 들어찬 과원의 한복판에 들어서신
그날 오래도록 과수밭의 전망도를 보고 또 보시며
그로부터 몇달후인 10월 또다시 룡전과수농장을 찾으신
강사의 이야기를 들을수록 우리는 이 고장만이 아닌 온 나라 방방곡곡에 일떠선 과일생산기지들이야말로
오늘 북청군은
몇해전 10월에도 북청군의 과일생산실태를 료해하신
북청군의 일군들과 당원들과 근로자들이 당 제8차대회 결정을 받들어 높은 다수확성과를 이룩하였을 때에는 이들의 소행을 귀중히 여기시며 능률높은 뜨락또르도 보내주신
어찌 이뿐이랴.
이렇게 되여 북청군에는 수천t능력의 과일보관고와 과일가공공장이 훌륭히 일떠서게 되였다.
북청군혁명사적관을 나서는 우리의 가슴속에는
본사기자 김일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