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9월 12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오늘도 울리는 피의 절규

안주시 룡연동에서 사는 엄재률로인이 보내온 편지를 보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조선인민의 불구대천의 원쑤이며 우리 혁명의 주되는 투쟁대상입니다.》

우리는 얼마전 본사편집국앞으로 보내여온 한통의 편지를 받게 되였다.

안주시 룡연동에서 사는 엄재률로인을 대신하여 한 교원이 쓴 편지였다.앞을 못보는 로인은 일가친척들과 새세대들에게 열백번도 더 들려준 이야기이지만 대필로 본사편집국앞으로 편지를 보내기로 결심하였다.그것은 결코 한 가정에만 한한 이야기가 아니기때문이였다.

그가 세살 나던 해인 1952년 어느날이였다.

하늘을 썰며 날치던 미국놈들의 비행기가 사라지자 방공호에 숨어있던 조무래기들이 밖으로 뛰여나왔다.부모들이 만류했지만 동심은 어쩔수 없는지라 아이들은 아지랑이 피여오르는 들판으로 와- 달려나갔다.

엄재률도 제또래들과 함께 뛰여놀았다.그러던 그의 눈에 풀밭에 떨어진 알락달락한 물건이 비껴들었다.척 보기에도 눈길을 끄는 장난감이였다.

호기심을 금할수 없어 가까이 다가간 그는 물건을 손에 집어들었다.인츰 그의 얼굴에 웃음이 피여났다.처음 보는 장난감이여서 그것을 가지고노느라 시간가는줄 몰랐다.

얼마후 눈이 간지러워나자 철없는 그는 물건을 만지던 손으로 비벼댔다.시간이 흐르면서 눈이 아프기 시작하더니 나중에는 눈을 뜰수 없을 정도로 아픔이 심해졌다.

그의 울음소리를 듣고 할머니와 어머니가 달려왔다.어디 다친데는 없는가 하여 아무리 살펴보았으나 어떤 상처도 없었다.

그러나 아픔을 호소하는 그의 울음소리는 더욱 높아졌다.눈을 뜨지 못하고 아픔과 괴로움에 모대기는 그를 어머니가 업고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에게 보인 결과 세균에 감염된것으로 판명되였다.그가 가지고놀던 물건에 세균이 묻어있었던것이였다.치료를 거듭하였으나 끝내는 세균에 감염된 한쪽눈을 떼내지 않으면 안되였다.다른 한쪽눈은 어렴풋이 빛이나 가려볼수 있을 정도밖에 되지 못하였으나 그마저 감염이 점점 심해져 결국에는 두눈을 다 잃게 되였다.

이렇게 되여 엄재률은 꽃망울도 피워보지 못한채 어린 나이에 미제의 세균전만행에 의해 귀중한 두눈을 잃고 영영 앞을 보지 못하게 되였다.…

이것이 바로 미제의 야수적인 만행에 의해 두눈을 잃은 엄재률로인이 터친 울분에 찬 증언의 일단이다.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미제는 국제법을 란폭하게 위반하고 우리 인민에게 세균무기까지 거리낌없이 사용하며 몸서리치는 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국제법들과 전쟁규범에는 세균무기, 유독성화학무기 등 대량살륙무기들의 사용을 금지하며 그 사용자들을 엄중한 범죄자로 규정하고 형사적책임을 추궁하게 되여있다.

그러나 미제침략자들은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이 모든 국제법과 규범들을 공공연히 짓밟았다.

미제공중비적들은 1952년 1월부터 3월까지의 기간에만도 중요수송로, 후방의 중요철도간선, 분기점들과 그 주변의 주민지대를 비롯하여 169개 지역에 연 800여차에 걸쳐 세균탄과 독충들, 균이 묻은 여러가지 물건들을 투하하였다.

미제는 전쟁 전 기간 페스트, 콜레라, 천연두, 류행성출혈열을 비롯하여 20여종에 달하는 각종 병원체와 파리(5종), 모기(3종), 벼룩, 빈대, 쥐 등 무려 30종이상에 달하는 동물들을 세균전에 리용하였다.

당시의 상황에 대하여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 우리 나라를 방문하여 미제의 세균전만행을 현지에서 조사한 국제민주법률가협회 조사단의 조사보고에는 이렇게 씌여져있다.

《…여러 경우에 있어서 발견된 물건들과 비행기의 출현사이에 장소와 시간상 일치성이 판명되였는바 이 비행기들은 그 장소우에 낮게 떠돌면서 기총소사도 폭격도 하지 않았던것이다.이런것들을 발견한 직후에 페스트와 콜레라가 발생하였다.이 모든 조건밑에서 조사단은 미국비행기들이 조선에 전염병에 감염된 곤충들을 투하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않을수 없다.…》

이렇듯 미제의 야수적이며 악랄한 세균전만행에 의해 많은 전염병이 급격히 퍼졌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병마에 시달리다가 목숨을 잃거나 장애자가 되였다.

엄재률로인도 그들중의 한사람이였다.사실 그는 마음을 모질게 먹은적이 한두번이 아니였다고 한다.하지만 그때마다 네가 목숨을 끊으면 좋아할건 미국놈들뿐이라고 하던 부모님의 당부가 떠올라 강잉히 마음을 다잡군 했다.그리고 영원히 아물수 없는 상처를 안고 일생 분노로 가슴을 태웠다.

이 땅에 재난을 몰아왔던 전쟁의 포성이 멎은지도 어느덧 수십년세월이 흘렀다.그러나 엄재률로인은 오늘도 그때의 참상을 잊지 못하고있다.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것이 어찌 한 인간, 한 가정만이 겪은 비극이겠습니까.그리고 또 옛말로만 전할 어제날의 이야기이겠습니까.미제가 남아있는한 이 땅에 서린 피의 원한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가셔질수 없기에 이렇게 편지를 씁니다.자라나는 새세대들에게 당부하고싶습니다.미제승냥이놈들의 야수적만행을 한시도 잊지 말고 기어이 천백배로 복수해달라!》

그렇다.로인의 피의 절규는 우리에게 당부하고있다.

복수의 칼날을 더 억세게 벼리라고.복수의 당부를 깊이 새기라고.

본사기자 안성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