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체113(2024)년 10월 25일 로동신문
세대가 바뀌고 혁명이 전진할수록 더욱 투철한 반제계급의식을 지니자 그들은 왜 대를 이어 총을 잡는가 천내군 풍전리에서 살고있는 한 영예군인이 들려준 이야기
《우리는 미제살인귀들이 지난 조국해방전쟁시기에 감행한 야수적만행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하며 놈들에게 천백배로 복수할 굳은 각오를 가져야 합니다.》 얼마전 강원도에 대한 취재를 이어가던 우리는 천내군 풍전리에서 살고있는 곽원복동무의 집을 찾았다. 그는 군사임무수행중 몸에 부상을 당한 영예군인이며 두 아들을 조국보위초소에 내세운 자랑스러운 가정의 가장이다. 자식들중 한명이라도 곁에 두었으면 좋지 않았겠는가고 하는 우리에게 그는 비분에 잠겨 말했다. 《우리 어머니의 이름이 뭔지 아십니까.박복수랍니다. 여기엔 사연이 있답니다.》 그리고는 몇해전에 세상을 떠난 자기 어머니의 쓰라린 과거사를 들려주었다. 박복수의 본명은 박칠순이였다.일곱번째로 태여난 자식이라고 하여 칠순이라는 이름을 가졌던것이다. 1951년 10월 어느날 강원도의 깊은 산골마을에서 살고있던 박칠순은 학교에서 공부를 끝내고 동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오고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요란한 소리가 울리면서 미국놈의 비행기들이 아이들의 머리우로 날아왔다. 철없는 아이들은 길가에 선채로 호기심에 끌려 비행기를 올려다보았다. 그 순간 적비행기들은 아이들을 향하여 기총사격을 마구 퍼부어댔다. 눈깜짝할 사이에 길가에는 10여명의 아이들의 시체가 널려지게 되였고 땅은 선지피로 물들었다. 놈들은 이것도 성차지 않았는지 다시 선회하면서 아이들의 시체에 련속 기총사격을 퍼부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박칠순은 마을사람들이 달려와서야 정신을 차렸다. 그날 그의 오빠 두명과 녀동생들이 무참하게 목숨을 잃었다. 하지만 놈들의 만행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철부지아이들을 목표로 기총탄을 퍼부어댄 미제원쑤들은 다음날에는 아이들이 공부하는 학교와 마을들에 폭격을 가하여 수많은 사람들을 학살하였다. 깊은 산골마을에까지 달려들어 평화적주민들의 머리우에 기총탄과 폭탄을 퍼부은 미제침략자들의 살인만행으로 박칠순은 순간에 여섯 형제를 잃게 되였다. 복수를 다짐하며 인민군대원호사업에 떨쳐나선 그의 부모와 마을사람들은 그때 미제원쑤들을 잊지 말고 천백배로 복수하라는 뜻에서 박칠순의 이름을 《박복수》라고 고쳐달아주었다. 그때부터 곽원복동무의 어머니는 박복수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그리고 스스로 계급교양강사가 되여 아들들과 마을사람들에게 미제원쑤놈들이 저지른 야수적만행에 대하여 자주 들려주었다. 졸지에 형제들을 잃은 녀인의 눈물겨운 인생담을 듣기 위하여 그의 집으로는 이웃들은 물론 인민군대에 입대하는 청년들과 표창휴가를 받고 고향으로 온 군인들이 찾아왔다.그리고 원쑤놈들에 대한 증오와 분노로 피를 끓이며 복수의 맹세를 가다듬었다. 어머니의 눈물겨운 과거사를 들으며 자란 곽원복동무였기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남먼저 혁명의 군복을 입었던것이며 군사임무수행중 부상을 당했을 때에는 자기 어머니의 기대에 보답 못했다는것으로 하여 억한 심정을 누르지 못했던것이다.그리고 불편한 몸이였지만 자식들을 조국보위초소로 떠밀었던것이다. 곽원복동무는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이길이 어머니의 한을 풀어주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지금도 원쑤놈들은 호시탐탐 기회만을 노리고있습니다.피는 피로써, 우리는 대를 이어가면서라도 원쑤들을 천백배로 복수하고야말것입니다.》 그의 이야기는 우리의 가슴을 원쑤들에 대한 증오로 세차게 끓어번지게 하였다. 그렇다. 세대와 세대를 이어 계급의 총대, 혁명의 총대를 더욱 억세게 틀어잡는 여기에 우리의 삶과 행복을 지키는 길이 있다. 이 불변의 철리를 다시금 새기며 우리는 영예군인의 집을 나섰다. 본사기자 김현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