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일《로동신문》
만포제련소의 50년사에 깃든 절세위인들의 불멸의 업적을 뜨겁게 안아보며
조국의 북변 만포시에는 나라의 경제발전에 크게 한몫하고있는 굴지의 유색금속생산기지 만포제련소가 웅건한 모습으로 틀지게 자리잡고있다. 우리는 얼마전 만포제련소를 돌아보면서 이곳에 깃든 가지가지의 가슴뜨거운 사연들에 대해 깊이 새겨안게 되였다.
《조선혁명은 하늘이 주는 신비한 힘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편단심 당을 따르고 옹위하는 영웅적
제련소에 도착한 우리는 온 제련소가 격정과 흥분으로 설레이고있다는것을 느낄수 있었다.
혁명사적교양실 강사 홍정화동무는 50년이면 결코 짧은 세월이 아니라고, 우리 제련소야말로 대를 이어 누려가는
사실이 그러하였다. 50년전만 하여도 이 지대는 농사나 짓던 평범하고 수수한 벌판이였다. 그때 당시 어느 누가 이 자리가 제련소를 들여앉히기에 매우 적합한 명당자리라는것을 생각이나 해보았던가. 1974년 11월 2일, 력사의 사변은 소리없이 일어났다.
조국의 북변 자강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주변의 지형지세를 이윽토록 관망하신
그날
제련소와 숨결을 같이하며 수십년간 일해온 로기능공들과 기술자들은 정말이지 제련소의 굴뚝자리며 그 높이, 생산공정의 합리적인 배치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공화국의 부강발전에 이바지하며 거대한 생명력을 떨치고있는 힘있는 기업소, 조국의 또 하나의 재부는 이렇게 마련되였다.
우리는 제련소의 연혁사의 갈피마다에 어려있는
우리와 만난 제련소의 일군은
액체산소분리공정에 가보아도, 종업원들이 즐겨찾는 구내식당에 가보아도, 멋쟁이로 일떠선 문화회관과 종합생산지령실에 들려보아도
용광로직장에서 우리는 발걸음을 멈추었다.
직장장의 말에 의하면 언제인가 자기들의 일터를 또다시 찾으신
참으로 강선의 저녁노을이 그러하듯 이곳 만포의 하늘가를 붉게붉게 물들이는 꺼질줄 모르는 노을에도 하많은 사연이 실려있었다.
만포제련소야말로 자력갱생의
제련소의 일군들은
조국의 부강번영을 위해, 인민의 행복을 위해 이어오신 그이의 헌신의 발걸음은 그대로 제련소를 떠미는 억센 힘이였고 줄기찬 생명력이 아니였던가. 하나의 기업체가 탄생하여 반세기라는 오랜 세월 줄곧 자기의 힘을 증대시키고 자기의 면모를 일신하며 생산장성의 한길로 줄달음쳐온다는것은 사실 헐치 않은 일이다. 만포제련소도 완전히 주저앉느냐 아니면 재생되느냐 하는 운명의 갈림길에 섰던적이 있었다고 한다. 실장 김성호동무는 그때 일을 잊을수 없다고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정말이지 우리 제련소는
돌이켜보면
이날
우리는 그날의 사연을 그대로 간직한 문화회관에 들어섰다. 무대우에서는 창립 50돐을 맞으며 진행할 예술소품공연시연회가 한창 고조를 이루고있었다. 우리는 기동예술선동대원 리영호동무를 만났다.
잊을수 없는 그날 그는
그날
그 직관판은
모든 종업원들이 한날한시에 받아안은 천연색TV와 은정깊은 과일지함들이며 여러 차례 보내주신 선물, 배려하여주신 화차들…
거기에서 오래도록 눈길을 떼지 못하시던
그날
바로 이렇게 만포의 로동계급은
그런데 바로 그해 12월 천만뜻밖에도
피눈물의 날과 달을 맞고보내며 어느덧 현지지도기념일이 하루하루 다가올수록
하여 이곳 로동계급은
그런데
오늘도 혁명사적교양실에 보존된 불멸의 친필글발을 한자한자 되새기며 이곳 일군들과 로동계급은 이름할수 없는 격정과 더불어 보답의 열정으로 가슴들먹인다고 한다. 어찌 이뿐이랴.
만포의 로동계급은
이곳 일군들과 로동자, 기술자들은 생산도 건설도 후방사업도 모두 당의 령도업적을 빛내이기 위한 사업으로 여기고 본때있게 내밀었다. 나날이 늘어나는 생산, 재자원화의 본보기로 떨치는 자랑, 튼튼한 후방기지들과 그 덕을 보는 종업원들의 기쁨넘친 모습… 이곳 제련소가 거둔 이 모든 성과는 당의 령도업적을 빛내이는 사업이 얼마나 중요하며 그것을 생명선으로 틀어쥐고나가는데 단위발전의 지름길이 있고 성과의 비결이 있다는것을 여실히 증명해주고있다. 그렇다.
불타라 북방의 노을이여, 절세위인들의
특파기자 고철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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