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12일《로동신문》

 

중동의 화근-미국이스라엘결탁관계(1)

평화파괴의 악성종양은 어떻게 산생되였는가

 

팔레스티나의 가자지대에서 타오른 무력충돌의 불길이 주변으로 타번지면서 중동이 참혹한 전란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있다.

사태를 우려하는 많은 분석가들은 이스라엘이 가자지대에서 무차별적인 군사행동을 계속 벌리다 못해 레바논과 이란에로까지 마수를 뻗치면서 미국의 기준으로 중동질서를 재수립하려고 시도하고있는것이 본질적원인이라고 주장하고있다.

이스라엘은 명확히 중동평화파괴의 화근이다.

누가 중동에 이스라엘이라는 악성종양이 생겨나게 하였는가.그것은 이스라엘이라는 국가창건의 전후관계사를 살펴보면 알수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팔레스티나지역에는 유태복고주의운동의 영향으로 많은 유태인들이 모여들었다.

당시 중동지역에서 지배적인 세력으로 군림하고있던 영국은 제1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1915년에 아랍인들의 협력을 얻어내려고 수세기동안 오스만제국의 통치하에 있은 팔레스티나를 독립시켜주겠다는 《맥마혼선언》을, 그로부터 2년후인 1917년에는 팔레스티나땅에서의 유태국가창건을 지지한다는 《밸푸어선언》을 발표하였다.

영국의 량면술책은 아랍인들과 유태인들사이의 모순을 격화시켜 류혈충돌을 빚어내였고 영국에 대한 량측의 반감도 고조시키였다.

그때 유태복고주의를 제일 적극적으로 지지해나선것이 미국이였다.

1919년 빠리평화회의에서 미국은 팔레스티나땅에 유태인을 위주로 하는 독립국가를 창건할데 대한 방안을 들고나왔다.그에 이어 미국은 자국에서 살고있는 유태인들로 하여금 팔레스티나지역에 투자하고 그곳에 기업을 창설하도록 하는 등 유태복고주의운동을 재정적으로 원조해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는 나치스도이췰란드의 유태인말살정책으로 하여 유태국가창설에 대한 국제적인 동정의 여론이 조성된 흐름을 타고 팔레스티나땅에로의 유태인이주를 극구 지원하였다.

1942년 5월 뉴욕에서 미국유태복고주의자대표대회가 진행되였는데 대회에서 채택된 《빌트모어강령》은 영국의 통치를 끝장내고 전체 팔레스티나땅에 유태국가를 세우며 유태인이주와 령토문제에서 완전한 자유를 쟁취할것을 선언하였다.

미국정부는 이 강령에 전적인 지지를 주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팔레스티나인들은 영국의 위임통치를 반대하여 완강히 투쟁하였으며 유태복고주의자들은 그들대로 수많은 유태인들을 팔레스티나에 이주시키였다.

영국과 팔레스티나인들, 유태복고주의자들과의 관계가 급속히 악화된것은 당연하였다.

미국은 영국이 진퇴량난의 처지에 빠지게 된것을 절호의 기회로 보고 지역에서 영, 프세력을 밀어내는 동시에 아랍인민들의 반제민족해방투쟁을 탄압말살할것을 획책하였다. 이를 위해 유태복고주의자들을 돌격대로 내세웠다.여기에는 유태복고주의자들의 호전성과 령토야망을 써먹는 동시에 《분할하여 통치하라.》는 식민지통치수법에 따라 아랍인과 유태인사이의 민족적 및 종교적인 반목을 증폭시켜 저들의 중동지배야망을 손쉽게 실현하려는 흉심이 있었다.

미국지배층과 유태인들사이의 깊은 유착관계도 작용하였다.

당시 수백만명에 달하는 미국의 유태인들은 금융, 무역, 보건 등 여러 부문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있었으며 유태인단체들은 미국의 국회선거와 대통령선거전에서 후보자들이 반드시 쟁취하지 않으면 안될 영향력있는 대상이였다.

영국은 미국의 강경정책과 37억 5 000만US$의 《전후부흥원조》에 굴복하여 팔레스티나문제를 유엔에 넘기였으며 미국은 1947년 11월 유엔총회 제2차회의에서 팔레스티나를 분할하여 두개의 국가를 세울데 대한 결의를 통과시키였다.

아랍인들은 이를 완강히 반대하였으나 유태인들은 환성을 올렸다.

1948년 5월 14일 영국군이 팔레스티나에서 철수함으로써 영국의 위임통치는 종말을 고하였다.

그날 유태복고주의전국위원회는 유태민족회의를 열고 유태국가 이스라엘의 창건을 선포하였다.

그로부터 불과 몇분만에 미국은 이스라엘국가를 승인한다고 발표하였다.

이렇게 되여 중동지역에 평화와 안정을 파괴하는 악성종양-이스라엘이 산생되였다.

본사기자 장  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