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19일《로동신문》

 

무포의 낚시터가 전하는 위인의 혁명세계

 

위대한 장군님께서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강령을 선포하신 력사의 그날로부터 어느덧 51돌기의 년륜이 새겨지였다.

뜻깊은 이날을 맞으며 우리는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시여 우리 당과 혁명발전에 길이 빛날 불멸의 업적을 쌓아올리신 위대한 장군님의 거룩한 위인상을 되새겨본다.

경애하는 김정은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비범한 사상리론적예지와 비상한 탐구력으로 정력적인 사상리론활동을 벌리시여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시고 김일성주의가 자주시대의 위대한 지도사상으로 더욱 빛을 뿌리게 하시였습니다.》

무포의 낚시터!

우리 인민 누구나의 마음속에 깊이 간직된 유서깊은 곳이다.

세월이 멀리 흘렀어도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자주시대의 지도사상으로 정식화하는것을 자신의 가장 숭고한 사명으로 간주하시고 위대한 장군님께서 끝없는 사색의 세계를 펼치신 력사의 지점을 우리 어찌 잊을수 있으랴.

1971년 8월 28일 아침 평양역을 떠난 한대의 렬차가 기적소리를 울리며 북쪽으로 달리고있었다.

동해선을 따라 달리는 렬차에는 위대한 장군님을 모시고 동행하게 된 일군들이 타고있었다.목적지는 삼지연군(당시)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 얼마간의 휴식을 보장해드리기 위하여 조직된 길이였다.이런것으로 하여 일군들 누구나 즐거운 마음에 휩싸여있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순간부터 일군들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군내 여러곳을 돌아보시고 한낮이 기울어서야 숙소로 돌아오시였는데 도착하시여서는 어버이수령님께 올릴 새 기록영화를 보아주시였다.밤에는 지방당일군들을 만나 담화하시였다.평양에서도 매일이다싶이 사람들이 찾아왔다.

이렇게 위대한 장군님께서 계시는 방에서는 깊은 밤에도 불빛이 꺼질줄 몰랐고 그이께서 사업하시는 책상우에는 문건들이 가득 쌓여있었다.

그러던 며칠후인 9월 4일 삼지연못가를 거니시며 새벽안개를 맞으시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경치좋은 무포에 가보았으면 하던 일군들의 청을 잊지 않으시고 오늘은 날씨도 좋은데 한번 가보자고 이르시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도 일군들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왜 무포에 가보자고 하시는지 그 의도를 미처 다 알수 없었다.

위대한 장군님을 모신 일행은 갑무경비도로를 따라 두만강상류로 떠났다.무포숙영지에서부터 600m가량 떨어진 곳에 낚시터가 있었다.무포낚시터의 본래이름은 7호물동이였다.

항일혁명투쟁시기 우리 수령님께서 새기신 성스러운 자욱이 어려있는 무포를 찾으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7호물동의 아래쪽에 있는 바위에 내려가 낚시대를 드리우시였다.

두만강에서의 산천어잡이가 시작되였다.여기저기서 연방 고기가 물려나왔다.

그런데 위대한 장군님께서 자리를 잡으신쪽에서는 아무런 기척도 없었다.드살찬 산골물고기가 미끼를 나꿔채는데도 그이께서는 끝없는 사색에 잠겨계시였다.

얼마나 깊은 사색의 세계에 잠겨계시였으면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한 일군이 자신께로 다가오는것도 모르시였다.그 일군이 인기척을 내서야 뒤를 돌아보신 그이께서는 웃음을 지으시였다.그러시고는 방금전까지 해오시던 사색을 이으시며 일군에게 오늘 수령님의 거룩하신 발자취가 어려있고 항일혁명선렬들의 뜨거운 피가 스며있는 두만강가에서 이렇게 낚시를 드리우고 사색을 더듬으니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는데서 막혔던 생각이 확 트인다고 하시면서 더없이 기뻐하시였다.

도도히 굽이쳐흐르는 두만강의 물결을 바라보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감회는 참으로 깊으시였다.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시기 위하여 바치신 로고와 헌신, 정력적인 령도의 날들이 뜨겁게 어려오시였던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빛내이시기 위해 크나큰 심혈을 기울이시던 낮과 밤들, 당중앙위원회에서 사업하시며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정식화하시기 위하여 사색에 사색을 거듭하시던 날과 달들…

정녕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과학적으로 정립체계화하기 위해 기울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사색과 정열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것이였다.

현지지도의 길에 오르실 때면 두툼한 책들을 가지고다니시면서 차안에서, 숙소에서 밤을 지새우며 사색을 기울이시고 또 어떤 때에는 간단한 표현을 놓고도 며칠동안 생각하시였으며 어떤 표현은 몇달동안 생각해보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정력적인 사색과 로고속에 흘러간 이 나날은 선행한 로동계급의 혁명사상의 력사적공적과 제한성을 하나하나 밝혀내는 동시에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의 독창성과 진리성, 정당성을 선행리론과의 대비속에 전면적으로 확증하신 나날이였다.…

잠시후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숭엄한 감정을 안으시고 두만강상류쪽을 가리키시며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돌이켜보면 얼마나 준엄한 력사가 이 강줄기와 저 밀림속에 깃들어있습니까.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우리 수령님처럼 긴긴 세월 혈전만리를 헤치시며 혁명을 령도해오신분은 없습니다.

…위대한 수령님의 혁명사상은 그 어느 고전에도 비기지 못할 폭과 깊이를 가지고있으며 수령님의 혁명력사는 인류가 영원히 심장속에 간직해야 할 불멸의 영웅서사시입니다.》

위대한 장군님의 뜻깊은 말씀을 받아안는 일군의 격정은 컸다.그는 력사가가 아니였다.그러나 아직은 무엇이라고 딱히 찍어말하기 힘든 력사적사변이 바야흐로 태동하고있다는 생각에 가슴은 세차게 높뛰였다.

크나큰 격정에 휩싸여있는 일군을 바라보시며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사상이 세계 수억만 인민들의 심장을 틀어잡고있는데 우리는 아직도 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지 못하였다고 하시면서 거듭 김일성주의!》라고 외우시였다.

이윽하여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두만강의 흐름이 영원하듯이 김일성주의는 오늘의 우리 시대를 대표하는 혁명의 유일한 지도사상이며 미래의 사회에서도 변함없이 빛을 뿌리게 될 위대한 혁명사상이라고 힘주어 교시하시였다.

김일성주의의 영원한 생명력을 확신하시는 위대한 장군님의 숭고한 뜻이 빛발치는 참으로 가슴벅찬 순간이였다.

그제서야 일군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풍치좋은 삼지연에 오시고도 단 하루의 휴식도 없이 끊임없이 사색하시며 정력적으로 사업하시다가 오늘 이렇게 무포의 낚시터에 나오신 까닭을 알게 되였다.

그날 무포의 낚시터에서 우리 장군님께서 바치신 귀중한 시간은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시대의 위력한 지도사상으로 정립해나가시는 불면불휴의 사색과 탐구의 계속이였고 조국청사에 특기할 일대 사변을 마련해가시는 뜻깊은 날들중의 한순간이였다.

잊을수 없는 그날로부터 2년 남짓한 시일이 지나간 1974년 2월 19일,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마침내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위대한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시고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우리 당의 최고강령으로 선포하시였다.

우리 장군님의 위대한 사색의 세계와 더불어 길이 빛나는 무포의 낚시터에 깃든 이야기는 오늘도 뜨겁게 전하고있다.

위대한 김일성주의의 정식화, 정녕 이것은 혁명의 수령에 대한 도덕의리의 최고화신이시며 천재적인 사상리론가이신 위대한 장군님의 고심어린 사색의 결정체이라고.

그렇다.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을 김일성주의로 정식화하시고 김일성주의가 자주시대의 위대한 지도사상으로 더욱 빛을 뿌리게 하신것은 위대한 장군님께서 한평생 당과 혁명, 시대와 력사앞에 이룩하신 업적중에서도 가장 불멸할 업적이다.

천추만대에 길이 빛날 그 불멸할 업적을 떠나 우리 인민의 모든 승리의 조직자, 향도자로 위용떨치는 우리 당의 존엄과 위력에 대하여, 온 나라 전체 인민이 일심의 대오로 굳게 뭉쳐 부강번영에로 나아가는 우리 조국의 강용한 기상에 대하여 생각할수 없기에 뜻깊은 2월 19일을 맞이한 천만인민의 마음 그토록 크나큰 격정에 넘쳐있는것이다.

본사기자 림정호